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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번뇌 煩惱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집착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갈등을 나타내는 불교용어. [내용]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한역인 번뇌는 ‘오염된 마음’ 또는 ‘괴로운 마음’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며, 근본적으로 ‘나’ 또는 ‘나의 것’에 대한 집착에서 일어나는 괴로운 마음상태를 나타내는 불교 심리용어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괴로움(苦)의 근본 원인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다고 보며, 이 셋을 3독(三毒)이라 한다. 이 셋 중에서도 어리석음(無知)은 모든 번뇌의 뿌리에 해당한다. 「요가수뜨라」에서는 무지를 모든 번뇌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 밭이라고 하였다. 6근(六根, 안이비설신의)이 6경(六境, 색성향미촉법)을 만날 때 6가지 근본번뇌가 일어나며, 이의 확장은 108번뇌로 표현되기도 한다. 여기서 108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경험하는 모든 번뇌를 가리킨다. 불교는 삶 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번뇌의 본질과 실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 극복방법을 제시하는 번뇌학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열반이라는 이상이 실현된다. 대승불교에서는 번뇌가 바로 깨달음(번뇌즉보리)이라는 사유방식이 출현하며, 이로써 번뇌는 부정적인 의미를 탈각하게 된다. 즉 번뇌의 본래 성품이 비었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번뇌를 극복하는 근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탄트라 전통에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번뇌의 바다에 빠진 중생은 번뇌의 실상을 깨우침으로써 번뇌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승불교의 번뇌즉보리 사상은 삶에 대한 매우 적극적인 사유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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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성
번식성 繁殖性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부부가 하나님의 양성·음성의 조화를 닮아 자녀를 번식하는 데 요구되는 역량. [내용] 번식성이란 부부가 하나님의 양성·음성의 조화를 닮아 자손을 번식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역량을 말한다. 인간이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게 되면 하나님의 성상·형상의 통일을 닮게 되고, 성인이 된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부부가 되어 하나가 되면 하나님의 양성·음성의 조화를 닮게 된다. 하나님은 자체의 성상과 형상의 통일, 양성과 음성의 조화에 의해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인간도 마음과 몸의 통일을 이루고 남성과 여성이 부부로서 조화를 이루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의 번식성을 닮아 자녀를 낳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번식성을 닮는다는 것은 남성이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갖추고, 여성이 아내로서의 도리를 갖출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자격을 갖춘 터 위에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음으로써 하나님의 번식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번식성의 완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약속한 3대 축복 중 제2축복인 가정 완성에 해당한다. ☞ ‘완전성’, ‘주관성’, ‘3대 축복’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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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
번제 燔祭 / Burnt offering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짐승을 불에 통째로 태워서 하나님에게 바치던 구약시대의 종교의식. [내용] 번제(燔祭, burnt offering)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희생 제사의 형태 중 하나로서 제물인 짐승을 불에 통째로 태워서 하나님에게 바치던 의식이다. 제물을 태우는 것은 탄원과 속죄, 정화, 감사 등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숭배와 온전한 봉헌을 나타낸다. 번제에 쓰이는 제물은 양이나 염소, 소, 비둘기 등 흠 없는 수컷 동물이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 번제를 드리는 경우가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한 장면(창세기 22:2)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였고, 이삭 또한 반항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절대적으로 따름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생명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번제의 의의를 다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아브라함이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상징헌제 실수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었다. ☞ ‘이삭’, ‘상징헌제’, ‘믿음의 기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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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게르만주의
범게르만주의 凡게르만主義 / Pan-german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독일을 중심으로 게르만민족이 단결하여 세계 재패를 이루고자 하는 민족주의운동. [내용] 범게르만주의(Pan-germanism)는 독일제국을 중심으로 전 게르만민족의 단결과 민족의식을 드높여 그들의 생활권을 전 세계적으로 넓혀 나가려는 침략적 이념과 그 운동을 말한다. 범독일주의(汎獨逸主義)라고도 부른다. 발칸반도에서 러시아를 중심한 범슬라브주의가 거세지자 그에 대응하기 위하여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범게르만주의를 앞세우며 맞섰다. 결국 빌헬름 2세에 의해 범게르만주의가 독일의 세계 정책으로 추진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범게르만주의의 정신은 나치스에 의해 충실히 계승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사상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빌헬름 2세는 사탄 편 아담의 소생급 개성 완성형 인물이며, 히틀러는 사탄 편 아담의 장성급 개성 완성형 인물이다. 즉 하나님의 ‘3대 축복’ 중 제1축복인 개성 완성을 사탄을 중심으로 이룬 인물이다. 또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창한 범게르만주의는 하나님의 ‘3대 축복’ 중 제2축복인 자녀 번식과 관련이 있으며, 세계 제패정책은 제3축복인 만물 주관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사탄 중심한 3대 축복의 비원리 세계를 소생급, 장성급으로 각각 형성했던 것이다. 결국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하늘 편 국가가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3대 축복을 복귀하는 장성적인 탕감조건이 세계적으로 세워질 수 있었다. ☞ ‘카이저(빌헬름 2세)’, ‘히틀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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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냇골 성지
범냇골 성지 범냇골 聖地 항목체계 성지 [정의] 참아버님이 거주하던 범냇골 토담집을 중심한 부산 범일동 수정산 일대. [내용] 참아버님이 남하하여 부산에 처음으로 정착한 범냇골 토담집을 중심한 부산시 동구 범일동 수정산 일대의 성지이다. 참아버님은 1950년 10월 14일 흥남감옥을 출감하여 평양에 도착하여 제자들을 찾았다. 12월 4일 김원필과 다리가 불편하여 자전거에 태워야 했던 박정화를 대동하여 남하하였다. 서울을 거쳐서 55일째인 1951년 1월 27일 부산 초량역에 도착하였다. 거처할 곳이 없어 역에서 추운 밤을 지내다가 일본 유학 시절에 친구였던 엄덕문을 만나 그의 집에 잠시 거처하게 되었다. 평양에서 피난을 위해 남하하던 중 헤어졌던 옥세현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참아버님은 최하층 노동생활을 하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밥을 얻기도 하였다. 참아버님은 1951년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가량 범냇골 근처 나가야(長屋)에서 하숙을 했다. 나가야는 해방 전에 전기회사 직원들의 사택으로 썼던 곳이다. 방은 협소하여 누우면 머리와 다리가 벽에 닿을 정도였고, 친우 엄덕문이라도 찾아오게 되면 비딱하게 누워야 했다. 당시에 참아버님의 주된 일과는 ‘원리’ 집필이었다. 옆에서 연필을 깎기 바쁘게 속기로 집필하였다. 참아버님은 ‘원리’를 집필하는 동안 찬송을 부르며 울고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흑석동에서부터 신앙적으로 가까웠던 이기완을 전도하였다. 이기완은 기독교를 믿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소화하기 힘든 참아버님의 말씀에 혼란스러워서 산상기도를 드리게 되었고, 그때에 ‘문선생의 말씀이 옳다.’라는 영적인 응답과 무형의 하나님이 참아버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환상을 보고 나서 결국은 입교하게 되었다. 참아버님은 1951년 초여름부터 주변에 건축자재가 될 만한 돌과 흙을 파 옮기었다. 1951년 8월 부산시 동구 범일4동(1970년부터는 범일6동) 1513번지, 범냇골 수정산(306미터) 중허리에 아담한 토담집을 지었다. 토담집은 두 평도 안 되는 단칸방으로 부엌은 따로 없었고, 바깥에 솥을 얹을 수 있는 부뚜막이 있었다. 허리를 펼 수 없는 낮은 지붕은 레이션 상자로 연결해서 가물면 하늘이 보였고,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 들어왔다. 비가 오면 방 한구석에 작은 샘이 솟았고, 밑에는 도랑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담집을 나와서 산 정상을 향해 10미터쯤 오르면 크고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참아버님은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였다. 크게 통곡을 하면서 울었기에 그 바위를 눈물의 바위라고 불렀다. 겨울이 되어서 잠바 하나를 걸치고 구부린 채 몰아의 경지에서 기도에 집중하다 보면, 흰 눈이 등에 수북하게 쌓인 경우도 있었다. 참아버님이 토담집을 지을 당시에는 인적이 드물고 공동묘지가 많은 곳이었는데, 이후로 빈민촌이 들어섰다. 1990년대에 그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이 시작되어 토담집 성지가 아스팔트 도로에 편입될 위기에 처했다. 교구장을 비롯하여 식구들이 각계에 청원을 하고 협조를 구해 비록 토담집은 철거하였으나, 그 자리에 범일전 건립을 허락받았다. 부엌 앞에 솟아난 돌을 파헤치니 그 아래로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를 중심하고 범일전이 지어졌다. 도시개발이 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범일전이 토담집의 역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참아버님은 범냇골 성지에 대해 “지금 현재 범일동은 세상으로 보면 호랑이가 산 고개를 넘나들며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는 골짜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사람들, 역적이라든가 반역한 사람들을 갖다 묻는 그런 공동묘지가 있던 골짜기인데, 갈 데가 없어서 거기로 간 거예요.”라며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설명하였다. 참아버님은 범냇골 토담집에서 ‘원리’의 집필을 계속하였다. 밤에는 부산도성을 보면서 명상에 잠기었고, 새벽이면 산에 올라 기도를 하였다. 때론 찬송을 되풀이하면서 울기도 했다. 김원필은 참아버님이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와 노래 소리에 놀라서 깨곤 했다고 한다. 1951년 11월 18일 밤, 참아버님은 김원필을 깨워 불을 켜고 연필과 종이를 준비시키고 “내가 부르는 대로 적어 내려가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한 번에 불러 주었다. 그때에 받아쓴 ‘원리’의 소제목이 ‘역사적 실, 두루마리의 원리적 해결은 한국에서 시작’이었다. 참아버님은 늘 식구를 그리워했다. 하나님은 상선 위에 앉은 참아버님의 주변에 수많은 식구들이 밀려드는 환상을 보여 주며 위로하였다. 1952년 2월부터 옥세현이 하늘로부터 책망을 받고 나서 작정하고 장기적으로 머물면서 부엌일을 맡아서 했다. 1952년 5월 10일 오전에 ‘원리원본’ 집필과 교정 및 교열작업을 마감하였다. 기록 제1권부터 기록 제5권으로 나누어서 쓰고, 각 권마다 두 곳에 구멍을 내어 묶은 총 690여 쪽의 원고이다. ‘원리원본’은 이후에 강현실, 김원필, 이수경, 유효원 등이 직접 필사한 이후로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서 식구들에게 전해졌다. 범냇골 성지에는 영적인 인도를 따라 새로운 식구들이 찾아왔다. 기독교 전도사인 강현실과 목사 이요한이 찾아와 입교하였다. 1952년 5월 10일 ‘원리원본’ 집필을 마친 오후에 강현실이 찾아왔다. 강현실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고려신학교 2학년 학생이면서 범천교회에서 시무하는 전도사였다. 범냇골에 이상한 청년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매일 세 시간씩 일주일간 기도한 끝에 스스로 토담집을 찾아왔다. 이후 말씀과 영적 역사를 통해 입교하였다. 1952년 12월 1일에는 목사 이요한이 찾아왔다. 이요한은 평북 선천에서 유소년기부터 장로교 신앙을 갖고 24세 때 목회를 시작했으며 일본 동부 신학교 재학 중 신사 참배 거부로 퇴학까지 당했다. 해방 직후 서울 등지를 거치며 ‘재림주 한국 강림’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제주도에 피난을 갔다가 부산으로 나왔을 때 서울에서 신앙적 교분이 있던 옥세현을 만나 범냇골로 와서 말씀을 듣게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식구들이 입교하였다. 참아버님은 식구들이 오면 쉬지 않고 말씀을 하였고,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참아버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정을 생각하며 많이 우셨다. 범냇골 토담집은 늘 잔칫집처럼 들떠 있었으며, 날마다 주일 같은 분위기로 사람들이 붐볐다. 식구들은 떡과 음식을 장만해 와서 말씀을 듣다가 간식으로 나눠 먹기도 했다. 참아버님은 돈을 있는 대로 다 털어서 쇠고기를 사다가 실컷 먹이기도 했다. 자신은 단벌이면서 누가 오면 옷을 사 주었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참아버님은 말씀을 전할 때, 비록 옷은 남루하고 밥을 굶는 처지였지만 하늘나라를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큰 소리로 하였다. 서너 사람을 놓고 말씀했지만 수억의 기독교인과 수많은 인류를 상대한다고 생각하였다. 범냇골 시절에 참아버님은 ‘어둠에 싸인 세력’이라는 글을 썼고, 김원필 씨가 메모해 놓았다가 나중에 공개했는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가가 되었다. 1984년 7월 20일 참아버님이 미국 댄버리교도소에 수감이 되었을 때 인종차별과 종교적 박해라며 많은 성직자들이 규탄하면서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였다.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고통을 같이 나눈다는 의미에서 동고회(同苦會)를 조직하였다. 참아버님은 이들이 심정의 조국인 한국을 방문하도록 기회를 제공하였다. 많은 성직자들이 한국을 찾아왔고 범냇골 성지를 찾았다. 토담집에 들린 후 눈물의 바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서 많은 영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기도를 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안겨 준 고질병이 낫는 것을 체험한 성직자도 있었다. 눈물바위를 지나서 더 올라가면 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고, 고요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이곳에서도 참아버님은 많은 기도를 하였다. 그곳을 범냇골 제1성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을 수 있고,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를 가슴에 껴안으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좋은 지리적 장점을 갖는다. 지금도 성화학생이나 식구들이 범냇골 성지를 순례하면서 참아버님이 품었던 호연지기와 세계와 천주를 구원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상속받고 있다. 범냇골 성지 연혁 - 1951.05.01. 범냇골 어귀 나가야에서 김원필 씨와 4개월간 하숙 - 1951.08. 범냇골 토담집 지음 - 1965.02.28. 범냇골 성지 건물 다시 매입 - 1978.10.29. 범일전(凡一殿) 개관식 - 2001.03.18. 범냇골 성역화추진위원회 발족 - 2010.11.21. 범일전기념관 리모델링 개관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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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냇골 토담집
범냇골 토담집 범냇골 토담집 / Dirt-walled house in Beomnaegol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피난 남하 노정 이후 참아버님이 1951년 8월 부산시 동구 범일4동 1513번지, 수정산 중허리에 지은 토담집. [내용] 참아버님은 1950년 12월 4일 평양을 떠나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긴 여정 끝에 1951년 1월 27일 제자 김원필과 함께 부산 초량역에 도착하였다. 지인의 집과 노무자 숙소 등을 오가며 생활하다 거처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1951년 초여름부터 범냇골 인근 수정산(水晶山) 중턱 비탈에 집터를 닦기 시작했다. 김원필, 옥세현, 엄덕문씨와 이웃에 살던 송문규 씨 형제들이 함께 도왔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 깨진 부삽으로 집터를 닦고 돌과 흙을 포개어 사방으로 담을 둘러쌓아 올리던 중에 장맛비로 인해 두 번이나 무너지기도 했다. 결국 세 번째 만에 가까스로 집을 완성하였다. 이 집이 바로 통일교회의 첫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범냇골 토담집이다. 현 주소는 부산시 동구 범일6동 1513번지이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가장 귀한 성지 중의 한 곳으로 추앙받고 있다. 당시 이 토담집은 두 평 정도의 단칸방이었으며 부엌도 없었다. 바깥에 솥을 얹은 부뚜막을 두었고, 출입문은 1미터 남짓으로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들어 올려야 드나들 수 있었다. 벽 한 켠에는 큰 책 한 권 넓이의 종이영창이 있었다. 윗목에는 석유궤짝에 냄비 등을 얹어 놓았고, 풍로는 바깥에 있었다. 지붕은 레이션 상자로 연결되어 있었고, 가물면 하늘이 보이고 궂은 날엔 비가 들이쳤다. 바닥에는 몇 겹의 거적과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넓고 긴 요를 펴 두었다. 비록 작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참아버님은 이곳을 하늘의 왕궁 이상으로 귀하게 여기며 정성스럽게 생활하였다. 또한 1953년 1월까지 이곳에서 머물면서 처음으로 하늘의 계시를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한 ‘원리원본’을 완성하였다. ☞ ‘부림절’, ‘원리원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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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신론
범신론 汎神論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신과 세계의 질적인 대립을 인정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시하는 종교 사상. [내용] 신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종교적, 철학적 사상체계이다. 범신론은 그리스어 ‘pan’(전체)과 ‘theos’(신)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용어로서 세계의 ‘모든 것이 신’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닌다. 18세기 영국의 사상가 J. 톨런드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범신론은 신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 독립 인정 여부에 따라서 두 부류로 나뉜다. 도가나 스토아학파는 신에 대한 세계의 상대적인 독립을 인정하지만, 『우파니샤드』나 스피노자의 사상에서는 그것이 인정되지 않는다. 좁은 의미의 범신론은 대개 후자의 경우를 지칭하며, 이 경우에 세계는 단지 궁극적 실재의 가현으로 간주된다. 범신론은 신과 세계 사이의 질적인 대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신론(theism)과 다르며, 세계에 대한 신의 내재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과도 다르다. 범재신론에서 신은 세계에 내재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초월자이다. 이런 점에서 범신론의 경우에는 신-세계=0이라 할 수 있지만, 범재신론에서는 신-세계=신이다. ☞ ‘범재신론’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