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저마다 험한 환경을 이길 비책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할미꽃이나 복수초는 독성으로 동물의 접근을 방어한다.
수선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향을 풍긴다.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길목에선 살을 에는 삭풍이 분다. 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한 발 더 다가서 보자.
줄기에 비해 꽃송이가 커서 바람에는 매우 약한 구조다. 우주의 중심을 끌어들이려는 듯 빳빳이 고개 든 저 당당함이 위태롭다. 분명 꽃줄기에 비책이 숨어 있으리라.
루페로 살펴보니 나선형으로 비틀린 선이 뚜렷하다. 땅속에서 돌돌 파고 오른 원리 말고도 또 다른 기능 있을 것 같아 줄기를 잘라보았다.
단면은 레몬 형태의 타원형이다. 그 안엔 윤기 반짝이는 부동액 젤로 가득 찼다. 그런데 희한하게 밑동에서 대략 3분의 1 지점까지만 그랬다. 꽃대가 두 부위로 나뉘어 있다는 얘기다. 윗부분은 속을 비워 두었다.
바람이 다가오면 몸을 쓰윽 돌리거나 뉘어서 유연하게 피한다. 흔들림은 죄가 아니다. 대항하거나 버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바람을 놀이 삼는 유희, 이건 신선의 설법이다.
줄기에 기체역학의 원리가 숨어 있었다. 풍동실험 결과 그렇게 하는 게 바람세기가 20퍼센트 이상 줄었다. 이 생체구조를 모방하여 원유시추선의 라이저나 대형 안테나, 심지어 골프공의 딤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비틀린 타원형에 채울 곳 채우고 비울 곳 비워 약함이 셈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지혜가 그 잘난 호모 사피엔스의 허세를 한방에 무너뜨릴 만큼 고단수다.
그런 창조의 손길이 어디 수선화에만 배어 있을까. 우리가 자연에서 보물찾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줄기에 비해 꽃송이가 커서 바람에는 매우 약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꽃대나 잎을 나선형으로 비틀어서 강하게 했다. 줄기 단면은 타원형으로, 윤기 반짝이는 부동액 젤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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