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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의 조작
관념의 조작 觀念의 操作 / Operation of idea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마음속에서 필요한 관념들을 조작하여 사고하는 행위. [내용] 『통일사상요강』에 따르면, 관념의 조작이란 인식의 주체가 자신의 마음속에 기억된 다양한 관념들을 조작하여 원하는 사고를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조작이란 상기(想起), 연합, 분석, 구성, 종합, 환위(換位), 환질(換質) 등을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기는 과거의 경험 중에서 필요한 관념을 이끌어내는 것이고, 연합은 한 관념을 생각할 때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른 관념이 연상돼 연결되는 것이며, 분석은 어떤 관념을 작은 관념들로 분해하는 것, 구성은 작은 관념들을 모아 큰 관념을 이루는 것, 종합은 분석한 여러 관념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큰 관념으로 총합하는 것을 뜻한다. 환위는 한 판단의 뜻을 유지하면서 주어와 술어를 바꾸는 조작을 의미하며(예, ‘모든 A는 B이다’를 ‘어떤 B는 A이다’로 바꾸는 것), 환질은 한 긍정적 판단을 부정적 판단으로 하되 술어를 모순관념으로 바꿔서 의미를 변하게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예, ‘A는 B이다’를 ‘A는 非B가 아니다’로 바꾸는 것). 이러한 관념의 조작을 통해 인간은 회상, 판단, 의견, 상상, 이해, 추리 등의 다양한 사고를 펼칠 수 있다. ☞ ‘통일사상 인식론’, ‘관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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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진재
관동대진재 關東大震災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큰 피해. [내용]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당시에 조선인들의 대학살이 일어났던 한민족의 대표적 수난사건이다. 일본 간토(關東)지방 사가미(相模)만 북부를 진앙으로 진도 7.9의 지진이 발생해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라고 불리는 이 지진으로 인해 목조 가옥 4만여 채, 연와조 건물의 85퍼센트, 석조 건물 84퍼센트,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8퍼센트가 무너졌으며 1천만 간토 인구 가운데 14만 2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3만 7천여 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만 310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당시의 지진으로 인한 대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방화를 했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하였고, 심지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고약한 소문마저 돌았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공포하여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는 한편 주민에게 자경단을 조직하게 했고, 공포심에 사로잡힌 일본 민중과 일부 관헌에 의해 소위 ‘조선인 사냥’이 자행되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조선인 수천 명과 중국인 3백여 명이 살해당했다. 여러 정황상 대지진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을 획책하고 진행했다는 가정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한국 민족은 제3이스라엘로 선택된 민족으로서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해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먼저 세워야 했다. 이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 편의 어떤 국가로부터 40수에 해당되는 연수(年數)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屬邦)되어 박해를 당한 40년 기간이었다. 『원리강론』은 관동대진재에서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무고한 한국인들이 학살당한 사건도 이 40년간 고역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 ‘제3이스라엘’,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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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
관혼상제 冠婚喪祭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인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일컫는 말로 가정의례라고도 함. [내용] 관혼상제는 개인이 일생을 거치면서 치르는 중요한 의식으로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冠禮)·혼례·상례(장례)·제례를 지칭했던 사례(四禮)를 의미하며, 가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가례(家禮, 가정의례)로 부르기도 한다. 관혼상제는 『예기』, 주자의 『가례』 등 유교 경전에 바탕을 둔 유교적 예법이지만 역사적으로 유교를 통치와 교화의 이념으로 삼은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는 서구의 인류학자 반 게넵이 개념화한 통과의례적 성격을 지니는 생애 의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출생의례가 포함되는 생애 의례에 비하여 유교적 이념의 영향을 받은 관혼상제에는 탄생 관련 의례가 배제되고 상례 이후 조상을 숭배하는 제례가 포함된 점이 특징이다. 관혼상제의 통과의례적 성격은 이러한 의례를 통해 개인이 이전의 단계에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새로운 존재론적,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있다. ☞ ‘통과의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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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노정
광야노정 曠野路程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광야를 돌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는 노정. [내용] 모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떠나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도달할 때까지의 노정으로서 하나님이 축복하신 에덴으로 돌아가기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장차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에 앞서서 그의 길을 개척하고 예비해 보여 주어야 할 모의자(模擬子)로서의 사명도 있었다. 모세가 이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탄 세계인 애급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주로 광야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이를 광야노정이라고 부르며, 『원리강론』에서는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모세의 광야노정은 예수님이 향후 인류를 인도하여 죄악 세계의 고해(苦海)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미리 보여 준 전형(典型)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모세는 광야노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과 완전히 하나 됨으로써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세워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했다. 하지만 반복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이 기간은 40년 이상 연장됐다. 『원리강론』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3차에 걸쳐 진행됐다고 설명한다. 1차 때에는 모세가 자신의 동포를 학대하던 애급인을 쳐 죽였을 때(출애급기 2:12)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와 하나가 됐더라면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길을 통해 21일 만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비난함으로 말미암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2차에서는 블레셋 땅의 곧은길로 가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하여 다시금 불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홍해를 건너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했다. 하지만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돌아올 때 이스라엘 민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으며, 가나안 정탐을 보낸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을 듣고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며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울부짖었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3차 때에는 모세가 물이 없다고 불평하던 백성을 보고 격분하여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죄가 되어 모세를 비롯하여 애급에서 나온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하여 광야노정 가운데 출생한 내적인 이스라엘만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나긴 광야노정을 통해 마침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세워졌지만, 가나안으로 들어간 내적 이스라엘도 불신으로 흘러서 이 섭리는 연장을 거듭하여 예수님 때까지 이르게 되었다. ☞ ‘모세’,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반석’, ‘여호수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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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광장 廣場 항목체계 문헌 성격 46배판, 월간 연구 논문집 발행/간행시기 사단법인 세계평화교수협의회 / 1973.6.10 [정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에서 1973년부터 발행한 정기간행물. [내용] 세계평화교수협의회에서 1973년 6월부터 발행하고 있는 학술적인 성격의 정기간행물이다. 참부모님은 복귀섭리를 완결 짓고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지성인인 교수들이 앞장서서 기여할 것을 바랐다. 이에 1973년 5월 6일 세계평화교수협의회가 창립됐으며 한 달 만인 6월 10일 열린 논의의 장으로 월간지 『광장(廣場, Forum)』이 창간되었다. 창간호는 1926센티미터의 크기로 20쪽 분량이었으나 차츰 분량이 늘어 1975년 7월에 발행된 제26호는 54쪽 분량이었고, 1981년 11월에 발행된 제100호는 124쪽 분량이었다. 이어 1982년 1월에 발행된 제101호부터는 크기가 1624센티미터로 줄고, 분량은 180쪽으로 늘었다. 이후 월간 또는 격월간, 계간 등으로 발행주기가 변화됐으나 꾸준히 발행되다가 2002년 겨울에 발행된 통권 217호로 폐간되었다. 2018년 통권 218호로 다시 복간됐으며 18.525.5센티미터의 크기로 비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주요 내용은 특집논문, 회원 논단, 특별논고, 자유기고 등 교수들의 학술적 글과 단체 소식, 회원 동정 등이다. 발행처는 1979년 1월에 발행된 제67호까지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에서 발행했으나 1979년 2월 발행된 제68호부터 사단법인 세계평화교수협의회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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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교구장 敎區長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교구(敎區)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최고 성직자. [내용] 교구(敎區, diocese)는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하나의 기본단위로서 교구장은 그 교구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최고 성직자를 가리킨다. 보통 주교(bishop)가 교구장을 맡고, 한 개 이상의 교구를 관할하는 대교구(大敎區)는 대주교(archbishop)가 책임을 맡는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도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창립된 이래 교회와 교구로 교단의 체계를 잡고 목회활동을 펼쳐 왔다. 교회는 개별 교회로서 교회장이 책임을 맡고, 교구는 보통 행정구역상의 어떤 범위를 기준으로 그 안의 교회들을 관할하는 단위로서 교구장이 책임을 맡는다. 교구의 크기나 설정방식은 교단의 확산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교구장이 교구의 대표교회 교회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때로는 교회들의 관리와 감독에만 전념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도부터는 참부모님의 명에 따라 교구보다 상위 단위로서 5개의 지구(地區)가 설정됐고, 지구장(地區長)이 새로이 임명되었다. 참부모님은 교세가 집중돼 있는 한국의 한 지구는 하나의 나라와 같다고 강조하며 국가 단위의 눈높이에서 체제와 의식을 전환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맥락에서 교구장이란 용어는 『원리강론』이 과거 복귀섭리의 역사를 해설할 때 등장한다. 『원리강론』은 인류 역사를 복귀섭리의 역사로 보고, 복귀섭리의 책임을 맡은 중심인물이나 중심민족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이를 탕감복귀하기 위해 이후에 비슷한 노정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부른다. 섭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후 서기 800년 카알 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400년간 교구장에 의하여 영도된 ‘교구장제 기독교회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사울 왕이 즉위할 때까지 400년간 사사(士師)들이 주도했던 ‘사사시대(士師時代)’를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의미를 지닌다. ☞ ‘지구’, ‘지구장’, ‘섭리적 동시성시대’, ‘교구장제 기독교회의 시대’, ‘사사시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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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敎區長制 基督敎會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이후 서기 800년 카알 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교구장에 의해 영도된 시대. [내용] 『원리강론』은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國敎)로 공인된 이후 서기 800년 카알 대제가 즉위할 때까지 교구(diocese) 체제에서 교구를 담당하는 주교, 즉 교구장에 의해 기독교회가 영도된 400년간의 시대를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라고 명명한다. 이 시대의 섭리적 특징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온 이후 사울 왕이 즉위할 때까지 사사(士師)들이 주도한 400년간의 ‘사사시대(士師時代)’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한 데 있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해 펼쳐진 죄악의 세계를 본연의 세계로 되돌리기 위해 탕감조건을 세워 복귀해 가는 ‘탕감복귀의 섭리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탕감복귀섭리를 위해 하늘로부터 준비된 중심인물이나 중심민족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에 하나님은 새로운 인물을 다시 세워 이전의 실패를 탕감하고 새 시대를 다시 세워 가는 노정을 밟게 한다. 따라서 새로운 인물을 중심한 노정은 이전의 역사 전개를 마치 반복하는 것같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부른다. 섭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원리강론』은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세 시대로 구분한다. 아담으로부터 야곱이 팔려간 요셉을 찾아 애급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기간을 상징적 동시성시대,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형상적 동시성시대, 예수님 이후 재림주 강림까지의 기간을 실체적 동시성시대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시대에 속한 사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의미를 지닌다. ☞ ‘사사시대’, ‘섭리적 동시성시대’, ‘상징적 동시성시대’, ‘형상적 동시성시대’, ‘실체적 동시성시대’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