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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자이며 토마스학파의 아버지. [내용] 로마가톨릭교회가 인정한 교회학자 33인의 한 사람이었으며, 신학자이자 스콜라철학자로서 토마스학파의 아버지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출생은 1224년 또는 1225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수도원장이 되길 바라던 부모의 기대로 어린 시절 몬테카시노수도원에서 성장하였다. 1239년 정치적 탄압으로 수도원에서 나온 그는 나폴리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도미니코회 수도사가 되었다. 부모는 그의 이러한 결정을 반대하여 도미니코수도원의 주선으로 파리로 유학 가던 그를 납치하여 로카세카성에 1년 동안 감금하였다. 그러나 그의 변함없는 결심에 가족들은 연금에서 그를 풀어 주었다. 이후 파리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252년부터 파리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1256년 정식 신학교수로 취임한 후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한 중세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는 은총과 자연,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로운 통일을 강조한 공로로 1567년 교회학자로 공표되었다. 『통일사상요강』은 기독교 신학을 확립한 신학자로서 그의 신관, 가치관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신관에서는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를 근거로 순수형상 또는 사유의 사유를 하나님으로 보았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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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
토마스 쿤 Thomas Samuel Kuh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한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 [내용] 1949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학교에서 과학사를 연구하는 조교수로 임용되어 르네상스 시대 지동설의 발달을 다룬 코페르니쿠스 연구를 시작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모아 1957년 『코페르니쿠스 혁명(The Copernican Revolution)』을 출판한 뒤 과학사학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이후 1962년 전통적인 실험 및 신뢰받는 방법론으로 이루어진 ‘패러다임’이 과학연구와 사조를 규정한다고 주장한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학문연구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과학사 연구와 과학철학에 사회적·문화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일반화시킬 정도로 학계 전반에 관점의 전환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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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와샤
토우와샤 統和社 항목체계 해외 [정의] 1960년 4월부터 12월까지 일본 통일교회 사무실로 사용된 곳. [내용] 도쿄도 신주쿠구 하쿠닌쵸에 위치한 토우와샤는 1960년 4월부터 12월까지 일본 통일교회의 사무실로 사용된 성지이다. 3-4평 남짓한 작은 장소이지만 사무실, 인쇄소, 부엌, 강의실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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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
토인비 Arnold Joseph Toynbe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문명의 순환적 발전과 쇠퇴에 대해 연구한 영국의 역사가. [내용] 순환적 역사관을 연구하여 체계화한 영국의 역사가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베일리얼칼리지에서 공부하였다. 1912년 베일리얼칼리지의 고대사 특별연구원이 되었고, 1915년 영국 외무부 정보국, 1919년 파리 평화회의 영국 대표, 런던대학교 교수, 1921년-1912년 신문사 통신원, 1925년 런던 경제학교의 교수, 왕립 국제관계연구소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그는 역사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과 엄청난 학식, 예리한 관찰 등을 담아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12권을 저술하였다. 그의 저작은 고등종교의 탁월성에 비중을 많이 두어 역사가가 아니라 종교 연구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역사 연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전문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일사상요강』은 그를 독자적인 문화사관을 수립한 학자로 소개하였다. 그는 세계사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단위는 지역도, 민족도, 국가도 아니며 개개의 문명이라고 보고 문명은 출생, 성장, 좌절, 해체, 소멸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관의 특징을 자유의지에 따른 비결정론으로 정리하고 3대에 걸친 문명의 계승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이러한 3대 문명의 계승은 통일사관의 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섭리시대, 복귀섭리 연장시대라는 3대의 섭리적 동시성에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면서 통일사관과 유사한 내용이 많아 통일사관이 출현하기 위한 전 단계를 준비한 사관이라고 평가하였다. ☞ ‘통일사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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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 신학
토착화 신학 土着化 神學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현지의 고유한 정신문화와 종교 가치에 적합한 신학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신학. [내용] 서구 신학의 번역과 소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신학계에 대한 반성과 서구 신학의 답습에서 탈피하여 한국 고유의 정신문화와 종교 가치에 적합한 한국적 신학의 수립을 목표로 하는 신학이다. 기독교의 복음을 한국의 토착적 종교와 문화 상황에서 어떻게 수용, 해석,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였다. 말하자면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규명하고 진술하기보다는 복음이 적용되는 종교·문화적 상황을 탐구의 내용으로 삼는 일종의 ‘상황 신학(contexual theology)’이며 보수적이기보다는 진보적이다. 서구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적 전통뿐만 아니라 한국(동양)의 종교와 문화의 전통도 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며, 따라서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 및 사상 사이의 대화를 적극 모색하는 방법론적 특징을 지닌다. 이미 1930년대 들어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이용도의 예수교회, 최태용의 복음교회 등에 의한 ‘조선적 기독교’ 수립을 위한 신학적 모색이 있었으며, 진보주의 신학자 정경옥은 서구 신학의 토착적 해석과 적용을 시도하는 ‘신학의 향토화’를 시도했다. 토착화 신학이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감리교신학대학의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교수 등에 의해서였다. 윤성범은 『기독교와 한국사상』(1964), 『한국적 신학: 誠의 해석학』 등을 통하여 한국의 전통 종교와 문화 속에 기독교적 요소가 선험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규명하고자 했다. 유동식은 『한국 종교와 기독교』(1965),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1975), 『풍류도와 한국 신학』(1992) 등의 저술에서 한국인 고유 무교와 풍류도를 중심으로 풍류 신학을 전개했다. 변선환은 기독교와 선불교의 대화에 초점을 두어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모색했다. 토착화 신학은 시작부터 보수 신학의 비판을 받았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합주의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변선환의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보수 신학계와 기독교계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1992년 자신이 속했던 감리교단의 종교재판을 받고 목사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면서 보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피선교지 토착교회 지도자들의 주체적 신학 수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이것은 토착화 신학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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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왕국
통가왕국 통가王國 / Kingdom of Tonga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아프리카대륙권 선교국. [내용] 통가왕국(The Kingdom of Tonga)은 수도가 누쿠아로파(Nuku alofa)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1/300인 748평방킬로미터로 남아시아태평양에 소속된 영연방 국가이다. 종교는 기독교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는 1975년 이곳에 파송된 미국인, 독일인, 일본인 등 3명의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성경공부의 모임을 운영하면서 3명의 고등학생을 전도하였다. 선교사들은 비자 문제로 수시로 출입국을 해야 했다. 결국 현지에서 취업을 한 독일인 엘레오노레 데와트빌(Eleonore Dewatville) 선교사를 제외하고 모두 선교지를 떠나야 했다. 데와트빌(Dewatville) 선교사는 1990년대 초반까지 선교사역을 지속했고, 후에 피지(Fiji) 선교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1994년에 10인의 일본인 세계평화여성연합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특히 이들은 황족의 일원들과 깊은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 노력의 결실로 전 영부인이었던 나나시푸 투카오(Nanasipau‘u Tuku‘aho) 공주가 세계평화여성연합 통가지부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현재 1개 교회에 소수의 식구들이 있으며, 협회 본부는 수도 누쿠아로파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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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
통감 統監(統監府)/ Resident-general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일본제국이 을사조약 이후 대한제국 섭정을 위해 파견한 관리. [내용] 1905년 11월 을사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제 밑에 일본제국 정부에서 파견한 대표자로 1명의 통감을 두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지휘 감리하게 하였다. 원래 통감은 외교에 관한 사항만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주재하였으나 개항장 및 기타 지역에 이사관을 두어 통감의 지휘 하에 일체의 사무를 관리하게 되었다. 통감의 직권이 점점 확장돼 한국의 내정에 관여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조선총독부의 모체가 되었다. 『원리강론』은 1905년 일본과 한국이 맺은 을사조약 이후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에 일임하고, 일본이 한국에 통감을 두고 필요한 지역마다 이사관들을 두어 내정을 간섭하여 사실상 식민지 상태에 들어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 ‘이사관’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