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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종
일련종 日蓮宗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니치렌(日蓮)이 창시한 일본의 불교 종파. [내용] 가마쿠라시대 중기에 형성된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이며, 니치렌을 개조로 하고 『법화경』을 근본경전으로 한다. 니치렌은 천태종의 법화사상을 배우고 우주의 통일적 진리, 그것의 인격화, 그리고 그것의 실제적인 구현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개인의 구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전체적 구제를 주장하여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수립하였다. 천태종과 마찬가지로 법화경을 성불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길로 보았지만, 천태종보다 법화경을 좀 더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다른 가르침을 배격한다는 점이 달랐다. 니치렌은 1253년부터 1282년까지 30년간 포교에 힘썼다. 그의 사후 여섯 제자들에 의하여 교리가 일본 전역에 전파되었다. 일련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여러 파들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일련정종(日蓮正宗)은 니치렌의 여섯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닛코(日興)가 1290년 후지산 기슭에 세운 다이세키사(大石寺)를 본사(本寺)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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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림절
일림절 日臨節 항목체계 의례상징 [정의] 참아버님의 일본 첫 방문을 기념하는 명절. [내용] 참아버님이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한 1941년 4월 1일을 기념하는 명절이다.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매년 시모노세키와 와세다대학교에서 일림절 기념집회를 갖고 있다. 참아버님은 1935년 4월 17일 부활절에 고향 묘두산에서 예수님을 만나 재림 메시아로서 인류 구원의 사명을 자각하였다. 정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상공실무학교를 거쳐 일본에서 유학하며 메시아 준비노정을 걸었다. 참아버님은 극심한 일제의 탄압 속에서 하나님의 조국 한국을 해방하고 제국주의 치하에서 고통 받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일본을 체험하고 연구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에 발전하고 있던 일본의 정황과 세계적 정세를 살피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참아버님은 부관연락선 쇼케이마루(昌慶丸)를 타고 부산을 출발해 1941년 4월 1일 새벽 2시 40분 일본 시모노세키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도쿄 와세다대학교 부속 와세다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였다. 전기공학은 그 당시 첨단학문이었다. 참아버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실존을 해명하기 위해 첨단 과학분야인 전기공학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유학기간 참아버님은 ‘원리’를 구명하고 기도와 정성을 들이면서 항일 독립운동에도 동참하였다. 또한 일본인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동과 봉사의 길을 걸으며 극빈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준비노정을 걸었다.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참아버님의 일본 유학시절의 정신을 상속 받기 위해 일림절을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일본 식구들이 세계평화와 인류 구원을 위한 참아버님의 생애를 기념하며 그 뜻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할 것을 결심하는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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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일본권역 선교국. [내용] 참부모님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섭리적 국가로 선포하고, 세 나라를 하나로 연결시켜 하나님 품에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 섭리를 진행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섭리적 해와 국가에서 섭리적 어머니의 국가로 세워져 그 섭리적 사명을 담당하고 있다. 아버지 국가와 어머니 국가의 핵심은 부부라는 심정적 사랑관계에 있으며 부부애의 결실체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담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미국을 비롯한 자녀 입장에 있는 전 세계의 자녀 국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섭리적 배경 하에 참아버님은 1958년 일본에 최봉춘(최상식)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씨앗을 뿌렸다. 최봉춘 선교사의 정성과 수고로 1959년 10월 2일에 일본 정부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등록돼 창립되었다.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유케이샤시대(1959년 7월-1960년 4월)를 시작으로 도와샤시대(1960년 4-12월), 『원리해설』 일본어판을 발행한 이다바시시대(1960년 12월-1961년 6월), 첫 40일 개척전도의 시작인 신오쿠보시대(1961년 6-12월), 구보키 오사미의 입교와 종교법인이 인가된 스기나미구 마바시시대(1961년 12월-1962년 11월), 입체문화센터시대(1962년 11월-1963년 10월)와 시모키타자와시대(1963년 10월-1964년 11월)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섭리의 일역을 담당하여 왔다. 이때에 마스다 마사루(1959년 입교), 마쓰모토 미치코(1960년 입교), 사쿠라이 세쓰코(1960년 입교), 고무라 히로유키(1960년 입교), 가미야마 유코(1960년 입교), 로니욘 치즈코(1961년 2월), 이시이 도미코(1961년 5월), 구보키 오사미(1962년 입교), 수도 켄(1962년 입교), 가미야마 다케루, 후지이 미치오, 오야마다 히데오, 사쿠라이 세쓰오, 이시이 미쓰하라, 에리카와 야스에, 오쓰카 가쓰미, 가즈쿠리 겐타로, 도쿠노 에이지 등이 입교하여 참부모님에 대한 절대적인 심정의 상대권을 세워서 일본 식구들에게 전수하였다. 참아버님은 세계를 하늘부모님 편으로 복귀하기 위한 최초의 섭리로 1965년 1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제1차 세계를 순회할 때 일본을 첫 번째로 방문하였다. 당시에 신도의 수는 적었지만 정부로부터 종교법인 승인을 받고 활발한 전도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때에 통일기 수여와 함께 전국 각지(도쿄, 나고야, 오사카, 다카마쓰. 히로시마, 후쿠오카, 홋카이도, 센다이)에 성지를 택정하였다. 이후 축복결혼을 위한 제2차 세계 순회노정에 따라 일본을 방문하여 1969년 5월 1일 도쿄 본부교회에서 22쌍 축복식이 거행됨에 따라 일본 축복가정이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1972년 1월 미국에서 통일십자군이 결성된 후 일본에서도 총 600여 명으로 통일십자군이 결성되어 나고야 모리야마수련소에서 수련회가 거행되었다. 1975년 2월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16,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희망의 날 대향연이 개최되어 ‘인류의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1983년 미국 정부는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회를 사회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탈세혐의로 참아버님을 기소했다. 이러한 심각한 때에 일본교회의 식구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어머님이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었다. 참부모님이 주관한 축복식에 일본교회 식구가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68년 한국에서 열린 430가정 축복결혼식으로서 구보키 오사미 부부가 참가했다. 축복식 후 참아버님은 구보키 회장에게 일본지정 충효지원(日本之情 忠孝之源)이라는 휘호를 하사하며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 민족의 정, 충효의 근원이 되는 기준을 속회 세워서 하늘에 충성을 다하는 용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하늘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다.”고 말씀하였다. 이후 1969년 5월 1일 43쌍 축복 중 22쌍의 축복식이 도쿄에서 행해졌다. 이후로 777가정, 1610가정, 2075가정, 6,000가정, 6500가정 등 축복식에도 많은 식구들이 동참해 은사를 받았다. 1968년 4월 5일 출판사 고겐샤(光言社)가 설립되어 통일원리의 존재와 그 내용을 일본 국민 전체에게 계몽할 수 있게 되었으며, 『원리강론』 10만 부 판매체제가 구축되어 지하철 광고를 비롯해 각종 포스터나 스티커를 제작하여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했다. 또한 공산주의사상을 비판 극복하는 승공이론의 교과서인 새로운 공산주의 비판 일본어판을 출판한 이후로 ‘성약의 종’, ‘축복’, ‘통일사상요강’, ‘패밀리’, ‘중화신문’ 등 문서사역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1965년부터 일본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최봉춘 선교사와 그의 아내 오누키 겐지가 3월 미국으로 파송된 것을 시작으로 6월 사사키 다쓰히코(브라질 파송), 1966년 2월 요시다 미쓰코와 가와즈 기미코(미국 파송), 1967년 7월 후쿠다 노부코(대만 파송), 1970년 4월 오야마다 노리코(대만 파송), 1971년 10월 야마오카 다테오(대만 파송), 1972년 12명 미국 파송, 1977년 11월 777축복가정 31명(미국 파송) 등이 파송되어 어머니 나라로서 세계 선교를 위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에 본격적인 한·일 일체화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참부모님의 심정과 신앙의 전통을 상속해 주기 위해 한국 목회자들이 일본에 파송되기 시작하였다. 1992년 11월 86명을 시작으로 1994년 5월에 10명, 1998년 1월에 62명, 1998년 3월에 180명이 파송되었다. 또한 1991년부터 민단 재일동포와 조총련이 하나 되어 새로운 부흥의 운세를 만들기 위해 유관순 열사 정신 선양 가두행진, 한·일인 교회 출발, 한·일인 중앙회 창립, 가정연합 본부 내 남북통일국 설립, 평화통일연합 창설 등의 섭리가 진행되었다. 1993년 6월 7일 122명의 일본 여성의 수련을 시작으로 1994년 11월 제38회를 마지막으로 일본 여성 16만 명 특별수련회가 성공적으로 거행되어 일본 여성이 참어머님과 하나가 된 가운데 일본과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늘의 섭리적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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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서남북통일전진대회
일본 동서남북통일전진대회 日本 東西南北統一前進大會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어머님의 주관 하에 통일의 기대를 조성하기 위해 거행된 섭리적 대회. [내용] 2000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후쿠오카의 서일본종합전시장, 히로시마의 히로시마체육관, 나고야의 아이치체육관, 도쿄 아카시마전시장에서 거행된 참어머님 주관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참어머님은 ‘천주는 나의 고향과 조국’이라는 주제로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참아버님이 2000년 2월 2일 제2회 아메리칸 센추리 어워드 시상식에서 말씀한 강연문이었다. 참어머님은 참아버님이 한국 21개 도시에서 참부모님 탄신 80주년 축하 남북통일전진대회를 개최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동시에 동서남북통일전진대회를 주관하였다. 섭리의 부모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 될 수 있는 통일의 기대를 마련하기 위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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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교
일본 불교 日本 佛敎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일본의 불교. [내용] 일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아시아 불교 국가들 가운데 비교적 늦은 시기인 6세기 중반이었다. 일본의 불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졌다. 그래서 6세기 이후 왕실에 불교가 공식 전래되기 이전에도 불교 신앙과 불상 등은 이미 전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왕실로 불교가 공식 전래된 것은 552년이나 538년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일왕 긴메이(欽明) 13년인 552년에 백제의 달솔(達率) 지위에 있던 노리사치계(怒唎斯致契)가 성왕(聖王)의 명에 따라 일본에 금불상과 불경을 전하면서 일본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7세기 초 쇼토쿠(聖德) 태자는 불교를 보호하였고, 호류지(法隆寺)를 비롯한 많은 사찰을 지었다. 나라시대에는 일시 호국불교적인 성격도 있었지만 헤이안시대까지 불교는 귀족들을 위한 종교로 발전하였다. 일본에서 불교가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가마쿠라(鎌倉)시대(1186-1333)이다. 이 시기에는 뛰어난 고승들의 출현과 함께 귀족들의 종교에서 서민이나 무사들을 위한 새로운 종파들이 속속 생겨났다. 호넨, 신란, 도겐, 니치렌 등의 승려들은 민중에게 알아듣기 쉽게 불도를 설파하였다.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의 하나가 된 다도나 꽃꽂이 등은 이때 무사들을 중심으로 전파된 선종(禪宗)의 유산이다. 에도시대에는 불교가 막부의 보호를 받아 크게 번창하였는데, 사찰이 장례의식을 전담함으로써 당시의 유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종교적 역할이 강화되기도 하였다. 한국과는 달리 사찰의 대부분은 산속이 아닌 주택가 주변에 자리 잡고 사찰 안에 가족 납골당을 갖춘 묘지도 갖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불교는 가장 많은 신자 수를 지닌 주류 종교이다. 일본 사람이라면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대개 사원에 참배하고, 장례식은 불교의식에 따라 거행한다. 시신은 화장하여 사원에 딸린 가족 납골당에 안치하고 사후에는 일반적으로 계명을 붙인다. 또한 일부 종파를 제외하고는 근대에 들어 대부분의 종파에서 승려들의 결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식 혹은 양자를 통해 주지직이 계승되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약 7만 5,000개소의 불교사찰이 있으며, 승려 수는 18만, 신도 수는 8,000만 명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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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교사 파송
일본 선교사 파송 日本 宣敎師 派送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한국의 공직자들을 일본 선교사로 파송한 사건. [내용] 참부모님이 한·일 일체화 선교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며 한국 목회자들을 일본에 파송한 섭리적 사건을 의미한다. 참아버님은 1958년 5월 30일 계룡산 갑사에서 최봉춘을 최초의 일본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이후 최봉춘은 1958년 7월 17일 새벽 1시 부산에서 밀항선을 타고 출항해 일본 고쿠라항에 입국하였다. 최봉춘은 밀항선에서 보안경비선에 연행된 후 수감생활을 하였으며, 출감 후 시모노세키수용소와 요양소를 거쳐 탈주하였다. 최봉춘 선교사는 1959년 4월 하순 일본 도쿄에 도착하였으며, 1959년 10월 2일 금요일 도쿄도 신주쿠구 토츠카쵸의 유케이샤(雄鶏舎)라는 시계점포에서 최초의 예배를 드리고 일본 통일교회를 창립하였다. 이후 참아버님은 1992년 11월 20일자로 한국 목회자들 86명을 일본에 파송하여 한·일 일체화 선교시대를 열었으며, 1994년 5월 20일 10명을 추가로 파송하였다. 1998년 1월에는 한국인 세계 선교사들 62명을 일본으로 파송하였으며, 1998년 2월 11일에는 180명의 한국인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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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르바이트
일본 아르바이트 日本 아르바이트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일본 유학시절에 행한 아르바이트. [내용] 참아버님이 인간 이해와 인격 완성을 목적으로 일본 유학시절에 행한 아르바이트를 의미한다. 참아버님은 자립 훈련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고 30세까지 모진 싸움 끝에 승리자의 길을 가겠다면서 ‘만고지승자 영고지왕자(萬苦之勝者 榮高之王者)’라는 표어를 세웠다. 이를 위해 지게꾼, 연탄 배달부, 지하실 굴토작업, 철공소와 조선소 노동, 바지선 석탄 하역작업, 유산탱크 원료정화장치 교환작업을 비롯해 염전 일, 탄광 일, 숯 굽기 등을 두루 거치며 천태만상의 인간 생활을 경험하였다. 최악과 최선, 최저와 최고를 경험하며 전인적 인격 연마를 위해 노력하였다. 일본 유학기간 동안 행한 다양한 아르바이트는 인격 완성의 기반이 되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