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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동 전본부교회
청파동 전본부교회 靑坡洞 前本部敎會 항목체계 성지 건립시기 1955.1.7 건물 매입 / 1955.10.7 입주 소재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1가 71-3번지 [정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게 된 교회. [내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과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이름으로 1955년부터 본부교회로 사용한 교회이자 성지이다. 참아버님은 1950년 북한에서 부산으로 피난해 한동안 부산에 머물다가 상경하였다. 상경 후 1954년 5월 1일 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세대문집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였으나 좁고 환경이 좋지 않아 장충동교회로 옮겼다가 1955년 1일 7일 청파동교회로 이전했다. 초기의 모습은 입구가 서쪽으로 나 있던 좁은 통로였으며, 아래층에는 남북향으로 한가운데 복도가 나 있어 강당과 내실을 가르고 있었다. 참아버님의 방은 2층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으며, 서북의 양촉이 미닫이로 막혀 있던 단칸방이었다. 거실 주변 네 개의 방들은 직원용으로 쓰였으며, 각 방은 미닫이로 연결되어 있었고, 교회의 뒤쪽에는 부엌이 있었다. 1층의 큰 강당은 대예배실로 쓰였으며, 1·2층의 다른 여러 개 방들은 상담실이나 직원들의 숙소로 쓰였다. 참아버님 초창기 생활의 중심은 청파동 본부교회였으며, 그 주변에는 언제나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청파동 본부교회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원리’ 강의가 진행되었고, 참아버님은 뒤편에 앉아서 유효원 협회장의 강의를 지도하거나 학생들과 방문자들을 지켜보았다. 나이 많은 영통한 할머니들은 밤새도록 예배당에서 큰소리로 기도했으며, 식구들의 열정적인 찬송과 기도소리가 종종 이웃까지 들려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참부모님은 1966년 1월 1일 청파동 본부교회를 세계 40개국 120개 성지의 중앙성지로 택정하였다. 그 후 1977년 7월 1일 청파동 2가 9-1로 본부교회를 옮겼으나 전본부교회로 보존되었다. 참아버님은 용산구 청파동은 최고 높은 산 푸른 언덕으로 피안의 이상세계를 향해 푸른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셨다. 청파동 전본부교회에서 참부모님 성혼식(1960.4.11), 3자녀 축복식(1960.4.16), 33가정 축복식(1961.5.15), 72가정 축복식(1962.6.4)이 있었으며 참부모님의 여섯 자녀(효진, 인진, 흥진, 은진, 현진, 국진)도 태어났다. 또한 청파동 전본부교회에서 통일교의 명절들 가운데 참하나님의 날(1968.1.1), 참부모의 날(음 1960.3.1), 참만물의 날(음 1963.5.1), 참자녀의 날(음 1960.10.1)이 선포되었다. 참아버님이 이곳에 머무르던 동안 4차에 걸친 세계 순회를 하였다.(1차, 1965.1.28 2차, 1968.2.1 3차, 1971.12.5 4차, 1972.11.21) 성화학생회 결성, 영어판 『원리강론』 발행, 『성가』 초판 발행, 최초의 40일 전도실시(전국 70개 도시에 2명씩 배치), 최초의 해외 선교사 파송(일본 최봉춘), 최초의 미국 선교사 파송(김영운), 리틀엔젤스 창단, 국제승공연합 창설, 전국 축복가정 3년 전도가 실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파동 전본부교회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중요한 성지이다. 참아버님은 “전본부교회는 세계에서 둘도 없는 가치의 성물이며 명승지이다. 뒷마루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거룩히 우러러볼 수 있는 어느 고층건물의 호화찬란한 자리보다 귀하다. 먼지 하나, 공기까지도 세계의 무엇보다도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 몇 억 달러를 준다 해도 하룻밤을 함부로 잘 수 없는 때가 온다. 세계 곳곳의 뜻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자리를 역사적인 내용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알고 그리워하며 찾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개조해서는 안 되며, 개조한 부분은 원상태로 복원해 놔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참아버님은 “이곳의 기둥이나 문을 보면, 나라가 반대하던 상황과 눈물 흘렸던 깊은 사연의 역사가 회상돼 통곡이 나온다.”고 하였다. 청파동 전본부교회 2층 강의실에서 유효원 전협회장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원리’를 강의했다. 대략 10명에서 30명가량의 청강자들이 있었고, 이틀이면 ‘원리’의 전 코스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청파동 전본부교회의 시절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가』 초판도 발행되었다. 양윤영 교수는 성가 ‘맹세’와 ‘찾으신 영광’, ‘고난의 예수님’, ‘영광의 날’, ‘놀라우신 그 사랑’, ‘사랑의 봄동산’을 만들었다. 청파동 전본부교회의 시절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기틀을 잡은 시기로서 전국에 교회를 세우고 활발하게 ‘원리’를 전파하던 시기였다. 또한 일본과 미국 등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해 세계적인 발판을 마련해 나가던 시기였다. 연혁 - 1955.10.07. 청파동 전본부교회 입주 - 1955.10.16. 서울교회 유년주일학교 개교 - 1956.01.15. 성가 ‘맹세’ 만듦 - 1956.09.25. 영문판 『The Divine Principle』 발행 - 1986.09.29. 『성가』 초판 5백 부 발행 - 1960.01.11. 참부모님 성혼식 - 1960.03.01. 참부모의 날 선포 - 1960.04.16. 3자녀 축복식 - 1960.05.15. 33가정 축복식 - 1960.10.01. 참자녀의 날 선포 - 1960.10.23. 중·고등부 성화 학생회 결성 - 1962.06.04. 72가정 축복식 - 1963.05.01. 참만물의 날 선포 - 1965.01.28. 제1차 세계 순회 - 1966.01.01. 청파동 전본부교회를 중앙성지로 택정 - 1968.02.01. 제2차 세계 순회 - 1971.12.05. 제3차 세계 순회 - 1972.11.21. 제4차 세계 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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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성지
청평성지 淸平聖地 항목체계 성지 건립시기 1971.7.10 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567 [정의] HJ천주천보수련원 일대의 800만 평 규모의 성지. [내용]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HJ천주천보수련원 일대의 800만 평 땅을 청평성지라고 한다. 청평성지에는 천정궁박물관, 선학UP대학원대학교, 청심평화월드센터, 청심국제청소년수련원, HJ매그놀리아국제병원, 청심빌리지 등이 있다. 1972년 7월 10일 참아버님은 장락산(현 천성산) 정상에서 일대 21곳의 이름을 새로 명명하고, 그 뜻을 풀면 이상동산이 나온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 수련원 바로 뒤편 산봉우리인 천승대(天勝臺)와 뒷산 너머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성산, 건너편 봉우리인 선인봉(仙人峰) 등 세 곳을 성지로 지정하셨다. 이처럼 청평성지는 주변의 산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천정궁박물관과 HJ천주천보수련원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정기를 받아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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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수련소
청평수련소 淸平修鍊所 항목체계 성지 건립시기 1971.7.12 소재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567 [정의]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위치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수련소. [내용] HJ천주천보수련원의 옛 이름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주요 수련소이다. 청평수련원(1971년 7월 12일), 천주청평수련원(2000년 3월 15일)이라는 명칭을 거쳐 현재의 HJ천주천보수련원(2019년 2월 15일)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HJ천주천보수련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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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수련소 원성전
청평수련소 원성전 淸平修鍊所 原聖殿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1971년 7월 12일 완공한 청평수련소(HJ천주천보수련원)의 최초의 성전. [내용] 참부모님이 식구들과 함께 직접 건설하여 1971년 7월 12일 완공한 청평수련소(HJ천주천보수련원)의 최초의 성전이다. 참아버님은 1971년 6월 17일 원성전 건립부지에 첫 곡괭이질을 하였다. 악천후 속에서도 건설작업을 직접 진두지휘하여 건물 기초공사 후 불과 2주일 만인 7월 12일 원성전을 완공하였다. 당시의 청평수련소는 1995년 1월 19일 청평 역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주관하던 초교파·초종교 섭리, 교회 지도자 교육, 교회 식구 원리·심정 교육을 전담하던 교육기관이었다. ☞ ‘청평수련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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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연수원
청해연수원 淸海硏修苑 / Cheonghae Training Center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해양섭리를 위해 전라남도 여수시에 세운 연수원. [내용] 참부모님이 세계적인 해양섭리의 결실지로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장수로 183-5에 마련한 연수원이다. 여수 해양섭리의 배경 참부모님은 인류 평화의 실현을 위해 식량자원과 각종 원자재의 보고이며 지구의 70퍼센트에 달하는 해양의 개발을 강조해 왔다. 1963년에는 천승호를 진수하였고, 1970년대 초반 미국으로 향하신 뒤에는 알래스카를 중심으로 수산운수사업과 어업에 관한 ISA(International Seafood of Alaska) 국제수산회사를 설립 운영하였다. 국내에서도 일흥수산과 조선소 등을 운영하며, 제주도를 국제적인 낚시터로 개발하려고 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는 남미에서 브라질 자르딘 등 아마존 강 중심의 개발사업도 구상하였다. 해양섭리의 성지, 여수 청해연수원 2000년대 들어서 해양섭리는 30여 년의 미국 선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참부모님의 지도 아래 한반도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2002년 한국, 미국, 일본의 해양담당자들은 참부모님의 지시 아래 해양섭리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할 대상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3개월간 국내 전역을 조사하고 제1후보지로 여수를 확정해 보고하였다. 참아버님은 2003년 1월 8일 직접 여수를 방문하여 인근을 돌아보다가 현재 청해연수원이 위치한 전남 여수시 화양면 장수리 일대에 위치한 백야곶 봉수대를 찾아 올랐다. 해발 371미터에 위치한 이곳은 수려한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볼 수 있는 장소이다. 후천개벽의 시대에 맞게 평화와 화합, 통일의 기운이 몰려드는 장소이다. 참아버님은 이 일대 300만 평의 토지를 매입할 것을 명하고 “온 세계의 사람들을 여기로 부를 것이다.”라고 하며 새로운 해양섭리의 비전을 선포하였다. 그해 10월 이 땅은 광양항 경제특별지구의 화양면지구로 지정 편입되었다. 3월 9일에는 봉화산 아래 장수리 일대를 돌아보던 중 짓다가 부도난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는 현재의 청해연수원 부지를 갑작스레 방문하였다. 이곳을 즉시 매입하고 건물을 정비하라고 명하여 후천개벽시대를 위한 정성의 장소로 삼았다. 2003년 12월 4일 참부모님은 ‘청해가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어 천일국 제1차 4년 노정을 마무리하던 2004년 4월 19일 참부모의 날과 안시일 선포, 5월 5일 쌍합십승일 선포, 7월 16일 참심정혁명과 참해방·석방시대 개문선포 등 역사적인 행사들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2004년 4월 24일부터 7월 21일까지는 참아버님이 85세의 생애를 85일간 여수를 떠나지 않고 정성을 들였다. 그 정성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섭리의 시대인 후천시대가 출발하게 되었다. 청해연수원은 참부모님이 자주 찾으시며 가정연합 식구들과 평화대사 등 사회지도층을 불러 교육하며 특별한 정성을 드린 곳으로 2000년대 해양섭리의 전진기지로 세워졌다. 참부모님의 정성은 2012 여수 세계엑스포로 이어져 여수를 세계적인 해양박람회의 현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현재도 여수 청해연수원은 참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해양특별교구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해양섭리의 성지로 기려지고 있다. 2010년 7월 1일에는 참아버님이 23시간 30분간 훈독회의 정성을 들이고 잠시 쉬셨다가 다음날 훈독회를 계속하며 정성의 모델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2004년 11월 18일부터 2012년 9월까지 세계해양지도자 40일 특별수련이 실시되어 68차에 걸쳐 7,360명이 수료하였다. 이처럼 청해연수원은 세계적인 해양섭리의 총결실지라고 할 수 있다. 참부모님의 여수 프로젝트 참부모님은 여수 청해연수원 인근에 세계적인 해양관광 중심도시를 건설할 구상을 밝혔다. 골프장, 호텔, 콘도, 학교, 민속촌, 마리나 시설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 국제가정들을 위한 평화이상의 모델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단계로 디오션리조트와 디오션호텔이 완공되어 운영 중에 있다. 또한 디오션컨트리클럽이 18홀 코스로 개발되어 운영되고 있다. 참부모님은 2003년 이래로 130여 회 이상 여수 청해가든을 방문하였으며 500여 일간 정성을 들였다. 해양섭리의 비전을 몸소 제시하고 세계의 해양지도자들을 양성하였으며, 낚시를 통한 평화세계를 위해 정성을 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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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청심만세향화
청해청심만세향화 淸海淸心萬世香花 항목체계 문헌 [정의] 참부모님이 박정해에게 하사한 휘호. [내용] 참부모님이 120개국 세계 순회 노정 때 필리핀에서 아시아와 북미의 대륙회장을 역임한 김병화의 아내 박정해에게 써 준 휘호로 ‘심청이와 같은 청해의 맑고 고운 마음씨는 만세에 길이 빛날 향기로운 꽃이어라’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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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체코슬로바키아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유럽권역 선교국. [내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유럽권역 선교국이자 동유럽 선교의 중심국이다. 1968년 10월부터 동유럽 선교를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온 에밀리아 스테벨(Emilia Steberl) 선교사에 의해 선교가 시작됐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 속에서 브라티스라바(Bratislava)에서 전도의 불길이 시작되어 30개의 개척센터들이 만들어졌다. 1973년 국가로부터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면서 약 30명의 식구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최대 5년의 선고를 받았다. 브라티스라바에서 투옥된 마리에 지브나(Marie Zivna)는 감옥에서 병을 얻어 순교하였다. 참부모님은 마리에 지브나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전 세계 식구들에게 기도할 것을 말씀하였으며, 이후 통일교회 40주년을 맞이한 자리에서 순교의 삶을 기려 그녀에게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오랜 선교의 결실로 1982년 10월에는 10명의 식구들이 동유럽에서 처음으로 축복식에 참석하였다. 1989년 정치적 상황이 호전되면서 서유럽 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등지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원리’의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선교사들이 파송되었다. 1990년부터는 VIP들을 위한 여러 국제회의가 열렸으며, 1992년에 약 60명의 식구들이 축복식에 참여하였다. 1993년 11월 참어머님이 직접 프라하에 방문하여 말씀을 전하셨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두 개의 국가로 나누어지면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본부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교회로 분리하여 운영하였다. 1995년 8월에는 약 56명의 식구들이 축복식에 참여하였다. 1996년부터 슬로바키아에서 참부모님을 알리는 전도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999년 9월 브라티슬라바에 수련소(National workshop center)를 완공한 후 본부로 사용하고 있다. 1999년 5월 참어머님이 슬로바키아를 방문하여 전 인류를 위한 삶의 방식에 대해 연설하여 국가 지도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2002년 5월 15일 슬로바키아에서 국제 리더십세미나를 개최했다. 2002년 각국의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시내에 평화대사관을 세웠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