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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유엔권 출범 선포 한국대회
아벨 유엔권 출범 선포 한국대회 아벨 유엔圈 出帆 宣布 韓國大會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지구촌 평화운동인 아벨 유엔권의 출범을 선포한 한국대회. [내용] 2008년 5월 28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각계 인사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섭리적 대회이다. 참부모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본 환태평양시대의 사관’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강연을 하였다. 참아버님은 “세계평화를 주창하며 출발했던 유엔이 창설 60주년을 넘겼지만 아직 평화의 시대는 요원하다”고 지적하며 “천주평화연합은 유엔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종교와 영적 각성을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데 민간 유엔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문화, 국경을 넘어 백인과 흑인, 동양과 서양,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한 가족이 되어 살 수 있는 교차결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교차축복결혼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강조하였다. 이어 등단한 참어머님은 “기대나 조건 없는 참사랑의 실천으로 지구상에 독버섯처럼 군림해 온 각종 국경과 벽을 철폐하고, 만인이 손잡고 살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자.”고 말씀하면서 지구촌 평화의 중요한 교량이 될 한·일 해저터널과 베링해협 터널프로젝트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환태평양시대’, ‘천주평화연합’, ‘아벨 유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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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형 민주주의
아벨형 민주주의 아벨 型 民主主義 / Abel-type democrac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아벨형 인생관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내용]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도록 이끈 아벨형 인생관을 바탕으로 수립된 민주주의를 말한다. 『원리강론』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실현된 민주주의는 프랑스대혁명으로 인하여 실현된 민주주의와 그 발단부터가 다르다고 본다. 프랑스대혁명으로 실현된 민주주의는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간 가인형 인생관의 소산인 무신론 및 유물론의 주창자들이 절대주의 사회를 타파하는 것으로써 실현한 가인형의 민주주의였다. 왜냐하면 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인간 본성의 내적 추구의 길을 막고 외적으로만 발전하여 독일에서의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에서의 레닌주의로 체계화됨으로써 결국 공산주의 세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영국이나 미국에서 수립된 민주주의는 신을 지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준 아벨형 인생관을 중심하고 기독교 신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하여 절대주의 사회를 개혁하려는 혁명으로써 수립되었기 때문에 아벨형 민주주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아벨형 민주주의는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 ☞ ‘가인형 민주주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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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형 인생관
아벨형 인생관 아벨 型 人生觀 / The abel-type view of lif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인생관. [내용]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인생관으로 가인형 인생관에 대응된다. 『원리강론』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기 위하여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개인에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가인과 아벨 두 형의 분립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왔다고 본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도 이 타락한 세계는 가인형의 공산세계와 아벨형의 민주세계로 분립된다. 그리하여 가인형의 세계가 아벨형의 세계에 굴복하여 재림주를 맞기 위한 세계적인 실체기대가 이루어져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게 된다. 이러한 가인과 아벨 두 형의 세계가 이루어지게 한 인생관은 가인형과 아벨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이 그의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만을 따라서 사탄 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인생관은 가인형의 인생관 또는 가인형 인생관이라고 한다. 한편 중세인들의 본성적인 추구는 외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의 내적인 추구가 히브리 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으로 철학과 종교는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를 아벨형의 인생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인형의 인생관은 중세인을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지만, 아벨형의 인생관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고차적으로 신을 지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 ‘가인형 인생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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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아브라함 Abraha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데라의 아들이며, 이삭의 아버지. [내용]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자 이삭의 아버지이다. 창세기 11장 26절을 보면, 그의 본명은 아브람(Abram)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고, 그의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개명하게 하였다.(창세기 17:5, 15)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는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하란에서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리고 거기에서 취한 모든 재물과 사람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창세기 12:4-5) 창세기 15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물로 바치는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였고, 아브라함은 이에 순종하였다.(창세기 22:1, 19) 그는 175세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아내 사라가 묻힌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창세기 25:7-10) 『원리강론』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노아의 대신이며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축복하였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 ‘이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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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아비뇽 Avign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과거 로마교황청이 이전했던 프랑스 남부의 도시. [내용] 십자군 전쟁 이후 교황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봉건제를 넘어선 왕 중심의 국가 체제를 구상하였다. 필립 4세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성직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기 시작함으로써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1303년 9월 필립 4세와 동맹 세력들은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을 급습하여 체포하였다.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의 후임으로 1303년 10월 베네딕토 11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그는 8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1305년 베네딕토 11세 교황 후임으로 선출된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 교황은 필립 4세 왕의 간섭으로 인하여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가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물게 되었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1309년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게 되었다. 이로써 1309년부터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 교황이 로마로 돌아갈 때까지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은 아비뇽에 거주하면서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기간을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한다. 『원리강론』은 유대 민족의 바빌론 유수와 교황의 아비뇽 유수를 복귀섭리의 동시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 ‘섭리적 동시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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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
아비멜렉 Abimelec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아브라함 당시 그랄을 통치한 왕. [내용] 가자지역 근처 그랄 땅을 다스리던 블레셋의 왕이다. 아비멜렉은 구약성서 창세기 20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후 이주하여 그랄에 머물게 되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그녀를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알리고, 아브라함에게 그녀를 돌려주도록 하였다. 아비멜렉은 결국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종들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고 그들이 자기 땅에 거주하게 하였다. 『원리강론』은 아비멜렉에게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속여진 후 재물을 얻게 되는 과정을 하나님 복귀섭리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 ‘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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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라
아세라 Ashera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페니키아와 수리아에서 가나안으로 유입된 여신. [내용] 아세라는 가나안에서 다산,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바알이라 불리는 남신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향을 미친 이방신들 가운데 하나이다. 출애급기 34장 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출애급 때부터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릴 것을 명하였다. 출애급기 34장 16절은 아세라 숭배와 관련된 제의가 성적으로 부도덕한 측면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이들을 책망하였다.(사사기 3:7-8) 북조 이스라엘 아합 왕이 페니키아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더욱 성행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였다.(열왕기상 16:33) 이와 같은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열왕기하 17:7-23) 『원리강론』에서는 이방신 숭배를 경고하는 선지자 엘리야가 다루어지며, 이와 함께 아세라가 언급된다. ☞ ‘바알’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