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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 연장시대
원리강론 섭리적 동시성으로 본 복귀섭리시대와 복귀섭리 연장시대 原理講論 攝理的 同時性으로 본 復歸攝理時代와 復歸攝理 延長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의 내용. [내용] 『원리강론』 후편 제4장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총7절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절은 애급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제2절은 사사시대와 교구장제 기독교시대, 제3절은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4절은 남북 왕조 분립시대와 동서 왕조 분립시대, 제5절은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제6절은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와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에 관해 밝히고 있다. 제7절은 복귀섭리로 본 인류 역사 발전 과정에 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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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아담 家庭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dam’s famil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1장 제1절의 내용으로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내용. [내용] 타락은 비록 인간 자신의 잘못으로 된 것이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지 않을 수 없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타락한 인간을 복귀하려는 섭리는 일찍이 아담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담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탄도 대할 수 있는 중간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중간 위치에 처하게 된 타락한 인간이 하늘 편으로 분립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탕감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아담 가정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그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는 데까지 나아가야 복귀섭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믿음의 기대 첫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조건물이 있어야 한다. 아담 가정에서 세워야 했던 조건물은 제물이었다. 둘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해서는 중심인물도 있어야 한다. 아담이 제물을 바치지 못하고 가인과 아벨로부터 제물을 바쳤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가? 창조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본래 한 주인을 대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주인을 대하는 처지에 있는 존재를 상대로 하여 창조원리적인 섭리를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비원리적인 섭리를 할 수 없으므로 선과 악의 모체가 된 아담 선성품적(善性稟的)인 존재와 악성품적(惡性稟的)인 존재로 갈라 세우는 섭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아담의 두 아들을 선과 악의 표시체로서 분립시킨 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탄을 각각 대할 수 있는, 즉 한 주인을 상대하는 원리적인 입장에 세워 놓고 제물을 바치게 한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다 함께 타락한 해와의 열매였다. 따라서 해와가 타락한 경로에 의하여 그것이 결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첫 번째의 타락은 천사장과 사랑으로 인한 영적인 타락이었으며, 두 번째의 타락은 아담과 사랑으로 인한 육적인 타락이었다.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보다 원리적이며 보다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였던가를 가려 본다면 첫째 번의 사랑에 의한 타락행위보다는 둘째 번의 사랑에 의한 타락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첫 번째의 타락행위가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한 욕망, 즉 때 아닌 때의 것을 바랐던 과분한 욕망이 동기가 돼 비원리적인 상대인 천사장과 관계를 맺은 것임에 비하여 둘째 번의 타락행위는 첫째 번의 행위가 불륜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 편으로 돌아가고자 한 심정이 동기가 돼 하나님이 허락한 때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관계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인은 사랑의 첫 열매였으므로 천사장과의 사랑으로 인한 타락행동을 표징(表徵)한 것으로서 사탄을 대할 수 있었던 입장에 세워졌고, 아벨은 사랑의 둘째 열매였으므로 아담과의 사랑으로 인한 표시체로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었던 입장에 세워졌다. 하나님이 창조한 원리의 세계를 사탄이 먼저 차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앞서 사탄이 먼저 비원리적인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이 맏이를 세워서 장자의 기업을 계승시키려고 한 원리적인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사탄도 둘째 것보다 맏 것에 대한 미련이 컸었다. 거기에다 사탄은 이미 피조세계를 차지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보다 미련이 컸던 장자 가인을 먼저 취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탄이 미련을 갖고 대하던 가인보다도 아벨을 대하였던 것이다. 아벨은 하나님이 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제물을 바쳤기 때문에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아담 가정이 세워야 할 믿음의 기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던 것은 가인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가인은 사탄이 취할 수 있었던 상대적인 입장이었으므로 하나님이 그 제물을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가인 자신이 세우지 않는 한 하나님은 그것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체기대 아담 가정에 실체기대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가인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하나님이 그의 헌제를 기뻐 받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은 어떻게 세워야 했던가? 첫째, 천사장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던 아담을 사랑하지 못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타락성’이 생겼다.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이었던 가인이 아담의 입장이었던 아벨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해야 했다. 둘째, 천사장이 하나님에게 더 가까웠던 아담을 중보로 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아담의 위치를 취하려다가 타락했기 때문에 ‘자기 위치를 떠난 타락성’이 생겼다.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이었던 가인이 아담의 입장이었던 아벨을 중보로 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가인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했다. 셋째, 천사장은 자기를 주관해야 할 인간, 즉 해와와 아담을 역주관(逆主管)함으로써 타락했기 때문에 ‘주관성을 전도(顚倒)한 타락성’이 생겼다. 따라서 인간이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이었던 가인이 아담의 입장이었던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그의 주관을 받는 입장에 섬으로써 주관성의 법도를 바로 세워야 했다. 넷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던 선한 뜻을 하나님은 아담에게 전하고, 아담은 또 해와에게 전하고, 해와는 다시 천사장에게 전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천사장이 따먹어도 좋다는 불의(不義)의 뜻을 해와에게 전했고, 또 해와는 그것을 아담에게 전함으로써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번식한 타락성’이 생겼다. 그 타락성을 벗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입장이었던 가인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웠던 아벨의 상대적인 입장을 취하여 아벨로부터 선의 뜻을 전해 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는 입장을 조성해야 했다. 만일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라면, 그들은 이미 조성된 믿음의 기대 위에 실체기대를 세워 이 두 기대로써 이루어지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 위에서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복귀하였을 것이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천사장이 인간을 타락케 하였던 타락성을 반복하게 되어 아담 가정이 세워야 했던 실체기대는 세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의 메시아를 위한 기대와 상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3대 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개성을 완성하여 부부를 이루고, 다음으로는 자녀를 번식하여 가정을 이루며, 더 나아가 그들이 만물을 주관함으로써 이뤄지게 돼 있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3대 축복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그것을 복귀하기 위하여 반대의 경로를 따라서 먼저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워 주는 상징헌제를 드림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세워야 했다. 다음으로는 자녀를 복귀하고, 그 위에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워 주는 실체헌제를 드림으로써 실체기대를 세워 가지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징헌제의 의의와 목적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만물로써 상징헌제를 드리는 첫째의 목적은 하나님의 상징적 실체상인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려는 데 있다. 상징헌제를 드리는 두 번째의 목적은 실체인간을 하나님 앞에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려는 데 있는 것이다. 실체헌제는 실체인간을 복귀하기 위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가인적인 존재가 아벨적인 존재를 실체로 헌제하여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게 되면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으로도 세워지게 되기 때문에 실체헌제는 뜻 맞는 헌제가 된다. 하나님은 아담 대신으로 차자 아벨을 세워서 상징헌제를 드리게 하였다. 그래서 만물을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과 인간을 복귀하기 위한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동시에 세운 기대 위에서 가인과 아벨이 실체헌제로써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웠더라면, 아담이 그 실체기대 위에 서게 돼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뤄졌을 것이다. 아벨의 상징헌제에는 아담의 대신으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것과 아벨을 실체헌제의 중심인물로 결정하기 위한 것의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가인과 아벨이 다 함께 자녀로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운 입장에 서게 돼 있었던 것이다. 한편 가인과 아벨은 선과 악의 모체였던 아담을 분립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사탄을 분립하였더라면, 아담은 사탄을 분립한 입장에서 실체기대 위에 서게 돼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처럼 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은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로써 세워지게 될 것이었다. 아벨이 뜻 맞는 헌제를 함으로써 아담을 중심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조건과 실체헌제를 드리기 위한 중심인물로서 아벨의 입장은 갖춰졌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인해서 실체기대가 세워지지 못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조성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이뤄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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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아브라함 家庭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Abraham’s famil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1장 제3절의 내용으로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의 내용. [내용] 함의 타락행위로 인하여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완성하려는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고 이루므로 노아가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심정의 터전 위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그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를 다시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노아 가정이 이루려다 못 이루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메시아를 맞아야 하였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기대 위에서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해야 하였다. 믿음의 기대 1)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아브라함이었다.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10대에 걸친 400년 탕감기간을 경과한 후 노아 대신으로 아브라함을 세웠다. 아브라함은 노아의 대신이요. 아담의 대신이었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를 축복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2)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 (1)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였다. 그것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이었다. 그는 상징헌제를 드리기 전에 아담 가정의 입장을 복귀하는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먼저 세워야 하였다. 애급 왕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고자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그녀와 부부의 관계라고 하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미리 계획한 대로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아브라함은 그의 처 사라를 남매의 입장에서 바로의 아내로 빼앗겼다가 하나님이 바로를 징계하여 다시 아내를 찾아오는 동시에 데리고 갔던 조카 롯과 함께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왔다. 아브라함은 그와 같이 탕감조건을 세운 후에야 비로소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로써 상징헌제를 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로 바쳤던 비둘기와 양 그리고 암소는 3단계의 성장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천주를 상징한 것이다. 비둘기는 소생을 상징하였고, 양은 장성을 상징하였고, 암소는 완성을 상징하였다. 아브라함의 상징헌제는 아담으로부터 노아와 아브라함까지 3대에 걸친 종적인 섭리의 상징적인 탕감조건을 3제물로써 일시에 횡적으로 복귀하려던 것이다. 아담의 당대에서 3단계의 성장 기간을 완성하려고 했던 것처럼 아담의 입장인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소생 아담, 장성 노아, 완성 아브라함의 뜻으로 본 3대에 걸쳐서 탕감복귀하려던 종적인 섭리를 일시에 횡적으로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제물을 쪼갰던 것은 첫째로 아담 가정에 있어서 선과 악의 모체였던 아담을 선과 악의 두 표시체로 분립하기 위하여 아벨과 가인으로 갈라 세운 것과 같은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둘째로 노아가 홍수 40일로써 선과 악을 갈라 세웠던 입장을 복귀하기 위함이었으며, 셋째로 사탄의 주관 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 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넷째로 사탄과 혈연관계를 통하여 들어온 사망의 피를 뽑아 성별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바침으로 인하여 사탄의 것을 그대로를 바친 것이 되어 조건물이 사탄의 소유물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이 소생을 상징한 비둘기가 사탄의 소유물로 남아지게 되었으므로 소생의 기대 위에 세워져야 했던 장성과 완성을 상징한 양과 암소에게도 사탄이 침범하였다. 따라서 그 상징헌제가 사탄에게 바친 결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이 범죄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고역한 400년 기간은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로 인한 벌을 받은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새로운 섭리를 위하여 사탄 분립의 터를 닦은 기간이기도 하였다. (2) 아브라함의 이삭 헌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예정된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그 중심인물을 중심한 섭리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다시 불러 상징한제의 실패를 탕감복귀하는 새로운 섭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원리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담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1차였고, 노아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2차였으며,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섭리가 제3차였다. 그런데 3수는 완성수이기 때문에 제3차 섭리인 아브라함 때에는 그 섭리를 완성해야 될 원리적인 조건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실체로 헌제하여 보다 큰 것으로서의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상징헌제의 실수로 인하여 상징적으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시 찾아 세울 수 있었다. 둘째, 헌제를 드리던 아브라함은 아담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가인에게 침범함으로써 2대를 빼앗아 갔기 때문에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하여 하늘 편에서도 아브라함과 자식까지 2대에 걸쳐서 빼앗아 올 수 있는 섭리를 할 수 있었다. 셋째, 아브라함은 소생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터전과 장성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의 기대 위에서 부름을 받아 완성 상징헌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했지만, 하나님은 아벨과 노아가 상징헌제에 성공한 기대를 조건으로 아브라함에게 한 번 더 헌제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자식으로 받았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죽이려고 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대하던 아브라함의 심정과 믿음 그리고 순종에서 나온 행동이 실제로 이삭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삭으로부터 사탄을 분립하였다. 그렇게 사탄이 분리된 이삭이 하늘 편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죽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삭을 통하여 이루어 나아가게 되었다. (3) 뜻으로 본 이삭의 위치와 상징헌제 하나님은 상징헌제에서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으며, 연장된 복귀섭리를 연장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워야 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위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고 한 충성은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과 같은 입장을 조성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입장에서 다시 살린 것은 아브라함 자신도 이삭과 같이 죽은 입장에서 사탄을 분립함과 동시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 헌제에 성공함으로써 상징헌제의 실패로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였고, 더 나아가 뜻을 중심하고 이삭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죽음의 자리에서 같이 살아난 이삭과 아브라함은 서로 개체는 다르면서도 뜻을 중심하고 보면 한 몸이었으므로 아브라함을 중심한 섭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삭을 중심한 섭리로 연장되더라도 그 섭리에서 이삭이 성공하면 아브라함도 성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함으로 인해 섭리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연장됐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아브라함이 실패하지 않았고 섭리도 연장되지 않은 것처럼 되었다. 헌제를 중심하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써 첫째,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실수로 인하여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여 실수 이전의 입장으로 탕감복귀해 섭리적인 사명을 이삭에게 인계할 수 있게 되었고, 둘째, 이삭은 뜻 앞에 순종굴복함으로써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늘의 사명을 이어받은 다음에 상징헌제를 드리기 위한 믿음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이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에게로 옮겨진 후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하나님이 준비한 수양으로 번제를 드렸다. 그것은 그대로 이삭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헌제가 되었다. 실체기대 이삭을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려면, 그의 자식이었던 에서와 야곱을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분립하여 놓고 실체헌제를 함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뤄야 했다. 먼저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야곱은 다음과 같이 실체헌제를 성공한 후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인한 400년간의 탕감노정을 걷기 위하여 애급으로 들어갔다. 첫째, 야곱은 차자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떡과 팥죽으로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다. 둘째, 야곱은 사탄 세계인 하란으로 들어가 21년간 고역하면서 가정과 재물을 중심하고 장자의 기업을 복귀하는 싸움에서 승리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셋째, 야곱은 하란에서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얍복강에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실체로써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였다. 야곱은 이와 같이 하여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함으로써 실체헌제를 위한 중심인물이 되었다. 야곱이 하란에서 21년간의 고역을 마치고 하늘 편 처자와 재물을 취하여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에서는 그를 사랑하고 환영했기 때문에 그들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또 노아 가정의 셈과 함이 실체헌제에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했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 아담 가정에서부터 세우려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3시대에 걸쳐 연장되어 아브라함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하여 뜻이 이삭에게로 연장되었다. 그런데 이삭 가정을 중심하고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메시아가 그때에 강림해야 될 것이었다.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은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진 세계를 메시아를 위한 왕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 때 타락한 인간들이 사탄을 중심한 민족을 형성해 아브라함 가정과 대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 위에 메시아가 강림할 수는 없었다. 그 기대가 사탄 세계와 대결할 수 있는 민족적인 판도 위에 세워진 후에야 메시아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하지 않고 실체헌제에도 성공하여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대를 중심하고 후손이 가나안 땅에서 번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상징헌제에 실수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벌로서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조성한 이삭의 후손들은 고향을 떠나 이방(異邦)에 들어가서 400년간을 고역하면서 민족적인 기대를 세워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야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조성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전형노정을 성공적으로 걸었다. 그 전형노정을 따라서 모세도 걸었고, 예수님도 걸었으며, 이스라엘 민족도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사는 사탄을 민족적으로 굴복시켜 온 전형노정의 사료(史料)가 된다. 이스라엘 민족사가 복귀섭리역사의 중심사료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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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애급 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원리강론 애급 고역시대와 로마제국 박해시대 原理講論 애급 苦役時代와 로마帝國 迫害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 제1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애급 고역시대와 실체적 동시성시대인 로마제국 박해시대에 대한 원리적 설명. [내용] 『원리강론』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수함으로 인해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탕감복귀기대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이 400년의 기대를 다시 찾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을 재분립하는 애급 고역 400년을 거치도록 하였다. 야곱과 그의 12자식을 중심한 70가족이 애급에 들어간 이래 그 후손들이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며 고역을 당하던 이 시대를 가리켜 애급 고역시대라고 한다. 형상적 동시성시대에 해당하는 이 400년 기간을 실체적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바로 로마제국 박해시대이다. 유대 민족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중심한 12제자와 70문도 및 기독교 신도들은 로마제국에서 400년 동안 처참한 박해를 당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은 교회를 파괴하고 예배를 금지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을 잡아 잔인하게 처형하는 등 기독교 박멸을 위한 대규모의 조직적인 탄압 정책을 펼쳤다. 애급 고역시대가 끝난 후에 모세는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으로 바로를 굴복시키고 제1이스라엘 선민을 인도하여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였다. 또한 시내산에서 받은 계명과 말씀을 토대로 구약성서의 중심을 세웠고, 석판과 성막과 법궤를 받듦으로써 제1이스라엘 선민들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뜻을 세워 나가도록 인도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마 박해 400년 기간이 끝난 후에 예수님은 심령적인 기적과 권능으로써 많은 신도를 불러 일으켰고 테오도시우스 1세를 감화시켜 392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하였다. 제2이스라엘 선민인 기독교인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신약성서를 결정하고, 교회를 세워 재림주를 맞기 위한 터전을 넓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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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예수님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under the leadership of Jesu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2장 제3절의 내용으로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대한 해석. [내용] 천사를 주관해야 했던 아담이 타락해 사탄의 주관을 받게 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후 아담으로 오는 예수님은 사탄을 굴복시켜 천국을 복귀해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 원리적인 책임을 지고 야곱과 모세를 세워 장차 예수님이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본보기 노정을 보여 주었다. 야곱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적 노정을 걸었고, 모세는 사탄을 굴복시키는 형상적 노정을 걸었으며, 예수님은 사탄을 굴복시키는 실체적 노정을 걸어야 했다. 예수님은 모세가 사탄을 굴복시킨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완수해야 하였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3차에 걸쳐 연장됐으며, 3차 노정은 십자가 죽음 이후의 영적인 노정이었다.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했던 중심인물은 세례 요한이었다.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간의 사탄 분립기대 위에 섰던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하여 하늘에 대한 충효의 도를 세웠다. 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모두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존경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은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2) 실체기대 세례 요한은 모세와 같은 위치에 세워졌기 때문에 유대 민족에 대하여 부모와 자녀의 두 입장에 있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한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입장도 확립하였다. 세례 요한을 중심한 유대 민족은 로마제국을 떠나 다른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정권 하에 있으면서 그들을 굴복시켜 로마제국을 하늘 편으로 복귀해야 하였다. 하늘은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기사이적을 보여 주어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도 그를 의심하고 자기가 엘리아로 왔다는 예수님의 말을 부인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게 하였다. 결국 세례 요한은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돼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였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하였다. 그 결과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었다.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세례 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예수님 자신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면서 사탄을 분립한 것은 바로 세례 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반석 앞에 섰던 모세가 불신으로 돌아가 반석을 두 번 쳤기 때문에 예수님을 상징한 반석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것은 후일 메시아로 와서 모세 노정을 본보기로 걸어야 했던 예수님의 노정에서 세례 요한이 불신하면 예수님 앞에 사탄이 침범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었다. 사탄은 3대 축복 복귀의 길을 막기 위해 세 가지의 시험으로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첫째,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1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둘째,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리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셋째,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시험에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하여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 복귀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40일 금식과 3대 시험으로 사탄을 분립한 결과로 첫째,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했으므로 그때까지의 섭리노정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하여 찾아 세우려던 모든 것을 탕감복귀하였다. 둘째,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메시아의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이루어 사위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는 조건을 세웠다. 2) 실체기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탕감복귀하였기 때문에 부모의 자리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한 동시에 자녀의 자리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는 예수님의 말씀과 기사이적으로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유대 민족이 세례 요한의 사명을 가지고 아벨의 자리에 서 있던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르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복귀하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있었다. 3)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여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로 돌아갔다.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예수님을 중심한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다시 신앙의 대상으로 세워서 먼저 영적노정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1) 영적인 믿음의 기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낸 목적은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고라도 전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였다. 사탄은 자기 편에 서게 된 선민을 비롯한 전 인류를 모두 하나님에게 내놓게 되더라도 메시아인 예수님 한 분을 죽이려고 하였다. 사탄은 메시아를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전 섭리의 목적을 깨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사탄 편으로 돌아간 유대 민족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탕감조건으로 예수님을 사탄에게 내주었다. 사탄이 그의 최대 실권행사로서 예수님을 죽인 것에 대한 탕감조건으로 하나님도 최대의 실권을 행사하여 죽은 예수님을 부활시켰고, 온 인류로 하여금 부활한 예수님에게 접붙이게 하여 구원을 받도록 하였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육신을 제물로 내준 후 부활 40일의 사탄 분립 기간으로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2) 영적인 실체기대 예수님은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처지에서 영적인 부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동시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영적인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였다. 부활한 예수님은 흩어졌던 제자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기사와 이적의 권능을 줌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가인의 입장에 선 성도들은 영적인 아벨의 입장에 있는 부활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라 타락성을 벗기 위한 영적인 탕감조건을 세움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복귀하게 되었다. (3)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믿고 모시고 따름으로써 영적인 실체기대를 조성함에 따라 메시아를 위한 영적인 기대를 복귀하였다. 예수님은 그 기대 위에서 영적인 세례 요한 사명자의 입장으로부터 영적인 메시아의 입장을 확립하고 성신을 복귀함으로써 영적인 참부모가 되어 영적 중생의 역사를 하게 되었다. (4) 영적 가나안 복귀 기독교 신도들은 영적인 메시아로 서게 된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써 영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죄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사탄 재분립의 노정을 걸어야 하였다. 2) 재림주님을 중심한 실체적 가나안 복귀노정 제3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영적 섭리는 2천 년의 역사노정을 지나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그 영적 판도를 이루었다. 예수님은 재림하여 지금까지의 영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실체노정으로 걸어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수함으로써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재림 메시아는 초림 때 실체로 이루려던 지상천국을 이루어야 하므로 실체인간으로 지상에 탄생한다. 초림 때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영적 복귀섭리의 고난의 노정을 걸었던 것처럼 만일 재림 때 기독교 신도들이 불신하게 되면 영적인 고난의 노정을 다시 실체로써 탕감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재림 메시아는 아무리 고난의 길을 걸어도 창조목적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이 인류의 참부모님을 세워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섭리는 아담에서 예수님을 거쳐 세 번째인 재림 메시아 때에는 그 섭리를 이루게 돼 있다. 또한 예수님 이후로 2천 년의 영적 복귀섭리는 재림 메시아를 위한 사회 환경으로 민주주의시대를 이루어 놓았다. 재림 메시아는 새 말씀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실체적으로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서 온 인류를 영육 아울러 접붙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혈통적 직계 자녀로 복귀해야 한다. 제2이스라엘로 세워진 기독교 신도들이 재림 메시아를 배반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제3이스라엘 선민을 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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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예정론
원리강론 예정론 原理講論 豫定論 / Predestinati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전편 제6장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통일원리적 이해. [내용] 뜻에 대한 예정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려는 것이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고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뜻을 세웠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뜻을 다시 이루기 위하여 그것을 다시 예정하고 복귀섭리를 진행하였다. 하나님은 이 뜻을 선(善)으로 예정하고 이루며 악(惡)으로 예정하고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선의 주체이므로 창조목적도 선이요, 복귀섭리의 목적도 선이어서 그 목적을 이루려는 뜻도 선이다.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반대되거나 장애가 되는 것을 예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간의 타락이나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심판 혹은 우주의 멸망 등을 예정할 수 없다. 악의 결과는 인간 자신이 사탄과 연관되어 그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난다. 하나님은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한 절대자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한다. 따라서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려는 복귀섭리의 뜻도 유일하고 불변하며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뜻을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기 때문에 만일 이 뜻을 위하여 세워진 인물이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세워서 끝까지 그 뜻을 이루어 나아간다. 예를 들면 아담을 중심하고 창조목적을 이루려고 하였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뜻에 대한 예정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후 아담으로 보내어 그를 중심하고 뜻을 다시 이루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해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재림하여 그 뜻을 기필코 완수할 것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뜻 성사에 대한 예정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려는 복귀섭리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뜻의 성사에는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된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상대적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95퍼센트 책임분담에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한다. 인간의 책임분담 5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비하여 극히 작은 것임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자신에게는 100퍼센트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아담 해와를 중심한 뜻 성사는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였다. 노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도 노아가 방주를 제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하였다. 예수님의 구원섭리도 타락한 인간이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경우를 보면, 인간이 담당했던 책임분담은 하나님이 그의 책임분담으로 담당한 수고와 은사에 비하여 얼마나 작은 것인지 알 수 있는 동시에 섭리적 중심인물들이 그들의 책임분담을 감당치 못함으로써 복귀섭리를 연장시켜 왔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경미한 책임분담이 인간 자신에게는 힘에 겨울만큼 큰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정 어떤 인물을 중심한 하나님의 뜻 성사에는 그 자신이 언제나 인간책임분담을 완수해야만 된다는 필수적인 요건이 따라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인물을 사명자로 예정하는 것은 95퍼센트의 하나님 책임분담에 대하여 5퍼센트의 인간 책임분담 수행이 합하여서 그 인물을 중심한 뜻이 100퍼센트 완성되어 그러한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예정한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자신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예정한 대로의 인물이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모세를 택할 때, 그가 자신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선민을 가나안까지 인도할 수 있는 영도자가 되도록 예정하였다. 그러나 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모세에 대한 예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목적지를 향하여 가던 도중에 죽고 말았다. 하나님 구원섭리의 목적은 타락한 피조세계를 창조본연의 세계로 완전히 복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타락한 인간은 누구나 다 빠짐없이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가 그러했듯이 재창조 역사인 구원섭리도 일시에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전체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렇기 때문에 구원섭리를 위한 예정에서도 먼저 중심인물을 예정하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에서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먼저 복귀섭리를 담당한 선민으로 태어나야 한다. 둘째, 같은 선민 중에서도 선(善)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어야만 한다. 셋째, 똑같은 선의 공적이 많은 선조의 후손이라도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천품을 타고나야 한다. 넷째, 같은 천품의 인간이라도 후천적인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섯째, 후천적인 조건마저 똑같이 갖춘 인물들 중에서도 보다 하늘이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에 맞추어진 개인이 먼저 택함을 받는다. 예정설을 뒷받침하는 성구의 해명 성서에 하나님의 예정을 뒷받침해 주는 성구들이 많이 있는데, 그 성구들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원리강론』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① 로마서 8장 29절-30절: 하나님은 미리 아신 사람을 미리 정하사, 미리 정하신 이를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를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를 또한 영화롭게 하신다. 하나님은 전지하므로 어떤 사람이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알고, 그 인물을 예정하고 부른다. 그러나 부르는 하나님의 책임분담만으로는 그가 의롭다 함을 얻어 영화를 누리는 데까지 이를 수 없다. 그는 부름 받은 입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할 때 비로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의롭다 함을 얻은 후에야 또한 하나님이 주는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는 영화도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함으로써만 누릴 수 있도록 예정되는 것이다. 로마서 성구에는 인간 책임분담에 대한 말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으로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것이다. ② 로마서 9장 15절-16절: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였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인물이 가장 적합한가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미리 알고 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물을 택하여 긍휼히 여기거나 혹은 그를 불쌍히 보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에 인간이 원함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 아니요, 또 인간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성구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③ 로마서 9장 21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성을 닮게 함으로써 피조세계의 주인으로 세우기 위하여 인간 책임분담이라는 조건을 세웠다. 그런데 인간은 이 조건을 스스로 범하여 타락하고 말았다. 타락한 인간은 마치 쓰레기와 같이 버림을 받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설혹 하나님이 이러한 인간을 어떻게 취급한다 하더라도 결코 불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다. ④ 로마서 9장 10절-13절: 하나님이 태중에서부터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시어 장자 에서가 차자 야곱을 섬기리라. 에서와 야곱은 복중(腹中)에 있어서 아직 선악 간의 아무런 행동의 결과도 나타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은 복귀섭리 노정의 원칙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에서와 야곱을 쌍태로 세웠던 것은 그들을 각각 가인과 아벨의 자리에 갈라 세워 아벨의 자리에 있는 야곱이 가인의 자리에 있는 에서를 굴복시킴으로써 일찍이 아담 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루지 못하였던 장자기업 복귀의 뜻을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다. 에서는 가인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며, 야곱은 아벨의 자리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실제로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따라서 좌우될 문제이다. 에서는 야곱에게 순종굴복하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서 야곱과 같은 사랑의 축복을 받는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아무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세워진 야곱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그가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였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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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원리강론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原理講論 유대民族 捕虜 및 歸還時代와 敎皇 捕虜 및 歸還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 제5절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실체적 동시성시대인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관한 원리적 설명. [내용] 『원리강론』은 후편 제4장 제5절에서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관한 원리적 설명을 전개하고 있다. 여로보암이 유다 지파와 벤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10지파를 규합하여 새로운 왕국을 창건함으로써 이스라엘 왕국은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각각 분열되었다. 이후 북조 이스라엘은 성전 이상을 저버리고 불신으로 흘러 B.C.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고, 남조 유대는 B.C. 586년에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70년간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하자 해방을 맞이하여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유대 민족이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갔다 고레스 왕에 의해 해방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 이상을 재건할 때까지의 210년 기간을 가리켜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를 실체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해당하는 210년의 기간이다. 교황과 국왕은 재림할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에게 그 나라와 왕위를 인계해야 할 섭리적 책임을 갖고 있었지만, 이들은 거듭된 타락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지 못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유대 민족이 성전 이상을 받들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사탄 세계인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끌려가 고역을 당하게 하였던 것처럼 교황 또한 포로가 되어 고역을 당하게 하는 섭리를 진행하였다. 1305년 교황으로 선출된 클레멘스 5세는 1309년 교황청을 로마로부터 남불 아비뇽으로 옮겼고, 그의 후임들도 아비뇽에 정주하여 프랑스 왕의 구속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137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 때 다시 로마로 귀환하였다. 교황이 남불 아비뇽에 유수되었다가 로마로 복귀한 후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약 210년 기간은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를 실체적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였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