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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인류 역사 종말론
원리강론 인류 역사 종말론 原理講論 人類歷史 終末論 / Eschatolog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3장의 내용으로 인류 역사의 종말에 대한 이해. [내용] 하나님 창조목적의 완성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인간을 보고 기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3대 축복을 완성하면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여 악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악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이 살아오고 있는 지상지옥이다. 지상지옥에서 살고 있는 타락한 인간은 육신을 벗은 후 천상지옥으로 가게 된다. 구원섭리 기쁨을 누리려고 창조한 피조세계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악의 세계로 영속할 수밖에 없다면, 하나님은 창조에 실패한 무능한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은 기필코 이 죄악의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죄악의 세계에서 사탄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먼저 인간시조가 타락하기 전의 입장을 복귀하는 데까지 구원하고, 그 위에 선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여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병든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며, 물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빠지기 전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죄에 빠진 자를 구원한다는 것은 죄가 없는 창조본연의 입장으로 복귀시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선의 대상인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상에 창조하고 먼저 지상천국을 이루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의 제1차적인 목적도 지상천국을 복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섭리이므로 인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선한 세계를 복귀케 하려는 복귀섭리의 역사이다. 인류의 역사가 복귀섭리의 역사라는 것을 여러 면으로 살펴보자. 첫째로 문화권 발전사의 입장에서 고찰해 보자. 하나님을 모르게 된 인간은 종교를 세워 끊임없이 선을 찾아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였다. 종교를 받들고 있었던 개인이나 민족 혹은 국가는 망하였더라도 종교 자체만은 계속 내려오고 있다. 영향력이 큰 종교는 반드시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열등한 것은 보다 우수한 것에 흡수되었거나 융화되었다. 근세에 이르러 극동 문화권, 인도교 문화권, 이슬람 문화권, 기독교 문화권 등의 4대 문화권이 남아지게 되었고, 이것들은 다시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 준다. 수많은 종교가 하나의 종교를 중심한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은 인류 역사가 바로 하나의 통일된 세계로 복귀되어가고 있는 증거이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동향으로 보면, 인류 역사가 복귀섭리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지능이 영적인 면에서 최고도로 향상되고 육적인 면에서도 최고도로 발달되어 과학은 단시일 내에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무지에 빠지게 되면서 이러한 사회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의 기간을 두고 과학으로 그 무지를 타개하면서 창조본연의 이상적 과학사회를 복귀하여 나왔다. 오늘의 과학사회는 극도로 발달되어 외적으로는 이상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전단계까지 복귀되어 가고 있다. 셋째로 투쟁역사의 귀추로 보아도 인류 역사는 복귀섭리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가 마지막 싸움을 겨루고 있다. 종교와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진리가 나오면, 두 세계는 새 진리 아래 통일될 것이다. 말세 1) 말세의 의의 말세란 사탄 주권의 죄악 세계가 하나님 주권의 창조이상세계로 교체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즉 말세는 지상지옥이 지상천국으로 바뀌는 때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말세는 여러 번 있었다. 먼저 노아 때도 말세였다. 하나님은 인간시조가 타락함으로써 시작된 사탄을 중심한 타락세계를 1,600년 만에 홍수 심판으로 멸하고 하나님만을 신봉하는 노아 가정을 세워서 그 믿음의 터 위에 하나님 주권의 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하였다. 두 번째로 예수님 때도 말세였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믿음의 터를 닦고, 그 터 위에 예수님을 보내어 사탄을 중심한 죄악의 세계를 멸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이상세계를 복귀하려고 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때도 말세였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말세이다.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고 영적인 구원만을 이루였으므로 재림하여 영육 아울러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수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재림의 때도 말세이다. 2) 말세의 징조에 관한 성구 많은 기독교 성도들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말세에는 천변지이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원리강론』은 성서의 많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말세에 관한 성구 역시 무언가에 대한 상징과 비유라고 주장한다. 각각의 성구들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1) 하늘과 땅을 멸하고(베드로후서 3:12)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심(요한계시록 21:1, 베드로후서 3:13, 이사야 66:22) 하늘과 땅을 멸한다는 것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 주권을 멸한다는 뜻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운다는 것은 재림 메시아를 중심한 하나님 주권의 새로운 천지(天地)를 복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늘과 땅을 불로써 심판하심(베드로후서 3:12) 불 심판은 곧 혀의 심판이요, 혀의 심판은 곧 말씀 심판을 의미하므로 불 심판은 곧 말씀 심판을 의미한다. (3) 무덤에서 시체가 일어남(마태복음 27:52, 데살로니가전서 4:16) 이 성구는 모세와 엘리야의 영인체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 앞에 나타났었던 것처럼 구약시대의 영인들이 재림 부활을 위하여 지상에 재림한 것을 영적으로 보고 기록한 말씀이다. (4) 지상 인간들이 끌어 올리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함(데살로니가전서 4:17)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사탄 주권을 물리치고 지상천국을 복귀함으로 말미암아 그 선 주권의 세계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짐(마태복음 24:29)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에 성도들이 실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세와 현세 『원리강론』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3대 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말세라고 주장한다.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타락한 인간을 개성 완성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온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 첫째, 현세에 영통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현세에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고 있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타락한 인간이 사탄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현세에 민주주의 사상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와 남녀평등과 만민평등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타락한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넷째, 현세에 박애주의 사상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本性愛)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임을 알 수 있다.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사와 국가 흥망사는 현세가 제2축복을 복귀하는 말세임을 보여 준다. 첫째, 현세에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는 예수님을 중심하고 인류가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되어 하나님의 제2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준다. 둘째, 현세는 선 주권을 지향하는 하늘 편 세계와 사탄을 중심한 악 주권의 세계가 대결하여 서로 교차되고 있는 때이므로 말세이다.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피조세계에 대한 내외 양면의 주관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은 현세가 제3축복을 복귀하는 말세임을 보여 준다. 첫째, 종교와 철학 및 윤리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하나님에 대한 타락한 인간의 심령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인간의 심령이 밝아짐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도 복귀되어 그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점차로 복귀되기 때문에 현세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발달도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이 피조세계에 대한 내외 양면의 주관성을 복귀함에 따라 하나님의 제3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을 볼 때, 우리는 현세가 말세임을 알 수 있다. 말세와 새 말씀 그리고 우리의 자세 하나님은 타락하여 무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심령과 지능을 함께 깨우치게 함으로써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도록 섭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높아진다. 신령과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지만 무지한 상태로부터 점차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진리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구약 전 시대에는 제물을 드리게 하였고,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모세 때에는 율법을, 예수님 때에는 복음을 주었다. 오늘날의 지성인들이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고차원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표현방법에 의한 새 진리가 출현해야 한다. 복귀섭리역사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고 할 때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창기가 된다.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 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운다. 역사적인 전환기에 하나님이 섭리하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운 새 역사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역사의 전환기에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된다.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새 진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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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재림론
원리강론 재림론 原理講論 再臨論 / Second Adven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6장의 내용으로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이해. [내용]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복귀섭리역사에서 보면, 예수님은 탕감복귀 섭리시대(구약시대)의 2천 년이 지난 후 강림하였다. 탕감복귀의 원칙에서 볼 때 전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재탕감복귀 섭리시대(신약시대)의 2천 년이 끝날 무렵에 주님은 재림한다. 제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함으로써 사탄 편 아담형의 인물인 카이젤이 망하고 사탄 편 재림주형의 인물 스탈린이 공산주의 세계를 이루었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여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를 탕감복귀할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따라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재림기가 시작된다. 예수님은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천륜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해 나왔다. 그러므로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있는 참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성서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장차 그가 재림할 때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될 것으로 말씀하였다. 이것은 재림할 때 하늘만 쳐다보며 재림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기독교 신도들 앞에 재림 메시아가 지상에서 탄생하여 도둑같이 나타나면 그들에게 이단자로 몰리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림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철장은 죄악 세계를 심판하고 지상천국을 복귀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분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는 재림하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재림하여 초림 때의 사명이었던 지상천국을 이루고 인류의 참부모가 되고 왕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림할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지상에서 탄생한다. 인간의 속죄는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있을 때 가능하다. 예수님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육신을 쓰고 와야 했으며, 재림 때에도 육신을 쓰고 지상에서 탄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성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름은 예수님을 통해 영적으로 중생한 성도들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는 말씀은 중생한 성도들의 무리 가운데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의 인도자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고 예언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막기 위함이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서 육신 탄생에 의하여 재림할 것으로 밝혀 놓았더라면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의한 혼란을 막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둘째, 어려운 신앙노정을 걷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어디로 재림하실 것인가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과 농부 그리고 그 아들과 종의 비유로써 자기를 살해하는 민족에게 재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에게 맡겼던 유업까지도 빼앗아 그의 재림을 위하여 열매 맺는 다른 나라와 백성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였다. 이 비유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을, 포도원은 하나님의 유업을, 또 농부는 이 유업을 맡은 이스라엘 선민을, 종은 선지자들을, 주인의 아들은 예수님을, 열매 맺는 다른 나라 백성은 재림주님을 맞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다른 어떤 나라와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승리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 이후에 이스라엘 선민은 기독교 신도들이다. 재림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될 이스라엘 선민은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한 기독교 신도들이다. 신약성서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재림할 나라는 동방에 있다. 예로부터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숭배해 온 나라이자 전체주의 국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기독교를 혹독히 박해한 나라였다. 중국은 공산화해 온 나라이기 때문에 이 두 나라는 모두 사탄 편 국가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할 동방의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메시아가 재림하는 나라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이 나라는 탕감복귀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즉 재림 메시아를 맞이할 나라는 천주적(天宙的)인 가나안 복귀를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야 한다.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한다면, 한국 민족은 제3이스라엘 선민이 되는 것이다. 제1이스라엘은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 세계였던 이집트에서 400년간 고역을 하였다. 제2이스라엘도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당시 사탄 세계였던 로마제국에서 400년간 박해를 받으면서 싸워 이겼다. 한국 민족도 제3이스라엘 선민이 되어 천주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우려면 사탄 편의 어떠한 국가로부터 40수에 해당되는 연수의 고역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일본제국에 속방(屬邦)되어 박해를 당한 40년 기간이었다. 한국 민족은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40년간 제1, 제2이스라엘 선민이 애급이나 로마제국에서 당한 것에 못지않은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외의 기독교 신도들을 중심하고 일어났으므로 주로 기독교 신도들이 박해를 당하였다. 둘째, 이 나라는 하나님의 일선인 동시에 사탄의 일선이어야 한다. 역사의 종말에 이르면, 이 세계는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로 갈라지게 된다. 예수님은 타락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복귀하려고 재림하는 것이므로 먼저 그가 재림할 나라를 중심하고 공산세계를 하늘 편으로 복귀하려는 섭리를 할 것은 명백하다. 예수님이 재림할 한국에서 민주와 공산의 두 세력이 서로 부딪치게 된다. 그 부딪치는 선이 바로 삼팔선이다. 한국 민족은 천주복귀(天宙復歸)를 위한 민족적인 제물이므로 이것을 가인과 아벨 두 형의 민족으로 갈라 세운 것이다. 삼팔선은 민주와 공산의 최일선인 동시에 하나님과 사탄의 최일선이다. 남북 사이의 한국동란은 민주와 공산의 두 세계 간 대결이었고, 나아가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었다. 유엔의 여러 회원 국가들이 동원된 것은 그 동란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한 세계성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 나라는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려면, 먼저 피와 땀과 눈물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한민족이 걸어 나온 비참한 역사노정은 하나님 심정의 대상으로 서기 위한 과정이었다. 또한 하나님 심정의 대상이 되려면 선한 민족이어야 한다. 한국 민족은 침공해 온 외세를 밀어내는 데 그쳤을 뿐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또한 한민족은 선천적으로 종교적인 천품을 가지고 있어서 경천사상이 강하며 충·효·열을 숭상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다. 넷째, 이 나라에는 예언자들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은 계시에 의하여 메시아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감록 신앙에 의한 한민족의 메시아사상이다. 정도령은 한국으로 재림할 메시아에 대한 한국식 이름이다. 또한 이 민족이 믿고 있는 각 종교의 도주들이 재림주가 한국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계시를 그 신도들이 받고 있다. 재림주님은 모든 종교의 교조들이 지상에서 이루려고 하였던 도의 목적을 완성하게 되므로 재림주님은 사명으로 보아 모든 교조들의 재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예수님의 한국 재림에 관한 영통인들의 신령 역사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다섯째, 이 나라에서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한다. 전 세계에 걸쳐 발달해 온 종교와 과학,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한국을 중심하고 모두 하나의 진리 밑에 흡수되고 융합되어 창조본연의 이상세계 문명으로 결실되어야 한다. 첫째, 육지에서 발달한 모든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된다. 애급에서 발생한 고대의 대륙 문명은 희랍, 로마, 이베리아 등의 반도 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반도 문명은 다시 영국의 도서 문명으로 옮겨졌으며, 도서 문명은 다시 미국의 대륙 문명을 거쳐 일본의 도서 문명으로 되돌아왔다. 이 문명의 순례는 예수님이 재림할 한국에서 반도 문명으로 종결된다. 둘째, 하천과 해안을 중심한 문명도 한국이 있는 태평양 문명으로 결실되어야 한다. 나일 강,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등을 중심하고 발달한 하천 문명은 희랍, 로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지중해를 중심한 문명으로 옮겨졌으며, 이 지중해 문명은 다시 영국과 미국을 중심한 대서양 문명으로 옮겨졌고, 이 문명은 또 미국, 일본, 한국을 잇는 태평양 문명으로 결실된다. 셋째, 기후를 중심한 문명도 한국에서 결실된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야만인으로 떨어져 온대 문명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열대에서 원시인의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애급대륙을 중심한 열대 문명을 먼저 이루었다. 이 문명은 대륙에서 반도와 도서로 옮겨져 양대(凉帶) 문명을 이루었고, 이것이 다시 소련으로 넘어가 한 대 문명을 이루었다. 이제 새 에덴의 온대 문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문명이 결실되어야 할 한국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예수님의 초림 때와 재림 때는 섭리적인 동시성시대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정은 예수님 때 유대교를 중심하고 벌어졌던 모든 사정과 흡사하다. 오늘의 기독교는 유대교와 같이 교권과 교회의식(敎會儀式)에 붙들려 있는 한편으로 내용이 부패하고 있다. 예수님 초림 때의 유대교인들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면, 기독교인들이 먼저 재림주를 핍박하게 될 것이다. 초림 때 하나님은 메시아가 왔다는 소식을 제사장이나 교법사들에게 주지 않고 이방의 점성술자와 순진한 목자들에게 주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도 진부한 신앙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보다는 도리어 평신도들이나 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이교도 혹은 양심적으로 사는 불신자들에게 먼저 계시해 줄 것이다. 초림 때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유대교 지도층이 아니고 하층민이나 이방인들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기독교의 지도층보다 평신도나 비기독교인들이 먼저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재림주님을 배반함으로써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을 통해 오히려 지옥으로 가게 될 신도들이 많다. 언어 혼잡의 원인과 통일의 필연성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되어 하나님을 머리로 하고 모두 그 지체가 되어 한 몸과 같은 대가족의 세계를 이루었더라면, 이 땅위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언어가 달라서 서로 통할 수 없게 된 것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들 상호간의 횡적인 관계도 끊어지게 되어 오랫동안 서로 떨어진 지리적 환경 가운데서 서로 갈리어 다른 민족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재림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어야 한다. 인류의 부모인 재림주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여 한국말을 사용할 것이므로 한국어가 조국어가 될 것이며,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할 것이다. 온 인류가 한 나라의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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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정치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
원리강론 정치 경제 및 사상의 성숙기 原理講論 政治 經濟 및 思想의 成熟期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5장 제3절에 해당하는 내용. [내용] 『원리강론』 후편 제5장 제3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가인형의 민주주와 아벨형의 민주주의, 삼권분립의 원리적 의의, 산업혁명의 의의, 열국의 강화와 식민지 분할, 문예부흥에 따르는 종교와 정치 및 산업의 혁명 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인류 역사는 선악을 쪼개어 하늘 편을 찾아 세우는 사탄 분립역사이다. 『원리강론』은 타락세계가 사탄 편의 가인형 세계와 하나님 편의 아벨형 세계로 분립되어 갈등과 투쟁을 거듭하다가 종국에 가서는 참부모 메시아에 의해 하늘 편 사회주의인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로 통일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섭리노정에 의해 가인형의 인생관과 아벨형의 인생관이 각각 확립되었고, 사회도 이 두 인생관에 입각한 형태로 제도화되었다. 가인형의 민주주의는 프랑스혁명으로 인하여 형성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계몽사상을 숭배하는 시민계급을 주축으로 절대주의를 비판하고 구제도의 잔해를 파타하려는 의식이 고조되었다. 이에 1789년 시민계급이 자유와 평등, 박애를 기치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으로 인해 형성된 민주주의는 유물사상으로 흘러간 계몽사상, 즉 가인형 인생관을 주축으로 출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가인형의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이 가인형의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공산주의 세계이다. 반면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아벨형의 민주주의가 탄생하였다. 무신론 및 유물론의 추종자들이 절대주의 사회를 무너뜨릴 목적으로 주창한 가인형의 민주주의와 달리 아벨형의 민주주의는 아벨형 인생관의 결실체인 열광적인 기독교 신도들이 신교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와 싸워 승리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영국에서 찰스 1세가 전제주의와 국교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자 이에 반발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이나 신대륙으로 이동하거나 무력으로 국왕에 항거하였고, 그 혁명의 결과로 민주주의가 수립되었다. 이렇듯 영국이나 미국에서 실현된 민주주의는 프랑스의 대혁명으로 인하여 실현된 민주주의와는 그 발단부터가 달랐다. 이 아벨형의 민주주의가 더욱 발달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 세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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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원리강론 종교 및 사상의 투쟁기 原理講論 宗敎 및 思想의 鬪爭期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5장 제2절에 관한 내용. [내용] 『원리강론』 후편 제5장 제2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가인형의 인생관과 아벨형의 인생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만을 대하도록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여 하나님과 사탄을 모두 대할 수 있는 비원리적인 중간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하나님은 선악의 모체인 인간을 선 편인 아벨형과 악 편인 가인형으로 분립하고, 종국에 가서는 가인이 아벨의 참사랑에 의해 순종굴복하여 가인과 아벨 모두를 구원하는 섭리를 진행해 나왔다. 이처럼 복귀섭리는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사회, 세계에 이르기까지 가인, 아벨 두 형의 선악 분립역사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도 타락세계는 가인형의 공산세계와 아벨형의 민주세계로 분립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가인 아벨 두 형의 인생관이 확립되어야 한다. 인간 본성의 외적인 추구는 헬라 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켜 인본주의를 낳았고, 인본주의를 뒷받침하여 일어난 반중세적인 문예부흥운동은 모든 것을 자연과 인간본위로 대치시켰다. 신을 중시하던 중세적 인생관과 달리 이 시기에는 이성과 경험에 의한 합리적인 비판과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인식하는 가인형의 인생관이 대두되었다. 대표적으로 데카르트는 모든 진리는 인간이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이성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이성론을 주장하였고, 영국의 베이컨은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경험론을 주장하였다. 이성을 중심한 합리주의 사상과 경험에 토대를 둔 인간 중심적 사상은 자연과 인간을 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후 가인형 인생관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을 제창하였고, 이러한 인생관은 더욱 성숙하여 오늘날의 공산주의 세계를 이루었다. 한편 인간의 본성적인 추구는 외적인 것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내적인 차원에서도 활발히 일어나 히브리 사상 복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 운동으로 인해 철학과 종교는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수립하게 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아벨형 인생관이라고 한다. 인간을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시킨 가인형 인생관과 달리 아벨형 인생관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고차원적인 차원에서 신을 추구하도록 인도하였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칸트는 경험론과 이성론을 흡수하여 인간 본성의 내외 양면을 추구하는 아벨형 인생관을 개척하였다. 종교계에 있어서는 독일의 스페너를 중심한 경건주의, 신비주의자 포스를 원조로 한 퀘이커파, 영계의 비밀을 밝힌 스웨덴보리 등을 통해 종교적인 정열과 신비한 체험을 중시하는 내적 개혁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이와 같은 아벨형의 인생관이 더욱 발전하여 오늘날의 민주세계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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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중생론
원리강론 중생론 原理講論 中生論 / Rebirt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7장 제4절 1부의 내용으로 다시 태어남에 대한 통일신학적 이해. [내용] 중생의 사명으로 본 예수님과 성신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온 유대관원 니고데모에게 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였다.(요한복음 3:3) 중생이라는 말은 거듭난다는 뜻이다. 타락한 인간이 중생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담과 해와가 창조이상을 완성하여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다면, 그들로부터 태어난 자녀들은 원죄가 없는 선한 자녀가 되어 지상천국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하여 인류의 악의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악한 자녀들을 번식하여 지상지옥을 이루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들은 원죄가 없는 선한 자녀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우리를 낳아 주는 것은 부모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런데 원죄 있는 악의 부모가 원죄 없는 선의 자녀를 낳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선의 부모가 타락한 인간들 가운데에는 있을 수 없다. 그러한 부모는 하늘로부터 강림해야 한다. 그렇게 온 분이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타락한 자녀들을 원죄가 없는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지상천국을 이룩하기 위하여 참아버지로 온 분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중생)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담으로써 못 이루었던 참아버지로 왔기 때문에 성경은 그를 후 아담(고린도전서 15:45), 영존(永存)하신 아버지(사사기 9:6)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를 다시 보내어 그로 하여금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을 부모로 오는 예수님 앞으로 돌이키게 함으로써 그들로 자녀가 되게 하겠다고도 말씀하였다.(말라기 4:6) 예수님은 다시 올 때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리라(마태복음 16:27)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지 혼자서 자녀를 낳을 수 없다. 그러므로 타락한 자녀들을 선의 자녀로 다시 낳아 주기 위하여 참아버지와 함께 참어머니도 있어야 한다. 죄악의 자녀들을 다시 낳아 주기 위하여 참어머니로 온 분이 성신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요한복음 3:5) 말씀하였다. 이와 같이 성신은 참어머니로서 후 해와로 온 분이기 때문에 그를 여성신(女性神)으로 계시 받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성신이 여성신이기 때문에 성신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 앞에 신부로 설 수 없다. 이와 같이 성신은 여성신이기 때문에 위로와 감동의 역사(役事)를 하며(고린도전서 12:3), 해와가 지은 죄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죄를 씻는 역사를 해야 한다. 로고스의 이성성상으로 본 예수님과 성신 로고스라는 낱말은 헬라어로서 말씀 혹은 이법(理法)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를 보면, 로고스는 하나님의 대상으로서 하나님과 수수적(授受的)인 관계의 위치를 취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로고스의 주체인 하나님이 이성성상으로 존재하므로 그의 대상인 로고스도 역시 이성성상이다. 만일 로고스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지 않다면 로고스로 창조된 피조물(요한복음 1:3)도 이성성상으로 되었을 수가 없다. 이러한 로고스의 이성성상이 하나님의 형상적인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것이 아담과 해와였다. 아담이 창조이상을 완성한 남성, 즉 생명나무가 되고 해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표시된 창조이상을 완성한 여성이 되어 인류의 참부모가 되었더라면 하나님의 3대 축복이 완성되어 지상천국이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반대로 지상지옥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을 다시 낳아 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후 아담(고린도전서 15:45)으로서 생명나무의 사명을 가지고(요한계시록 22:14) 인류의 참아버지로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후 해와의 사명을 가진 인류의 참어머니(요한계시록 22:17)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을 다시 낳아 줄 참어머니로 온 분이 성신이다.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영적 중생 부모의 사랑이 없으면 새 생명이 태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성신의 감동에 의하여 예수님을 구주(救主)로 믿게 되면 영적 참아버지인 예수님과 영적 참어머니인 성신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영적 참부모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면 여기에서 그를 믿는 성도들은 그 사랑으로 인해 새 생명이 주입되어 새로운 영적 자아로 중생하게 된다. 이것을 영적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영육 모두 타락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육적 중생을 함으로써 원죄를 청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의 육적 중생에 의한 육적 구원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재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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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창조원리
원리강론 창조원리 原理講論 創造原理 / Principle of creati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1장의 내용으로서 하나님이 인간과 피조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세운 원리에 대한 설명. [내용] 하나님의 이성성상과 피조세계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은 피조세계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한다. 하나님의 양성을 남성, 음성을 여성이라고 한다. 또한 존재하는 것은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 성상과 형상은 서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의 상대적인 관계를 갖는다. 인간의 마음과 몸은 성상과 형상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몸은 마음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명하는 대로 동(動)하고 정(靜)하므로 인간은 그 목적을 지향하여 생(生)을 유지한다. 어떠한 피조물에도 차원은 서로 다르나 무형의 성상, 즉 인간에 있어서의 마음과 같은 무형의 내적인 성상이 있어서 그것이 원인 또는 주체가 되어 인간에 있어서의 몸과 같은 그의 형상적인 부분을 움직여 그 개성체(個性體)로 하여금 어떠한 목적을 가진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성상과 본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인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며, 피조세계에 대하여는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이다. 피조물은 모두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실체로 분립된 하나님의 실체 대상이다. 이러한 실체대상을 개성진리체라고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적인 실체대상이기 때문에 형상적 개성진리체라고 하고, 인간 이외의 피조물들은 상징적인 실체대상이기 때문에 상징적 개성진리체라고 한다. 만유원력과 수수작용 및 사위기대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주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자존(自存)하는 절대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존재하기 위한 근본적인 힘도 영원히 자존하는 절대적인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또 피조물이 존재하기 위한 모든 힘을 발생케 하는 힘의 근본이다. 이러한 힘의 근본 된 힘을 우리는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한다. 모든 존재를 이루고 있는 주체와 대상이 만유원력에 의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으면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 즉 생존과 번식 그리고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힘을 발생케 하는 작용을 수수작용이라고 한다. 만유원력으로 인하여 하나님 속의 이성성상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수수작용의 힘은 번식작용을 일으키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이성성상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다. 이와 같이 분립된 주체와 대상이 다시 만유원력에 의하여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써 수수작용을 하면 다시 합성일체화(合性一體化)하여 하나님의 또 하나의 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정(正)으로 하여 분립되었다가 다시 합성일체화하는 작용을 정분합작용(正分合作用)이라고 한다.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정(正)을 중심하고 2성(二性)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그의 합성체(合性體)가 제각기 주체의 입장을 취할 때에는 각각 나머지 다른 것들을 대상으로 세워 삼대상기준(三對象基準)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주체들을 중심으로 삼대상목적을 완성한다. 이와 같이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정을 중심하고 2성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 그리고 합성체가 삼대상목적을 완성하면 사위기대를 조성하게 된다.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삼대상목적을 이루어 사위기대를 완성한 존재는 무엇이든지 원형 또는 구형 운동을 하여 입체로 존재한다. 창조목적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창조한 후 마지막으로 자신의 성상과 형상대로 희로애락의 감성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여 그를 보고 즐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고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하라.’(창세기 1:28)고 한 3대 축복의 말씀에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이루고 기뻐할 때 하나님도 그것을 보고 가장 기뻐한다. 하나님의 제1축복은 개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려면, 하나님 이성성상의 대상으로 분립된 마음과 몸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그 자체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적인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의 제2축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각각 개성을 완성한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인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의 제3축복은 하나님의 형상적 실체대상인 인간과 상징적 실체대상인 피조세계가 사랑과 미를 주고받아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주관적인 4위의 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창조본연의 가치 어떤 대상이 창조본연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인간 주체와 수수작용에 의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창조본연의 가치는 어떤 대상과 인간 주체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이룰 때 결정되는데, 이 사위기대의 중심이 절대자 하나님이므로 이 가치의 기준도 절대자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절대자 하나님을 대하여 상대적으로 결정되는 어떤 대상의 창조본연의 가치도 절대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립된 2성(二性)의 실체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사위기대를 이루려 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제3대상으로 합성일체화하기 위하여 주체가 대상에게 주는 정적(情的)인 힘을 사랑이라 하고, 대상이 주체에게 돌리는 정적인 힘을 미(美)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힘은 동적(動的)이요, 미의 자극은 정적(靜的)이다. 주체와 대상이 사랑과 미를 잘 주고 잘 받아 합성일체화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대상이 되어 사위기대를 조성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선(善)이라 하고, 사탄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배치되는 행위나 그 행위의 결과를 악(惡)이라고 한다.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선을 위한 생활적인 요소를 의(義)라고 하며, 악(사탄)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악을 위한 생활적인 요소를 불의(不義)라고 한다. 피조세계의 창조과정과 그의 성장 기간 우주는 시간성을 떠나서 돌연히 생성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천지창조를 완료하기까지의 6일이란 일출(日出) 일몰(日沒)의 횟수로 계산되는 6일이 아니라 창조과정의 여섯 단계의 기간을 표시한 것이다. 피조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반드시 어느 만큼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것은 피조물이 창조될 때 일정한 성장 기간을 거쳐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이 완성됨에 있어서도 소생기, 장성기, 완성기의 질서적 3단계의 성장 기간을 거쳐서 완성된다. 인간시조는 성장 기간의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였다. 피조물이 성장기에 있을 때에는 원리 자체의 주관성(主管性) 또는 자율성(自律性)에 의하여 성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원리의 주관자로 있으면서 피조물이 원리에 의하여 성장하는 결과만을 보아서 간접적인 주관을 하므로 이 기간을 하나님의 간접주관권 또는 원리결과주관권이라고 한다. 만물은 원리자체의 주관성 또는 자율성에 의하여 성장 기간(간접주관권)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리자체의 주관성이나 자율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기간을 경과하여 완성하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의 완성 여부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책임수행(責任遂行)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창조주로서의 책임분담에 대하여 인간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면서 이 성장 기간(간접주관권)을 다 경과함으로써 완성되도록 창조하였기 때문에 그 책임분담에 대하여는 간섭할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여서만 완성되도록 창조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성(創造性)까지도 닮게 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에 가담케 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주관하듯이 인간도 창조주의 입장에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주인의 권한을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어떠한 주체와 대상이 합성일체화하여 사위기대를 조성함으로써 하나님과 심정의 일체를 이루어 주체의 뜻대로 사랑과 미(美)를 완전히 주고받아 선(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을 직접 주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직접관권은 곧 완성권을 의미한다. 인간을 중심한 무형 실체세계와 유형 실체세계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인간을 본으로 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마음과 몸으로 된 인간의 기본형을 닮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피조세계에는 인간의 몸과 같은 유형 실체세계와 그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마음과 같은 무형 실체세계가 있다. 이것을 무형 실체세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리적인 오관으로는 그것을 감각할 수 없고 영적 오관으로만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체험에 의하면, 이 무형 세계는 영적인 오관에 의하여 유형 세계와 꼭 같이 실감할 수 있는 실재세계이다. 이 유형, 무형의 두 실체세계를 합친 것을 우리는 천주(天宙)라고 부른다. 피조세계에서 인간은 첫째로 피조세계의 주관자이고, 둘째로 피조세계의 매개체요 또한 화동의 중심체이며 셋째로 천주(天宙)를 총합한 실체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육신은 육심과 육체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육신이 원만히 성장하려면, 양성의 영양소인 무형의 공기와 광선을 흡수하고 음성의 영양소인 유형의 물질을 만물로부터 섭취하여 이것들이 혈액을 중심하고 완전한 수수작용을 해야 한다. 육신으로부터 영인체에 주어지는 요소를 우리는 생력요소라고 한다. 인간의 영인체는 인간의 육신의 주체로 창조된 것으로서 영감으로만 감득되며 하나님과 직접 통할 수 있고, 또 천사나 무형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무형실체로서의 실존체이다. 영인체는 그의 육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 육신을 벗은 후에는 무형 세계(영계)에 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인간이 영존(永存)하기를 염원하는 것은 그 자체 내에 이와 같이 영존성을 지닌 영인체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인체는 생심(生心, 주체)과 영체(靈體, 대상)의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생심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영인체의 중심부분이다. 영인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소(生素, 양성)와 육신으로부터 오는 생력요소(生力要素, 음성)의 두 요소가 수수작용을 하는 가운데 성장한다. 그리고 영인체는 육신으로부터 생력요소를 받는 반면에 육신에게 생령요소(生靈要素)를 돌려보낸다. 생심(生心)과 육심(肉心)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그것이 영인체와 육신을 합성일체화시켜 창조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하나의 작용체를 이루는데, 이것이 곧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은 타락해 하나님을 모르게 됨에 따라 선의 절대적인 기준도 알지 못하게 되었으나, 위와 같이 창조된 본성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자기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을 양심(良心)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선(善)의 절대적인 기준을 알지 못하여 양심의 절대적인 기준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의 기준을 다르게 함에 따라 양심의 기준도 달라져 양심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선을 지향하는 마음의 성상적인 부분을 본심(本心)이라 하고 형상적인 부분을 양심이라고 한다. 인간이 무지에 의하여 창조본연의 것과 기준을 달리한 선을 세우게 될 때에도 양심은 그 선을 지향하지만, 본심은 이에 반발하여 양심을 본심이 지향하는 곳으로 돌이키도록 작용한다. 사탄의 방해를 당하고 있는 생심과 육심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지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체를 이룬다. 이것을 사심(邪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심이나 양심은 이 사심에 반발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분립하고 하나님을 상대하게 함으로써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하게 하도록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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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총서
원리강론 총서 原理講論 總序 / Introduction of Divine Principl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의 전체적 서론. [내용]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개인의 사소한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오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의(本意)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욕망이 선(善)보다도 악(惡)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不意)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本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불의의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 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제자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심의 발로이다. 특히 이러한 본심(本心)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도인(道人)들의 생활이지만, 유사 이래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것과는 반대로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심(邪心)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矛盾性)을 발견하게 된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안에 모순성을 갖게 될 때에는 파멸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인간 자체는 파멸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내포하고 생성(生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지닌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타락(墮落)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누구도 이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타락해 자기 파멸에 이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악한 마음으로부터 오는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따라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써 그 자체의 모순성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궁극(窮極)에 있어서 선과 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선의 욕망을 따라 본심이 지향하는 선의 생활을 하기 위하여는 무지(無知)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선악(善惡)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內外)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내외 양면의 지(知)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의 두 가지가 있게 된다. 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생(生)의 목적은 무엇이며, 사후(死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내세(來世)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무지란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물질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인간은 유사이래(有史以來) 오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무지(無知)에서 지(知)에 도달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宗敎)요,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科學)이다.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로부터 양면의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본심의 욕망이 지향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종교와 과학이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 내외 양면의 진리가 상통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의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을 두 가지로 대별(大別)하여 본다면, 첫째는 물질로 된 이 결과의 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길이다. 이러한 길을 지상(至上)으로 생각하고 걸어온 사람들은 극도로 발달된 과학 앞에 굴복하여 과학의 만능과 물질적인 행복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이러한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조건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과학의 발달이 아무리 안락한 사회 환경을 이루고 그 속에서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한들 그것으로써 어찌 속사람의 정신적인 욕구까지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사람에 있어서 마음이 있음으로써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기쁨에 있어서도 마음의 기쁨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몸의 기쁨도 온전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과학의 갈 곳은 어디일 것인가? 지금까지의 과학의 연구대상은 내적인 원인의 세계가 아니고 외적인 결과의 세계였으며, 본질(本質)의 세계가 아니고 현상(現象)의 세계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의 대상은 외적이며 또한 결과적인 현상의 세계에서 내적이며 또한 원인적인 본질의 세계에로 그 차원을 높이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원인적인 심령세계(心靈世界)에 대한 논리, 즉 내적 진리가 없이는 결과적인 실체세계(實體世界)에 대한 과학, 즉 외적 진리도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제 과학의 돛을 달고 외적인 진리의 항해를 마친 사공이 또 하나의 종교의 돛을 달고 내적인 진리의 항로에로 들어오게 될 때, 비로소 그는 본심이 지향하는 이상향(理想鄕)에로 항행(航行)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의 둘째는 결과적인 현상세계를 초월하여 원인적인 본질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을 밟아 온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인 짐을 지워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철인들과 성현들은 인생의 갈 길을 열어 주려고 각각 그 시대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의 길로 나섰던 것이었으나, 그들이 해 놓은 일들은 모두 오늘의 우리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모든 종교가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시대의 많은 심령(心靈)들에게 비쳐 주던 소생(蘇生)의 빛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덧 꺼져 버리고 이제는 타다 남은 희미한 불똥만이 그들의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오던 종교인(宗敎人)들이 오늘에 이르러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본질세계와 현상세계와의 관계는 비유컨대 마음과 몸과의 관계와 같아서 원인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그리고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치 마음과 몸이 완전히 합해야만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과 같이 본질과 현상의 두 세계가 완전히 합치되어야만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마음과 몸이 그러하듯이 본질세계를 떠난 현상세계가 있을 수 없고, 현상세계를 떠난 본질세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떠난 내세는 있을 수 없는 것이므로 진정한 육신의 행복이 없이 심령적(心靈的)인 기쁨도 있을 수 없다. 종교가 이와 같은 운명의 길을 가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즉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지성이 최고로 계발(啓發)된 나머지 현대인은 모든 사물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종교의 교리에는 그런 과학적인 해명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내적인 진리와 외적인 진리가 서로 일치된 해명을 가지지 못한 데 원인이 있는 것이다. 내적인 진리에도 논증적인 해명이 필요하게 되어 종교는 오랜 역사의 기간을 통하여 그 자체가 과학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시대를 추구해 나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한 사명을 각각 분담하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있어서는 그것들이 상충하여 서로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양상을 보여 왔으며, 인간이 양면의 무지를 완전히 극복하여 본심이 요구하는 선(善)의 목적을 완전히 이루자면 어느 때든지 과학을 찾아 나온 종교와 종교를 찾아 나온 과학을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주는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새 진리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은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 신도들에게는 못마땅하게 생각될는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서가 이미 그것만으로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절대적이다. 그러나 경서란 진리 자체가 아니고 진리를 가르쳐 주는 하나의 교과서로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로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져 온 각 시대의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와 방법에 있어서는 시대를 따라서 달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는 교과서마저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본심의 지향성에 의하여 하나님을 찾아 선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방편으로 나오게 된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의 목적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명분야와 그를 대하는 민족에 따라서, 또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위와 같은 이유로 경서를 서로 달리하게 되는 데서 필연적으로 각양각이(各樣各異)의 종교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서란 진리의 빛을 밝혀 주는 등잔과 같아서 주위를 밝힌다는 사명은 같지만, 보다 밝은 등불이 나올 때에는 그것으로써 낡은 등잔의 사명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면 새 진리는 어떠한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인가? 이 진리는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 종교가 찾아 나온 내적인 진리와 과학이 찾아 나온 외적인 진리를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을 내 외 양면의 무지에서 내 외 양면의 지에 완전히 도달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사심(邪心)이 지향하는 악의 길을 막고 본심이 추구하는 바를 따라 선의 목적을 이루게 함으로써 선악(善惡) 양면의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모순성과 위에서 이미 논한 바 종교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도(道)의 생활의 모순성을 극복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지어졌다면, 하나님에 대한 무지야말로 우리 인생을 얼마나 비참한 길로 몰아내고 있는 것인가? 새 진리는 하나님의 실재성에 관하여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자신을 반역하는 타락한 인간을 버리지 못하고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구원하려고 애써 온 애달픈 심정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선과 악의 두 면을 지향하는 인간들의 상충적인 생활로써 형성되어 온 인류 역사는 거의 싸움으로 엮어져 내려왔다. 우리 앞에는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싸움이 하나 남아 있으니 그릇이 바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내적인 이념 싸움이다. 그들은 서로 무서운 무기를 마련하고 외적인 싸움을 겨루고 있으나, 실은 내적인 이념의 싸움의 판가리를 하기 위함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완전히 이루어지려면 바로 이 새 진리가 지금까지 민주주의 세계에서 주창해 온 유심론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 유물론을 흡수함으로써 온 인류를 새 세계로 옮겨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이 진리는 역사 이래의 모든 주의나 사상은 물론 모든 종교까지도 하나의 길로 완전히 통일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온 인류가 하나의 진리에 의하여 하나의 형제로서 하나의 목적지에서 만나게 된다면, 거기에서 이룩되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일 것인가? 이 세계는 유구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인생의 양면의 무지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쳐 온 인간들이 그 암흑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진리의 빛 가운데서 함께 만나 하나의 대가족을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진리의 목적이 선을 찾아 이루려는 데 있고, 선의 본체가 바로 하나님이므로 그 진리에 의하여 도달된 세계는 바로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서로 형제애(兄弟愛)에 얽혀 사는 세계인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찾아 나온 이 세계야말로 바로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이 천국은 지상의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지상천국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역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따라서 새 진리는 타락한 인간을 창조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비롯한 피조세계를 창조한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써 복귀과정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야 된다. 그리고 인간은 과연 성서가 말하는 문자 그대로 선악과라는 과실을 따먹고 타락했는가? 그렇지 않다면 타락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 완전완미(完全完美)한 하나님이 어찌하여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을 창조하였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들이 타락하는 것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왜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일시에 죄악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가 하는 것 등 실로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혀 온 모든 문제들을 완전히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피조세계에 비장(秘藏)되어 있는 과학성을 살펴볼 때, 그것을 창조한 하나님이야말로 과학의 근본이기도 한 분이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류 역사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의 역사임이 사실일진데, 그와 같이 모든 법도의 주인인 하나님이 이처럼 오랜 복귀섭리의 기간을 두고 아무 계획도 없이 무질서하게 이 역사를 섭리해 나왔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악역사가 어떻게 출발하여 어떠한 공식적인 섭리의 과정을 거쳐서 어떠한 모양으로 종결되어 어떠한 세계로 들어갈 것인가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긴절(緊切)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새 진리는 이러한 근본문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명백하게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새 진리는 오늘날 문화권 형성의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기독교의 많은 난해한 문제들을 명백히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새 진리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인간과의 창조원리적인 관계를 밝혀 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에 못지않게 어려운 문제로 되어 있는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해명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은 어찌하여 독생자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게 하여야만 가능하였던가 하는 것도 응당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인하여 분명히 구속함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역사 이래 어느 한 사람도 구주의 속죄가 필요 없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죄 없는 자녀를 낳아 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중생한 후에도 여전히 원죄를 자녀들에게 유전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아닐 것인가? 이러한 실증적인 사실로 보아 십자가 대속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진리는 예수님이 왜 재림하여야 하며, 또 그의 재림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과 그때에 타락한 인간의 부활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서 하늘땅이 불에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 등 상징과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성서의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이미 예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한 바와 같이 비사가 아니고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밝히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최종적인 진리는 어떠한 경서나 문헌에 의한 종합적인 연구의 결과로나, 혹은 어떠한 인간의 두뇌에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