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기다렸다가 맞이하는 계절이다.
생강나무는 밝은 곳을 좋아하지만, 음지에서도 강해 어디서든 잘 자란다.
잎이나 줄기에선 진한 향이 난다. 생강 냄새라서 생강나무다.
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강나무 꽃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꽃을 형용하는 ‘알싸하다’는 소설의 표현을 넘어설 말이 없다. ‘맵거나 독해서 콧속이나 혀끝이 아리고 쏘는 느낌’, 사전 풀이다. 그런데 달콤함을 더해야겠다. 오물오물 씹어보니 입안을 단향이 휘감는다. 고집 센 춘심으로 가지에 바짝 붙어 핀 꽃망울. 모진 바람을 이겨내려는 몸짓이었건만, 참음에 도가 넘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툭툭 터져난다.
암꽃과 수꽃은 꽃잎이나 꽃받침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두 개가 다 있는 거다. 그 둘의 역할이 하나로 통합된 것을 화피라 하는데, 반투명한 6장의 조각은 언뜻 해파리처럼 부드럽다. 이것이 찬바람을 막고 햇살을 모아 따스함을 유지해준다. 몸을 녹이며 꿀을 빨 일석이조의 ‘허니 카페’를 찾지 않을 벌이 있을까.
먼저 수꽃을 보자.
수술은 9개이며 두 부분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다. 바깥의 수술은 6개로 화피 한 장에 하나씩이다. 길게 뻗은 수술대의 끝, 두 개의 주머니엔 꽃가루가 잔뜩 담겨 있다. 꽃가루가 빠져나간 빈 주머니는 마치 들창코의 콧구멍처럼 깊다. 나머지 3개는 가운데에 있는 퇴화한 암술 주위를 둘러싸서 꽃가루도 장착하지 않고 마치 암술인 양 페이크를 건다. 꿀이 있음을 유혹하려는 수작이다. 이 작은 꽃에서 벌어지는 철저한 위장술로 초봄부터 생의 치열함을 엿본다.
그러면 암꽃은? 수꽃에 못지않다.
수꽃보다는 작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대범한 팜므파탈이다. 암술머리는 둥글고 큰 씨방의 머리를 딛고 툭 불거져 솟아올라 “에헴! 벌들아 내게로 오라, 꿀을 주겠노라”, 외치는 천하여장군이다. 암꽃 안에서 수술은 흔적만을 지닌 채 왜소해졌고 꽃가루도 없이 대략 뭉툭한 형태로 기능은 퇴화한 상태다. 마치 남의 눈에 파탄 가정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서로 서 있어 준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난다.
수정을 마친 꽃은 떨어지고 형체를 갖춰가며 꽃자루가 자란다.
아니, 꽃이었을 때는 없었던 것이니 정확하게는 열매 자루다. 열매는 산형꽃차례였음을 상기시키듯 자루를 벌려 옹기종기 하늘 향해 곤두서서 초록에서 빨강으로, 9월 중순을 넘어서면 검붉음으로 짙게 내재화한다. 성숙은 그렇게 깊고도 묵직하다.
잎의 모양은 독특하다. 뫼山의 형태라서 잎만 봐도 생강나무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통통한 오리발처럼 세 갈래다. 아래 잎에게 햇살의 공간을 열어주기 위한 배려다.
생강나무는 초봄 이 세상의 나무꽃을 대표해 노랑 신고식을 한다. 그로부터 분홍과 빨강의 꽃 세계도, 초록의 잎 세상도 열리었다. 오긴 먼저 왔으되, 가는 것은 더디다. 11월 중순인데도 노랑 단풍에 먹이 들어가면서도 늦가을 산을 지키며 다시 찬바람 맞는다.
노랑으로 와서 노랑으로 갈무리하는 시종여일이 못내 기특하다.
이른 봄, 가지에 바짝 붙은 꽃망울 하나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보자기를 찢고 툭툭 터진다. 허니 카페를 찾아온 벌이 온몸에 꽃가루를 뒤집어썼다. 꽃으론 바라던 바의 성취다.
암꽃. 수꽃보다는 작지만, 오히려 솔직하고 대범한 팜므파탈이다. 암술머리는 ‘에헴! 벌들아 내게로 오라’고 과시하듯, 둥글고 큰 씨방을 디디고 툭 불거져 솟는다. 수술은 흔적만이 남고 퇴화했다.
수꽃. 꽃잎과 꽃받침이 없는 대신 그 둘의 역할을 하는 화피가 둘러친 안쪽으론 수술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선다. 밖을 둘러싼 6개의 수술은 꽃가루를 가진 진짜 수술이고, 안쪽의 3개는 그것이 없다. 마치 암술인 양 위장한 것이다. 생은 이토록 치열하다.
열매. 익어가면서 초록에서 빨강, 검정으로 색이 변한다. 한 형제임에도 시차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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