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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로
성로 成路 / Seong Ro -Guide of Seonghwa Youth 항목체계 문헌 성격 19.526.5센티미터 / 잡지 발행/간행시기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학생부 / 1961.7.20 [정의] 성화학생들의 교육과 소식 공유를 위해 발간되었던 잡지. [내용]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학생부에서 1961년 7월 20일부터 1988년 6월까지 성화학생들의 교육과 소식 공유를 위해 발행했던 잡지이다. 표제인 ‘성로(成路)’는 참부모님이 1961년 7월 13일 직접 써 준 휘호로 ‘성화학생들의 길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간호 앞장에 ‘학생회 선서’인 “우리는 참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영원한 원수 사탄을 무찌르고 아버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그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성화학생들의 결의를 보여 준다. 창간호에는 말씀, 학생부장 격려사, 창간사, 시단(기도, 길, 피), 기록문(210리의 강행군), 편지, 일기문, 영시, 시조, 편집후기 등의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이후의 잡지에도 참부모님 말씀과 활동소개, 회원들의 글, 교회 소식 등이 담겼다. 창간호부터 계간지의 성격으로 발행되었으나 다소 불규칙적으로 발행되다가 제10호인 1970년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그러나 1979년 10월 1일 제11호로 복간하여 월간지로 발행하였다. 기존에 19.526.5센티미터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다가 1982년 9월호인 통권 46호부터 조금 더 크기를 줄여 1522센티미터 크기로 발행했다. 1986년 12월까지 월간지로 발행하였고, 1987년부터 격월간지로 제작되다가 1988년 6월 통권 99호로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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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성리학 性理學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중국 송나라 때 완성된 유학의 한 계통. [내용] 중국 송나라 때 완성된 유학의 한 계통으로 성명(性命)과 이기(理氣)의 관계를 논한 유교철학이다. 성리학이라는 명칭은 ‘성명의리의 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며, 주희(朱熹)가 집성하고 정리하였다고 하여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본래 공자와 맹자의 유학은 종교나 철학 등으로 세분되지 않은 단순한 도덕사상이었는데 송·명대에 이르러 유학은 정치, 종교적 사회체제의 변화에 따라 불교 사상을 가미하면서 이론적으로 심화되고 철학적인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북송의 정호(程顥)는 천리를 논하였고, 그의 동생 정이(程頤)는 성즉리(性卽理)의 학설을 폈으며, 이외에도 주돈이(周敦頤)와 장재(張載) 등이 여러 학설을 전개했는데 남송의 주희가 이들을 계승하고 정리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했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인간의 심성, 사회에서의 인간의 자세 등에 관하여 깊이 성찰함으로써 그 이전의 훈고학적인 유학이 다루지 못하였던 형이상학적, 내성적, 실천철학적인 새로운 유학 사상을 수립하였다. 성리학은 불교가 마음의 극단으로, 도교는 기의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비판했으며 마음-기-이의 통합적인 구조를 제시했다. 즉 이와 기는 성격상 다른 것이지만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고 규정했다. 또한 마음-성(性)-정(情)의 관계도 통합적 구조로 해석하였다. 성리학은 주로 사회적 인간관계와 개인의 수양이라는 두 측면에서 그 사상을 심화시켰다. 사회윤리로서의 예(禮)를 강조하는 동시에 우주 본체, 인간 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 탐구를 심화시킴으로써 도교나 불교를 형이상학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주자학으로서의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충렬왕 때(13세기 후반)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조선조에서 성리학은 국가 통치이념의 근간이 되었으며,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대체하여 관학(官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이기심성론, 사단칠정론, 인물성동이론 등 많은 분야에서 중국의 성리학을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 ‘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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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교파
성립교파 成立敎派 / Established sect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교회와 교파 사이에 놓인 과도기적 성격의 종교 조직. [내용] 사회질서에 순응적이고 독점적 권위를 중심으로 한 교회와는 달리 사회적 환경에 비용인적이며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종교조직은 교파, 종파, 성립교파, 신종교 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에서 성립교파는 교파보다는 더욱 사회화되었지만 아직 보편적인 교회의 면모를 갖추지는 못한 단계의 종교 조직을 의미한다. ☞ ‘교파’, ‘종파’, ‘신종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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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성막 聖幕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던 이동식 성전. [내용] 성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던 거룩한 처소를 말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였다. 성막의 모습, 크기, 사용된 천, 목재, 제단 등에 관해서는 출애급기 26-27장과 35-38장에 언급되고 있다. 성막은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씩 들어가 헌제를 하던 곳인 지성소와 보통 제사 때 들어가던 곳인 성소로 분리되었다. 출애급기 26장 31-33절을 보면, 지성소와 성소는 실로 짠 휘장에 의하여 구분되었다.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하는 언약궤로서 십계명이 적혀 있는 두 석판이 법궤 안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법궤 위는 속죄소가 덮고 있었다. 속죄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만나고, 그들에게 말씀하며,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는 장소가 되었다. 관리는 모세와 아론이 속한 부족인 레위족이 담당하였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 건축을 실현하게 됨으로써 성막은 필요 없게 되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원리강론』을 토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으로 흘러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신앙의 대상을 세우기 위해 성막 건설을 명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모세마저 불신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민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모세를 대신하여 끝까지 성막을 지킨다면, 그를 중심으로 복귀섭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성막은 예수님과 성신의 상징적인 표시체로서 성전을 지을 때까지 필요한 것이었고, 성전은 예수님과 성신의 형상적 표시체로서 실체성전(實體聖殿)인 메시아가 강림할 때까지 필요하였다. ☞ ‘성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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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이상
성막 이상 聖幕 理想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하나님이 모세를 중심으로 성막을 건축하게 하여 이루려던 복귀섭리의 뜻. [내용]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 가나안으로 향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였다.(출애급기 25:8) 성막 이상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성전을 건축하기 전까지 광야에서 성막을 통해 이루려던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성막은 예수님의 상징적인 표시체였다. 성막 안에는 10계명이 기록된 두 석판과 그 석판을 담은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다. 두 석판은 타락한 인류 시조 아담과 해와를 대신하여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실 예수님과 성신을 상징했다. 성막은 지성소와 성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지성소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던 곳이므로 예수님의 영인체 또는 무형 실체세계를 상징했고, 성소는 예수님의 몸 또는 유형 실체세계를 상징했다. 종합해 볼 때, 성막은 장차 오실 메시아인 참부모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것을 명하신 이유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모세마저 불신의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불변하는 신앙의 대상, 즉 메시아를 상징하는 성막을 세워 놓음으로써 단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이 있으면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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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을 위한 기대
성막을 위한 기대 聖幕을 爲한 基臺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메시아를 상징하는 성막을 세우기 위한 기대. [내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원리강론』에서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메시아를 의미하는 성막을 세우기 위해서도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타락한 인간이 이러한 기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를 세워야 한다. 모세가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로써 40일 사탄 분립 기간을 뜻 맞게 세우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게 돼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막이상(聖幕理想)을 세워 나아가는 모세에게 믿음으로써 순종굴복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여기에서 성막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두 석판과 법궤를 포함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가 금식기도를 하는 기간에 불신으로 돌아가 아론을 시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섬겼다.(출애급기 32:4)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위하여 세워야 했던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불신은 모세가 40일 사탄 분립 기간을 세운 후 백성들로 하여금 모세에게 순종케 함으로써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려던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좌절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성막을 위한 기대를 이루려는 섭리는 계속된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인하여 3차까지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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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聖幕을 爲한 믿음의 基臺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메시아를 상징하는 성막을 세우기 위한 믿음의 기대. [내용] 타락한 인간이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해야 했다. 따라서 메시아를 상징하는 성막을 세우기 위해서도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가 이루어져야 했다. 구약시대에 모세는 성막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금식기도로써 40일 사탄 분립 기간을 뜻 맞게 세워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조성하였다. 그 기대 위에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과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도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 성막을 위한 기대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