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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二性性相의 中和的 主體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두 종류의 이성성상이 조화롭게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 [내용] 『원리강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 또는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존재한다. 여기서 성상은 피조물의 무형적, 기능적 측면의 궁극적 원인을 뜻하고 형상은 피조물의 유형적 요소의 근본원인을 뜻한다. 양성과 음성은 성상과 형상의 직접적인 속성으로 양은 밝음, 음은 어두움을 각각 의미한다. 창조 이전에 하나님 안에서 두 종류의 이성성상은 심정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통일되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중화(中和)라고 한다. 두 종류의 이성성상은 별개의 이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본래 하나이다. 따라서 성상에도 형상적 요소가 있고, 형상에서 성상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다만 성상은 성상적 요소를, 형상은 형상적 요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는 양성과 음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 안에서 이성성상은 중화를 이루고 있었으나 창조가 시작되면서 이성성상 간의 차별이 생겨나 성상과 형상, 양성과 음성이라는 상대적인 속성으로 분립되어 피조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 ‘중화’, ‘이성성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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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담
이소담 李小淡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남도 평양시 신창리 41 성별 여 생년월일 1909.7 [정의] 초창기에 입교하여 여러 지도자들을 전도한 원로. [내용] 1909년 7월 평안남도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하는 부친 슬하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부친은 정주시 신리 납천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앙을 하던 조부와 살았으나 장로교에 입교하여 평양에서 살게 되었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1933년 4월 이화여전을 졸업했으며, 해방 후 한복연구원을 설립한 뒤 개량복 관련 특허를 받았으며 재봉과 관련된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서울시 여름옷으로 신생활복 디자인이 채택되어 발명협회 이사가 되었으며, 보건사회부 생활개선 의복분과위원과 교과서 편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52년 서울대 가정과 강사로 출강했고, 개량복 30여 종으로 패션쇼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유효민의 소개로 세대문교회에서 ‘원리’ 말씀을 듣게 되었다. 참부모님을 뵙고 신앙에 확신을 가진 뒤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1954년 12월 18일 입교하였다. 1955년 10월 본부교회 유년주일학교 교장을 하였으며 송도빈, 김순화, 김주화, 이필규 등을 전도하였다. 1957년 7월 제1차 하계 40일 전도를 순창으로 나갔으며, 전남과 충남 순회사를 역임했다. 1968년 1차 7년 노정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69년 천호동 교회장, 1980년 6월 전국 순회사를 맡았다. 1999년 1월 8일 성화하였다. ☞ ‘유효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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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이수경 李秀卿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황해도 신천군 무정리 185 성별 남 생년월일 1934.12.8 [정의] 경제 분야에 기여한 36가정 축복가정이자 가나 분봉왕. [내용] 1934년 12월 8일 황해도 신천에서 부친 이봉운과 모친 박정진의 3남 3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948년 3월 1일 부친을 따라 온 가족이 월남하였으며, 제주도에서 생식을 하며 기도의 정성을 들이다가 1953년 4월 14일 가족과 함께 부산교회에 입교하였다. 1954년 섭리를 위한 경제기반을 준비하기 위해 유효민과 함께 사진에 물감을 칠해 길거리에서 파는 사업을 하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졸업하지 못하고 경기대학교로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58년 10월 청년회 총무부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60년 7월 충남 예산교회 전도사를 시작으로 공직을 출발하였다. 1961년 김기영과 36가정 축복을 받았으며, 1961년 9월 1일 충북 지구장으로 발령받아 시무하였다. 1969년 한국 본부에서 경리부장으로 시무하다가 1974년 5월 1일 참부모님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78년 6월부터 일성종합건설 사장을 시작으로 선도산업 부사장, 일신석재 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독일 통일그룹 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섭리적 중책을 맡았다. 교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67년 14년 노정 공로대상, 1996년 협회 33년 이상 근속 공로상, 2003년 천일국 주인상, 2004년 협회창립 50주년 섭리노정 공로상, 2012년 참부모님 탄신 및 고희 기념 공로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9월 아프리카 가나 국가메시아로 발령받고 2009년 분봉왕이 되었으며, 2012년 11월 10일 성화하였다. ☞ ‘유효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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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스라엘 Israel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민족, 국가, 이념, 신앙을 총칭하는 집합적 개념. [내용]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긴 후 부여받은 이름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이스라엘은 민족, 이념, 땅, 국가, 신앙 등을 총칭하는 집합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출애급과 가나안 정복 때에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족장으로 하는 12개 지파의 자손들을 뜻하였고, 통일 왕국시대에는 이스라엘 국가와 국민을, 분열 왕국시대에는 북조 이스라엘을 의미했다.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의 멸망 후에는 야곱을 조상으로 하는 모든 유대인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신약시대에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이스라엘의 기원은 족장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됐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그의 자손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의 열두 아들과 후손들로 하늘의 선민을 이루었다. 이후 모세를 세워 출애급의 역사를 단행하여 이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정복 이후 이스라엘은 각 지파들을 중심으로 느슨한 연맹체제로 운영되다가 마침내 통합되어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첫 왕 사울을 거쳐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져 오던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 이르러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대로 갈라졌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가 북조 이스라엘을 정복했고, 586년에는 바빌로니아가 유대를 정복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국가 개념이 아닌 야곱을 조상으로 하는 모든 민족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흥강국 페르시아가 바벨로니아를 점령한 후 이스라엘 민족은 고레스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새 이스라엘의 부흥을 꾀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헬라 대제국을 형성하면서 이스라엘은 다시 톨레미 왕조와 셀류쿠스 왕조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셀류쿠스 왕조가 로마군에 패하여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이후 이스라엘은 하스몬 가에 의해 지배되다가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하면서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로마의 속령 하에서도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 나마 하스몬 가 자손들의 지배를 받았으나 B.C. 37년에 해롯이 하스몬 가를 타도하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헤롯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사망 후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 총독의 직할로 넘어가게 되었다. 로마의 압제 하에 놓인 이스라엘은 로마 항쟁을 펼쳤다. A.D. 66년부터 70년까지 지속된 이 유대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에 다시 세워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이스라엘은 주로 민족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으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한 후 그의 후손들을 제1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선의 터전을 예비하라고 명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믿고 따름으로서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완성하고 성막과 성전을 중심으로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세계적인 기대를 조성하여야 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2000년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하며 때로는 사랑과 위로로, 때로는 고난과 시련으로 그들을 이끌어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소망과 달리 초림 메시아로 온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이단자로 몰아 핍박하고 박해하였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과 교법사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로 인해 유대 민족 전체가 예수님을 불신하여 십자가에 매달고 말았다. 하나님은 사탄 편으로 돌아선 이스라엘의 선민 자격을 박탈하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한 기독교 성도들을 제2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웠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오늘날까지도 민족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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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국가)
이스라엘(국가)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유대교와 기독교의 본향이자 성지인 국가로 종교 평화의 시금석이 되는 지역. [내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기 위해 준비한 복귀섭리의 중심국가로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본향이자 성지로 규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종교 갈등을 풀어야 하는 종교 평화의 시금석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처음으로 참부모님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것은 1965년 제1차 세계 순회의 기간이었다. 참부모님은 예수님의 노정을 생각하며 일주일 동안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성지를 선정하였다. 그리고 1969년 유럽을 방문하였을 때 중동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말씀을 따라 네델란드에서 1971년 바트 보란도, 1972년 미카엘 게뿌케스를 이스라엘로 파송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선교활동은 현지의 여러 종교적 어려움 때문에 뿌리를 내리기 쉽지 않았다. 이후 에반스 존슨, 폴로이드 크리스토퍼슨 등은 미국에서 발행되던 「뉴스월드」의 중동특파원으로 비자를 취득하여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기반 위에 1990년부터 중동의 이슬람 지도자들이 미국에서 통일원리 수련을 받을 수 있었고 1992년 축복결혼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ILO)의 대화를 촉진시켜 중동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모델을 보여 주었다. 1975년부터 일본인 우루가 마사히로가 이스라엘 선교사로 활동하여 1996년 참부모님으로부터 21년 선교사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94년 세계평화여성연합에서 파송된 일본 여성 선교사들은 여성의 손으로 중동평화를 촉진시킨다는 사명으로 1만 명 회원 만들기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스라엘에 파송된 10명의 여성 선교사들은 양로원 위문 및 종이접기 교실, 학교에서 초밥 만들기, 재봉 지도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인정받아 1995년 1월 세계평화여성연합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법적 인가를 받았다. 1996년에는 아베 마사토시 부부가 선교사로 부임하면서 보다 활동을 확대하기 위해 세계평화여성연합에서 20명의 선교사들이 파견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97년 4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일본 자매결연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이스라엘 여성들과 이슬람 여성들을 연결하여 중동평화이니셔티브(MEPI)를 통한 이스라엘에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스라엘의 국가메시아로 임명된 아베 마사토시와 아베 치즈코 부부는 즉시 일주일간 이스라엘을 방문한 후 귀국하자마자 전 가족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360만 쌍 축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1997년 1월 360만가정 제1호 유대인 커플이 탄생하였다. 사사키 리키 선교사는 약 5년간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으며, 야마오 도모코는 1997년 5월부터 40개월간 이스라엘 선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기반 위에 참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2000년대 초 미국 목사 120명이 그들 교회의 십자가를 내리는 운동을 한 후 그 십자가를 가지고 2003년 5월 15일 예루살렘에 와서 십자가를 유다가 예수님을 판 돈으로 사들인 피의 밭에 묻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평화선언에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지도자들이 동참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 평화선언을 계기로 중동평화이니셔티브가 시작되어 세계 6개 대륙의 대표가 예루살렘에 모여 종교인회의와 평화행진을 40회 이상 진행하였다. 이후 2003년 12월 22일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대관식이 거행되었으며, 행사 전체가 이스라엘 국영 TV에서 전국적으로 생중계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은 현재 활발하게 선교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국가로 2017년 이스라엘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 창립식이 이스라엘 국회에서 열렸으며, 2018년 1월 29일 이스라엘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 창립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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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수도원
이스라엘수도원 이스라엘修道院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김백문이 1943년경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섭절리에 세운 수도원. [내용] 김백문은 백남주 목사의 제자로 20세기 초 한국의 신령역사에 동참하였던 종교지도자이다. 1935년 봄 스승 백남주 목사를 따라 철산 김성도 부인을 중심한 성주교 모임에도 참여했다. 1937년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류를 체험하였고, 1940년 4월 신령파의 한계가 진리 체계의 빈곤에 있음을 깨닫고 서울 조선신학원에 입학하였다. 신사참배 거부로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1934년 7월경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섭절리로 피신하였다. 원산과 철산의 주류 신령역사를 체험하면서 창조, 타락, 복귀의 새 말씀을 신학적 체계로 정립하였다. 이후 재림주를 맞이할 세력을 준비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1944년 6월 2일 예수교 이스라엘수도원 제1기 수도생 입학식을 갖고 교단을 운영하였다. 서울교회는 아현동에서 시작했으나 이후 상도1동 494번지로 옮겨 운영하였다. 참아버님은 흑석동 학창시절 내자동 새예수교회를 왕래하던 중 김백문을 알게 되었다. 해방 이후 김백문 교단에 하늘의 뜻이 있음을 알고 1945년 10월 이스라엘수도원을 찾아가 이듬해 4월까지 인도자로 봉직하였다. 참아버님은 김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서 김백문과 세 여인의 증거를 받았다. 김백문은 1946년 3월초 부활절 특별집회에서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회중 앞에서 참아버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긴 시간 불같은 기운으로 축도를 했다. 솔로몬 왕의 영광이 임할 것을 축복했다. 이후 “이제부터는 문 선생을 따르라.”는 계시를 신도들이 받았다. 그러나 김백문은 참아버님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서 신도들의 길을 막았다. ☞ ‘김백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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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엘
이스마엘 Ishmael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아브라함과 하갈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내용]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의 종인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아들이 없던 사라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하였다. 사라가 이삭을 낳자 이스마엘과 하갈은 사라의 박대를 받아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광야를 떠돌게 되었다. 이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물을 주며 모자를 돌봐 주었다. 이스마엘은 애급 여자와 결혼하여 13자녀를 낳았고 1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이 이스마엘의 자손이라고 믿는다. 아브라함의 종교를 이삭을 통해 전수받은 사람이 유대인과 기독교인이라면, 이스마엘을 통해 전수받은 사람이 무슬림들이다. 성서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헌제하기 위해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무슬림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였고 이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본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이스마엘을 다시 살렸다고 주장한다. 그 후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은 검은 돌이 있는 자리에 신전을 함께 건립했는데, 이것이 메카에 있는 카바(Kaaba) 신전이다. 『원리강론』은 이스마엘이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할 가인 편 인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성공하여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면, 그 터 위에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스마엘과 이삭이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루어야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하자 하나님은 그의 대신자로 이삭을 세웠고, 이스마엘과 이삭의 입장에 에서와 야곱을 세워서 실체기대를 조성해 나가도록 하였다. ☞ ‘이삭’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