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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비운 뜻은
‘진흙탕의 연못에서 피지만, 깨끗하고 순결하다.’연은 신화나 종교와 많이 관련되어 있다.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와 그리스·로마, 이집트 신화와 관련된 얘기가 있다. 도교에서도 군자의 꽃이라 했지만, 무엇보다 불교를 상징한다.하나의 꽃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무거운 주제인 탄생과 창조, 태양과 환생, 진리와 풍요의 아포리즘을 다양하게 함유하며 서사를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연의 몸 전체는 심한 골다공증 환자처럼 구멍이 숭숭하다.그런데 이것이 공기의 연결통로이며 생명력의 근간이다. 우리가 취하는 연근은 실은 땅속줄기인데 거기까지 구멍이 숭숭하다. 펄 밑에서는 수평으로 자란 줄기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이어지고 마디마다 잎줄기와 꽃줄기를 독립개체로 피워 올린다.구멍을 가늠해보기 위해 줄기를 잘라보았다. 줄기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구멍이 있어서 정작 몸체를 지탱할 조직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질긴 섬유질로 연결되어 몸체를 강하게 지탱한다. 우윳빛 진액도 배어난다.잎줄기와 꽃줄기는 역할이 다름으로 구멍의 배열도 다를 것이라는 예상은 맞았다. 잎줄기엔 면적의 절반을 훨씬 넘는 큰 구멍 4개, 그리고 여러 크기의 작은 구멍들이 산재한다. 반면 꽃줄기엔 7개의 큰 구멍이 간격을 맞추어 원을 형성하며 원과 원 사이의 공간에 두세 개의 작은 구멍들이 배열을 이룬다. 한편 연뿌리엔 가운데 한 점을 두고 9개의 다양한 구멍이 원형으로 둘러있다.방사상으로 뻗은 잎맥은 한군데로 모인다. 그 배꼽이 궁금해 단면을 살펴보았다. 잎맥마다 2개의 구멍이 뚫려있고 잎의 단면을 보니 더 작은 숨구멍들이 촘촘하다. 배꼽에 물방울을 떨어트려 살펴보니 기포가 올라온다.숨쉬기다. 물은 새지 않으면서 공기만 통하는 원리도 신묘하다. 확실한 사실은 구멍들이 수많은 스토리를 생산하는 원인자라는 것. 숨구멍이며 생명의 통로이기에 물속 생존이 가능하다. 그리고 쉼 없이 지상과 교신하면서 수질을 정화하고 고인 물에 산소를 공급한다. 썩음을 방지하여 시궁창 냄새를 잡으며 선 자리를 맑게 함으로 연못의 다른 생명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너그럽게 역할을 한다.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상상력이 다양한 신화와 종교를 강화하는 텅 빈 충만의 진리는 그래서 다양한 서사로 전개될 수 있었으리라.연은 몸통에 온통 구멍이 뚫려있다. 잎줄기(왼쪽)는 큰 구멍 4개가, 꽃줄기(가운데)는 7개의 큰 구멍이 주를 이룬다. 잎맥의 단면(오른쪽)에는 구멍 2개가 크다. 모두 숨구멍이다. 이를 통해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여 고인 못물이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잎의 배꼽에 물방울을 떨어트리니 숨을 쉬는 기포가 올라온다. 공기만 통하는 원리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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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의 흔적을 발견하다
연은 모든 게 신기했다. 산이나 들에서 마주치던 푸나무와는 달랐다.패랭이가 되어주던 큰 잎은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서 젖지 않는 것이 신기했고 물 위로 솟은 한 송이의 꽃, 외계인의 다발성 눈처럼 생긴 연밥도 내 눈엔 그러했다.학자들은 1억 수천만 년 전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꽃은 수중식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사리처럼 맛없고 질긴 양치류를 먹고 살았던 초식공룡에게 꽃식물은 최상의 먹이였을 것이다. 그들을 피해 수중에서 피는 전략을 선택한 꽃들은 생존에 유리했다.큰 꽃, 두터운 꽃잎과 꽃받침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에서 연꽃을 원시적인 꽃의 형태일 것으로 추측한다.호호 손 불며 빙하기를 버틴 그때의 버릇이 남은 걸까?한여름인데도 연꽃은 온혈동물처럼 체온을 조절해서 개화의 시기에 스스로 열을 낸다. 실험결과, 새벽에 피는 꽃봉오리 속의 온도는 바깥 기온보다 7도 이상 높으며 32도에서 핀단다. 이 열원이 꽃받침이라니 쉬이 믿기지 않는다. 열화상 카메라로 보면 그쪽이 확연히 붉다. 꽃받침에 풍부한 당분을 분해하며 내는 열로 향기가 진동해 벌을 유인한다. 다른 꽃에서 볼 수 없는 현상이라서 이것도 원시의 흔적인가 싶다.연잎 표면은 미세한 돌기 구조와 왁스로 코팅이 되어 있으므로 빗물이 뭉쳐서 굴러떨어지며 먼지를 씻어낸다. 연이 깨끗함을 유지하는 이유라니 이런 면에서는 원시의 차원을 훌쩍 넘는다.연꽃은 생김새가 독보적이다. 지구상 어떤 꽃과도 닮지 않았다.특이하게 수술과 암술이 많으며, 꽃잎은 두껍고 대략 15장을 겹겹으로 두른다.꽃잎을 열면 샤워 꼭지처럼 생긴 꽃턱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형태로 솟아 있다. 1인 1실, 20개 이상의 원룸을 어린 열매가 차지했다. 머리마다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움푹한 암술이 하나씩 솟아 립글로스를 바른 듯 윤이 난다. 긴 꽃가루관을 거치며 수정이 이루어지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암술과 씨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이 또한 원시의 흔적으로 추측한다.꽃턱의 외곽은 수백 개의 수술이 둘러쌌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들이 일제히 원형 무대를 에워싸고 떼창하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하나의 수술은 3부위가 3색으로 구분되고 가운데의 노란 부분에서 꽃가루가 나온다.이천쌀밥 한 알씩 붙은 끝부분의 하얀 머리는 특별한 명칭도 없다. 그냥 부속체인가.분명히 어떤 용도가 있을 텐데, 나의 관찰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꽃은 완성미가 높고 풍만하다.내가 연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태생적 호감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연잎 표면은 미세 돌기 구조에 왁스 코팅이 되어 있어서 물방울이 뭉쳐 떨어지는 힘으로 먼지를 씻어낸다. 그래서 늘 깨끗하다.가운데 원은 씨방이며, 윤기 나는 암술이 송송 박혀있다. 원 외곽으로는 무수한 수술이 솟는데 끝부분의 흰 봉은 부속체.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궁금하다. 꽃가루는 길고 노란 대에서 나온다. 꽃잎은 요즘 꽃과는 달리 두껍고 크다. 꽃의 원형일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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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같은 기품
서양에선 ‘드레스 버섯’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허리의 잘록함을 드러내기 위해 코르셋을 과도하게 착용한 중세 귀부인의 치마처럼 부풀어져 있다.군생이 마치 발레 ‘지젤’에서 로맨틱 튀튀를 입고 군무를 펼치는 숲속의 요정 ‘윌리’로 연상되며 알브레히트가 된 듯한 황홀감에 젖어도 보았다.적막한 새벽에 피어 햇살이 내릴 때까지 지상에서의 삶은 단지 서너 시간.주변엔 내일 필 버섯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2021년, 지난해보다 개체 수는 현저히 줄었다. 그 이듬해에는 불과 몇 송이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서식처로는 적당치 않았을 것이다. 정원을 드나드는 인간의 냄새가 싫었던 것이리라. 구경하라고 사람을 불러들인 내 탓도 크다.은밀한 시기를 누려야 할 여왕. 다시 숲으로 돌아간 것일까, 침잠한 걸까. 아니면 소멸한 걸까.식물도 동물도 아니지만, 그 둘의 영양분을 동시에 갖고 있기에 어떤 버섯에 대해서는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칭송한다. 어쨌거나 송이버섯은 산 나무 아래 자라고 표고버섯은 죽은 나무에서 자라지만, 노랑망태버섯은 장마 후 습기를 머금은 잡목 숲을 터로 한다.알고 보면 버섯은 균이다. 진핵생물이다. 바이러스와는 차원이 다르다.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균사체는 땅 밑에서 실 모양의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하는데, 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받는 대신 땅속에서 흡수한 미네랄을 제공한다. 지구 식물의 대부분은 균류와 공생관계로 살아간다.노자는 인간은 땅을,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하며 하늘은 도道를,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저절로 그러한’ 무위성이 자연이라면 오늘 지상으로의 짧은 현현은 자연의 순리였으며 도였다.관찰은 독단적 경험이며, 그 안에서 상상은 자유다. 나는 새벽에 춤을 추는 발레 ‘지젤’의 요정 윌리를 떠올렸다. 옹기종기 핀 노랑망태버섯에서 발레 ‘지젤’의 요정, 윌리의 군무가 연상된다.버섯은 식물이 아니라서 뿌리가 없지만, 그 대신 훨씬 넓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하얀 균사가 지하에 뻗어 있다.버섯은 이 세상 동식물의 잔해를 분해하는 청소부이지만, 그도 누군가에 의해 해체된다. 달팽이가 그 역할을 맡기로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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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은밀한 하루
거처가 가평의 설악면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정원도 훌륭한 숲이 되는가 보다.어느 날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버젓한 화단에서 발견한 노랑망태버섯.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눈 앞에 펼쳐진 우연에 나도 모르게 ‘야호’를 외쳤다.2020년 7월 하순, 장마의 뒤끝이었다.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철쭉 숲 어두운 곳에서 마주한 빛나는 노랑. 초면이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며칠간 하루에 몇 개체씩 나타났다가 스러지면 다음 날 또 다른 개체가 나타났다. 하루에도 몇 차례 바라보다가 생의 사이클이 문득 궁금해졌다. 지상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졌다.주변을 살피니 그제야 땅속에서 머리만 내민 개화(?)의 후보들이 눈에 띈다. 친숙해지니 보이는 것들이다. 며칠 동안 살핀 결과 새벽녘에 피는 것으로 짐작, 날을 잡았다.관찰할 후보를 밟지 않으려 돌멩이로 표식을 해놓았다. 다행스럽게 부슬비다.오늘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노랑망태버섯이다.망태는 새끼나 갈대를 얼기설기 엮어 물건을 나르는 기구.하필 ‘고주망태’가 생각난다. 술을 거르는 틀인 고주에 올려놓은 망태는 술 냄새로 전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사람을 ‘고주망태’라고 비유했다.노랑망태버섯은 그런 인식을 떨쳐내고 ‘버섯의 여왕’으로 추대되었다.잠은 포기했다. 여왕님이 춤을 추는 새벽.채도가 낮은 숲의 그늘에서 형광의 노랑 드레스를 펼치는 단 한 번의 공연은 예약이 필수다. 여왕님은 첫새벽에 우아하고 화려한 축제의 서곡을 울린다.이틀 전부터 지표면에서 지상의 공기를 쐬던 자실체가 오늘 피어오르리란 짐작은 지난 수일간 다른 개체를 관찰한 경험치 덕이었다.생장 조건이 맞을 때까지 몇십 년도 거뜬히 참아내는 버섯은 온도와 습도, 빛 등이 적당한 때가 오면 버섯을 피우고 포자를 날린다. 버섯이 그렇게 빨리 돋는 이유는 수분흡수력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지상에 정수리를 드러낸 지 3, 4일 만에 드디어 껍질을 벗으며 수직으로 오르는 자실체. (2020.7.31. 새벽 3:34~4:22)액으로 싸여있던 보호막이 걷히며 포자를 잔뜩 묻힌 머리에선 파리가 좋아하는 향기가 난다. 압축되어있던 노랑망태가 자라 나오고 있다. (2020.7.31. 새벽 5: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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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 구별의 의미
나는 꽃의 진화란 것은 결국 양성화로 귀결되고, 그래서 주변의 꽃들과 수정이 용이하게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해 왔다.아니 그런데,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방편을 택하는 똑똑이가 암과 수가 별도인 이유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게서 멈춘 건가, 진행 중인 건가? 아니면,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건가? 양성화가 85퍼센트 이상인 식물계에서 암수의 분리는 마이너로 살아가겠다는 선택이다. 아뿔싸, 생강나무는 그중에서도 성비 불균형이 심하다. 3~5그루당 하나 정도란다. 그래서 암꽃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거다.암나무는 너무 젠체하지 말아야 한다. 님을 만나야 뽕을 따지 않겠는가.닥나무 암꽃이 수꽃을 만나지 못해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버리는 불행을 몇 해 지켜본 안타까움이 있어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은 의미가 없다. 닥나무는 암나무를 편애한 인간의 선택으로 처한 불행이지만, 생강나무는 그것도 아니잖나.내가 너무 외곬 걱정을 한 걸까? 암나무가 열매를 가을까지 달고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산수유나 산사춘에는 훨씬 못 미쳤다. 그럼에도 여름 지나 산자락 곳곳엔 새로이 돋은 어린나무가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친 걱정이었나 보다.아무튼, 유전적으로는 훨씬 다양한 자손을 남기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아질 것이다. 번식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웅이주를 택한 것은 결국 다양성에 무게를 두고 선택한 전략이리라.한눈에 생강나무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가지 끝부분 두세 장의 잎 모양이 뫼山의 형태이기 때문. 그러나 그 안쪽 잎은 패임이 없이 작고 둥글다. 가을이 되면 잎겨드랑이마다 이듬해 자랄 눈들이 하나씩 옹골차게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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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랑과 오필리어
아름다운 연시 한 편이 떠오른다.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듸자시난 창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조선시대 함경도의 관기인 홍랑은 북도평사 최경창과 별리의 정표로 묏버들 가지를 전했다. 이황과 두향 사이의 매화만큼이나 애절한 사연이 전해오는 시조다.어릴 적 텃밭에 얼기설기 엮은 울타리에서 유독 싹이 나는 나무가 버드나무 가지여서 신기한 적이 있었다. 대개 삽목으로 자라는 나무는 위로는 줄기, 아래로는 뿌리를 발생시키는 극성이 있으므로 거꾸로 심으면 자라지 못하는데, 버드나무는 상관이 없다. 줄기에는 뿌리가 돋는 부정근不定根 세포가 많이 잠재한다. 본체로부터 이탈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플랜B가 본능적으로 발휘되어 뿌리를 내는 재생에 신속히 몰입한다.버드나무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식물에 관해서는 셰익스피어가 ‘덕후’다. 《햄릿》에서는 오필리어가 화환을 걸려고 버드나무에 오르다가 가지가 꺾인다. 드레스가 물에 젖어 드는 중 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버드나무는 빨리 자라는 만큼 강도는 약하다. 그래서일까, 능동적으로 가지를 잘라내는 마법을 부린다. 나무가 자라면 아래쪽의 가지에 예비 식량을 저장한 다음 밑동의 수분을 마르게 하여 떨어뜨린다. 그 중 어느 하나쯤 강둑에 걸리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근에 수형이 닮은 버드나무가 있다면 동일한 DNA를 가진 도플갱어일 가능성이 높다.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분신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만일 그가 사람의 보호를 받는 수종이었다면 이런 본능이 남아있었을까?1월 어느 날 갯버들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무성한 잔가지가 패턴 없이 흐드러져 허리를 구부린 채로 들어가 본 숲 안. 의외로 제대로 서서 자라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칡에 억눌려 스러지거나, 새의 부리에 구멍이 나고, 도장버섯이 우산처럼 둘러쳐져 있다. 마치 전쟁터의 야전병원처럼 신음하는 나무들로 어지러웠다. 비스듬한 중간의 줄기가 위험을 감지한 탓인지 굵은 뿌리를 내리며 지탱하는 것도 보였다. 그 안에 생과 사가 얽히어 있었다.멀리서 바라보던 아름다운 숲은 나무를 보지 못함이란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중심 줄기 없이 모여 살다가 한 몸 되어 연리목으로 둥치를 굵게 한 나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교목으로 살아남았다. 한곳에 살지만, 삶의 과정은 저리도 다르다.버드나무는 무수한 뿌리가 힘의 원천이다.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녹아 있는 산소까지 흡수하면서 생명을 이어간다.급류 계곡에서 흙이나 돌들을 이리 묶고 저리 감은 뿌리 아귀는 엄청나게 세다. 특히 물가는 물이 차거나 마르는 환경의 변화가 극심한데 털보처럼 덥수룩한 실뿌리를 내어 기온의 변화를 감지하며, 호흡을 돕는다. 큰 나무는 한여름 습기가 심할 때면 두꺼운 코르크를 비집고 난데없이 줄기에서 주홍색 수염뿌리를 돋우기도 한다.뿌리는 땅속에서만 자란다는 상식을 파괴하는 아이콘이다.숫 버드나무의 만개. 잎보다 먼저 핀다.버드나무는 능동적으로 가지를 잘라낸다. 이 가지가 어딘가에 정착하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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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알싸한 봄
봄은 기다렸다가 맞이하는 계절이다.생강나무는 밝은 곳을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강해 어디서든 잘 자란다.잎이나 줄기에선 진한 향이 난다. 생강 냄새라서 생강나무다.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꽃을 형용하는 ‘알싸하다’는 소설의 표현을 넘어설 말이 없다. ‘맵거나 독해서 콧속이나 혀끝이 아리고 쏘는 느낌’, 사전 풀이다. 그런데 달콤함을 더해야겠다. 오물오물 씹어보니 입안을 단향이 휘감는다. 고집 센 춘심으로 가지에 바짝 붙어 핀 꽃망울. 모진 바람을 이겨내려는 몸짓이었건만, 참음에 도가 넘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툭툭 터져난다.암꽃과 수꽃은 꽃잎이나 꽃받침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두 개가 다 있는 거다. 그 둘의 역할이 하나로 통합된 것을 화피라 하는데, 반투명한 6장의 조각은 언뜻 해파리처럼 부드럽다. 이것이 찬바람을 막고 햇살을 모아 따스함을 유지해준다. 몸을 녹이며 꿀을 빨 일석이조의 ‘허니 카페’를 찾지 않을 벌이 있을까.먼저 수꽃을 보자.수술은 9개이며 두 부분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바깥의 수술은 6개로 화피 한 장에 하나씩이다. 길게 뻗은 수술대의 끝, 두 개의 주머니엔 꽃가루가 잔뜩 담겨 있다. 꽃가루가 빠져나간 빈 주머니는 마치 들창코의 콧구멍처럼 깊다. 나머지 3개는 가운데에 있는 퇴화한 암술 주위를 둘러싸서 꽃가루도 장착하지 않고 마치 암술인 양 페이크를 건다. 꿀이 있음을 유혹하려는 수작이다. 이 작은 꽃에서 벌어지는 철저한 위장술로 초봄부터 생의 치열함을 엿본다.그러면 암꽃은? 수꽃에 못지않다.수꽃보다는 작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대범한 팜므파탈이다. 암술머리는 둥글고 큰 씨방의 머리를 딛고 툭 불거져 솟아올라 “에헴! 벌들아 내게로 오라, 꿀을 주겠노라”, 외치는 천하여장군이다. 암꽃 안에서 수술은 흔적만을 지닌 채 왜소해졌고 꽃가루도 없이 대략 뭉툭한 형태로 기능은 퇴화한 상태다. 마치 남의 눈에 파탄 가정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로 서 있어 준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수정을 마친 꽃은 떨어지고 형체를 갖춰가며 꽃자루가 자란다.아니, 꽃이었을 때는 없었던 것이니 정확하게는 열매 자루다. 열매는 산형꽃차례였음을 상기시키듯 자루를 벌려 옹기종기 하늘 향해 곤두서서 초록에서 빨강으로, 9월 중순을 넘어서면 검붉음으로 짙게 내재화한다. 성숙은 그렇게 깊고도 묵직하다.잎의 모양은 독특하다. 뫼山의 형태라서 잎만 봐도 생강나무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통통한 오리발처럼 세 갈래다. 아래 잎에게 햇살의 공간을 열어주기 위한 배려다.생강나무는 초봄 이 세상의 나무꽃을 대표해 노랑 신고식을 한다. 그로부터 분홍과 빨강의 꽃 세계도, 초록의 잎 세상도 열리었다. 오긴 먼저 왔으되, 가는 것은 더디다. 11월 중순인데도 노랑 단풍에 먹이 들어가면서도 늦가을 산을 지키며 다시 찬바람 맞는다.노랑으로 와서 노랑으로 갈무리하는 시종여일이 못내 기특하다.이른 봄, 가지에 바짝 붙은 꽃망울 하나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보자기를 찢고 툭툭 터진다. 허니 카페를 찾아온 벌이 온몸에 꽃가루를 뒤집어썼다. 꽃으론 바라던 바의 성취다.암꽃. 수꽃보다는 작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대범한 팜므파탈이다. 암술머리는 ‘에헴! 벌들아 내게로 오라’고 과시하듯, 둥글고 큰 씨방을 디디고 툭 불거져 솟는다. 수술은 흔적만이 남고 퇴화했다.수꽃. 꽃잎과 꽃받침이 없는 대신 그 둘의 역할을 하는 화피가 둘러친 안쪽으론 수술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선다. 밖을 둘러싼 6개의 수술은 꽃가루를 가진 진짜 수술이고, 안쪽의 3개는 그것이 없다. 마치 암술인 양 위장한 것이다. 생은 이토록 치열하다.열매. 익어가면서 초록에서 빨강, 검정으로 색이 변한다. 한 형제임에도 시차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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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름 ‘버들개지’, 너는 꽃인가?
실개천의 얼음장 밑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 어느새 은색 털옷을 입은 갯버들 요정들이 윤슬처럼 반짝인다. 봄 아가씨는 그렇게 오신다.골무 같은 인편을 벗어낸 버들개지는 해를 향해 등을 구부린다.녹색의 암꽃에 앞서 피는 수꽃은 무척 아름답다. 밍크처럼 고운 은색의 털 속에서 햇볕을 잘 쬔 붉은 수술은 형광의 노랑 꽃밥으로 변색한다. 반면, 암꽃은 수수하다. 아름다운 꽃받침이나 꽃잎을 만들려는 헛심보다 실리를 택해 씨방 옆에 도자기처럼 생긴 꿀단지를 마련해놓았다. 멀리서 보아도 암수 나무의 구별이 가능하다.사람은 눈에서, 식물은 꽃에서 영혼을 느낀다고 한다.씨방 하나를 수정시켜 씨로 자라는데 필요한 것은 미세먼지 같은 꽃가루 요만큼.씨 하나가 자란 한그루는 매년 수십만 송이의 꽃을 피운다. 성공적인 생식은 드문 일이지만, 빅뱅에 버금가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그것을 위해 저토록 분주하다.국어사전에는 버들개지나 버들강아지를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여 버드나무 꽃이라고 하지만, 꽃망울이냐 꽃이냐는 개념은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 같다. 어깨에 망토를 두른 꽃눈이 터지기 이전까지, 즉 꽃망울의 시기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따로 떼어 버들강아지는 꽃 진 후의 결실인 씨앗과 부푼 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다만 일반적으로는 꽃망울과 꽃, 열매를 구분해 부르면서 버드나무에 대해서만큼은 통틀어 ‘버들개지’ 혹은 ‘버들강아지’로 부르는 연유가 궁금하다.얼음 강가에 핀 버들개지버드나무는 암수나무가 다르다. 씨방 하나를 수정시키기 위해 날아간 꽃가루는 요만큼. 씨 하나가 자란 한 그루는 매년 수십만 송이의 꽃을 피운다.(왼쪽 암꽃. 오른쪽 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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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경지에서
수선화水仙花, 한·중·일이 모두 동일한 한자를 쓴다. 그보다 명확한 대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나르키소스’Narcissus, 이 역시 학명과 영어명이 동일한 특이한 사례다.그리스·로마 전설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식물분류학의 시조인 린네Carl Von Linne도 다른 이름을 붙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마호메트까지도 “빵 두 개를 가졌다면, 그중 하나를 팔아 수선화를 사라”며 영혼을 살찌게 하는 꽃으로 칭송했으니 누군들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수선화는 동서양에서 두루 사랑을 받는 꽃이다.골짜기와 언덕 위를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외로이 헤매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수없이 많은 황금빛 수선화가호숫가 나무 아래서 흔들흔들 춤추는 것을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수선화’는 영어권 국가에선 대표적인 명시다.추사와 다산, 두 천재의 문학적 표현은 더 놀랍다.맑은 물에서 보는 해탈한 신선淸水眞看解脫仙이요신선의 풍모를 갖춘 도인의 모습仙風道骨이라자아도취의 비극적 존재가 아닌 신선의 경지다.하늘에는 신선神仙, 땅에서는 지선地仙이라면, 물에서는 수선水仙이라!추사의 사랑은 유별나서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매화보다 한 수 위로 보았다. 사실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수선화는 지금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아니었다. 24세 때에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뵈러 평양에 갔을 때 마침 북경을 다녀온 사신이 가져온 수선화에 반한 추사는 이를 고려청자에 심어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다. 문인의 향취가 느껴진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다산은 “묻노니, 우뚝 솟은 모습은 서촉의 아미산 눈빛”이라며 찬양한다. 두 문인의 놀음은 이토록 격이 높았다.55세에 제주로 유배 온 추사는 무려 8년 반가량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위리안치에 처한다. 그때 그토록 사랑했던 수선화가 주변의 들판에 널려 있어 위안이 되었다. 제주에선 잡초쯤으로 여겨지던 수선화가 그로 인해 대중화되었으니 ‘추사의 꽃’이란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입춘이 주는 해방감 때문일까.월동 중인 하늘天과 땅地에 쩌렁한 소리침. ‘깨어라, 일어나라!’고순도의 샛노랑이 펼친 물결로 ‘검을 현玄’, ‘누루 황黃’ 무채색 겨울 땅에 혈색이 돈다.새로운 시작이다.발랄한 물의 신선이 윤슬에 담아 산란하는 무량한 봄빛에 취해보자.가끔은 내 안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트가 되어보라.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도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고서야 누가 보듬으랴.맹랑한 자아도취 아닌, 명랑한 ‘자기애’는 필요하다.자신을 뜨겁게 포옹하라수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꽃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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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약손
꽃샘잎샘 추위가 귓불을 스칠 즈음 ‘봄 기다리는 맘’을 가장 먼저 충동질하는 것은 버드나무다.녹색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버드나무는 열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터로 한다. 물가나 고산을 마다하지 않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나 종교, 문화 속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사람마다 버드나무에 얽힌 추억 몇 개쯤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겨울이면 Y자형 가지를 꺾어 불에 쬐며 형태를 잡아 고무줄 새총을 만들던 추억이 있다. 신이 나면 물오른 가지의 껍질을 비틀어 만든 호드기 두 개를 한입에 물고 봄맞이 팡파르를 울려대곤 했었다. 목질의 물기는 달아서 핥아먹기도 했다.1998년 5월, 긴장 속에 도착한 평양은 과연 옛 이름 유경柳京답게 가로수로 심은 버드나무에서 씨앗을 매단 솜털이 눈처럼 휘날렸고, 유속이 느린 보통강을 뽀얗게 뒤덮었다. 여장을 푼 뒤 사람들 틈에 끼어 강변을 걸으며 평양감사의 꿈에 젖어 있을 즈음 안내원 동지가 등을 툭툭 치는 통에 일장춘몽은 아쉽게 끝나버렸었다.2022년 5월 코로나19 처방 약이 부족했던 북한에서 인민들에게 열을 내리려면 버드나무 잎을 우려서 하루에 3번 먹으라고 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가슴이 아렸다. 버드나무의 살리실산이 아스피린의 원료이니 근거가 없진 않으나, 이 시대의 처방이 기원전 5세기의 히포크라테스가 내린 처방과 다르지 않음이 안타까웠다.서울 한강변 반포 시민공원의 버드나무가 헤드 뱅뱅, 바람에 몹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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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을 들어보시게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저마다 험한 환경을 이길 비책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할미꽃이나 복수초는 독성으로 동물의 접근을 방어한다.수선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향을 풍긴다.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길목에선 살을 에는 삭풍이 분다. 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한 발 더 다가서 보자.줄기에 비해 꽃송이가 커서 바람에는 매우 약한 구조다. 우주의 중심을 끌어들이려는 듯 빳빳이 고개 든 저 당당함이 위태롭다. 분명 꽃줄기에 비책이 숨어 있으리라.루페로 살펴보니 나선형으로 비틀린 선이 뚜렷하다. 땅속에서 돌돌 파고 오른 원리 말고도 또 다른 기능 있을 것 같아 줄기를 잘라보았다.단면은 레몬 형태의 타원형이다. 그 안엔 윤기 반짝이는 부동액 젤로 가득 찼다. 그런데 희한하게 밑동에서 대략 3분의 1 지점까지만 그랬다. 꽃대가 두 부위로 나뉘어 있다는 얘기다. 윗부분은 속을 비워 두었다.바람이 다가오면 몸을 쓰윽 돌리거나 뉘어서 유연하게 피한다. 흔들림은 죄가 아니다. 대항하거나 버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바람을 놀이 삼는 유희, 이건 신선의 설법이다.줄기에 기체역학의 원리가 숨어 있었다. 풍동실험 결과 그렇게 하는 게 바람세기가 20퍼센트 이상 줄었다. 이 생체구조를 모방하여 원유시추선의 라이저나 대형 안테나, 심지어 골프공의 딤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비틀린 타원형에 채울 곳 채우고 비울 곳 비워 약함이 셈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지혜가 그 잘난 호모 사피엔스의 허세를 한방에 무너뜨릴 만큼 고단수다.그런 창조의 손길이 어디 수선화에만 배어 있을까. 우리가 자연에서 보물찾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줄기에 비해 꽃송이가 커서 바람에는 매우 약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꽃대나 잎을 나선형으로 비틀어서 강하게 했다. 줄기 단면은 타원형으로, 윤기 반짝이는 부동액 젤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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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속에서 켠 황금색 등불
아직 뱀의 꼬리처럼 살아있는 추위로 다시 움츠러드는 3월.봄을 봄이라 이르기 난감할 때도 화신花信은 맵찬 바람을 타고 북상한다. 이때쯤이면 새로운 계절을 앞서던 마음은 으레 고개 내미는 생명체를 살피게 마련.합장한 두 손으로 똥꼬 찌르듯 언 땅을 밀친 틈새에서 보이는 초록의 정체.긴 잠에서 막 깨어 기지개 켠 사연을 들어보라는 듯, 눈 깜짝할 새에 두 손 벌린다. 예열이 끝났나, 이윽고 주체 못할 노란 진물 머금은 깃대에서 칼바람 헤치고 황금색 등불을 켠다.바람에 흔들리는 저, 제비보다 이른 봄 길의 앞잡이. 게 누군가.수선화! 내년에 다시 보자던 그 말, 무심하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예단을 조롱하듯 혹한의 강을 건너 다시 지난해의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은가.살면서 늘 ‘작은 약속일지라도 지키자’라는 나의 신칙은 얼마나 위선적이었던 것인지.저 혼자 애썼을 수선화가 고맙다. 잘 버티었구나, 살아 주었구나, 안심의 미소가 돈다.거침없이 바르고 결단성 있게 행동함을 ‘겨울 같은 기운’, ‘결기’라 하던가.겹치고 겹쳐 모아진 잎의 힘으로 대지를 들어 올린 결기가 가상하다.양파처럼 수십 겹의 비늘로 이루어진 알뿌리는 강력한 후원자. 수십 겹의 중심에 생명을 온존하여 빙하기가 닥쳐도 견딜 수 있다는 듯 당당하다. 알뿌리를 그답게 한 것은 하방에서 양분을 공급해준 수염뿌리이다. 근본이 든든한 구조를 갖추었기에 변화무쌍한 기온 속에서 지상으로 밀어 올리는 힘이 장사다.잎은 뿌리의 정수리에서 개별적으로 돋기에 줄기가 없다. 대신 넓고 두툼하다. 그 안엔 얼지 않을 순수액을 가득 채웠다. 설한풍을 물리칠 치밀한 준비다. 대칭을 이룬 잎들을 사열하며 가운데에서 꽃대가 꼿꼿이 솟아오른다. 부챗살 매스게임이 완성된 듯싶어 박수를 치려 하자 잠깐! 환한 꽃이 영광을 드러낸다.비로소 봄이다.꽃잎은 6장. 가운데에는 왕관처럼 생긴 또 하나의 꽃, 덧꽃부리가 솟아 있다. 따지고 보면 안으로 온기를 모아 생명의 샘을 보호하는 부속 장치다.가끔은 자신을 뜨겁게 사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려면 내 안에 덧꽃 하나 갖추라는 뜻. 허접한 나르시시즘을 철저히 배격한다.불염포를 보자. 꽃송이의 목 줄기는 지푸라기 같은 불염포가 보호하고 있다. 애초 개화를 앞둔 시기에 꽃봉오리를 감쌌던 그것이 이제는 꽃이 질 때까지 꽃대와 꽃자루의 경계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로 변신했다. 살짝 당겨보니 질기고 단단하다.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충성의 의지가 아주 강하다. 큰 꽃이 꺾이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이다. 이것이 목에서 이어진 둥근 씨방 부위에선 진눈깨비와 과도한 햇빛의 피해를 막는 천막 역할을 한다. 뿌리에서 물 한 방울 지원받지 못하는 죽은 조직이 이런 멀티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인다니 참, 기가 막힌다.화려함의 이면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영광을 드러내는 저 아우라에 눈길이 간다.그나저나 화무십일홍인데 벌·나비는 언제나 찾아오려나.노란 진물 머금은 꽃봉오리가 잎과 부채모양으로 솟았다.꽃잎은 6장. 가운데에는 왕관처럼 생긴 덧꽃부리가 솟아 있다. 꽃 뒤 목줄기의 씨방 주위는 불염포가 보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