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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온
정석온 鄭錫溫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감사 할머니 출신지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457번지 성별 여 생년월일 1901년 [정의] 성주교 김성도의 딸로 태어나 입교하여 정성생활과 전도활동에 헌신한 원로. [내용]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부친 정항준과 모친 김성도의 둘째로 태어났다. 먼저 아들이 태어났으나 급체하여 죽은 다음날 태어나 이웃할머니에게 맡겨져 성장하였다. 여자로 태어나 차별받는 인생을 살기 시작하였으나 후에 아들이 세 명이나 태어나면서 집에 들어와 살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와 핍박 속에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던 상황에서 성장하면서 어머니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18세에 결혼하였다. 신령한 역사를 일으키며 성주교를 창교한 어머니와 교류하며 지내다가 해방 후 자녀들과 함께 남하하여 지냈다. 한국동란 후 대구에서 사업을 하던 동생 정석천을 도우면서 재림주님을 만나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 그러던 중 신문에 이화여대 퇴학사건이 보도된 것을 보고 상경하여 교회를 찾아와 ‘원리’ 말씀을 듣고 1955년 동생 정석천, 조카 정수원 등과 함께 입교하였다. 1956년 참부모님 탄신일 이후 본부교회에서 정성을 들이라는 말씀을 듣고 기도의 정성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1957년 7월 순천을 시작으로 정읍 등에서 개척 전도활동을 하였다. 1959년 7월 10일부터 탑골공원에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참부모님이 ‘감사 할머니’라고 부를 정도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0년 8월 27일 성화하였다. ☞ ‘김성도’, ‘정수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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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진
정석진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정평화 출신지 평안북도 철산 성별 남 [정의] 통일교회에 입교하지 못하고 별도의 신앙공동체를 꾸린 김성도의 차남. [내용]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부친 정항준과 모친 김성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령한 역사를 일으키며 성주교를 창교한 어머니 김성도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4년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음란한 집단으로 오해받아 핍박받는 곳이 있으면 참된 교회인 줄 알고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아담 가정의 가인과 아벨 같은 입장에서 재림주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와 금식을 이어가며 정성을 들였다. 한국동란 중에는 제주도로 피난하여 기도 중에 예수님이 나타나 “내가 마신 잔을 너도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묻게 되자 “마시겠습니다.”라고 응답하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가시관을 쓰는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대모님과 7개월 동안 생식을 하면서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1955년 이화여대 사건 이후 핍박받는 교회를 찾아 원리를 듣고 입교한 누나 정석온, 형 정석천과 달리 입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성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육식과 화식 대신 생식을 하던 금욕주의적인 공동체 ‘시리미기 생식마을’을 꾸려 경주에 정착하여 살다가 1990년 82세로 사망하였다. ☞ ‘김성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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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천
정석천 鄭錫天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성별 남 생년월일 1906.6.25 [정의] 김성도의 장남으로 초창기 입교하여 기성가정으로 축복을 받은 원로. [내용] 1906년 6월 25일 아들을 고대하던 부친 정항준과 모친 김성도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첫째로 아들을 낳았으나 급체하여 죽고 딸을 낳은 후 다시 딸 쌍둥이를 낳으며 시댁에서 핍박을 받던 중 낳은 아들이다. 그러나 모친은 출산 후 정신이 이상해져 교회에서 안수기도와 특별정성을 들인 후 완치되었다. 모친이 완치된 1년 후 정석천도 병에 걸려 기도를 받고 낳게 되었다. 모친 김성도는 이후 신앙생활에 심취하였으나 철산군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부친은 모친의 신앙생활을 반대하였다. 부친 사망 이후 김성도는 더욱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신비체험을 하고 성주교단을 창립하였다. 모친을 도와 성주교단을 창립한 뒤 일제의 탄압으로 함께 수감되기도 하였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모친이 돌아가면서 “음란한 집단으로 오해받아 핍박받는 곳이 있으면 참된 교회인 줄 알고 찾아가라.”는 유언을 남겨 해방 후 남하하였다. 대구에서 사업을 하면서 재림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다가 1955년 이화여대 관련기사를 보고 교회를 찾아가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1956년 10월 성화장년회 사업부장을 맡는 등 경제분야에도 기여하였다. 1959년 제빙공장 인화실업을 인수하여 경영하였으며 1960년 11월 인주교회 인도자이자 토기공장 경영도 맡았다. 1963년 2월 기성가정으로서 축복을 받았으며 1976년 11월 71세를 일기로 성화하였다. ☞ ‘김성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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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정성 精誠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온갖 힘을 다하려는 독실한 마음. [내용] 온갖 힘을 다하려는 열성적이고 진실한 마음을 가리킨다. 사심이나 거짓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나 규율을 온전히 지키고 받들려는 독실한 마음이다. 또한 정성은 자신을 낮추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받드는 경건한 신앙적 행위이기도 하다. 참부모님은 타락한 인류는 정성을 들이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의 조건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정성은 일편단심,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보다 상위의 존재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흔히 정성을 들이는 방법으로 기도와 금식, 경배, 훈독, 헌금 등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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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원
정수원 鄭壽源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성별 남 생년월일 1930.3 [정의] 김성도의 장손으로 입교 후 36가정 축복을 받은 우크라이나 국가메시아. [내용] 1930년 3월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장좌동 802번지에서 부친 정석천과 모친 최애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모 김성도가 세운 성주교단 신앙을 하면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 ‘새 주(主) 새끼’로 불렸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모와 부친, 숙부가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출옥한 후 조모가 타계하였다. 해방 후 남하한 후에도 언젠가 새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한국동란 발발 후 군에 입대하였다. 1955년 6월 고모를 포함한 부친과 함께 입교하였으며 1957년 육군 중위로 제대 이후 1958년 9월 충주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1960년 10월 전북 이리 지역장으로 부임하였다. 1961년 3월 김경남과 36가정 축복결혼을 받은 뒤 9월 경남 초대지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후 전북 지구장을 거쳐 1969년 7월 영등포 지구장, 1972년 7월 경북 교구장으로 시무하였다. 1973년 국제승공연합 사무총장, 1975년 6월 일화판매주식회사 대표이사, 1976년 1월 협회 전도부장, 1977년 총무부장, 1979년 전도부장을 겸직하였고 1981년 상도1동 교회를 개척하고 1992년 순회사실장을 지내며 회갑 기념문집으로 『감사하는 신앙』을 출판하였고 우크라이나 국가메시아로 봉직했다. 1996년 33년 이상 목회를 한 공로로 참부모님 공로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2월 천일국 주인상, 2013년 참부모님 천일국 기원절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 슬하에 6남 2녀의 8남매를 두었고, 2013년 4월 17일 성화하였다. 참부모님으로부터 ‘축 천성입국성자(祝 天城入國忠誠子)’라는 휘호를 하사받았다. ☞ ‘김성도’, ‘김경남’, ‘정석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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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정신 精神 / Spirit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지성이나 이념 등의 고차원적인 마음. [내용] 일반적으로 물질 또는 육체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마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고차원적인 심적 능력, 즉 과학이나 예술 등을 창작하는 활동과 관련된 마음을 가리킨다. 마음이 주관적 또는 정서적이며 개인의 내면에 머무르는 것이라면, 정신은 지성이나 이념에 의하여 지지되는 고차적인 마음의 움직임으로 개인을 초월하는 의미를 지니고 ‘민족정신’, ‘시대정신’ 등으로 보편화된다. 동양의학에서 마음을 심장과 관련시키는 것처럼 마음은 육체 안에 속하는 측면이 강한 반면에 정신은 개인의 신체를 초월해서 우주로 편재 확산하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것은 ‘정신’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스피리트(spirit), 에스프리(esprit, 프), 가이스트(Geist, 독)가 ‘바람’, ‘공기’, ‘호흡’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스피리투스(spiritus), 그리스어의 프네우마(pneuma)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신은 인간의 마음이나 신체를 지배하는 ‘영혼’의 이미지를 지니며, 나아가서는 신이나 초월자의 관념과 결부되어 윤리적, 형이상학적인 성격까지 지니게 된다.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마음이 순수한 심(心)의 작용을 가리키는 반면에 정신은 심의 작용에 기(氣)의 측면이 부가된 의미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정신은 심의 작용 외에 육체에 생명력이 깃들게 하는 주체이다. 철학사를 통하여 정신은 다양한 의미로 설명되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을 추상적 사고 활동으로 해석하였으며, 플로티노스는 초이성적인 지적 직관으로 받아들여지는 원리, 즉 신과 동일시하였다. 한편 독일 고전철학은 정신을 자기의식의 활동으로 받아들였다. 17-18세기의 유물론자들은 정신을 단지 감각에서 생기는 지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은 정신을 물질과 분리된 독립된 존재로는 보지 않았다. 즉 정신은 물질의 변화와 발전에서 생긴 의식의 성립에 의하여 발생하고, 인간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을 통해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일단 정신이 출현하고 나면, 그것은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존재를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정신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을 불러일으키며, 또한 역으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은 정신을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개별 정신은 ‘시대정신’ 또는 ‘민족정신’이라는 초개인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 ‘마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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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사관
정신사관 精神史觀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류의 역사가 정신의 진보에 따라 일직선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사관. [내용] 18세기 계몽주의 이후 근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역사관이다. 역사를 신의 구속적 섭리로 이해했던 중세와 달리 진보사관은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며, 인간의 정신 내지 이성에 의해 역사가 거의 일직선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요 수학자 콩도르세(Condorcet, 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1743-1794)는 인간의 이성이 각성하면서 역사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진보해 나간다는 낙관론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진보사관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헤겔이나 마르크스는 역사의 직선적인 진보보다는 모순과 지양의 변증법의 논리에 따른 발전을 더욱 강조하였다. 자유주의 경제와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진보사관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진보의 지속성에 대한 여러 의문이 제기되면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역사가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분담에 의해 발전해 나간다는 섭리사관을 제시한다. 또한 역사를 직선운동으로 파악하지 않고 전진운동과 원환운동을 동시에 지닌 나선형운동으로 이해한다. 역사는 창조이상세계의 실현을 향하여 발전해 나간다는 전진적 성격과 더불어 섭리적 중심인물을 세워 탕감법칙에 따라 이상세계를 복귀한다는 원환운동(圓環運動)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진보사관은 섭리사관의 한 측면만을 부각시킨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 ‘사관’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