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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다노바바
다카다노바바 高田馬場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지 [정의] 참아버님의 일본 유학시절의 추억이 담긴 지역이자 거리. [내용] 일본 도쿄의 한 전철역을 중심한 지역의 이름으로 참아버님의 일본 유학시절에 와세다고등공학교와 하숙집(요도바시구 토츠카쵸 1-503번지) 사이에 있었던 거리이다. 그 당시 하루에 두 번씩 왕래하며 학교를 다녔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이곳 식당가에서 식사를 할 때도 있었으며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물상이나 전당포에서 낡은 옷을 사 입고 짐수레꾼, 연탄배달부 등을 하였던 곳이다. 특히 독립운동의 ‘갑종요시찰인(甲種要視察人)’으로 지정되어 경찰의 감시를 받아 매달 다카다노바바 거리에 있던 토츠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문선명 총재의 눈물어린 자취를 회상하기 위해 일본 가정연합에 의해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개설되었다. 와세다 다카다노바바 성지순례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약 3만 명이 넘는 가정연합 식구들이 순례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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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즈카연수원
다카라즈카연수원 Takarazuka training center / 宝塚研修センター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지 [정의] 일본 혼슈(本州) 효고현(兵庫縣) 다카라즈카에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연수원. [내용] 1966년부터 일본 교회의 주요 교육 및 집회가 열린 연수원이자 성지이다. 1966년 다카라즈카연수원 건설을 기원하며 후지산 등반대회가 열려 일본 식구들의 정성을 모은 기반 위에 같은 해 9월 3일 연수원 개소식이 거행되었다. 다음해인 1967년 8월 7일과 8일에 참아버님이 다카라즈카연수원을 성별하고 성지로 택정하였다. 이후 참부모님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서 집회를 주재하였다. 다카라즈카연수원은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식구들의 교육장소 및 수련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1960년대 민단의 청년학생들 일부가 좌경화되어 각종 폭력사건을 일으키는 등 일본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자 민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수원에서 재일 한국인 청년에 대한 승공원리의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1986년 11월 24일에 연수원을 신축하여 낙성식을 거행하였으며, 현재까지 연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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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단군신화 檀君神話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 [내용] 단군신화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세워진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이다.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은 고려 승려인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史, 1281년경)와 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記, 1287년)에 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고조선(古朝鮮) 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桓因)은 서자 환웅(桓雄)이 인간 세상에 뜻을 둔 것을 알고, 삼위태백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고 여겨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정의 신단수(神檀樹)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하고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과 인간 만사를 주관하며 세상을 이치로 다스려 교화하였다(在世理化). 이때 같은 굴속에 살던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빌자, 쑥과 마늘만을 먹고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만이 그 금기를 지키고 통과의례에 성공하여 웅녀(熊女, 사람)가 돼 환웅과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평양성을 도읍으로 조선을 세운 뒤 아사달로 천도하여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으며, 주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장단경으로 옮겼다가 아사달로 돌아와 산신이 되었다. 『제왕운기』의 판본에는 웅녀가 등장하지 않고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이 되게 한 뒤 단수신(檀樹神)과 혼인시켜 낳은 아들이 단군이라고 나와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 외에도 이후의 조선시대 권람(權擥)의 『응제시주(應製詩註)』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그리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여러 문헌에 수록되었으며, 구한말 자주독립사상을 고취하고자 한 역사서와 단군을 교조로 삼은 대종교 경전에서 적극적으로 재조명되었다. 단군신화는 외세인 원의 간섭으로부터 자주의식을 고취하고자 한 고려말과 구한말에 가장 활발한 담론으로 등장하고 재해석되었다. 단군신화에는 천신숭배와 산악신앙, 환인(桓因)·환웅(桓雄)·환검(檀君)을 3신(三神)이라고 하는 삼신사상, 동물을 씨족의 신으로 여긴 수조신앙 등이 엿보인다. 고대 왕권의 수립과정을 천신의 부계와 지신의 모계의 성스러운 결혼을 통해 건국영웅이 탄생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는 단군신화는 왕권신화이며 영웅신화, 천부지모신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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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련용진
단련용진 鍛鍊勇進 항목체계 문헌 성격 참아버님의 휘호 [정의] 참아버님이 석준호에게 내려 준 휘호. [내용] 1979년 4월 15일 참아버님이 석준호 회장에게 내린 휘호이다. 단련은 몸과 마음을 굳세게 닦음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몸과 마음이 일체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용진은 악이나 공포 혹은 자기의 약한 부분에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전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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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단식 斷食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일정기간 음식물의 섭취를 끊는 행위. [내용] 단식은 건강, 치료, 종교적 수행, 의례적 시련, 인격 완성 등의 목적을 위해 일정한 기간 동안 음식물의 섭취를 끊는 행위로 금식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여러 문화와 종교전통에서 속죄와 정화의 방식, 금욕주의적 영성훈련, 깨달음을 위한 수행법으로서 단식이 행해졌다. 극기와 해탈을 위한 고행으로서의 단식(힌두교, 불교), 속죄일 전 회개와 정화를 위한 단식(유대교),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나 사순절 금식 혹은 수도자들의 단식(기독교), 라마단달의 단식(이슬람교) 등이 대표적이다. 절식에 가까운 단식도 있지만, 식사 외에 음료는 허용하는 단식도 있고,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단식처럼 일몰부터 다음 날 일출까지는 먹을 수 있는 간헐적 단식도 있다. 석가모니가 해탈에 이르는 중도의 진리를 깨달아 설파한 불교에서는 극단적 고행과 단식을 비판하지만 건강과 수행을 위한 적절한 단식을 실천한다. 도교에서는 단식을 벽곡(辟穀) 또는 단곡(斷穀)이라고 하여 신선(선인)이 되기 위한 중요한 수행법으로 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단식은 건강유지와 치료뿐 아니라 종교적 수행, 정신건강, 기도와 정성의 수단으로 행해지고 있다. 다만 극단적인 단식은 건강을 해치고 생명을 앗아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도 회개, 기도, 정성을 위해 3일, 7일, 8일, 21일, 40일 등 일정한 기간을 정해 금식을 하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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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단테 Alighieri Dante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13세기 르네상스 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장편 서사시 『신곡』의 저자. [내용] 13세기 르네상스 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유럽, 라틴 중세문학과 철학, 신학, 수사학의 전통을 망라하여 승화시킨 신학적 명상이자 장편 서사시 『신곡』의 저자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던 르네상스 초 최고의 시인이자 정치사상가였던 단테는 1265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부터 그리스 로마의 고전문학과 수사학, 중세의 신학과 철학, 자연과학을 두루 섭렵하였다. 특히 9세 때인 1274년 만난 소녀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동경은 그녀에 대한 연시에 주석을 붙인 처녀작 『새로운 삶(La Vita Nuova』(1293경) 이후 일생동안 단테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단테는 피렌체시의 현실정치에도 적극 참여하였으나, 흑백 양당의 정쟁에 휘말려 추방된 후 끝내 피렌체로 귀향하지 못하고 방랑생활을 하다 1321년에 라벤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유랑생활 중 지옥편과 연옥편 그리고 천국편의 3부로 된 장편서사시 『신곡(Divine Commedia)』을 비롯하여 라틴어 시론인 『속어론』, 보편군주제의 문제를 다룬 『제정론』, 미완의 작품 『향연』 등을 남겨서 페트라르카 및 보카치오와 함께 르네상스 3대 문인으로 꼽힌다. 특히 르네상스 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신곡』은 어두운 숲을 헤매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아 지옥에서 시작하여 연옥과 천국에 올라 마침내 신의 품 안에서 구원을 받은 영혼의 순례기로서 단테 자신의 고뇌와 좌절, 학문과 삶, 구원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의 이상과 중세의 세계관 그리고 당대의 현실인식을 망라한 대서사시이며 신학적 명상으로서 문학적, 종교적, 사상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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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베르
달랑베르 Jean Le Rond d’Alember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계몽주의에 공헌한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및 철학자. [내용] 달랑베르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었던 계몽주의의 확산에 공헌한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1717-1783)이다. 수학자로서도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명성은 그가 기고가와 편집가로서 참여한 『백과전서』(Encyclopédie)의 유명세에 의해 부각되었다. 『백과전서』는 개방적 태도를 견지하며 과학과 사상의 진흥을 도모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백과전서파)에 의해 편찬되었는데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 동안 프랑스의 정치·사회·문화·학문 전반에 걸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원리강론』은 디드로(Diderot, 1713-1784)와 함께 달랑베르를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형성된 ‘가인형 민주주의’에 사상적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한다. 가인형 민주주의는 가인형 인생관, 즉 인간의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만을 따라 사탄 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인생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주주의를 가리킨다. 달랑베르를 비롯한 백과전서파는 신을 배제하고 무신론 또는 유물론의 입장에서 지식의 통합을 추구함으로써 가인형 민주주의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 ‘가인형 민주주의’, ‘아벨형 민주주의’, ‘프랑스혁명’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