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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
공덕 功德 / Merit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좋은 행동이나 수행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힘. [내용] 공덕은 본래 산스크리트어 ‘구나(Guna)’의 번역어로 업(業)에 의한 연기와 윤회사상을 가진 힌두교와 불교의 전통에서 선한 행동에 갖추어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힘을 의미하였다. 선한 행위에는 복덕, 이익을 가져오는 가치의 특질과 뛰어난 덕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모든 행위가 공덕이지만 불교에서는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가장 큰 공덕으로 본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 은혜로 인한 행위의 덕, 믿음의 행위, 믿음으로 행한 일을 공로 혹은 공덕으로 보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믿음과 행위가 발휘하는 힘에 대한 교파들 간의 신학적 논쟁이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원리’를 통해 인간 책임분담과 그 결과에 대한 공덕을 표현하며, 선의 공적과 조상의 공로 등과 같은 개념을 통해 공덕 및 공적이 개인을 넘어 후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 ‘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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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주의
공동체주의 Communitarian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공동체의 공통된 덕성 및 가치의 실현을 중시하는 사상. [내용]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반발하여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정치사상으로 마이클 샌델,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 등에 의해 주창되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로 규정하고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공동선 혹은 공익을 추구해야 함을 강조한다. 공동체주의의 생성 배경에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오늘날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는 원자화된 개별적 존재로 간주한다. 이에 따라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개별 이익이 우연히 만나는 지점에서 행정적, 법적 제반 절차에 따르면 그만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자유주의가 파편화된 인간관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사회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몰고 갔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공통된 덕성 및 가치의 실현을 삶의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가치중립적 방임보다는 가치판단적 담론을 활성화하여 좋은 삶의 추구에 힘써야 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주창하는 공생·공영·공의주의는 ‘하나님을 중심한 사회주의’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류의 궁극적 부모인 하나님은 자식이 된 인간 누구에게나 균등한 환경과 평등한 생활조건을 이루어 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 된 인류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생산과 공평하고도 과부족 없는 분배 그리고 전체적인 목적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세계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공생·공영·공의주의는 자유보다는 평등, 사익보다는 공익, 그리고 가치지향적 사고와 행동을 더 중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점은 공동체주의의 특징과 유사하기 때문에 공생·공영·공의주의는 공동체주의와 일정한 부분의 결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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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공리주의 Utilitarian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가치판단의 기준을 최대한의 행복 증진에 두는 사상. [내용]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두는 사상이다. ‘옳은 행위의 기준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공리주의는 가능한 최대한의 행복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행위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가 되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한다면 옳은 행위가 되고, 그 반대는 그릇된 행위가 된다. 공리주의가 말하는 행복은 행위의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의미하기에 개인의 이익만을 쫓는 이기주의와는 구별된다. 벤담은 인간의 쾌락과 고통을 양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보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효용을 최우선으로 둘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위험성을 지적한다. 동기와 과정이 부적절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옳은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공리주의자들은 이러한 반론을 극복하기 위해 공리주의 이론을 다각도로 수정하였다. 특정한 행위의 옳고 그름을 그 행위가 유용한 규칙을 따르는지 아닌지로 판단하는 ‘규칙 공리주의’, 쾌락의 질적인 차이를 수용하고 비(非)쾌락주의적 가치도 인정하는 ‘이상(ideal) 공리주의’ 등이 그 예이다. 『통일사상요강』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탄생한 형상적인 가치관, 즉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공리주의는 행위의 결과만을 양적으로 계산하는 데 초점을 둠으로써 내면의 동기가 갖는 윤리적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본 것이다. 칸트식의 ‘의무로서의 선’이 아니라 선한 행위 그 자체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공리주의의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행복을 물질적인 쾌락에 있다고 본 점에서는 견해를 달리하며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행복과 정신적 행복의 통일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통일사상요강』은 벤담의 공리주의가 이상사회의 실현에 있어서 외적인 환경 복귀의 측면에서는 공헌하였음을 인정한다. 공리주의는 사회주의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됐으며 선거법 개정, 식민지 노예해방, 참정권 확대,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개선 등 다양한 사회 개혁운동의 동력이 된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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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권
공명권 共鳴圈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마음과 몸이 일체를 이룬 상태. [내용] 공명권은 공명현상이 일어나는 범위를 가리키는 말로서 참부모님이 사랑의 일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독특한 표현들 중 하나이다. 마치 두 개의 소리굽쇠를 놓고 한 쪽을 치면, 다른 한 쪽에서도 같은 진동수로 반응하며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으로 움직이면, 몸이 그대로 따라서 공명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참부모님은 인간의 마음과 몸이 완전히 공명할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은 하나님의 참사랑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인간의 마음과 몸, 영인체와 육신이 공명권을 이루면 자연히 하나님의 심정과 공명하는 삶을 살게 되고 인격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가운데 인간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참사랑의 공명권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가운데 천리(天理)가 자신과 더불어 연결되기 때문에 신앙이 필요 없고 완전한 해방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에게 물어보면 진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통해 만물만상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화동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며, 더 나아가 영계와도 자유자재로 교통할 수 있게 된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도 그런 공명권의 관점에서 이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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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공사 公私 / The public and the private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공동체와 관련된 공적인 영역 및 가치와 개인과 관련된 사적인 영역 및 가치. [내용] 공적인 것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 및 공공 선과 관련된 일, 편중되지 않은 공평무사함의 의미와 관련된다면 사적인 것은 개인의 이해관계 및 개인적 편중이 있는 사생활의 영역과 관련된다. 동서양 모두 고대부터 공과 사를 구별하고, 공적인 것을 사적인 것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경향이 있었다.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의 가치를 대립적으로 본 고대 중국의 법가, 이를 천리와 인욕의 개념으로 표현한 주자학 모두 공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관점을 견지했다. 고대 그리스에서의 공사 개념은 개인과 가족의 생존적인 차원인 오이코스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폴리스를 구분한 것에 기인한다. 역시 공동체의 영역에 참여하는 공적 삶이 사적인 삶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해 비해 근대의 사회계약론은 개인의 재산권 등 사적인 권리의 수호라는 개인주의적 이념을 공동체(국가)의 근간으로 삼음으로써 전근대에 비해 사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공사관을 발전시켰다. 일반적으로는 공동체의 정치, 경제, 사회제도와 관련된 차원을 공적인 것, 개인의 이해관계와 사생활과 관련된 영역을 사적인 것으로 본다. 통일사상에서는 개체 목적과 전체 목적의 연체적 관계를 통해 공사개념의 구분과 연관성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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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공산주의 共産主義 / Commun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인형 인생관이 결실된 사상. [내용]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여 계급과 사유재산을 소멸하고 인간 평등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공산주의의 어원인 라틴어 ‘콤무네(commune)’는 ‘함께 하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공산(共産)’은 함께 소유하고 생산한다는 뜻이다. 개인이 재산을 독점할 때 나타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는 이상을 지향하는 철학·정치·경제·사회·예술적 이념의 전반을 가리킨다. 공산주의 양상은 원시사회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지만 이론적 체계화는 19세기 말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비롯되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물질적 존재로서 생산 활동을 영위하는 사회적·역사적 존재이다. 따라서 노동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활동한 시대는 초기 자본주의시대로서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였다.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당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 심각한 질병과 범죄에 노출돼 있었다. 반면에 자본가의 집단은 노동자를 도구화해 착취하고 억압함으로써 풍족한 생활을 이어 갔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산물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생산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의 심각한 인간성 상실을 목도했으며, 이를 노동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생산성 저하, 소비력 감소로 인해 공황과 같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은 결코 자신의 이권을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산관계의 악순환 속에서 노동자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무력으로 전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시킴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사회의 토대인 생산관계를 변혁하여 무너진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사상은 공산주의 태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으며, 이후 20세기 초 러시아 노동운동의 지도자 레닌에 의해 보완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현실에서 실현된 적이 없는 실패한 이론이며, 그 허구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21세기에 접어들어 생명력을 잃었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두 아들인 가인과 아벨은 각각 악(惡)과 선(善)의 표시체가 되었다. 인류가 잃어버린 본연의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악의 표시체인 가인이 선의 표시체인 아벨에게 순종굴복하여 일체를 이루어야 하고, 이 기반 위에서 참부모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이래로 가인과 아벨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노력은 ‘가인형 인생관’과 ‘아벨형 인생관’으로 나뉘어 다양한 층위(層位)의 인간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돼 왔다. 오늘날 가인형 인생관은 헬레니즘을 기반으로 신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성과 경험에 의한 합리적인 비판과 실증적인 분석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을 인식함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높이는 인생관’을 포괄적으로 가리키며, 이 가인형 인생관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공산세계이다. 반면에 아벨형 인생관은 헤브라이즘을 기반으로 신(神)을 지향하며 ‘본성의 내적인 추구’를 통한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가리키고, 아벨형 인생관의 삶이 축적되어 오늘날 민주세계가 도래했다고 본다. 따라서 20세기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대립 종식과 화해는 참부모 도래에 앞서 반드시 성취돼야 하는 섭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형제간의 다툼을 끝내고 참부모를 중심으로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의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문제는 철저히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토대로 인간의 의식이 결정된다고 본 점, 더 나은 생산력과 발전의 동력을 대립과 투쟁으로 설명한 점 등에 기인한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물질에 우선한 세계관을 펼쳤다는 점이다. 세계의 실체를 오직 물질로 보는 일원론적 유물론으로는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통일을 이끌어 낼 수 없으며, 현실적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둘째로 폭력에 의한 개혁을 주장함으로써 사랑으로 운행하게 되어 있는 천리를 거역했다는 점이다. 생산관계의 변혁을 위해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성 회복을 구실로 인간을 도구화하는 또 다른 모순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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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종언
공산주의 종언 共産主義 終焉 / Desition of communism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부모님이 공산주의 혁명 이후 70년 내에 공산주의가 종식될 것을 선포한 것. [내용] 참부모님은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70년 내에 공산주의가 종식될 것을 예견하고 지속적으로 공산주의 종언을 말씀했으며, 1985년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세계의 여러 저명한 학자들 앞에서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하였다. 공산주의 종언의 선언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적화를 목표로 한 국제공산주의는 급속도로 팽창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에 심대한 위협이 될 정도로 힘이 막강했다. 1970년대 말부터 1985년까지를 제2의 냉전이라고 부를 정도로 소련과 미국의 대립은 극심했다. 소련의 군사력은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강한 상황이었다. 소련제국의 경제는 피폐하여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강대한 소련의 도전은 위협적이었다. 참부모님은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하여 소련의 핵무기 선제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전략방위구상)계획을 지원하였다. 천문학적인 예산의 부담으로 주저하던 여론을 뒤집어 레이건 정부가 SDI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또한 참부모님은 카우사(CAUSA)운동을 전개하여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 앞장섰다. 카우사는 남북미통일연합(Confederation of Associations for the Unity of the Societies of the Americas)의 약자이다. 스페인어로 카우사는 ‘제1원인, 곧 하나님’으로 의미하기도 한다. 카우사는 유신론적 통일운동으로 무신론적 공산주의 노선을 극복하는 지도자들의 연합기구였다. 카우사는 남북미의 주요 국가들을 대상으로 승공운동을 전개했고,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사상투쟁을 주도하였다. 이밖에도 참부모님은 통일운동에 총력을 기울여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그 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위한 대대적인 승공운동을 전개하였다. 공산주의 종언에 대한 참부모님의 예언 참부모님은 통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사탄 세계인 공산주의도 1917년에서 40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한 후 1957년부터는 중공과의 싸움으로 인하여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30년 동안 내려가서 도합 70년이 되는 기간에는 전멸상태에 들어가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공산주의운동의 몰락을 예언해 왔다. 참아버님은 1985년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될 예정이었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를 앞두고 의장으로 취임한 시카고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인 몰튼 카플란 박사를 댄버리교도소로 불러서 만났다. 몰튼 카플란 박사는 시카고대학교의 명예교수이자 브루킹스연구소와 프린스턴대학 국제문제연구소, 허드슨연구소의 연구원을 역임했고 전략외교연구센터의 소장도 역임한 인물이었다. 참아버님은 몰튼 카플란 박사에게 ‘소련제국의 붕괴’를 선포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 몰튼 카플란 박사는 정치학자의 양심에 따라 소련제국의 붕괴라는 엄청난 선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의 국제정세로 볼 때, 학자들이 그와 같은 예측을 선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뜻이었다. 몰튼 카플란 박사는 참아버님께 ‘어쩌면(maybe)’라는 말을 쓰자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참아버님은 단호히 거부했으며 “당신이 나를 그 정도밖에 못 믿는다면, 아예 그 의장직을 내놓으시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것이오.”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몰튼 카플란 박사는 반신반의하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멸망이 5년 이내로 다가왔다.”고 선언하였다. 후일 몰튼 카플란 박사는 1993년 8월호 『세계사상』지에 “1985년 제네바에서 문선명 선생이 개최한 ‘소련제국의 붕괴’를 테마로 한 세계평화교수협의회의 국제회의가 열렸고, 내가 공동의장을 맡았습니다. 당시의 소련은 아직 그 세력을 세계에 확대하고 있던 공고한 체제라고 생각했으며, 동 회의의 테마는 많은 학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년이 지나지 않아 소련의 붕괴가 시작됐습니다. 실은 동 회의에 앞선 1983년의 한국 세계평화교수협의회 회의 때, 문선명 선생은 세계에서 온 학자들을 앞에 두고 예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연을 했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이 너무 대담하다고까지 느꼈습니다. 그것은 ‘소련 체제는 3년 이내에 흔들리기 시작하고, 7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나는 다시 문 선생의 선견지명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라고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 1985년 8월 13-17일 스위스 제네바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날의 주제는 ‘소련제국의 붕괴; 포스트 소비에트의 전망(The Fall of the Soviet Empire: Prospects for Transition to a Post-Soviet World)’이었다.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탈호텔 바로 옆에는 소련대사관이 위치하고 있었다.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학자들은 담대하게 소련제국의 붕괴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였다. 회의는 12개 분과로 나누어 진행됐고, 90여 명의 논문 발표자와 세계 100여 개 국가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대표들이 참석했다. 소련제국주의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제네바를 비롯한 자유세계의 시민들은 이와 같은 주제발표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국제회의가 종료된 후 소련은 참아버님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케이지비(KGB)를 활용하여 미국 내 참아버님의 평판을 훼손하는 공작을 진행했고, 참아버님의 일가를 테러할 음모도 꾸몄다. 그러나 국제회의 후 4년이 지나지 않아 1989년 후반부터 동유럽의 공산정권에서부터 자유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 국경에 설치돼 있던 50여 개 초소들이 차례로 개방되면서 동서독 주민들의 자유왕래가 시작됐다. 이어서 소련 전대통령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89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소련연방이 무너졌다. 또한 동유럽에 개혁의 도미노 현상이 급류를 타면서 공산주의 종언이 현실화됐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