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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봉건사회
기독교 봉건사회 基督敎 封建社會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기독교의 교구장을 중심한 영적인 봉건사회. [내용] 기독교 세력이 커지면서 교구장이 자신의 지역에서 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회이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예수님 이후의 기독교 세계는 예수님을 영적인 만왕의 왕으로 모시는 하나의 국토 없는 영적인 왕국과 같다. 점차 기독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교구장(敎區長)이 자신이 맡은 교구의 예언자나 제사장 혹은 왕과 같은 사명을 해야 했는데, 『원리강론』은 이때의 기독교계 사회 환경을 가리켜 기독교 봉건사회라고 부른다. 『원리강론』은 로마가 멸망한 후 서구로 이동한 게르만 민족을 중심으로 기독교 봉건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기독교 봉건사회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후 펼쳐진 사사시대(士師時代) 4백 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 봉건사회는 점차 교황의 권위가 강화되면서 기독교 군주사회의 형태로 확대되었다. ☞ ‘교구장’, ‘교구장제 기독교회의 시대’, ‘기독교 군주사회’, ‘사사시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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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비주의
기독교 신비주의 基督敎 神秘主義 / Christian mysticism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신에 대한 직관, 계시, 합일의 경험을 추구하는 그리스도교 사상과 신앙의 조류. [내용] 신비주의는 신적 본질이나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 체험과 심오한 직관적 이해를 추구하는 종교적 현상이다. 신앙의 깊은 차원에서 직접 체험과 직관적 이해를 열망하는 신비주의의 성격상 개인주의적이고, 교리나 의식의 외적 형식과 제도에 구애되지 않거나 그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있다. 기독교는 초월적 절대자이며 창조주인 신과 피조물인 인간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신과 인간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를 경계하기도 하지만, 인간을 신의 모상(Imago Dei)으로 이해하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돼(성육신) 대속의 피를 흘린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신비적 연합(mystic union)을 고백하는 종교로서 그리스도를 통한 신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심화된 신앙은 기독교 신비주의로 나타났다. 기독교 신비주의의 원형은 교의적으로 아들 예수님과 성부의 하나 됨 혹은 삼위일체의 신비를 체험한 바울과 베드로 등 사도들의 성령 체험이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자유로운 성령 체험의 위험을 지적하고 교회의 성사와 의례를 그 통로로 공식화함에 따라 그에 대응하여 등장한 사막 교부들과 수도원의 영성주의를 기독교 신비주의의 역사적인 효시로 본다. 신비주의는 기독교사에서 제도적 교회와 긴장을 유지하면서 쇄신하고 개혁하는 영적 운동으로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비주의는 성령의 도움으로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부께 도달하고자 하는 기독교 영성 생활의 일부로서 죄로부터의 정화(purgation, purification), 그리스도를 입어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명(illumination),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며 행복을 느끼는 일치(一致, unification)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신비 신학을 수덕 신학과 함께 영성 신학의 일부로 보며 하나님에 대한 직관, 계시, 신비적 일치와 같은 특수한 은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내밀한 지식에 접하고자 하는 기독교 신비주의가 도피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적 생활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덕행을 쌓는 생활에 의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된다. 중세 기독교의 성 프란체스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십자가의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 등이 대표적인 기독교 신비가들이었다. 한국 기독교 전래 초기 감리교 목사였던 이용도도 십자가의 고난, 성애적 사랑을 통한 예수님과의 신비적 합일을 추구한 신비주의자였다. 초기 한국 기독교에서는 기성교단의 교리나 의식을 넘어 예수님과의 합일,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경험하고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신앙운동을 통해 토착적이고 한국적인 기독교운동이 태동하였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정통 교단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고 새로운 종교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는 기독교 신비주의를 삼위일체와 은총 및 성사에 대한 교리와 공교회의 제도 하에 수렴시키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에 이단, 혼합주의, 영지주의, 우상숭배 등의 개념을 통해 비판하거나 배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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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 입문
기독교 신앙 입문 基督敎 信仰 入門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부모님이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게 된 역사적 사건. [내용] 참아버님은 1909년에 설립된 덕흥장로교회에 가족이 입교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였고, 참어머님의 경우에는 조원모 외할머니와 홍순애 대모님이 김성도의 성주교와 허호빈의 복중교를 비롯한 기독교의 신령한 집단들을 다니며 신앙의 기반을 닦았다. 참아버님의 종조부 문윤국 선생은 1910년 장로교회에 입교하여 1913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한 후 평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26년까지 덕언면 덕흥교회와 덕성교회 그리고 신안면 연봉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봉직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 참아버님의 둘째 누님과 형님인 문용수 선생의 영적 역사를 장로교회 손인형 장로의 안수로 치유한 사건 이후 참아버님의 가문은 덕흥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참아버님은 교회 출석 초기부터 기독교 신앙에 열심이었으며, 유년주일학교 반사로서 어린이들을 지도하였다. 한편 대모 홍순애 여사는 장로교에 입문한 이후 황국주 전도사의 순회전도에 참여하였으며, 이용도 목사가 세운 안주 새예수교회에서 1933년부터 3년간 신앙하였다. 1936년부터는 8년간 김성도의 성주교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참어머님 탄생 직후 1944년부터는 허호빈의 복중교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참어머님은 이와 같은 가정적인 신앙의 기반 위에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였다. ☞ ‘문윤국’, ‘문용수’, ‘홍순애’, ‘새예수교회’, ‘성주교’, ‘복중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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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초교파운동본부
기독교 초교파운동본부 基督敎 超敎派運動本部 항목체계 기관기업 설립일시 1966.11.7 설립자 문선명, 한학자 [정의] 기독교인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의 개혁과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 [내용] 참부모님의 뜻에 따라 기독교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교회를 이룰 것을 목적으로 방부신 목사, 박창번 목사, 이재석 목사, 이상빈 목사, 김윤관 목사, 박철수 목사, 김정열 씨 등 7명이 주축이 되어 1966년 11월 7일 기독교 초교파운동본부(초대본부장 박창번 목사)를 창립하였다. 기독교 초교파운동본부는 한국 교회의 분열로 인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일치운동을 벌이고 하나님이 교회에 준 사명을 이루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다. 통일교회 이재석 목사를 중심으로 장로교, 감리교, 성경학회 목사들과 함께 연합부흥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현재는 사단법인 초교파기독교협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한국교회일치운동을 벌여 왔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교역자 간담회와 연합부흥회, 원로목사 친목회, 교파교리공청회, 기독교사상 강좌, 초교파 강좌, 세계의 성지 순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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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평화주의
기독교 평화주의 基督敎 平和主義 / Christian pacifism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신학적이고 윤리적 입장. [내용] 기독교 평화주의는 기독교의 복음과 신앙의 관점에서 폭력에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신학적, 윤리적 입장으로 병역 거부나 반전운동 등의 실천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평화주의는 가톨릭 평화주의처럼 온건한 유형, 급진적이고 절대적인 평화주의, 무정부주의적 기독교 평화주의까지 다양하다. 가톨릭 평화주의는 원칙적으로 폭력에 반대하고 지역을 넘어서 세계주의적 차원에서 평화를 지향하지만 방어를 위한 전쟁이나 불가피한 전쟁은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그와 대비해 기독교 평화주의는 더 엄격하게 어떤 폭력의 형태도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신학적, 윤리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절대적인 기독교 평화주의를 가리키기도 한다.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평화(Peace of God)를 통해 로마제국의 힘과 정복에 의한 기만적인 거짓된 평화를 비판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비폭력 평화주의자였으며,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도 평화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에서 의로운 전쟁(righteous war, just war)의 신학이나 성전(聖戰, holy war)의 신학으로 폭력을 묵인하거나 정당화했던 기독교 역사의 과오를 비판한다. 대표적인 기독교 평화주의자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와 톨스토이, 미국의 재세례파 메노나이트인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등이 있으며 조직으로는 퀘이커, 평화교회(Historical peach church), 기독교 평화건설팀(Christian peace team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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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감리회 基督敎大韓監理會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우리나라 감리교의 대표적 교단. [내용]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미국감리회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우리나라 감리교의 대표적 교단이다. 1884년 미국 북감리회에서 파송한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등 선교사들이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등 근대식 학교와 광혜원 등의 의료시설을 세우고 선교를 시작하였으며, 윤치호(尹致昊)의 청원으로 1896년 남감리회의 선교사도 파송되어 미국 남북감리회가 함께 선교하고 교회를 세웠다. 초기 선교사 중심이던 감리교회는 1900년대 초 원산과 평양 등지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과 3·1운동 등 민족운동 참여했고, 1930년대 이용도 목사의 부흥회운동을 통해 신앙의 자립과 영적 갱신이 이루어졌으며, 감리교신학교 전신인 협성신학교를 중심으로 토착교역자도 양성되어 자치교회의 역량이 마련되었다. 그에 따라 1930년 남북감리회가 합동으로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세우고 양주삼을 초대감독으로 독립적 교리도 선언하였다. 일제 말기 종교탄압과 일본화정책으로 인한 위기와 광복 후 신사참배와 일본화에 끝까지 저항했던 재건파와 타협하며 교권을 유지했던 부흥파 사이의 갈등을 겪었으나, 1949년 통합을 이뤄 기독교대한감리회로 교단의 명칭을 고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4년 채택된 교리적 선언 8개 조항을 개정만 거쳐 사용하고 있으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성경에 계시되었고, 전통에 의해 조명되고, 개인적 경험에 의해 살아 움직이게 되며, 이성에 의해 확인된다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유산을 계승하여 복음이 한국 문화에 토착될 수 있는 예배와 신학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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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위한 식
기독교를 위한 식 基督敎를 爲한 式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1964년 전본부교회에서 참부모님이 거행한 특별 선포식. [내용] 1964년 7월 15일(음 6.17)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1가 전본부교회에서 참부모님이 144명의 식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한 선포식으로 기독교가 세워야 했던 조건을 탕감한 역사적 사건이다. 참부모님은 144수가 제1이스라엘과 제2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수이며 14만 4천 명을 대표하는 수라고 하였다. 12는 이스라엘의 상징이며 이스라엘의 12지파, 예수님의 12사도를 곱한 수에 이스라엘 군대의 기본단위로서 1,000을 다시 곱한 14만 4천 명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수이다. 참아버님은 144수의 식구들이 하나님의 뜻 앞에 충성을 다할 때 예수님 당시의 모든 역사를 탕감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날의 선포는 사탄 세계 앞에 아벨적 입장에서 공세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 ‘12지파’, ‘12제자’, ‘아벨’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