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水仙花, 한·중·일이 모두 동일한 한자를 쓴다. 그보다 명확한 대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나르키소스’Narcissus, 이 역시 학명과 영어명이 동일한 특이한 사례다.
그리스·로마 전설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식물분류학의 시조인 린네Carl Von Linne도 다른 이름을 붙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마호메트까지도 “빵 두 개를 가졌다면, 그중 하나를 팔아 수선화를 사라”며 영혼을 살찌게 하는 꽃으로 칭송했으니 누군들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수선화는 동서양에서 두루 사랑을 받는 꽃이다.
골짜기와 언덕 위를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가 문득 나는 보았네
수없이 많은 황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 아래서 흔들흔들 춤추는 것을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수선화’는 영어권 국가에선 대표적인 명시다.
추사와 다산, 두 천재의 문학적 표현은 더 놀랍다.
맑은 물에서 보는 해탈한 신선淸水眞看解脫仙이요
신선의 풍모를 갖춘 도인의 모습仙風道骨이라
자아도취의 비극적 존재가 아닌 신선의 경지다.
하늘에는 신선神仙, 땅에서는 지선地仙이라면, 물에서는 수선水仙이라!
추사의 사랑은 유별나서 뜨락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매화보다 한 수 위로 보았다. 사실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수선화는 지금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아니었다. 24세 때에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뵈러 평양에 갔을 때 마침 북경을 다녀온 사신이 가져온 수선화에 반한 추사는 이를 고려청자에 심어 존경하는 다산 정약용에게 보낸다. 문인의 향취가 느껴진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다산은 “묻노니, 우뚝 솟은 모습은 서촉의 아미산 눈빛”이라며 찬양한다. 두 문인의 놀음은 이토록 격이 높았다.
55세에 제주로 유배 온 추사는 무려 8년 반가량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위리안치에 처한다. 그때 그토록 사랑했던 수선화가 주변의 들판에 널려 있어 위안이 되었다. 제주에선 잡초쯤으로 여겨지던 수선화가 그로 인해 대중화되었으니 ‘추사의 꽃’이란 말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입춘이 주는 해방감 때문일까.
월동 중인 하늘天과 땅地에 쩌렁한 소리침. ‘깨어라, 일어나라!’
고순도의 샛노랑이 펼친 물결로 ‘검을 현玄’, ‘누루 황黃’ 무채색 겨울 땅에 혈색이 돈다.
새로운 시작이다.
발랄한 물의 신선이 윤슬에 담아 산란하는 무량한 봄빛에 취해보자.
가끔은 내 안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트가 되어보라.
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도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고서야 누가 보듬으랴.
맹랑한 자아도취 아닌, 명랑한 ‘자기애’는 필요하다.
자신을 뜨겁게 포옹하라
수선화가 우리에게 주는 꽃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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