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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공립보통학교
정주공립보통학교 定州公立普通學校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1907년 설립된 학교로 평안북도 4대 학교 중 하나. [내용] 참아버님은 1935년 16세 되던 해 4월 초 자진하여 정주읍 소재 정주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전학하였다. 당시 교장은 일본인 나이토 만타로(內藤萬太郞)였다. 18명의 교직원들 중 6명이 일본인이었다. 학생 수는 1,100명 규모였다. 학년마다 남자 2반, 여자 1반의 세 학급으로 편성되었다. 학생 수가 많아 2부제 수업을 했으며 2년제 고등과까지 있었다. 1938년 참아버님의 졸업 후에는 정주조일심상소학교(定州朝日尋常小學校)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정주공립소학교로 바뀌었다. 참아버님은 재종제 문승룡, 사촌 문익균 등과 함께 3년간 이 학교를 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호롱불을 밝히고 밤 두세 시까지 공부하였으며, 180여 쪽에 달하는 교재를 하룻밤에 외울 만큼 집중력과 암기력이 좋았다. 일본어 수업을 어려워했으나 1, 2, 3, 4학년 교과서를 보름 만에 외워 버리고 나니 귀가 틔었다고 한다. 참아버님은 1938년 3월 25일 제29회로 졸업할 때 모든 식순이 끝날 무렵 단상에 자진해 올라가 장시간 특별소견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식민교육정책의 허구성과 위선적 행태를 꼬집고 교사들의 문제도 지적하였다. 민족의식을 표출한 참아버님은 이를 계기로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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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군 생가
정주군 생가 定州郡 生家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1920년 경신년 음력 1월 6일 자시에 태어난 생가. [내용]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平安北道 定州郡 德彦面 上思里) 2221번지에 위치한다. 정주(定州)는 인류의 본향으로 하나님이 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니고, 덕언면은 본래 덕달면, 이언면, 아이포면으로 나뉘어 있다가 1931년 3개면이 병합되면서 정해진 이름이다. 덕달면은 원봉동, 덕성동, 육성동으로 나뉘는데 참아버님은 덕달면 덕성동 2구 상사리에서 태어났다. 참아버님의 지명풀이에 따르면, 덕달면 덕성동은 덕이 하늘에 달해 주님과도 같은 별에 비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지명은 후일 덕언면 상사리로 바뀌었는데, 덕이 하늘의 진리를 만나 하나님과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의미를 지닌다. 상사리는 하늘을 흠모하며 공경하는 의미의 대표적인 땅이라 할 수 있다. 지번 2221은 7천 년 역사가 내포된 7수 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생가는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 네 채가 마주해 있었다. 북쪽은 본채, 서쪽은 사랑채, 동쪽은 뒷문이 달린 축사, 남쪽은 대문이 달린 곳간채였다. 본채와 사랑채는 방안의 온도 유지를 위해 초가로 지었고, 축사와 곳간은 기와지붕이었다. 축사와 곳간 사이의 모서리에 화장실이 있었다. 현재는 본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참아버님은 정주군 생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지상에 착륙할 수 있는 기점이므로 인류의 성스러운 본향이 된다고 강조하였다. ☞ ‘정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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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정
정찬정 鄭燦正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정의] 초창기에 입교한 원로 장로. [내용] 1954년 입교하여 1956년부터 서울에서 수원교회까지 오가며 예배의 설교를 담당하였다. 1958년 대구교회로 전임되어 대구교회를 이끌었으며 5월에는 참부모님을 모시고 지방순회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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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체성 正體性 / Identity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경험. [내용] 인간은 각자가 개성진리체인 동시에 연체(關體)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정체성은 이 두 측면에서 규정된다. 전자의 관점에서 정체성은 상당 기간 동안 비교적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경험을 말한다. 후자의 관점에서 정체성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둘이 별개일 수 없으며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며, 사람이 종교를 갖는 것도 정체성 형성과 연관이 있다. 신과의 관계 설정, 우주와의 관계 설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설정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안정감을 유지하며 삶의 부조리나 희로애락을 처리해 나간다. ☞ ‘개성진리체’, ‘연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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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
정치신학 政治神學/ Political theology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정치 체제 및 권력의 정당성과 관련되거나 공동체의 궁극적 원리와 지향에 관심을 두는 신학. [내용] 정치신학은 정치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그리고 정교관계의 역사적 양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지만 신학과 정치 질서 및 권력의 관계, 신학의 정치적 함의, 정치의 신학적 의미에 관련된 사유와 논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치신학은 엄밀한 좁은 의미에서는 20세기 서구의 법철학과 기독교 신학에서 본격적 연구주제로 자리 잡은 기독교 신학의 한 분야 혹은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각 종교 전통과 정치 질서 및 제도와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지배(질서)와 신적 통치의 관계는 정치적 지배자를 신의 지상 대리자로 보는 대표 유형, 종교적 지배 및 공동체와 세속적 지배 및 공동체를 엄격히 구별하는 ‘이중주권(dual sovereignity)’ 유형, 지상에 신의 직접 지배를 제도화하려는 신정정치(theocracy)의 세 유형이 있다. 정치신학적 의미에서 핵심적 문제인 신의 통치, 지배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구현되느냐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해석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정치신학을 구분하기도 한다. 첫째는 신의 지배가 이 세계의 지배자나 합법적 질서를 통해 구현된다고 보며 정치를 지배와 권력의 조직과 구조화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보수적인 정치신학이고, 둘째는 신정정치의 예를 억압받고 고통 받았던 히브리 민중들의 메시아공동체, 그리스도에 의해 도래하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 정치에서 찾고 그러한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개념을 수평적이고 평등한 사회공동체와 관련시키며, 수직적 지배나 권력론을 비판하는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정치신학이다. 비판적 정치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정치사상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면서 20세기 민중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신자들이 로마제국의 세속적 정치 질서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되었고, 그와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와 메시아 왕국의 통치, 교회와 세속 국가, 구원과 지배의 관계에 대해 표명된 신학적 진술들이 기독교 정치신학의 원천이 되었다. 예수님과 바울의 메시아주의와 로마제국의 통치에 대한 견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중주권 이론, 동방정교회의 정교관계, 루터, 칼뱅 등 종교개혁자들의 정교관계에 대한 신학 등이 그에 해당한다. 서구에서 ‘정치신학’이란 용어가 부각된 것은 20세기 초 독일의 공법학자 칼 슈미트와 발터 벤야민의 정치신학 논쟁과 아우슈비츠의 뼈저린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 기독교 신학계에 등장한 정치신학이다. 칼 슈미트는 의회주의를 비판하고 나치의 전체주의적 지배와 독재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법학자로 악명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정치권력과 주권이 가진 종교적 속성과 신학적 토대를 날카롭게 인식하여 근대성의 이면을 간파한 통찰력으로 이후 급진적이고 비판적 정치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슈미트는 『정치신학』에서 근대국가의 정치체제의 핵심인 주권의 본질은 최상의 권위이며 궁극적 결정의 문제로서 모든 정상적 규범 일체를 근거 짓는 모든 결정의 상위에 있는 결정으로서 다시 말하면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의 문제이고, 정치신학은 이러한 수직적, 초월적으로 설정된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주권의 신학적 해석과 정초작업에 대해 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궁극적 결정의 권한을 가진 정치질서와 주권의 정당성의 근거는 내재적이고 수평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며, 초월적 수직적 신에 대한 의존과 복종에 근거를 두지 않을 수 없으므로 “모든 권력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하여 권력론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슈미트는 이처럼 근대국가의 주권의 본질이 정초하고 있는 초월적인 신학적 토대를 지적하며, 세속 국가의 핵심적인 정치적, 법적 개념이 된 그러한 종교적(신학적) 개념을 ‘정치신학’으로 개념화하였다. 그런데 벤야민은 ‘역사철학 테제’에서 역사적 유물론과 신학의 긴밀한 관계를 꿰뚫어보며 근대적 진보의 원리를 비판하였지만, 법을 만들고 유지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신화적 폭력과 모든 것을 유보하고 탈권위화하는 순수한 예외상태의 도입으로서 메시아주의적이고 신적인 폭력을 구분하고, 메시아주의적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슈미트의 보수적 정치신학을 비판하였다. 정교분리를 근간으로 형성된 근대국가의 법과 주권의 원천을 법철학적으로 천착시키고 종교와 정치가 근원적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준 벤야민과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이후 서구 근대성의 한계를 비판하는 탈근대적 정치철학(신학) 담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20세기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에 대한 통렬한 신학적 반성으로부터 역사적 현실 속에서 교회의 사명과 책임을 강조하고 정치를 포함한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교회와 기독교인의 참여와 실천, 개입을 주장하는 ‘정치신학’이 태동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종말론, 메시아주의와 기독교 신학의 적극적 대화를 시도한 가톨릭 신학자 요하네스 메츠(Johannes Baptist Metz),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등이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이들은 ‘정치신학’을 표방하며 근대적 정교분리의 체제에서 기독교 신앙이 내면의 경험으로만 사유화, 사사화되어 복음의 의미가 개인 구원 중심으로 축소되는 것을 비판하고 사회 정치적 문제 혹은 공동체적 사안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책임, 실천과 참여를 주장하였다. 이들에게 정치신학이란 “죄와 불의가 가득한 세계 속에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하나님의 세계 통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신학”이었다. 총체적 구원의 진리로서 기독교 복음은 영혼 구원으로만 축소될 수 없고 불의에 대한 저항, 적극적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 등 사회적 문제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는 않을 수 없으므로 신학은 정치신학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메츠는 불의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정치적 중립이란 곧 종교의 정치에 대한 순응과 침묵이며, 이는 실질적으로는 지배세력에 대해 방관하고 비호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교회가 정치화되는 것이라고 보고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새로운 정치신학을 통해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종교, 보수적 정치신학을 비판하면서 복음의 정신에 입각한 올바른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또 몰트만은 억압받는 히브인들을 선택하고 해방한 하나님 전승과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은 불의와 횡포, 억압과 착취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고 해방하는 적극적 공적 차원으로 연결된다고 보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신학, 희망의 신학이 비판적 신학으로서 정치신학, 정치적 해석학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신학에 대해 종교와 정치의 경계가 흐려질 때 종교의 본령과 정치의 본령이 모두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도 계속 제기되어 왔다. 한편에서는 서구 근대 정치사가 극복한 중세적 신정정치의 폐해에 대한 경계가, 다른 한편에서는 종교의 정치화가 영혼의 구원과 자유가 아닌 세속적 권력을 정당화하거나 특정한 이념에 대한 신학적 지지로 흐를 수 있다는 보수주의 신학적 비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핵심적 복음(메시지)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것이며,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총체성에 비추어 볼 때 정치신학에는 단지 상황신학이라고만 폄훼될 수 없는 신학의 중요한 주제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정치신학은 현대 기독교 신학의 주요 흐름에 속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중주권, 루터의 두 왕국신학이 하나님과 신앙의 영역 및 세속과 정치적 영역을 구분하고 있지만, 그 두 영역을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기보다 양자가 비판적 긴장을 유지해야 된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참사랑을 중심한 개인과 가정을 토대로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수수작용과 조화를 통한 통합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인 영혼의 구원이나 내세의 행복이나 천국행으로는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가정연합은 기본적으로 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 즉 천일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신학적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나라는 어떤 특정한 국가나 권력자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참사랑 실체로서 완성된 이상가정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러한 이상가정을 본으로 한 참사랑의 공동체로서 부모이신 하나님 아래 인류 하나의 대가족 사회를 지상에 실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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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정통 正統 / Orthodoxy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올바른 교의나 신앙이라는 뜻으로 이단(異端)에 대비되는 용어. [내용] ‘바른 계통’이라는 의미이며, 이단에 대비되는 말로 사용된다. 대개는 이단과 자신을 구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정통이라 하고, 상대를 이단으로 규정한다. 기독교에서는 올바른 신앙, 성서가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을 성실하게 견지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정통이라는 개념은 2세기 전후 영지주의자들의 발흥과 이에 대한 기독교회의 방어과정에서 생겨났다. 영지주의는 바른 신앙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올바른 기독교 신앙의 보존을 위해서는 스스로의 정체를 정통으로 규정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그 결과로 영지주의는 이단교설로 규정되었다. 정통과 이단은 서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 ‘이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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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이단 논쟁
정통·이단 논쟁 正統·異端 論爭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종파 간 교리와 관련된 논쟁. [내용]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주요 종교 전통에는 정통과 이단의 논쟁이 있었다. 정통과 이단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정통은 그 자체로 정통이 아니라 이단에 대하여 정통이며, 이단은 특정 교의를 믿고 표방하는 종교집단에서 정통교설에 대립해서 단죄 또는 배제되는 입장을 가리킨다. 이단(heresy)이라는 말은 ‘분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하이레시스(hairesis)에서 유래한 말이며, 분파란 같은 뿌리에서 분지(分枝)한 다른 갈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단이라는 말은 나와는 ‘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틀린 것’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고, 결과적으로 틀린 것으로서의 이단은 단죄 또는 배제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이단은 이교(異敎)와 다르다. 이단은 같은 뿌리의 다른 갈래를 의미하지만, 이교는 아예 뿌리가 다른 것을 가리킨다. 유럽에서 이단이 문제가 된 것은 역사적으로는 그리스도교 확립 이후의 일이다. 일신교를 표방하는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미 2세기부터 이단의 문제가 발생했고, 특히 4세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둘러싼 논쟁에서 아리우스파와 네스토리우스파 등의 이단이 등장했다. 그리스정교에서도 이단이 탄생했으나,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그 후 중세 11-15세기에 왈도파 및 카타리파를 비롯한 다수의 이단이 일어나 그리스도교회를 뒤흔들었다. 역사적으로 러시아 동방교회는 스스로를 ‘정교회(The orthodox church)’라고 부르며 서방교회를 비정통교회로 정죄했다. 이른바 정통 측에서는 이단을 탄압하고 금지하기 위하여 흉포한 심문재판을 하거나 군사적인 압력을 가했다. 중국에서는 이단이라는 말이 『논어』에서 처음 언급됐는데 정확하지 않은 학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주자학에서는 이단이라는 말이 ‘성인의 길에서 벗어난 학설이나 가르침’을 뜻했다. ☞ ‘이단’, ‘정통’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