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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도르세
콩도르세 Condorcet(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류가 무한히 완전해질 수 있다는 진보이념을 주장한 프랑스의 혁명가이자 수학자. [내용] 인간에 대한 낙관주의 역사관을 대표한 학자이다. 1743년 프랑스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랭스의 예수회 신학교와 파리의 콜레주 드 나바르에서 교육받았으며, 수학자로서 두각을 나타내 1769년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1785년 확률이론에 관한 뛰어난 저서 『다수 결정의 확률에 대한 분석적용에 관한 소론』을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혁명을 열렬히 환영하며 활발하게 정치활동에 참여하였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입법의회, 국민공회의 의원이 되어 국민 교육제도의 확립에 힘을 기울였다. 1793년 지롱드 헌법 초안을 기초하였으나 의회에서 부결되었고 고발까지 당하여 은거하게 되었다. 1794년 계몽주의 역사철학을 대표하여 낙관주의 역사관으로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를 집필하였는데, 인간 지식의 발전을 기준으로 역사를 10기로 구분하고 향후에 인간이 진보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준 책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794년 거리에서 체포되어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통일사상요강』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역사가 인간 정신의 진보에 따라 필연적으로 일직선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주장한 진보사관의 대표적인 학자들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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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프스카야
쿠루프스카야 Nadezhda Krupskaya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러시아제국의 여성교육학자이자 레닌의 부인. [내용] 러시아의 여성교육학자로서 레닌과 결혼하여 볼세비키 혁명에 기여한 여성이다. 1869년 샹트페테스부르크에서 귀족이지만 가난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나데즈다 콘스탄티노브나 크루프스카야(Nadezhda Konstantinovna Krupskaya)였다. 1890년부터 교육학자로서 러시아제국에서 활동하였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1894년 마르크스의 사상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모임에서 레닌을 만나 공산주의 혁명에 대해 함께 연구하였다. 1898년 시베리아에 수감되어 있던 레닌과 결혼하였으며, 석방된 후 뮌헨에 정착하였다가 런던으로 이주하며 볼셰비키 혁명을 준비하였다. 갑상선중독증이 있어 평생 안구돌출증과 생리불순 등에 시달리며 아이를 낳지 못했다. 1903년부터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볼셰비키 당원으로서 모든 조직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조직원들을 교육하는 일을 담당했다. 1905년 중앙위원회 비서가 되었고 1917년 10월 혁명 후 교육인민위원회 대리인, 1920년 교육위원회 의장을 역임하는 등 소비에트 교육시스템의 기초를 수립하였고 도서관 사서교육에 힘썼다. 남편 레닌의 지위에 따라 국가원수 영부인으로 존숭되었으나 교육학자로서 교육부의 일에 전념하였다. 1922년 12월 30일부터 1929년 1월 25일까지 교육인민위원회 중앙위원으로 있던 중 1924년 1월 24일 레닌이 사망하였고, 1929년 1월 25일부터 1939년 2월 27일 사망할 때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교육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겸 중앙위원으로 재임하였다. 『통일사상요강』에는 공산주의 교육을 소개하면서 개별적인 기술 교육에 반대한 반면에 총합기술의 교육(polytechnism)을 중시하고 노동과 결부된 집단주의 교육을 체계화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 ‘레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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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쿠웨이트 State of Kuwait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럽권역 중동대륙의 선교국. [내용] 쿠웨이트국(State of Kuwait)의 면적은 한국의 경상북도 크기인 17,818평방킬로미터이며, 인구는 460만 명(2018년 IMF 추정치)이고, 수도는 쿠웨이트시(Kuwait City)이다. 언어는 아랍어와 영어가 통용되고 있으며, 종교는 이슬람교 76퍼센트(수니파 70퍼센트, 시아파 30퍼센트)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으로부터 1961년 2월 25일에 독립했다. 정부 형태는 입헌군주국이며, 의회는 단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1인당 GDP는 31,916달러(IMF 통계)이며, 화폐는 KWD(Kuwait Dinar)이다. 한국과는 1979년 6월 11일에 수교하였고, 교민은 약 2,500명(2018.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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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퀘이커 Quaker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650년대 2세대 신본주의운동의 대표적인 기독교 교파. [내용] 1650년대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운동에서 시작된 기독교 교파이다. 종교친우회(Religious Society of Friends)는 하나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에서 ‘친우회’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떤다.’는 의미로 퀘이커라고 불리게 되었다. 정형화된 교리, 종교의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만인평등에 따라 목사나 장로 등 직제를 두지 않는다. 주일예배도 정해진 식순 없이 명상과 묵상을 하다가 자유롭게 기도하거나 찬송하는 형식을 취한다. 칼뱅주의의 예정설과 원죄를 부정하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이 있어서 기르는 법을 배운다면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주의자로 집총과 전쟁을 거부하고 예배 이외에 월회, 3개월 마다 열리는 4계회, 년회(총회) 등을 열어 퀘이커들의 행동지침인 ‘퀘리’를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해 종교의 자유를 허용 받았다. 한국은 함석헌이 오랫동안 한국 대표를 맡았다. 『새공산주의비판』에서 2단계 신본주의운동의 한 교파로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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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가든
퀸가든 Queen garden 항목체계 성지 건립시기 2008.2.25 소재지 하와이 [정의] 미국 하와이 코나지역에 위치한 참부모님의 공관. [내용] 퀸가든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참부모님의 공관이다. 하와이공관은 킹가든(King garden)과 퀸가든(Queen garden)으로 나뉜다. 킹가든은 교육을 위한 소강당과 야외식당으로 완성된 아담(남성)이 사는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퀸가든은 참부모님의 공관으로 완성된 해와(여성)가 사는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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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가든 봉헌식
퀸가든 봉헌식 퀸가든 奉獻式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하와이 코나지역에 퀸가든을 봉헌한 예식. [내용] 참부모님이 2008년 2월 25일 하와이 코나지역에서 퀸가든을 봉헌한 행사이다. 참부모님은 하와이 코나지역에 완성된 아담이 사는 집으로 킹가든을 봉헌한 데 이어 완성된 해와가 사는 집으로 타락한 이후에 복귀된 에덴동산이 아니라 타락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으로 퀸가든을 봉헌하였다. 이곳에서 2007년 3월 17일 환태평양시대가 선포되었고, 2008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제1회 하나님 섭리사의 책임분담 해방권 완성선포 교육’이 실시되었다. 하와이 킹가든은 교육을 위한 소강당과 야외식당, 퀸가든은 참부모님의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여자수련생의 숙소는 당시 킹가든에 있던 창고를 정리한 남루한 방이었으며, 남자수련생의 숙소는 푸른 잔디 위에 설치된 대형 텐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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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Republic of Croatia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럽권역 동유럽대륙의 선교국. [내용] 크로아티아공화국(Republic of Croatia)의 수도는 자그레브(Zagreb)로 한반도 1/4의 면적인 56,594평방킬로미터의 작은 국가로 인구 중 86.3퍼센트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 구(舊)유고연방에서 1991년 6월 25일에 독립하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크로아티아공화국 선교는 1979년부터 1994년까지 유고슬라비아와 통합하여 진행되었다. 유고슬라비아의 루돌프 마이에르(Rudolf Maier) 선교사가 겸임하고 있다가 1994년부터 독자적인 선교국으로 분리되어 임진우 선교사가 국가회장을 맡게 되었다. 1996년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유럽지도자총회를 통해서 3만가정인 안토 토마스(Anto Tomas), 1999년에는 3만가정인 크루노슬라프 페트릭(Krunoslav Petric)이 국가책임자로 결정되어 선교에 힘썼으며 2004년에 다시 안토 토마스가 국가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참부모님에 의해 안토 토마스가 아벨 국가회장, 일리자 코식(Ilija Kosic)이 가인 국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크로아티아공화국에는 1994년까지 대학원리연구회, 국제구호친선재단, 세계평화교수협의회가 창립되어 활동하였다. 1994년에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와 세계평화여성연합, 1997년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1999년에는 순애동맹(純愛同盟, Pure Love Alliance)이 창립되었다. 1992년 8월 25일 3만가정 축복식을 통해 4명의 형제와 4명의 자매가 축복을 받아 정착하였다. 1993년 11월 11일에 참어머님이 크로아티아공화국을 방문하여 수도 자그레브에서 주최한 집회에 교육, 종교, 산업경제, 언론 분야 등의 주요 지도자 226명을 포함한 약 750여 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이후로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