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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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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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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진재

關東大震災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큰 피해.

[내용]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당시에 조선인들의 대학살이 일어났던 한민족의 대표적 수난사건이다. 일본 간토(關東)지방 사가미(相模)만 북부를 진앙으로 진도 7.9의 지진이 발생해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라고 불리는 이 지진으로 인해 목조 가옥 4만여 채, 연와조 건물의 85퍼센트, 석조 건물 84퍼센트,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8퍼센트가 무너졌으며 1천만 간토 인구 가운데 14만 2천 명 이상이 사망하고 3만 7천여 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만 310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당시의 지진으로 인한 대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방화를 했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하였고, 심지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고약한 소문마저 돌았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계엄령을 공포하여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는 한편 주민에게 자경단을 조직하게 했고, 공포심에 사로잡힌 일본 민중과 일부 관헌에 의해 소위 ‘조선인 사냥’이 자행되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조선인 수천 명과 중국인 3백여 명이 살해당했다. 여러 정황상 대지진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조선인 학살을 획책하고 진행했다는 가정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한국 민족은 제3이스라엘로 선택된 민족으로서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해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먼저 세워야 했다. 이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 편의 어떤 국가로부터 40수에 해당되는 연수(年數)의 고역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제국에 속방(屬邦)되어 박해를 당한 40년 기간이었다. 『원리강론』은 관동대진재에서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무고한 한국인들이 학살당한 사건도 이 40년간 고역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 ‘제3이스라엘’,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