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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랴
사가랴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유대 왕 헤롯 때의 제사장이며 예수님의 혈통적 아버지. [내용] 사가랴는 유대 왕 헤롯 때 아비야 계열에 속한 제사장이었다. 아내는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이었다.(누가복음 1:5).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나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하늘의 은총에 의해 세례 요한을 낳았다. 사가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이자 제사장 직무에 충실한 의인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참부모님의 계시에 의해 사가랴는 예수님의 혈통적 아버지였음이 밝혀졌다. 메시아는 사탄의 혈통과 무관한 하늘의 혈통으로 탄생해야 했는데, 그 기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락이 일어났던 경로를 거꾸로 뒤집는 탕감복귀의 과정이 필요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 라합, 룻, 밧세바라는 네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역사적으로 이어온 혈통복귀의 기반을 이어받아 원죄 없는 메시아를 낳아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해와가 약혼 단계에서 남편이 될 아담을 속이고 천사장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이를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해와 입장에 있던 마리아는 사탄 편 천사장의 입장에 있던 약혼자 요셉을 속이고 하늘 편 천사장 입장인 사가랴와 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지상에 처음으로 사탄의 혈통과 무관한 독생자 예수님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가랴와 그의 가정이 태어난 예수님을 보호하고 모셔야 하는 책임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적인 마음을 갖게 되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 ‘마리아’, ‘엘리사벳’, ‘세례 요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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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회
사경회 査經會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행해진 성서공부 집회. [내용] 기독교인들이 성서 공부를 통해 영적각성과 생활쇄신을 도모하는 집회이다. 사경회는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주로 이루어진 성서 공부 모임이었다. 1890년 기독교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 H. G)의 집 사랑방에 7명의 교인이 모여서 성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사경회로 알려진다. 같은 해 6월 우리나라 주재 선교사회가 당시 중국에 파송되었던 네비우스(Nevius, J. L)를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때 그가 제시한 선교사업의 원칙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럿이 함께 체계적인 성서 연구’이다. 한국의 초대교회에서 사경회는 이 원칙에 따른 성서 공부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경회의 공부 내용에는 성서연구뿐만 아니라 신앙교육이나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포함하는 근대화교육도 포함되었다. 대개 사경회는 특별강사를 초청하여 교인들에게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을 교육하고, 수일간에 걸쳐 성서를 공부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기간 중에는 참가한 교인들이 해당지역에서 축호전도(逐戶傳道)와 노방전도(路傍傳道)로 새로운 신자들을 얻는 시간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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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
사관 史觀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역사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통일된 관점. [내용] 역사에 대한 의식, 즉 역사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지니는 하나의 일관되고 통일된 입장을 말한다. 사관에는 역사가가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실을 선택하는 기준이나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원리가 포함된다. 사관에 입각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역사는 연대기와 다르다. 역사 기술에서 사관의 문제는 주로 서양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고대 서양을 대표하는 사관은 그리스의 운명적 순환사관(循環史觀)이었으며, 중세에는 기독교의 종교사관이 지배적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자연과학의 발달과 함께 헤겔과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역사관이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역사관의 변천은 다음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의 차이와 관련된다. 1) 역사를 진전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순환사관은 역사의 원동력이 운명이라고 보는 반면에 종교사관은 신이야말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본다. 이에 비하여 유물사관은 경제적, 물질적 생활 관계를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본다. 2) 역사는 전체적으로 발전의 과정인가, 아니면 단순한 변화의 반복에 불과한 것인가? 유물사관뿐만 아니라 서양의 사관은 대체로 역사를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한편 유가(yuga)설로 대표되는 인도의 순환사관은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발전이 아니라 퇴보의 과정으로 보는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역사의 첫 유가인 뜨레따(treta) 유가는 법과 정의가 충만한 시대임에 비하여 그 마지막 단계인 깔리(kali) 유가는 법과 정의가 땅에 떨어지는 말법기(末法期)로 규정된다. 동양의 역사 서술에 있어서 사관의 문제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사관’이라는 단어보다 ‘유물사관’이라는 말이 먼저 통용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역사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지니는 하나의 일관되고 통일된 입장’이라는 의미에서 사관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일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사관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가 풍미하던 시대에 먼저 유물사관이 유입되고, 그 후에 ‘유물사관’으로부터 ‘사관’이 독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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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길자
사길자 史吉子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함경북도 함흥 성별 여 생년월일 1933.9.3 [정의] 세계평화여성연합 제2대 회장, 평화통일가정당 회장, 핀란드 국가메시아 등을 역임한 36가정 원로. [내용] 1933년 9월 3일 함경북도 함흥에서 출생하여 전라북도 전주에서 성장하였다. 전주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55년 3월 친구를 통해 ‘원리’ 말씀을 듣고 입교하였다. 5월 학교에서 신앙조사를 하였을 때 통일교회 신앙을 선택하여 5월 9일 약학과 4학년 신미식, 김정은, 서명진 등과 같이 기숙사에서 퇴거조치를 당하였으며 5월 11일 퇴학통지서를 받았다. 이후 ‘원리’를 공부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활동을 하다가 1960년 경기도 신갈교회를 개척하였다. 1960년 4월 16일 최초의 축복가정인 세 자녀 축복결혼에서 초대협회장이었던 유효원과 가정을 이루었으며, 참부모님 앞에 인류를 대표하는 세 며느리들 중 한 사람으로 예를 올렸다. 참부모님에 대한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유효원을 내조하며 세 아들을 양육하였다. 1994년 2월부터 1997년 4월까지 세계평화여성연합 제2대 회장으로 시무하였으며, 1994년 2월부터 성화할 때까지 세계평화통일당의 회장으로 ‘원리’ 강사 양성에 힘썼다. 1995년 11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부협회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며 세계 순회사와 핀란드 국가메시아로 활동했다. 특히 2012년 8월 『원리에 관한 말씀 간증』을 집필했다. 2019년 8월 20일 성화하였으며, 참부모님으로부터 ‘축 신통일한국시대개문안착 효성가정’이라는 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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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론
사단칠정론 四端七情論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사단칠정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서 벌어진 사림파 내부의 논쟁. [내용] 성리학 심성론의 핵심 개념인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해석을 놓고 전개된 조선시대 사림파 내부의 논쟁이다. 사단은 맹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마음의 4가지 단서를 말한다.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은 예(禮)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서이다”라고 한 맹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사단설은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의 근저를 이룬다. 칠정이란 『예기』와 『중용』)에 나오는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을 말한다. 주자는 사단과 칠정을 마음의 발현되지 않은 상태와 발현된 상태, 곧 미발기발설(未發已發說)과 논리적으로 연계시킨 성정론(性情論)을 확립했다. 그 결과로 사단칠정론은 미발기발설, 이기설(理氣說),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조선의 성리학에서는 사단칠정론에서 성(性)과 정(情)의 개념을 서로 달리하고, 또한 서로 다른 이와 기의 개념에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 배속시킴으로써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이기호발(理氣互發)을 전제로 설명하였다. 즉 사단은 이가 발현된 마음이며, 칠정은 기가 발현한 마음이다. 앞의 것은 순선(純善)으로서 도심(道心)이며, 뒤의 것은 선악을 겸한 것으로서 인심(人心)이다. 이와 같이 이황은 사람의 마음 작용에서 이와 기를 구분하는 이기이원론, 그러면서도 기보다는 이를 중시하는 주리론적 입장에서 심성론을 확립했다. 그 후 이황의 심성론은 학계에 큰 논란을 야기하였으며, 200여 년에 걸친 사칠변론(四七辯論)의 서막이 되었다. 기대승은 이황의 이기호발을 부정하고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을 제시했다. 즉 이와 기의 구분은 관념적으로나 가능할 뿐이며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배대한 이황의 입장을 비판하고,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의 전제에서 사단과 칠정을 설명했다. 즉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는 것이며,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본 것이다. 이후 사단칠정론은 이황의 영남학파와 이이의 기호학파가 대립하며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마침내 동인과 서인 사이에 벌어진 당쟁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또한 조선의 성리학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성리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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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교회
사데교회 사데敎會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초대교회 시절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으나 영적으로 쇠락했던 사데지역의 교회. [내용] 사데(Sardis)는 기원전 1200년경에 세워진 소아시아의 서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상업과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다. 염색과 보석 공예로 유명했고, 금광이 발달하여 최초로 금과 은 주화를 주조하여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초대교회의 시대에 이곳 사데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이 때에 사데에는 키벨레 여신을 섬기는 밀의(密議) 종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사데교회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 우상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다른 지역의 교회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풍족했지만 아쉬울 것이 없던 사데교회 성도들은 형식적인 신앙으로 일관하며, 장차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적인 열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사데교회의 모습을 가리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책망했다(요한계시록 3:1). 여기서 죽은 자라는 말은 사탄 주관권에 머물러 있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 ‘부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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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사도 使徒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한 사람들로 특히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 [내용] 사도란 예수님 당시 그를 믿고 따랐으며,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도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예수님이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를 가리킨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던 시기에는 주로 ‘제자’로,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사도’로 기록되어 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으로부터 직접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언한 최초의 증인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었으며, 사도들은 이러한 궁극적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교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주어진 직무를 수행했다. 예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도 대표적인 사도로 간주된다. 초대교회에서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한 예수님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복음 선포자들이나 순회 선교사들도 폭넓게 사도로 인정받았다. ☞ ‘12제자’, ‘베드로’, ‘바울’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