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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속죄 贖罪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죄나 속박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자유롭게 되는 것. [내용] 일반적으로 죄나 속박에 대해 대가를 치르고 자유롭게 되는 것을 뜻한다. 죄 또는 업(業, karma)의 관념을 전제로 하는 각 종교에서 두루 사용되는 말이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과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중시되며 이론적으로 심화되었다. 본래 속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gā’al는 타인에게 건네 준 노예를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사는 것을 의미했는데, 나중에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상태로부터 구해 주었으며, 그 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 구속(救贖)의 역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속죄는 하나님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주는 무상의 은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중심으로 이해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헌신인 동시에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무상의 은총으로 간주된다. 이로써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속죄는 죄인인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로 인한 영원한 죽음을 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속죄가 가능한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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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소
속죄소 贖罪所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성막 안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의 상단 부분인 덮개. [내용]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를 덮는 덮개이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이 적혀 있는 두 석판이 보관되어 있었으며, 법궤 위는 속죄소가 덮고 있었다. 하나님은 순금으로 그룹 둘이 서로 마주보며 날개로 속죄소를 덮는 형상을 하도록 만들게 하였다.(출애급기 25:18-20) 그리고 두 그룹 사이에 친히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할 모든 말씀을 주겠다고 하였다.(출애급기 25:22) 구체적인 속죄소의 크기는 출애급기 37장 6절에 언급되고 있다. 속죄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만나고, 그들에게 말씀하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는 장소가 되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일, 곧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날에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와 앞에 짐승의 피를 뿌려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였다.(레위기 16:14-19) 『원리강론』에 따르면 법궤 안에 있는 두 석판은 예수님과 성신,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을 하는 것은 장차 두 석판으로 표시된 예수님과 성신이 와서 역사하게 됨으로써 속죄가 성립되면, 그 속죄소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동시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던 그룹(창세기 3:24)이 좌우로 갈라져서 누구든지 생명나무가 되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지성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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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개
솔개 Milvus lineatu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수리과에 속하는 새. [내용] 수리과에 속하는 새로서 성서에는 부정한 새로 언급되고 있다. 창세기 15장 10-1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암소와 양 등의 제물을 둘로 쪼개서 제단의 좌우에 놓았으나 비둘기만은 쪼개지 않고 그대로 놓았다. 그러자 솔개가 그 비둘기 위에 내려앉아 아브라함이 솔개를 쫓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날 해질 때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그의 자손을 괴롭게 하리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쪼개야 할 비둘기를 쪼개지 않았기 때문에 그 위에 솔개가 내렸고, 그로 인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 들어가 400년간 고역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제물을 쪼개어 바치게 함으로써 선악 분립의 상징역사를 이루려고 하였다. 제물을 쪼개는 것은 사탄 주관 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선 주권의 세계를 갈라 세우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아 사탄 주관 하에 있는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이 상대할 수 있는 선 주권의 세계를 분립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하고 말았다. 인간시조가 타락한 후 하나님이 세우는 뜻 앞에는 사탄이 따르게 되었다. 창세기 4장 7절에서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 사탄이 그들을 엿보고 있었고, 창세기 8장 7절에서 노아 때에도 심판 직후에 사탄이 노아 가정에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마귀로써 보여 주었다. 아브라함 때에도 제물에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사탄은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것을 보고 그 제물에 침범하였고, 성서는 이 사실을 솔개가 비둘기 위에 내린 것으로 표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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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솔로몬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이스라엘의 제3대 왕. [내용]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자 지혜의 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다윗 왕, 어머니 밧세바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다윗이 노쇠하자 솔로몬의 형 아도니야가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이 형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솔로몬에 관한 이야기는 열왕기상 1장-11장에 언급되고 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뒤 행정을 개혁하고 다윗이 준비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으며, 언약궤를 성전 안에 안치하였다. 구약성서 가운데 있는 아가서 잠언 등이 그의 저작물로 알려져 있으며, 한 아기를 놓고 두 어머니가 싸우는 것에 관한 전설은 솔로몬의 지혜를 잘 보여 준 사건으로 유명하다. 솔로몬은 무역을 통하여 이웃 나라들과 관계를 맺었으며, 결혼으로 국가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애급 바로의 딸과 결혼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이방의 아내들을 맞이하였다. 이는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방의 신들을 섬기게 하였고, 솔로몬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멀어지게 되었다.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은 번성했으며 부를 축적하였으나 그의 사후에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원리강론』은 솔로몬 왕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다면 애급과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크레타(혹은 미노아)의 3대 문명을 흡수한 문화적인 사회 환경에서 탁월한 정치능력을 발휘하여 동방 제국을 통일하였을 것이고, 나아가 메시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형성하였을 것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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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제도
솔로몬제도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아시아-태평양권역 선교국. [내용] 솔로몬제도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영연방 국가이다. 인구는 약 50만 명이며, 그 중 93퍼센트가 멜라네시아인이다. 약 120개 언어가 존재하지만, 현지어와 영어가 섞여 형성된 피진(pidgin)이 부족 사이의 공통어 역할을 한다. 2012년에는 2개 주가 한글을 표기문자로 채택하기도 했다. 국민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는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솔로몬제도 선교의 역사는 길지 않다. 2005년 12월 천주평화연합 창설기념 세계 순회대회가 솔로몬제도 오니아라 솔로몬키타노멘다나호텔에서 개최되었고, 2006년 8월에는 천주평화연합 조국향토환원 120개국 솔로몬대회가 개최되었다. 또한 2016년 10월에는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지역사회의 발전 방안을 공유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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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주
송기주 宋基柱 항목체계 인물 성별 남 [정의] 1953년 입교하여 협회 조직의 초대사업부장을 지낸 원로 지도자. [내용] 1953년 부산 범냇골교회에서 이봉운과 인연되어 입교하였다. 참아버님이 상경하였을 때 상도동에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경제적인 뒷받침을 하기도 했다. 1954년 친척인 김정락을 전도하여 전북 무주에 교회를 설립하도록 도왔으며, 1955년에는 백화약국에 책상을 놓고 최주찬과 함께 우표사업을 하였다. 전국적인 우표 수집운동으로 교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로 협회의 초대사업부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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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빈
송도빈 宋道彬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양 선교리 성별 남 생년월일 1919.1.11(음) [정의] 1954년 입교하여 참부모님 성혼식장의 배경을 그렸으며, 일본 선교에 기여한 원로. [내용] 독실한 감리교 신앙을 하던 가정에서 태어났다. 8세에 강원도 평강으로 이주하여 9세에 평강보통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두각을 나타내 강원도지사상을 받기도 하였다. 15세 때 신령역사를 체험하면서 1년 넘게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는 등 정성생활을 하였다. 1941년부터 경원선 열차의 기관차 조수로 일하였고, 해방 이후 1946년 북한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 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하여 1947년 봄 구세군에서 서기 일을 보았고, 1949년 결혼하여 신문로에 있는 구세군 사택에서 살았다. 1954년 주한미국대사관 내 미국공보원 미술과에 근무하면서 평소 인연이 있었던 이소담의 소개로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1955년 10월 4일 가족들도 전도했다. 1956년 4월 최봉춘을 전도하여 일본 선교의 길을 열었다. 1958년 4월 최봉춘이 일본에 도착한 이후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송금하기도 하였다. 1959년에도 둘째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금을 일본 선교를 위해 송금하였다. 1960년 참부모님 성혼식장의 배경을 그렸으며, 전국 성화청년회 총회 실내장치와 현수막 작업 등 미술 작업을 맡았다. ☞ ‘이소담’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