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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아브라함 家庭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braham’s famil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1장 제3절의 내용으로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내용. [내용]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려는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고 이루므로 노아가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그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노아 가정이 이루려다 못 이루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맞아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해야 하였다.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이었다.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10대에 걸친 400년 탕감기간을 경과한 후 노아 대신으로 아브라함을 세웠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아담의 대신이었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를 축복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1)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였다. 그것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이었다. 그는 상징헌제를 드리기 전에 아담 가정의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먼저 세워야 하였다. 애급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녀와 부부의 관계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계획한 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 사라를 남매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여 다시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 함께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왔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이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는 3단계의 성장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를 상징한 것이다.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였고, 양은 장성을 상징하였고, 암소는 완성을 상징하였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와 아브라함까지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던 것이다.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 기간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처럼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하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제물을 쪼갰던 것은 첫째로 아담 가정에 있어서 선과 악의 모체였던 아담을 선과 악의 두 표시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 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넷째로 사탄과 혈연관계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사탄의 것을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조건물이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이 소생을 상징한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 위에 세워져야 했던 장성과 완성을 상징한 양과 암소에게도 사탄이 침범하였다. 따라서 그 상징헌제가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한 400년 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은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 분립의 터를 닦은 기간이기도 하였다. (2)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정된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그 중심인물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불러 상징한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는 새로운 섭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원리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1차였고, 노아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그런데 3수는 완성수이기 때문에 제3차 섭리인 아브라함 때에는 그 섭리를 완성해야 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실체로 헌제하여 보다 큰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상징헌제의 실수로 인하여 상징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다. 둘째, 헌제를 드리던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하여 하늘 편에서도 아브라함과 자식까지 2대에 걸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다. 셋째, 아브라함은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터전과 장성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의 기대 위에서 부름을 받아 완성 상징헌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했지만, 하나님은 아벨과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기대를 조건으로 아브라함에게 한 번 더 헌제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자식으로 받았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죽이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던 아브라함의 심정과 믿음 그리고 순종에서 나온 행동이 실제로 이삭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립하였다. 그렇게 사탄이 분리된 이삭이 하늘 편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다. (3) 뜻으로 본 이삭의 위치와 상징헌제 하나님은 상징헌제에서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으며, 연장된 복귀섭리를 연장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고 한 충성은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입장을 조성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입장에서 다시 살린 것은 아브라함 자신도 이삭과 같이 죽은 입장에서 사탄을 분립함과 동시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로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죽음의 자리에서 같이 살아난 이삭과 아브라함은 서로 개체는 다르면서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한 몸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을 중심한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삭을 중심한 섭리로 연장되더라도 그 섭리에서 이삭이 성공하면 아브라함도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인해 섭리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연장됐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아브라함이 실패하지 않았고 섭리도 연장되지 않은 것처럼 되었다.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해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인계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 이삭은 뜻 앞에 순종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은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이 준비한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다. 그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헌제가 되었다. 실체기대 이삭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그의 자식이었던 에서와 야곱을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분립하여 놓고 실체헌제를 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뤄야 했다. 먼저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야곱은 다음과 같이 실체헌제를 성공한 후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한 400년간의 탕감노정을 걷기 위하여 애급으로 들어갔다. 첫째, 야곱은 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떡과 팥죽으로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다. 둘째, 야곱은 사탄 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21년간 고역하면서 가정과 재물을 중심하고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셋째,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실체로써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였다. 야곱은 이와 같이 하여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함으로써 실체헌제를 위한 중심인물이 되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간의 고역을 마치고 하늘 편 처자와 재물을 취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그를 사랑하고 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또 노아 가정의 셈과 함이 실체헌제에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담 가정에서부터 세우려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3시대에 걸쳐 연장되어 아브라함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뜻이 이삭에게로 연장되었다. 그런데 이삭 가정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메시아가 그때에 강림해야 될 것이었다.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은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세계를 메시아를 위한 왕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 때 타락한 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해 아브라함 가정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 위에 메시아가 강림할 수는 없었다. 그 기대가 사탄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인 판도 위에 세워진 후에야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고 실체헌제에도 성공하여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를 중심하고 후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상징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벌로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이삭의 후손들은 고향을 떠나 이방(異邦)에 들어가서 400년간을 고역하면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전형노정을 성공적으로 걸었다. 그 전형노정을 따라서 모세도 걸었고, 예수님도 걸었으며, 이스라엘 민족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사는 사탄을 민족적으로 굴복시켜 온 전형노정의 사료(史料)가 된다. 이스라엘 민족사가 복귀섭리역사의 중심사료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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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애급 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원리강론 애급 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原理講論 애급 苦役時代와 로마帝國 迫害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 제1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애급 고역시대와 실체적 동시성시대인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대한 원리적 설명. [내용] 『원리강론』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해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탕감복귀기대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이 400년의 기대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을 재분립하는 애급 고역 400년을 거치도록 하였다.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에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며 고역을 당하던 이 시대를 가리켜 애급 고역시대라고 한다. 형상적 동시성시대에 해당하는 이 400년 기간을 실체적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바로 로마제국 박해시대이다. 유대 민족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 신도들은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처참한 박해를 당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은 교회를 파괴하고 예배를 금지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을 잡아 잔인하게 처형하는 등 기독교 박멸을 위한 대규모의 조직적인 탄압 정책을 펼쳤다. 애급 고역시대가 끝난 후에 모세는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제1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또한 시내산에서 받은 계명과 말씀을 토대로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듦으로써 제1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뜻을 세워 나가도록 인도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마 박해 400년 기간이 끝난 후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 일으켰고 테오도시우스 1세를 감화시켜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하였다. 제2이스라엘 선민인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교회를 세워 재림주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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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예수님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2장 제3절의 내용으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대한 해석. [내용] 천사를 주관해야 했던 아담이 타락해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후 아담으로 오는 예수님은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원리적인 책임을 지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 노정을 보여 주었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실체적 노정을 걸어야 했다.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복시킨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해야 하였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3차에 걸쳐 연장됐으며, 3차 노정은 십자가 죽음 이후의 영적인 노정이었다.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했던 중심인물은 세례 요한이었다.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를 세웠다. 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은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2) 실체기대 세례 요한은 모세와 같은 위치에 세워졌기 때문에 유대 민족에 대하여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있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였다. 세례 요한을 중심한 유대 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정권 하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로마제국을 하늘 편으로 복귀해야 하였다. 하늘은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기사이적을 보여 주어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도 그를 의심하고 자기가 엘리아로 왔다는 예수님의 말을 부인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게 하였다. 결국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돼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였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하였다. 그 결과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었다.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면서 사탄을 분립한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반석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으로 돌아가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한 반석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와서 모세 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했던 예수님의 노정에서 세례 요한이 불신하면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었다. 사탄은 3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해 세 가지의 시험으로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첫째,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1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둘째,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셋째,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로 첫째,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했으므로 그때까지의 섭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였다. 둘째,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이루어 사위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웠다. 2) 실체기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부모의 자리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한 동시에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기사이적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유대 민족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서 있던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있었다. 3)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갔다.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예수님을 중심한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서 먼저 영적노정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1) 영적인 믿음의 기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은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고라도 전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사탄은 자기 편에 서게 된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모두 하나님에게 내놓게 되더라도 메시아인 예수님 한 분을 죽이려고 하였다. 사탄은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전 섭리의 목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사탄 편으로 돌아간 유대 민족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탕감조건으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었다. 사탄이 그의 최대 실권행사로서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하나님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죽은 예수님을 부활시켰고, 온 인류로 하여금 부활한 예수님에게 접붙이게 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였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육신을 제물로 내준 후 부활 40일의 사탄 분립 기간으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2) 영적인 실체기대 예수님은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처지에서 영적인 부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부활한 예수님은 흩어졌던 제자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기사와 이적의 권능을 줌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들은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되었다. (3)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예수님은 그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을 복귀함으로써 영적인 참부모가 되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게 되었다. (4) 영적 가나안 복귀 기독교 신도들은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죄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의 노정을 걸어야 하였다. 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천 년의 역사노정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었다. 예수님은 재림하여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실체노정으로 걸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함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재림 메시아는 초림 때 실체로 이루려던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하므로 실체인간으로 지상에 탄생한다. 초림 때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의 노정을 걸었던 것처럼 만일 재림 때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하게 되면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재림 메시아는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어도 창조목적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워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쳐 세 번째인 재림 메시아 때에는 그 섭리를 이루게 돼 있다. 또한 예수님 이후로 2천 년의 영적 복귀섭리는 재림 메시아를 위한 사회 환경으로 민주주의시대를 이루어 놓았다. 재림 메시아는 새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접붙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 자녀로 복귀해야 한다. 제2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재림 메시아를 배반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제3이스라엘 선민을 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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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예정론
원리강론 예정론 原理講論 豫定論 / Predestinati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6장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통일원리적 이해. [내용] 뜻에 대한 예정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려는 것이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뜻을 세웠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다시 이루기 위하여 그것을 다시 예정하고 복귀섭리를 진행하였다. 하나님은 이 뜻을 선(善)으로 예정하고 이루며 악(惡)으로 예정하고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선의 주체이므로 창조목적도 선이요, 복귀섭리의 목적도 선이어서 그 목적을 이루려는 뜻도 선이다.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반대되거나 장애가 되는 것을 예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간의 타락이나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심판 혹은 우주의 멸망 등을 예정할 수 없다. 악의 결과는 인간 자신이 사탄과 연관되어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난다. 하나님은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한 절대자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한다. 따라서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려는 복귀섭리의 뜻도 유일하고 불변하며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기 때문에 만일 이 뜻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이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세워서 끝까지 그 뜻을 이루어 나아간다. 예를 들면 아담을 중심하고 창조목적을 이루려고 하였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후 아담으로 보내어 그를 중심하고 뜻을 다시 이루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해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재림하여 그 뜻을 기필코 완수할 것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뜻 성사에 대한 예정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려는 복귀섭리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뜻의 성사에는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된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상대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95퍼센트 책임분담에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한다. 인간의 책임분담 5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자신에게는 100퍼센트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아담 해와를 중심한 뜻 성사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였다.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노아가 방주를 제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였다. 예수님의 구원섭리도 타락한 인간이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경우를 보면, 인간이 담당했던 책임분담은 하나님이 그의 책임분담으로 담당한 수고와 은사에 비하여 얼마나 작은 것인지 알 수 있는 동시에 섭리적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감당치 못함으로써 복귀섭리를 연장시켜 왔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경미한 책임분담이 인간 자신에게는 힘에 겨울만큼 큰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정 어떤 인물을 중심한 하나님의 뜻 성사에는 그 자신이 언제나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된다는 필수적인 요건이 따라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사명자로 예정하는 것은 95퍼센트의 하나님 책임분담에 대하여 5퍼센트의 인간 책임분담 수행이 합하여서 그 인물을 중심한 뜻이 100퍼센트 완성되어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예정한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예정한 대로의 인물이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세를 택할 때, 그가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선민을 가나안까지 인도할 수 있는 영도자가 되도록 예정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모세에 대한 예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도중에 죽고 말았다. 하나님 구원섭리의 목적은 타락한 피조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완전히 복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다 빠짐없이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재창조 역사인 구원섭리도 일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서도 먼저 중심인물을 예정하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에서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먼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민으로 태어나야 한다. 둘째, 같은 선민 중에서도 선(善)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어야만 한다. 셋째, 똑같은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라도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천품을 타고나야 한다. 넷째, 같은 천품의 인간이라도 후천적인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후천적인 조건마저 똑같이 갖춘 인물들 중에서도 보다 하늘이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에 맞추어진 개인이 먼저 택함을 받는다. 예정설을 뒷받침하는 성구의 해명 성서에 하나님의 예정을 뒷받침해 주는 성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성구들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원리강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로마서 8장 29절-30절: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을 미리 정하사, 미리 정하신 이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 하나님은 전지하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알고, 그 인물을 예정하고 부른다. 그러나 부르는 하나님의 책임분담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화를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 없다. 그는 부름 받은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로마서 성구에는 인간 책임분담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으로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② 로마서 9장 15절-16절: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인물이 가장 적합한가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미리 알고 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물을 택하여 긍휼히 여기거나 혹은 그를 불쌍히 보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에 인간이 원함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요, 또 인간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성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③ 로마서 9장 21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성을 닮게 함으로써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세우기 위하여 인간 책임분담이라는 조건을 세웠다. 그런데 인간은 이 조건을 스스로 범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타락한 인간은 마치 쓰레기와 같이 버림을 받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설혹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취급한다 하더라도 결코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다. ④ 로마서 9장 10절-13절: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 에서가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 에서와 야곱은 복중(腹中)에 있어서 아직 선악 간의 아무런 행동의 결과도 나타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은 복귀섭리 노정의 원칙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에서와 야곱을 쌍태로 세웠던 것은 그들을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자리에 갈라 세워 아벨의 자리에 있는 야곱이 가인의 자리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일찍이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장자기업 복귀의 뜻을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에서는 가인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며, 야곱은 아벨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실제로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따라서 좌우될 문제이다. 에서는 야곱에게 순종굴복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서 야곱과 같은 사랑의 축복을 받는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아무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진 야곱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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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원리강론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原理講論 유대民族 捕虜 및 歸還時代와 敎皇 捕虜 및 歸還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 제5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실체적 동시성시대인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관한 원리적 설명. [내용] 『원리강론』은 후편 제4장 제5절에서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관한 원리적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여로보암이 유다 지파와 벤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0지파를 규합하여 새로운 왕국을 창건함으로써 이스라엘 왕국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각각 분열되었다. 이후 북조 이스라엘은 성전 이상을 저버리고 불신으로 흘러 B.C.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고, 남조 유대는 B.C. 586년에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70년간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자 해방을 맞이하여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유대 민족이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갔다 고레스 왕에 의해 해방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 이상을 재건할 때까지의 210년 기간을 가리켜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를 실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해당하는 210년의 기간이다. 교황과 국왕은 재림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에게 그 나라와 왕위를 인계해야 할 섭리적 책임을 갖고 있었지만, 이들은 거듭된 타락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유대 민족이 성전 이상을 받들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사탄 세계인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가 고역을 당하게 하였던 것처럼 교황 또한 포로가 되어 고역을 당하게 하는 섭리를 진행하였다. 1305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5세는 1309년 교황청을 로마로부터 남불 아비뇽으로 옮겼고, 그의 후임들도 아비뇽에 정주하여 프랑스 왕의 구속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137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 때 다시 로마로 귀환하였다. 교황이 남불 아비뇽에 유수되었다가 로마로 복귀한 후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약 210년 기간은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를 실체적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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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인류 역사 종말론
원리강론 인류 역사 종말론 原理講論 人類歷史 終末論 / Eschatolog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3장의 내용으로 인류 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해. [내용] 하나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을 보고 기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3대 축복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악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악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이다. 지상지옥에서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은 육신을 벗은 후 천상지옥으로 가게 된다. 구원섭리 기쁨을 누리려고 창조한 피조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먼저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하는 데까지 구원하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며,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죄가 없는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고 먼저 지상천국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이므로 인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선한 세계를 복귀케 하려는 복귀섭리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가 복귀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살펴보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자.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였다.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 혹은 국가는 망하였더라도 종교 자체만은 계속 내려오고 있다.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융화되었다. 근세에 이르러 극동 문화권, 인도교 문화권, 이슬람 문화권, 기독교 문화권 등의 4대 문화권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 준다. 수많은 종교가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은 인류 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로 복귀되어가고 있는 증거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면, 인류 역사가 복귀섭리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로 향상되고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이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전단계까지 복귀되어 가고 있다. 셋째로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 역사는 복귀섭리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고 있다.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진리가 나오면, 두 세계는 새 진리 아래 통일될 것이다. 말세 1) 말세의 의의 말세란 사탄 주권의 죄악 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로 교체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즉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는 때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말세는 여러 번 있었다. 먼저 노아 때도 말세였다.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 만에 홍수 심판으로 멸하고 하나님만을 신봉하는 노아 가정을 세워서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 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하였다. 두 번째로 예수님 때도 말세였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믿음의 터를 닦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어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때도 말세였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말세이다.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였으므로 재림하여 영육 아울러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수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재림의 때도 말세이다.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많은 기독교 성도들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에는 천변지이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원리강론』은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말세에 관한 성구 역시 무언가에 대한 상징과 비유라고 주장한다. 각각의 성구들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12)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1, 베드로후서 3:13, 이사야 66:22)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 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재림 메시아를 중심한 하나님 주권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12)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 심판을 의미하므로 불 심판은 곧 말씀 심판을 의미한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52, 데살로니가전서 4:16) 이 성구는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체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 부활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 기록한 말씀이다. (4) 지상 인간들이 끌어 올리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17)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사탄 주권을 물리치고 지상천국을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29)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에 성도들이 실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세와 현세 『원리강론』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3대 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말세라고 주장한다.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타락한 인간을 개성 완성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 첫째, 현세에 영통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현세에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고 있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타락한 인간이 사탄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현세에 민주주의 사상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와 남녀평등과 만민평등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타락한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넷째, 현세에 박애주의 사상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本性愛)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임을 알 수 있다.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사와 국가 흥망사는 현세가 제2축복을 복귀하는 말세임을 보여 준다. 첫째, 현세에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는 예수님을 중심하고 인류가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되어 하나님의 제2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둘째, 현세는 선 주권을 지향하는 하늘 편 세계와 사탄을 중심한 악 주권의 세계가 대결하여 서로 교차되고 있는 때이므로 말세이다.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피조세계에 대한 내외 양면의 주관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은 현세가 제3축복을 복귀하는 말세임을 보여 준다. 첫째, 종교와 철학 및 윤리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하나님에 대한 타락한 인간의 심령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이 밝아짐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도 복귀되어 그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점차로 복귀되기 때문에 현세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발달도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이 피조세계에 대한 내외 양면의 주관성을 복귀함에 따라 하나님의 제3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을 볼 때, 우리는 현세가 말세임을 알 수 있다. 말세와 새 말씀 그리고 우리의 자세 하나님은 타락하여 무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심령과 지능을 함께 깨우치게 함으로써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도록 섭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높아진다. 신령과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지만 무지한 상태로부터 점차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진리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구약 전 시대에는 제물을 드리게 하였고,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모세 때에는 율법을, 예수님 때에는 복음을 주었다. 오늘날의 지성인들이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고차원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표현방법에 의한 새 진리가 출현해야 한다. 복귀섭리역사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고 할 때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창기가 된다.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 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운다. 역사적인 전환기에 하나님이 섭리하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운 새 역사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역사의 전환기에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된다.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새 진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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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재림론
원리강론 재림론 原理講論 再臨論 / Second Adven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6장의 내용으로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이해. [내용]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복귀섭리역사에서 보면, 예수님은 탕감복귀 섭리시대(구약시대)의 2천 년이 지난 후 강림하였다. 탕감복귀의 원칙에서 볼 때 전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재탕감복귀 섭리시대(신약시대)의 2천 년이 끝날 무렵에 주님은 재림한다.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사탄 편 아담형의 인물인 카이젤이 망하고 사탄 편 재림주형의 인물 스탈린이 공산주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를 탕감복귀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재림기가 시작된다.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천륜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해 나왔다. 그러므로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있는 참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장차 그가 재림할 때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하였다. 이것은 재림할 때 하늘만 쳐다보며 재림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기독교 신도들 앞에 재림 메시아가 지상에서 탄생하여 도둑같이 나타나면 그들에게 이단자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림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철장은 죄악 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재림하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재림하여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고 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할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지상에서 탄생한다. 인간의 속죄는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 가능하다.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육신을 쓰고 와야 했으며, 재림 때에도 육신을 쓰고 지상에서 탄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름은 예수님을 통해 영적으로 중생한 성도들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는 말씀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고 예언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막기 위함이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할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 어려운 신앙노정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 재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백성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였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 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은 재림주님을 맞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다른 어떤 나라와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후에 이스라엘 선민은 기독교 신도들이다. 재림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 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한 기독교 신도들이다. 신약성서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재림할 나라는 동방에 있다. 예로부터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숭배해 온 나라이자 전체주의 국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다.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 편 국가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할 동방의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메시아가 재림하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즉 재림 메시아를 맞이할 나라는 천주적(天宙的)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한다면, 한국 민족은 제3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제1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 세계였던 이집트에서 400년간 고역을 하였다. 제2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 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한국 민족도 제3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 편의 어떠한 국가로부터 40수에 해당되는 연수의 고역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제국에 속방(屬邦)되어 박해를 당한 40년 기간이었다. 한국 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 박해를 당하였다. 둘째,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려고 재림하는 것이므로 먼저 그가 재림할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 편으로 복귀하려는 섭리를 할 것은 명백하다. 예수님이 재림할 한국에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이 서로 부딪치게 된다.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한국 민족은 천주복귀(天宙復歸)를 위한 민족적인 제물이므로 이것을 가인과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 것이다.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다. 남북 사이의 한국동란은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 간 대결이었고, 나아가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었다. 유엔의 여러 회원 국가들이 동원된 것은 그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 나라는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려면, 먼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한민족이 걸어 나온 비참한 역사노정은 하나님 심정의 대상으로 서기 위한 과정이었다. 또한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려면 선한 민족이어야 한다. 한국 민족은 침공해 온 외세를 밀어내는 데 그쳤을 뿐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또한 한민족은 선천적으로 종교적인 천품을 가지고 있어서 경천사상이 강하며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넷째, 이 나라에는 예언자들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감록 신앙에 의한 한민족의 메시아사상이다. 정도령은 한국으로 재림할 메시아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다. 또한 이 민족이 믿고 있는 각 종교의 도주들이 재림주가 한국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계시를 그 신도들이 받고 있다. 재림주님은 모든 종교의 교조들이 지상에서 이루려고 하였던 도의 목적을 완성하게 되므로 재림주님은 사명으로 보아 모든 교조들의 재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영통인들의 신령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다섯째, 이 나라에서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한다. 전 세계에 걸쳐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한국을 중심하고 모두 하나의 진리 밑에 흡수되고 융합되어 창조본연의 이상세계 문명으로 결실되어야 한다. 첫째, 육지에서 발달한 모든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된다. 애급에서 발생한 고대의 대륙 문명은 희랍, 로마, 이베리아 등의 반도 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반도 문명은 다시 영국의 도서 문명으로 옮겨졌으며, 도서 문명은 다시 미국의 대륙 문명을 거쳐 일본의 도서 문명으로 되돌아왔다. 이 문명의 순례는 예수님이 재림할 한국에서 반도 문명으로 종결된다. 둘째, 하천과 해안을 중심한 문명도 한국이 있는 태평양 문명으로 결실되어야 한다. 나일 강,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등을 중심하고 발달한 하천 문명은 희랍, 로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지중해를 중심한 문명으로 옮겨졌으며, 이 지중해 문명은 다시 영국과 미국을 중심한 대서양 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문명은 또 미국, 일본, 한국을 잇는 태평양 문명으로 결실된다. 셋째, 기후를 중심한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된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야만인으로 떨어져 온대 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열대에서 원시인의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애급대륙을 중심한 열대 문명을 먼저 이루었다. 이 문명은 대륙에서 반도와 도서로 옮겨져 양대(凉帶) 문명을 이루었고, 이것이 다시 소련으로 넘어가 한 대 문명을 이루었다. 이제 새 에덴의 온대 문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할 한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예수님의 초림 때와 재림 때는 섭리적인 동시성시대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정은 예수님 때 유대교를 중심하고 벌어졌던 모든 사정과 흡사하다. 오늘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이 교권과 교회의식(敎會儀式)에 붙들려 있는 한편으로 내용이 부패하고 있다. 예수님 초림 때의 유대교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면, 기독교인들이 먼저 재림주를 핍박하게 될 것이다. 초림 때 하나님은 메시아가 왔다는 소식을 제사장이나 교법사들에게 주지 않고 이방의 점성술자와 순진한 목자들에게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도 진부한 신앙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보다는 도리어 평신도들이나 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이교도 혹은 양심적으로 사는 불신자들에게 먼저 계시해 줄 것이다. 초림 때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유대교 지도층이 아니고 하층민이나 이방인들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기독교의 지도층보다 평신도나 비기독교인들이 먼저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재림주님을 배반함으로써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을 통해 오히려 지옥으로 가게 될 신도들이 많다. 언어 혼잡의 원인과 통일의 필연성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하나님을 머리로 하고 모두 그 지체가 되어 한 몸과 같은 대가족의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이 땅위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언어가 달라서 서로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들 상호간의 횡적인 관계도 끊어지게 되어 오랫동안 서로 떨어진 지리적 환경 가운데서 서로 갈리어 다른 민족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재림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어야 한다. 인류의 부모인 재림주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여 한국말을 사용할 것이므로 한국어가 조국어가 될 것이며,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할 것이다. 온 인류가 한 나라의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