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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이신칭의 以信稱義 / Justification by faith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의미의 신학용어. [내용] 오직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뜻으로서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도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의인의 신분을 얻음으로써 하느님의 정죄와 심판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뜻으로 죄인의 입장에서 사용된 용어이다. 한편 이신신의는 인간을 심판하는 하나님이 성도의 믿음만을 보고 그를 법적으로 의롭다고 선언했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사용된 용어이다. 이신칭의 원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택한 자가 타락한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러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속사역을 말한다. 이신칭의에서 믿음은 흔히 칭의의 도구인(道具因)으로 말해진다. 즉 믿음은 죄인 안에서 칭의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의롭게 되며, 인간의 공로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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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이완용 李完用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한·일 강제합병을 주도한 인물. [내용] 한말 을사오적 중 한 사람으로 을사조약과 한·일 강제합병을 주도한 최악의 매국노로 불린다. 1858년 이호석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집안이 가난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10세 때 고종의 신임을 받는 관리였던 이호준의 양아들이 된 후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1887년 미국참사관으로서 미국으로 건너가 외교관 생활을 했고, 1896년까지 친러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조선에서 일본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변절하여 친일파 정치인으로 돌아섰고,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고종을 압박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는 데 일조하여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 되었다.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강력한 추천으로 내각총리대신이 되었고, 이후에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퇴임시키고 한·일 강제병합을 주도해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는 데 기여했다. 그 공로로 일본 정부에 의해 백작(伯爵)으로 봉해져 막대한 부를 누리다 1929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원리강론』에서 이완용은 한 번 언급된다. 즉 “1905년에 일본의 이등박문과 당시의 한국 학부대신이었던 친일파 이완용 등에 의하여서 한국의 외교권 일체를 일본제국의 외무성에 일임하는 조약이 성립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이완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조국을 배반한 인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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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
이요한 李耀翰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선천군 봉산동 성별 남 생년월일 1916.9 [정의] 최초로 입교한 목사로 신학교육의 기초를 다진 36가정 원로. [내용] 1916년 9월 평안북도 선천군 봉산동의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하여 신천읍의 장로교회에 다니며 성장하였다. 만주 봉천으로 이주하여 중국인 중학교를 다니다가 중국 하남성으로 이주하였고, 1935년부터 중국 하북성 한국인장로회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43년 일본 도쿄 소재의 동아신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신학교로 편입하려 하였으나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퇴학을 당하였다. 해방 후 1946년 황해도 영일감리교회 전도사로 활동하다 남하하여 서울에서 지내게 되었다. 기도 중에 ‘한국 주 재림’이라는 계시를 받았고 남산의 청해신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한 학기를 다니며 남대문교회에서 임시로 목회를 하였다. 그때 옥세현을 만나 참아버님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동란 발발 후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서 기도 정성을 들이며 이봉운 가족과 교류하였다. 1952년 부산에서 참아버님을 뵙고 ‘원리’를 듣고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12월 통일교회에 입교한 뒤 목사들과 신령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1953년 8월 대구교회 전도사로 발령받아 여러 핍박 중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1957년 부산교회 전도사, 1958년 경상 지구장, 1961년 대구 교회장, 1961년 경북 지구장 겸 제4지구 기대장, 1965년 전국 순회사, 1965년 서울 제3특별지역장, 1965년 전국순회사실장, 1966년 서울 제2특별지역장, 1968년 협회 가정부장, 1968년 서울 특별지구장 겸 본부 특별지역장, 1969년 성북 지구장, 1970년 중앙수련소장, 1970년 본부교회 부교회장, 1974년 협회 전도부장, 1974년 협회 순회사실장, 1978년 본부교회 특별교역장 등 공직에 헌신하였다. 특히 1977년부터 통일신학교 교장으로 시무하면서 목회자의 양성에도 힘썼다. 1961년 원심희와 36가정 축복결혼을 받았으며, 1996년 스웨덴 국가메시아 및 분봉왕으로 봉직했다. 2019년 1월 4일 104세의 일기로 성화하여 ‘축 신통일한국시대개문 충성자(神統一韓國時代開門 忠誠子)’의 휘호를 받았다. ☞ ‘옥세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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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
이용도 李龍道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성별 남 생년월일 1901년 [정의] 신비주의 신학사상을 주창한 감리교 목사. [내용] 일제 강점기에 신비주의 신학사상을 주창한 한국 감리교의 목사이며, 토착 교단인 예수교회 창립자이며 독립유공자였다. 황해도 금천 출신으로 1915년 경기도 개성의 한영서원에 입학했다. 한영서원은 남감리회의 미션스쿨이자 개천절이 개교기념일이었던 민족학교였다. 1919년부터는 독립운동으로 4차례 수감되었다. 1924년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하고, 1928년 1월 졸업한 뒤 강원도 통천으로 파송되었다. 1928년 11월부터 강원도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기도운동을 일으켜 부흥사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의 신비주의 신학은 후대 국내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그 특징은 깊은 차원의 기도를 통해 영성에 근접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큰 복이라고 강조하였다. 고난을 감수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리스도를 따라 그와 하나가 되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며, 단순히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비주의적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이용도의 신비주의는 후대의 학자들로부터 기독교 신앙 토착화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당면한 민족의 현실 속에서 신앙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의 교리에 의존하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영감을 중시한 점, 그리스도를 지극히 동양적 현실에 국한시켜 이해한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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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론
이원론 二元論 / Dual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세계가 서로 독립적인 두 개의 요소에 근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사상. [내용] 『통일사상요강』은 이원론을 물질과 정신이 각각 별개이면서 우주 생성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보는 철학적 세계관으로 정의한다. 정신과 물체의 두 실체를 인정하는 데카르트의 물심(物心) 이원론이 대표적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속성은 사유(思惟)이고, 물체의 속성은 연장(延長)이라고 보았다. 물체는 연장을 본성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무한히 분할이 가능하지만, 사유하는 실체인 정신은 분할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따라서 사유와 연장은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으며 정신과 물체는 어떠한 공통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정신과 물체는 서로 독립적인 실체임을 강조하였다.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원론은 세계가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립된 이질적인 두 상태 혹은 두 부분의 근본원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통일사상요강』은 이원론과 관련하여 성상과 형상의 관계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은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하는데, 이때 성상과 형상은 동일한 요소인지 서로 이질적인 요소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이에 대해 『통일사상요강』은 우주 생성의 근원인 성상과 형상이 하나님의 절대속성, 즉 동질적 요소의 두 가지 표현태라고 주장한다. 절대속성이란 에너지적 심이요, 심적 에너지를 의미하는데 에너지와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본래 하나이다. 이 절대속성이 창조과정에서 차이가 생겨 분화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피조물의 무형적 근본원인인 성상과 형상의 근본이다. 따라서 성상은 심적 요소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에너지적 요소도 갖고 있고, 형상은 에너지적 요소로 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심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성상은 심적 요소, 형상은 에너지적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을 뿐이다. 이에 근거하여 『통일사상요강』은 이원론의 문제점이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조화로운 통일의 관계가 아닌 이분법적 관계로 보았다는 점, 상호 독립적이고 이질적인 두 요소 간에 어떻게 상호작용이 가능한지를 설명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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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성
이월성 李月星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생년월일 1911년 [정의] 초창기 원로 장로이자 목사로 헌신한 공직자. [내용] 1955년 7·4 수난사건에서 교회를 지키는 데 참여했으며 1957년 하계 40일 전도 후 서울 공릉교회에서 시무했다. 이후 춘천 지역장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 10월 28일 제2회 자녀의 날에 하늘의 자녀 대표로 표창을 받았다. 오랫동안 삼각산에서 기도 정성을 들였고, 1972년 6월 1일 서울 순회사로 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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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덕
이일덕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정의] 허호빈의 남편으로 평양을 중심한 영적 역사에서 요셉 입장의 천사장형 인물. [내용] 본래 체격이 좋고 싸움을 잘해 평양에서 폭력배로 이름을 떨치다가 허호빈과 결혼한 후 철산에 가서 김성도에게 은혜를 많이 받고 큰 역사를 일으키며 평양시 서성리에서 성주교단 평양교회를 운영하였다. 김성도 사망 후 기도 중에 허호빈의 복중에 예수님이 거하는 역사가 일어나 여러 시험을 하였으나 부인인 허호빈의 말에 절대순종하며 2천 년 전 요셉이 마리아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못했던 것을 탕감하였다. 재림 때 기쁨과 영광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하는 데 기여하였다. ☞ ‘허호빈’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