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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식
박봉식 朴奉植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선천 성별 여 생년월일 1907년 [정의] 많은 영적 계시 속에 부산에서 입교한 후 전도사, 순회사로 활동한 초창기 원로. [내용] 평안북도 선천에서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하였다. 신앙을 위해 만주로 이사하여 살다가 기독교 가정으로 시집을 가서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하루는 교회에서 기도 중에 누군가 나타나 3년 뒤 8월 15일에 해방이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이 참아버님이었다. 하나님의 인도로 남한으로 내려와 죽음의 고비를 세 번이나 넘기고 부산에서 참아버님을 만났다. 영적인 인도 속에 참아버님을 모시고 있다가 1957년 진주를 시작으로 거창, 통영, 하동 등에서 교회를 개척하거나 전도활동을 했다. 1966년 2월 27일 김춘학과 기성축복을 받고 40개월 동안 전국 순회사로 활동하였다. 66세가 되었을 때 참부모님에게 활동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77세까지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1983년까지 전도활동을 열심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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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애
박봉애 朴奉愛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경상남도 진주 성별 여 생년월일 1908.9 [정의]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초창기 입교하여 섭리에 기여한 여성 지도자. [내용] 1908년 9월 경남 진주시 평안동에서 장로교회 목사인 부친 슬하에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하며 자랐다. 배화여고 3학년에 편입하여 1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1932년 동경여자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중앙보육학교, 진명여고에서 교사로 있었으며 1938년 이화여전에서 교편을 잡았다. 해방 후 대한부인회에 참여하여 박순천과 여성계몽활동을 하였다. 1948년 4월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에 대한부인회 총무로서 양주군에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한국동란 중에는 인민군에 체포되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였으나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김순화의 인도로 1955년 2월 22일부터 흥인동 통일교회에서 3일 동안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민주당 부녀부장으로 있다가 교회에 대한 박해가 정치권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당으로 입당하였다. 정치적으로 변절자의 오명을 썼으나 교회 탄압에 앞장선 종교단체심사위원회를 해체시키고 교회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였다. 참부모님은 “박봉애가 교회를 지켰다.”고 칭찬을 하기도 했다. 1960년 정계를 은퇴한 후 1961년 7월 경남 순회사를 시작으로 1963년 10월 협회 재단 이사, 1964년 전국 순회사, 1966년 1월 리틀엔젤스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4년 5월 국제여성승공연합 이사장을 맡았으며, 1992년에는 세계평화여성연합 초대 한국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 ‘김순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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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래
박상래 朴祥來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생년월일 1907년 [정의]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 통일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제직당한 초창기 식구. [내용] 1907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신학공부를 한 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교회사를 가르치던 중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1955년 3월 종교를 이유로 파면당하였으나 시험에 들어 1956년 김백문의 ‘예수교 이스라엘수도원’을 찾아가 제4기 수사로 임명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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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주의
박애주의 博愛主義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종, 종교, 국가 등을 초월하여 전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사상. [내용] 박애주의는 전 인류가 인간성을 기초로 하여 공통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인종, 종교, 국가, 신분, 이해관계 등의 벽을 초월하여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사랑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박애주의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감정적으로 밀접하게 이어 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실제로 정치나 경제와 같은 삶의 양상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데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재화를 서로 공유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박애(博愛, philantrophy)라는 말은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일어난 콜더리에(Cordelier)운동에서의 ‘자유·평등·박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란 모토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며 널리 쓰이게 되었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근대 이후 박애주의사상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말세(末世), 즉 사탄 주권의 죄악 세계가 하나님 중심의 선 주권의 세계로 교체되는 시기에 인류 본성(本性)의 사랑이 복귀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 ‘말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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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염
박윤염 항목체계 인물 성별 여 [정의] 명수대교회 시절부터 참아버님을 모신 초창기 제자. [내용] 참아버님이 경성상공실무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흑석동 명수대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부터 참아버님을 따랐던 제자이다. 명수대교회를 거쳐 김백문의 이스라엘수도원에서 다시 참아버님을 만났으며, 간호사로서 성진님 출산을 도왔다.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하였다가 동생인 박경도와 함께 참아버님을 다시 만나 입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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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박정민 朴正敏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전라남도 무안 성별 여 생년월일 1914.8 [정의] 교회 개척과 순회사 등으로 헌신하며 정성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초창기 원로. [내용] 1914년 8월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나 1934년 3월 광주 수피아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35년 4월부터 초등학교 교사로 6년간 시무하였다. 1952년 4월 대구 임마누엘 신학교를 다니다 중퇴하였으며, 부산으로 피난하여 지내다가 1956년 4월 15일 시누이의 인도로 부산에서 입교하였다. 1957년 경남 산청으로 하계 전도를 나갔으며, 1959년 10살 된 막내딸을 고아원에 맡기고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노방전도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 울산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1961년 경남 순회사, 1964년 경북 순회사 등으로 활동한 공로로 1968년 1차 7년 노정 공로상을 받았다. 그 후 대구에서 18년 동안 주일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수련생 음악지도와 신앙지도를 하였다. 1989년부터 본부교회에서 정성생활을 시작하였으며 2003년 2월 6일 천일국 주인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8월 25일 향년 97세로 성화, ‘성애영진효사(成愛永眞孝師)’라는 휘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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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
박정진 朴貞鎭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황해도 신천군 방흥면 성별 여 생년월일 1905.1.15(음) [정의] 부산교회 초대교회장인 이봉운의 부인으로 뜻 발전에 헌신한 초창기 원로. [내용] 1905년 황해도 신천의 기독교 가문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조부와 부친은 보령 장로교회를 건립하고 보령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등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4년 이봉운과 혼인한 후 남편을 내조하며 3남 3녀를 낳고 양육하였다.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더 이상 자유로운 신앙생활이 힘들어져 결단을 내리고 남하하였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서대문 장로교회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1951년 3월 20일 제주도로 건너가 생식을 하며 정성을 들이는 등 신앙생활에 몰두하였다. 하늘의 인도로 1953년 4월 14일 부산으로 나와 참아버님을 뵙고 통일교회에 입교하였다. 1954년부터 1957년까지 부산교회 초대목회자 사모로서 많은 수고를 하였다. 1957년 충남 대천교회를 개척하고 통영교회로 발령을 받아 많은 학생들을 전도하였다. 1958년부터 본부교회에서 정성생활을 하였다. 3남 3녀의 자녀를 축복가정으로 세우고 1992년 성화하였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