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CHEONWONSA

검색 서비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dictionary_pt2-605

일본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일본권역 선교국.

[내용] 참부모님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섭리적 국가로 선포하고, 세 나라를 하나로 연결시켜 하나님 품에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세계를 만들기 위해 섭리를 진행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섭리적 해와 국가에서 섭리적 어머니의 국가로 세워져 그 섭리적 사명을 담당하고 있다. 아버지 국가와 어머니 국가의 핵심은 부부라는 심정적 사랑관계에 있으며 부부애의 결실체인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 국가인 한국과 일본이 담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은 미국을 비롯한 자녀 입장에 있는 전 세계의 자녀 국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섭리적 배경 하에 참아버님은 1958년 일본에 최봉춘(최상식)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 씨앗을 뿌렸다. 최봉춘 선교사의 정성과 수고로 1959년 10월 2일에 일본 정부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등록돼 창립되었다.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유케이샤시대(1959년 7월-1960년 4월)를 시작으로 도와샤시대(1960년 4-12월), 『원리해설』 일본어판을 발행한 이다바시시대(1960년 12월-1961년 6월), 첫 40일 개척전도의 시작인 신오쿠보시대(1961년 6-12월), 구보키 오사미의 입교와 종교법인이 인가된 스기나미구 마바시시대(1961년 12월-1962년 11월), 입체문화센터시대(1962년 11월-1963년 10월)와 시모키타자와시대(1963년 10월-1964년 11월)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섭리의 일역을 담당하여 왔다.

이때에 마스다 마사루(1959년 입교), 마쓰모토 미치코(1960년 입교), 사쿠라이 세쓰코(1960년 입교), 고무라 히로유키(1960년 입교), 가미야마 유코(1960년 입교), 로니욘 치즈코(1961년 2월), 이시이 도미코(1961년 5월), 구보키 오사미(1962년 입교), 수도 켄(1962년 입교), 가미야마 다케루, 후지이 미치오, 오야마다 히데오, 사쿠라이 세쓰오, 이시이 미쓰하라, 에리카와 야스에, 오쓰카 가쓰미, 가즈쿠리 겐타로, 도쿠노 에이지 등이 입교하여 참부모님에 대한 절대적인 심정의 상대권을 세워서 일본 식구들에게 전수하였다.

참아버님은 세계를 하늘부모님 편으로 복귀하기 위한 최초의 섭리로 1965년 1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제1차 세계를 순회할 때 일본을 첫 번째로 방문하였다. 당시에 신도의 수는 적었지만 정부로부터 종교법인 승인을 받고 활발한 전도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때에 통일기 수여와 함께 전국 각지(도쿄, 나고야, 오사카, 다카마쓰. 히로시마, 후쿠오카, 홋카이도, 센다이)에 성지를 택정하였다.

이후 축복결혼을 위한 제2차 세계 순회노정에 따라 일본을 방문하여 1969년 5월 1일 도쿄 본부교회에서 22쌍 축복식이 거행됨에 따라 일본 축복가정이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1972년 1월 미국에서 통일십자군이 결성된 후 일본에서도 총 600여 명으로 통일십자군이 결성되어 나고야 모리야마수련소에서 수련회가 거행되었다. 1975년 2월 도쿄의 일본무도관에서 16,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희망의 날 대향연이 개최되어 ‘인류의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회가 열렸다.

1983년 미국 정부는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회를 사회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탈세혐의로 참아버님을 기소했다. 이러한 심각한 때에 일본교회의 식구들을 격려하기 위해 참어머님이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 말씀해 주었다.

참부모님이 주관한 축복식에 일본교회 식구가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68년 한국에서 열린 430가정 축복결혼식으로서 구보키 오사미 부부가 참가했다. 축복식 후 참아버님은 구보키 회장에게 일본지정 충효지원(日本之情 忠孝之源)이라는 휘호를 하사하며 “천지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 민족의 정, 충효의 근원이 되는 기준을 속회 세워서 하늘에 충성을 다하는 용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하늘의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다.”고 말씀하였다. 이후 1969년 5월 1일 43쌍 축복 중 22쌍의 축복식이 도쿄에서 행해졌다. 이후로 777가정, 1610가정, 2075가정, 6,000가정, 6500가정 등 축복식에도 많은 식구들이 동참해 은사를 받았다.

1968년 4월 5일 출판사 고겐샤(光言社)가 설립되어 통일원리의 존재와 그 내용을 일본 국민 전체에게 계몽할 수 있게 되었으며, 『원리강론』 10만 부 판매체제가 구축되어 지하철 광고를 비롯해 각종 포스터나 스티커를 제작하여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했다. 또한 공산주의사상을 비판 극복하는 승공이론의 교과서인 새로운 공산주의 비판 일본어판을 출판한 이후로 ‘성약의 종’, ‘축복’, ‘통일사상요강’, ‘패밀리’, ‘중화신문’ 등 문서사역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1965년부터 일본 교회는 세계 선교를 위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 최봉춘 선교사와 그의 아내 오누키 겐지가 3월 미국으로 파송된 것을 시작으로 6월 사사키 다쓰히코(브라질 파송), 1966년 2월 요시다 미쓰코와 가와즈 기미코(미국 파송), 1967년 7월 후쿠다 노부코(대만 파송), 1970년 4월 오야마다 노리코(대만 파송), 1971년 10월 야마오카 다테오(대만 파송), 1972년 12명 미국 파송, 1977년 11월 777축복가정 31명(미국 파송) 등이 파송되어 어머니 나라로서 세계 선교를 위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에 본격적인 한·일 일체화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참부모님의 심정과 신앙의 전통을 상속해 주기 위해 한국 목회자들이 일본에 파송되기 시작하였다. 1992년 11월 86명을 시작으로 1994년 5월에 10명, 1998년 1월에 62명, 1998년 3월에 180명이 파송되었다. 또한 1991년부터 민단 재일동포와 조총련이 하나 되어 새로운 부흥의 운세를 만들기 위해 유관순 열사 정신 선양 가두행진, 한·일인 교회 출발, 한·일인 중앙회 창립, 가정연합 본부 내 남북통일국 설립, 평화통일연합 창설 등의 섭리가 진행되었다.

1993년 6월 7일 122명의 일본 여성의 수련을 시작으로 1994년 11월 제38회를 마지막으로 일본 여성 16만 명 특별수련회가 성공적으로 거행되어 일본 여성이 참어머님과 하나가 된 가운데 일본과 세계를 구하기 위한 하늘의 섭리적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