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대학 大學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사서(四書)의 하나로 내성외왕의 학문인 유교의 요체가 집약된 경전. [내용] 『대학』은 내성외왕의 학문인 유교의 기본강령과 주요 원칙의 요체가 담긴 경전으로 사서에 포함된다. 『대학』은 북송의 사마광이 오경 중 『예기(禮記)』의 한 편(제42편)으로 지은 『대학광의(大學廣義)』와 이후 장구와 주해를 짓고 착간을 바로잡은 주자의 『대학장구』에 의해 별책으로 확립되었고, 송대에 발전한 불교와 도교에 대응하여 유학의 체계를 새롭게 세우려 한 주자가 『예기』의 일부였던 『대학』과 『중용』을 독립시켜 『논어』, 『맹자』와 함께 사서(四書) 중심의 경전체계를 수립하며 핵심적인 유교경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학』의 구성은 경1 장과 전 10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명명덕(明明德:명덕을 밝히는 일)·신민(新民: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지지선(止至善:지선에 머무르는 일)의 3강령(三綱領)과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8조목(八條目) 내용을 통해 유교의 요체를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학』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제왕과 사대부 교육의 필독서가 되었고, 조선 후기 양명학과 실학이 발전하면서 격물치지를 중심한 주자의 성리학을 비판하는 새로운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한국 유교사상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또한 15-16세기에는 팔도의 서원과 향교에서도 읽힐 수 있도록 널리 보급되어 우리나라에 유교적 인생관과 생활방식이 확립되는 데 기여하였다. 『대학』에 나타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유교사상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원리’에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 하나님까지 확장되며 인간이 개성과 가정 그리고 주관성을 완성하는 8단계의 길로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
대학원리연구회
대학원리연구회 大學原理硏究會 / Collegiate Association for the Research of Principles(CARP) 항목체계 기관기업 설립일시 1966.1.10 설립자 문선명, 한학자 [정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원리연구모임 단체. [내용] 대학원리연구회(CARP)는 각 대학에서 통일교회의 ‘원리’ 연구 및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대학가에도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자 창립된 섭리기관으로 각 대학의 동아리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대학원리연구회가 창립되기 전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성화기독학생회’로 출발하여 ‘성화대학학생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64년 서울대 농과대에서 ‘원리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등록하였고 한양대, 진주 농과대학, 고려대, 건국대, 성균관대, 홍익대, 숙명여대 등에서 동아리 등록을 하였다. 1965년 12월 26일부터 1966년 1월 9일까지 2주간 대학생 수련회를 마친 후에 1966년 1월 10일에 ‘전국대학원리연구회’라는 정식 명칭으로 창립하였다. 원리연구회의 이념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 받은 청년들의 모임으로서 대학가에 하나님을 알리고, 통일의 주역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데 있다. 참부모님을 따르는 대학생들이 ‘세계대학원리연구회(W-CARP)’를 중심으로 평화세계의 정착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리연구회는 좌우익의 혼돈으로 방황하는 대학가에 하나님을 알리고 ‘원리’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세계 각국의 대학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에 맞서서 사상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 일본 원리연구회는 뛰어난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 공산주의에 맞서서 하나님주의를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 대학원리연구회는 한·일 대학생 승공대회의 개최와 ‘국제학생 신문’ 발간, 학생 봉사단, 승공 심포지엄, 승공계몽, 농어촌 봉사활동, 교수 초청 통일원리 세미나 개최, 한·일 대학생 친선 세미나 개최, 한·일 합동 의료봉사, 세계 대학생 승공대회 및 대학 순회 심포지엄, 「대보」와 「광장」 창간, 「원리운동」 발행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대한성공회
대한성공회 大韓聖公會 / The Anglican Church in Korea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종교개혁으로 설립된 영국 성공회의 한국 교구. [내용] 종교개혁에 의해 설립된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가 1889년 영국 해군 군종신부로 고요한(C. John Corfe) 주교를 파송하면서 설립된 세계성공회중앙협의회의 한국 교구이다. 미사 등 의례와 성사, 사제제도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을 따르지만 교황의 감독권을 거부하고 지역적 특성에 따라 개방적인 교회체제와 조직을 가진다. 또한 개혁적 교리를 수용하여 구교와 신교 사이에서 중용적인 신조를 중심으로 가톨릭적이며 개혁적인 성공회의 전통을 형성하였다. 합리적 이성과 과학의 발전, 시대적 요청에 유연하게 변화하여 여성에게도 사제서품을 주고 있다. 대한성공회는 1891년 충무로에 선교본부인 부활의 집과 인천 내동성당을 축성하고 1900년에 강화도에 한옥성당, 1914년에는 성미가엘신학원을 세워 191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희준 주교를 배출하고 교구의회가 조직되어 대한성공회의 교리와 전례에 대한 헌장과 법규를 의결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과 한국동란 때 탄압과 수난을 겪었으나 복음전파와 사회선교를 지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공회 조직의 근간은 교구(diocese)와 관구(province)이며, 세계성공회(Anglican Communion)는 현재 38개의 관구와 100여 개의 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성공회는 서울, 대전, 부산의 3교구를 가지고 있고 1992년 ‘대한성공회 헌장 및 법규’ 공포와 함께 35번째 독립관구가 되었다. 교무원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수도원, 사회복지관, 나눔의 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예수敎長老會 / The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한국 개신교의 교파인 장로교의 대표교단. [내용] 대한예수교장로회는 한국 개신교 가운데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의 대표교단이다. 역사적으로 1884년 알렌을 필두로 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고, 1901년 조직된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모체로 1912년에 평양신학교에서 창립된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 탄압과 회유가 거세지면서 1938년 총회가 신사참배에 찬동하기로 결의하자 이에 저항하는 일군의 목사들은 순교하거나 투옥되었고, 1945년 광복 직전에는 일제가 주도한 내선일체의 상징으로 총회도 결국 일본기독교조선교단에 통합되었다. 해방 이후 신학교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 재건을 위해 1949년 명칭을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바꾸었으나 교권 다툼, 신학 및 윤리적 문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내홍과 분열을 거듭했다. 투옥 성도가 주축이 된 재건파와 기존 교권파의 갈등은 1951년 재건파를 중심으로 고신파(고려신학교)의 분열로 귀결되었고, 조선신학교와 평양신학교가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으로 갈라져 대립하다가 1953년 조선신학교를 중심한 진보적인 진영이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분립되었다. 1959년 다시 교회협의회(WCC)의 에큐메니컬운동을 지지하는 통합측과 WCC와 단절과 신앙의 순수성과 보수를 주장한 합동측으로 분열되었다. 이와 같은 분열과 교단 난립에 대한 반성 속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도 경주하고 있으나 개교회주의와 교권주의적 특성으로 가시적 성과는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현재까지 한국 개신교를 주도하며 전도활동, 사회적 활동, 교육과 해외선교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대표교단이다. 신·구약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고 신앙과 행동의 원칙으로 하는 것을 비롯한 12개 신조와 대소요리문답을 신앙의 표준으로 고수하고 칼뱅주의에 입각한 장로교 헌법을 따르며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지지한다. 산하 기관지 〈기독신문〉을 발행하고 있으며, 총신대학교와 장로회신학교 등 총회가 인준하는 10여 개의 신학교들이 있다.
-
대한천리교
대한천리교 大韓天理敎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일본의 나카야마 미키가 창시한 천리교의 한국 교단. [내용] 일본 천리교의 종교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교단 운영은 일본 본부와 분리하여 운영하는 한국 교단이다. 천리교는 1838년 41세의 일본 여성 나카야마 미키(中山美伎)가 병을 고치다 접신하여 계시를 받은 후 고통 받는 인류를 구제하고 신인공락의 즐거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창시한 종교이다. 천리교인들은 나카야미 미키가 원신(元神), 곧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지배하고 섭리하는 천리왕명의 어머니신님이며, 그 가르침에 따라 3교훈과 8계명을 잘 지키면 질병과 재난에서 벗어나 신과 인간이 함께 즐거워하는 감로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매일 손춤의례인 조석근행과 월례제와 원단제 그리고 연 4회의 정례 의례(儀禮) 등을 행한다. 3대 경전으로는 교조의 『친필』과 『신락가』 그리고 『지도서』가 있다. 우리나라의 천리교는 1900년 일본인 포교사 사토 미치다로가 마산에서 첫 신자를 포섭하며 시작해 1917년 서울역 앞에 천리교포교관리소가 세워지며 활발해졌다. 일제시대에 200여 개가 넘던 천리교 교회는 해방이 되면서 사라져 교세가 꺾였다가 1948년 한국인 신자들이 천경수양원(天鏡修養院)을 설립하여 교단을 재정비하고 다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고 1952년 대한천리교연합회, 1956년 대한천리교총본부로 개칭을 거듭하다가 1963년 ‘대한천리교’의 명칭으로 종교법인으로서 등록하였다. 1988년 대한천리회는 왜색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극복하고 교단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본 천리교와의 연계와 지원을 끊고 독립적 교단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예배상징으로 일본적 특성이 강한 신경(神鏡)을 제거하고 초기의 감로대로 회복시켰다. 이러한 노선을 비판하고 일본 본부와의 연계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천리교한국교단’으로 분리되었다. 대한천리교는 의정부에 있는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7개 교구가 있으며, 1956년 김진조 초대교통 이래 현재 12대 교통에 이르고 있다.
-
대형 교회
대형 교회 大型 敎會 / Mega church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신도수와 교회 건물 및 재정 규모가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교회. [내용] 일정 수준 이상의 신도와 재정 및 건물 규모를 가지며 기업화되고 있는 초대형 교회를 말한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주간 예배참석 신도수가 2,000명이 넘는 교회를 메가처치라고 한다. 교회 대형화는 복음주의 계열과 오순절 교회의 부흥과 대도시 인구밀집과 상업자본주의 그리고 소비문화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현대교회의 한 양상이다. 대형 교회는 커피숍, 대형서점, 세미나실, 놀이시설, 상점 등의 복합시설과 다양한 부대사업, 전문적 교회경영 도입 등의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대형 교회의 풍부한 인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자원은 적극적 선교사업 지원이나 사회복지와 봉사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현대의 도시문화에 익숙한 신자들에게 매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교회가 기업화되고 상업적 소비문화에 물들어 신앙의 본질적 측면이 흐려지고 교회와 세속사회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비판은 역으로 작은 교회운동의 전개로 나타나기도 한다.
-
댄버리 수난
댄버리 수난 댄버리 受難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미국의 댄버리 연방교도소에 수감생활을 한 수난. [내용] 참아버님이 1984년 7월 20일부터 1985년 8월 20일까지 댄버리 연방교도소와 하프웨이 하우스에서 수감생활을 한 수난이다. 댄버리 수난의 배경 1970년대 미국 통일운동의 부흥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의 진보진영 인사들로부터 반발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일어났다. 1978년 3월 22일부터 4차례에 걸쳐 박보희 선교사를 증언대에 세운 미국 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위원장: 로널드 프레이저 의원)에서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한국 중앙정보부와 연계하여 미국의 통일교회가 국회의원들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결과적으로 의혹은 해소되었고 통일교회 활동이 합법적이었음이 밝혀졌다. 한편 로버트 돌(Robert Dole) 미국 국회상원 재무위원회 의원은 국세청 장관 도널드 알렉산더(Donald Alexander)에게 서한을 송부하여 통일교회 회계감사를 요청하였다. 통일교회의 자금이 “문선명 목사의 풍족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으므로 면세특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2년간 장부조사 결과 이에 대해서도 혐의 없음으로 판정되었다. 이후 1981년 7월 뉴욕 검찰은 참아버님과 가미야마 다케루(당시 재정담당)를 3일간 탈세혐의로 취조하였다. 조사의 내용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3년간 예금액 160만 달러의 이자 11만 2천 달러와 주식 배당금 5만 달러에 대한 세금 총 7,300달러에 대한 탈세혐의 조사’였다. 당시에 종교기관의 경우에는 종교 지도자의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재정관리 관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아버님의 개인 탈세혐의로 특정하고 조사한 것이다. 또한 1년 2,500달러 이하의 탈세는 혐의가 있더라도 형법기소를 하지 않는 법무부 내규에도 불구하고 참아버님을 별도 조치로 기소하였다. 참아버님의 탈세 혐의 재판과정 이후 법무부 차관보대리 길버트 앤드루스(Gilbert Andrews)의 반려 재조사 지시와 그에 따른 불기소 보고에도 일방적인 기소명령의 처분이 내려졌다. 뉴욕 대배심은 13개 조항의 기소장을 작성하여 법무부 승인으로 기소를 결정하였다. 이후 1981년 10월 15일 뉴욕 지방법원 기소가 진행되었으며, 1982년 4월 1일부터 6주 간 뉴욕연방지방법원 배심재판이 치러졌다. 1982년 5월 18일 참아버님과 가미야마 씨에 대한 유죄평결이 있었고, 동년 7월 16일 참아버님 18개월 금고형과 2만 5천 달러의 벌금이 선고되었다. 1982년 11월 30일 변호인단이 제2심 미연방 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1983년 3월 23일 미연방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개정되었고, 1983년 9월 13일 미연방 고등법원이 원심을 확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984년 1월 26일 변호인단은 미연방 대법원에 상소하였으나, 1984년 5월 14일 연방대법원이 상소를 기각하였다. 이후 1984년 7월 18일 법원의 복역명령이 있었다. 댄버리 수난과 옥중생활 참아버님은 댄버리 연방교도소에서 1984년 7월 20일부터 1985년 7월 4일까지 수감되었다. 1985년 7월 4일부터 8월 20일까지는 하프웨이 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출감을 준비하였다. 최종 13개월의 옥중수난 생활을 겪어야 했다. 참아버님은 댄버리 수감생활을 휴양처와 같은 생활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일제와 북한 정권, 한국의 이승만 정권 하에서 겪은 옥중생활에 비하면 휴양과도 같은 생활이었다는 것이다. 참아버님의 댄버리 연방교도소 내 이미지는 ‘명상하는 사람, 밤낮으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 말없이 일하는 사람, 절대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통상적으로 자정 무렵 취침하여 오전 3시 이전에 기상하였으며, 기상 후 2-3시간 기도와 정성의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는 기름 때로 찌든 행주를 빨고 정리하는 부엌일을 담당하였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말씀을 훈독하며 정성을 들였다. 옥중에서 『충효지원』 책자를 8회 정독하였으며, 『하나님의 뜻과 세계』 말씀을 선정하고 훈독하였다. 화요일과 수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는 면회실에서 참어머님, 참가정, 세계 지도자와 식구들을 면회하였다. 일요일에는 경배식을 하였으며 평소에 외국어 공부, 산책, 당구와 탁구, 수영 등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도 하였다. 다른 수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옥중에서 인격적인 지도도 해 주었다. 그 결과 참아버님에 대한 호칭은 ‘헤이 문(hey Moon)’에서 ‘미스터 문(mister Moon)’, ‘레버런 문(reverend Moon)’, ‘파더 문(father Moon)’으로 변화되었다. 가미야마 씨가 출감한 뒤에는 다른 수인들이 참아버님을 모시고 함께 지내게 되었다. 옥중 평화운동과 기독교 지도자들의 규합 참아버님은 참어머님과 함께 옥중에서 평화운동을 지도하는 한편 기독교 지도자들을 규합하였다. 제4차 세계종교일치회의와 제3차 세계종교청년세미나(1984.8.10-16), 제13차 국제과학통일회의(1984.9.3), 제1회 원리연구회 세계대학생총회(1984.11.2-8), 제7회 세계언론인회의(1984.11.20-22), 제2회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1985.8.13-17) 등 섭리적 대회를 주관한 것이다. 또한 특별휴가 때에는 교회 섭리의식을 집전하기도 하였다. 1985년 1월 1일 하나님의 날, 1월 2일 애승일, 2월 25일 참부모님 탄신일, 4월 20일 부모의 날 행사 등을 주관하였다. 1985년 2월 1일에는 뉴욕 이스트가든의 참어머님과 전화통화로 개천문의 날을 선포하여 지옥과 영계를 직통하는 문을 여는 의식을 가졌으며, 1985년 8월 16일에는 일승일을 선포하였고, 8월 20일 출감과 함께 성수식을 거행하였다. 옥중에서 니카라과 원조를 지시하여 워싱턴타임스를 통해 중남미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여론 환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30만 명의 기독교 목사들에게 서한을 보내고 ‘통일원리’ 소개 자료를 배부하여 기독교 지도자들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1984년 5월 30일부터 1985년 6월 25일까지 종교의 자유대회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다. 댄버리 출감과 참부모님의 승리 참아버님은 1985년 8월 20일 완전히 출감하였다. 모범수로 선정되어 형기 5개월을 단축 받고 세계적 탕감복귀의 노정을 승리한 것이다. 1985년 8월 20일의 출감은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40년 광야노정을 승리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2세권을 중심한 가나안 정착시대가 출발하며 하나님의 한을 해원 성사하는 새로운 시대의 출발기대를 갖추게 되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