-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 第2次 바티칸公議會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1962년 요한 23세 교황이 소집하여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 때 폐막한 제21차 세계 공의회. [내용] 전 세계의 가톨릭 교구 지도자나 그 위임자 및 신학자들이 모여 합법적으로 교회의 신조와 원칙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공의회라고 한다. 여기서 결정되는 사항은 가톨릭교회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공의회는 예루살렘공의회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962년 요한 23세 교황이 소집했으며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 때 폐막한 제21차 세계 공의회였다. 이 자리에는 이례적으로 개신교 교파에서 60여 명이 참관하여 공의회 역사상 유례없는 열기를 보였다.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을 변화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여기서는 교황청 개혁 및 교회의 현대화, 신앙의 자유, 세계평화 실현, 교회 연합과 일치 등이 논의되었다. 그 결과 그동안 라틴어로만 봉헌되던 미사를 자국어로 사용하게 됐고, 1517년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개신교를 형제로 인정했으며, 1054년에 결별한 동방정교회의 파문을 해제하여 근 10세기 동안 등져 온 동서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기도 했다. 또한 각국 주교단이나 신도의 역할을 강조하여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중앙집권적이고 배타적인 제도를 완화했다. 또한 타교파나 타종파 교회의 선교활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근대적 사상과의 대결을 제시한 데 반해 2차 공의회는 ‘시대에의 적응’을 내세워 교회의 보수적인 면을 탈피하고 교회의 제도를 과감하게 개혁하며 성경을 재해석하여 교회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신구 교회가 연합하여 『공동번역 성서』를 발행한 것도 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 공의회는 다른 종교 및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문명 전반에 혁명적 영향을 끼쳤다. ☞ ‘공의회’, ‘제1차 바티칸공의회’ 참조
-
제2차 산업혁명
제2차 산업혁명 第2次 産業革命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20세기를 전후하여 소비재 산업인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전환된 것을 의미. [내용]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기, 통신, 자동차, 화학 중심 산업의 눈부신 발달을 일컫는 말이다. 제1차 산업혁명이 증기력과 석탄을 이용한 경공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과 달리 제2차 산업혁명은 석유와 전력을 주원료로 한 전기, 화학 등 중화학공업이 중심이 되었다. 제2차 산업혁명은 과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졌다. 근대의 과학적 지식을 빠르게 응용해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제2의 산업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이 기술의 습득에만 중점을 둔 반면 미국과 독일은 체계적인 과학적 연구와 교육을 주도해 나갔고, 이에 기반한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선두국가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2차 산업혁명은 화학산업에 필요한 석유와 고무, 구리 등에 대한 수요 증가, 완제품 판매를 위한 시장 확보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제국주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유럽 내 주도권 경쟁으로 발생한 제1, 2차 세계대전의 군수물자 생산에 제2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성과가 동원되기도 하였다. ☞ ‘제1차 산업혁명’, ‘제3차 산업혁명’ 참조
-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 第二次 聖幕을 위한 基臺 / Second foundation for the tabernacl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기 위한 두 번째 섭리노정. [내용] 모세를 중심한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는 성막과 석판 그리고 법궤를 중심한 섭리였다. 그런데 성막은 메시아를 상징했으므로 메시아를 맞기 위해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요했던 것처럼 성막을 위해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필요하였다. 즉 성막을 위한 기대를 위해서도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워야 했다.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실패한 후 하나님은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세우기 위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렀다. 모세가 다시 40일 금식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석판을 받음으로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가 성공하였다. 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믿고 기다림으로써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불신으로 흘러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실패하였고, 그럼으로써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실패하였다. ☞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 참조
-
제2차 세계 순회
제2차 세계 순회 第2次 世界 巡廻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부모님이 1969년 2월 2일부터 5월 2일까지 세계 복귀를 위하여 21개국을 순회한 것을 의미. [내용] 참부모님이 1969년 2월 2일부터 5월 2일까지 세계 복귀 및 선교기반의 마련을 위하여 세계 21개국을 순회한 것을 말한다. 제1차 세계 순회의 목적이 성지 택정이었다면, 제2차 세계 순회의 목적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반 조성이었다. 순회의 대상국가는 일본, 미국,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바티칸, 사이프러스,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인도, 태국, 홍콩 등 21개국이었다. 참부모님은 가는 나라마다 집회를 열어 선교사들과 식구들을 격려하고 새로운 섭리적 지침을 주었다. 또한 당시에 남북한의 정세가 위험한 고비에 있었기 때문에 4개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신앙의 조국 한국을 위해 정성들이라고 지시하였다. 참부모님은 제2차 세계 순회 중 자녀 복귀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한국의 430가정에 대응하는 43가정 국제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69년 2월 28일 미국 워싱턴교회에서 13가정(신혼 7가정, 기성 6가정), 1969년 3월 28일 독일 에센교회에서 8가정(신혼 7가정, 기성 1가정), 1969년 5월 1일 일본 도쿄교회에서 22가정(신혼 12가정, 기성 10가정)을 축복하였다. 세계를 대표한 43가정 국제축복이었으며, 세계 선교와 복귀의 기반을 세우는 순회의 일정이었다. ☞ ‘세계 43쌍 특별축복’ 참조
-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第2次 世界大戰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추축국과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의 전쟁. [내용]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을 중심한 연합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적인 전쟁을 가리킨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이틀 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세한 공군과 기계화부대를 앞세운 독일은 연이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유럽을 빠르게 점령해 나갔다.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한 데 이어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까지도 독일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유럽대륙을 차지한 독일은 영국을 공격하였으나 영국의 막강한 군사력에 막혀 후퇴하고 말았다. 영국 공격에 실패한 독일의 히틀러는 ‘독·소(獨蘇) 불가침조약’을 깨고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하였다. 독일군은 승리를 거듭하며 1941년 9월 우크라이나를 점령했고, 12월에는 모스크바 근처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소련군의 강력한 반격과 겨울 추위 그리고 식량문제로 독일의 소련 정복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독일의 주요 동맹국이었던 일본은 1941년 미국의 석유수입 금지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하와이 진주만에 있던 미국 해군기지를 공격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연합국은 힘을 모아 추축국을 총공격하였고, 마침내 1945년 5월 독일의 베를린을 함락시킴으로써 7년 동안 지속된 세계전쟁이 종결되었다. 『원리강론』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은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기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일어났다. 사탄은 하나님이 아담을 중심으로 이루고자 하는 창조이상의 세계와 유사한 비원리적인 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왔다. 이에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사탄 편 아담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비원리적인 세계가 나타나게 되고, 하늘 편에서는 이 세계를 쳐서 원리적인 세계로 복귀하는 섭리를 진행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섭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탄 편 국가와 하늘 편 국가들 간의 대전이었다. 아담, 해와, 천사장을 상징하는 하늘 편 국가(미국, 영국, 프랑스)가 이와 동일한 형을 갖춘 사탄 편 국가(독일, 일본, 이탈리아)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3대 축복의 복귀를 위한 장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인 차원에서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 ‘제1차 세계대전’, ‘제3차 세계대전’ 참조
-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第2次 世界的 가나안 復歸路程 / Second worldwide course to restore Canaa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 [내용] 세례 요한은 초림 메시아인 예수님을 절대적인 믿음과 충성으로 모시고 따르면서 하늘의 구원섭리를 완성시켜야 할 사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했지만 따르지 못하고 점차 의심하게 되었다. 이에 그를 믿고 따르던 유대 민족도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세례 요한을 중심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로 끝났고, 세례 요한의 입장을 대신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출발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40일 광야 금식기도와 사탄의 3대 시험에 승리하여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게 되었고, 실체기대를 세우는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다. 실체기대는 아벨 편에 있는 예수님을 가인 편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믿고 따름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때 이뤄질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복음의 말씀과 많은 기사이적으로 실체기대의 조성을 위한 출발섭리를 하였다.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실체기대를 이루게 되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이 아닌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돼 있었다. 그리고 전 인류는 예수님의 접붙임을 받아 중생하여 원죄를 벗고 하나님과 심정 일체를 이룸으로써 창조본성을 복귀하여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은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그를 바알세불이 접한 자로 몰아 오히려 핍박하였다. 또한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가 로마제국에 예수님을 팔아넘김으로써 예수님은 영적 구원만이라도 성취하기 위해 그의 육신을 사탄에게 내주는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섭리의 노정은 실패로 끝났고, 지상천국을 복귀하려던 하늘의 섭리는 제3차로 연장되었다. ☞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참조
-
제2차 종교개혁
제2차 종교개혁 第2次 宗敎改革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웨슬리, 폭스, 스웨덴보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영적인 운동. [내용] 헬라 사상의 반(反)중세적 복고운동은 인본주의를 낳아 문예부흥을 일으켰고, 이 문예부흥은 사탄 편으로 더욱 발전하여 제2의 문예부흥인 계몽사상을 대두케 하였다. 계몽사상은 다시 제3의 문예부흥인 유물사관으로 성숙되어 공산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가인형 인생관에 의하여 마침내 원리형의 비원리적 세계인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탄 편에서 하늘의 섭리를 앞질러 이루어 나감에 따라 하늘 편에서도 종교, 정치, 산업의 각 방면에서 이상사회를 복귀하는 3차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1차 문예부흥에 뒤이어 하늘 편을 중심으로 루터를 중심한 제1차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제2차 문예부흥인 계몽사상에 맞서 종교계에서는 웨슬리, 폭스, 스웨덴보리를 중심한 제2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17세기에 등장한 계몽사상은 반봉건적, 반가톨릭적 사회운동으로서 인간의 이성에 기반한 사회의 진보를 주장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정치적으로는 사회계약설과 주권재민 사상을 바탕으로 절대왕정에 맞섰고, 종교적으로는 이성에 바탕을 둔 자연종교를 주장하며 전통적인 종교관에 도전하였다. 프랑스에서 계몽사상은 유물론, 무신론과 결합하여 더욱 급진적이고 과격한 형태를 띠며 발전하였다. 하나님은 가인형 인생관인 계몽사상에 대항하기 위해 웨슬리, 폭스, 스웨덴보리를 중심으로 제2차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모리비안 집회에서 뜨거운 회심을 경험한 이후 종교적 체험과 성결한 생활을 강조하는 대규모의 신앙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영국의 조지 폭스는 기존 교회의 형식과 제도 없이도 기도와 명상을 통해 하나님을 내적으로 만날 수 있다고 설파하며 퀘이커교를 창설하였고, 스웨덴보리는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통해 천국과 지옥,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유럽인들에게 전해 주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내적인 체험을 강조하면서 계몽사상에 젖어 있던 당시의 사람들을 하늘 편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 ‘제1차 종교개혁’, ‘제3차 종교개혁’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