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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지로
히라노 지로 Hirano Jiro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사 [정의] 필리핀 개척 선교사. [내용] 1975년 게리 브라운(Gary Brown, 미국인)과 울리치 볼켈(Ulrich Volkel, 독일인)과 같이 해외 선교사로 필리핀에 파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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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사상
히브리 사상 히브리 思想 / Hebra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신본주의 사상과 문화. [내용] 일반적으로 유일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생활의 중심으로 삼았던 유대 민족의 사상과 문화를 말한다.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의미로 히브리인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히브리인으로 규정하였다. 하나님을 유대 민족의 아버지로 생각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통해 율법을 엄수함으로써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축복은 유대 민족에게 한정된 것으로 현실세계에서 민족적으로 해방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원리강론』은 히브리 사상을 유대 민족의 사상에 국한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한 신본주의로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론 히브리 사상의 출발은 기원전 11세기 통일왕국시대에 서아시아에서 신본주의에 근거하여 유대 민족이 아벨형 히브리 문명권을 형성한 것으로 본다. 이 첫 번째 시기에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 왕국을 만들었다면 헬라 문명권을 흡수하여 하나의 세계적 문명권을 이룰 수 있었으나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헬라 사상에 지배를 당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예수님이 오신 뒤에 있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메시아 왕국을 이루었다면 헬라 사상을 흡수하여 하나의 히브리 문명권을 이룰 수 있었으나 이 뜻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헬라 사상의 지배를 계속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적 구원의 기대 위에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뒤에는 히브리 사상에 헬라 사상을 극복하여 히브리 사상을 중심한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을 이루게 되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하나님을 중심한 신본주의 사상은 유대 민족을 넘어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 시기는 중세시대에 있었다. 중세사회에서 교황과 국왕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메시아 왕국을 이루었으면 히브리 사상은 헬라 사상을 완전히 흡수하여 세계는 하나의 문명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황과 국왕이 타락하여 히브리 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 정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사상을 중심한 지도 정신을 가인형 헬라 사상 복고운동과 아벨형 히브리 사상 복고운동으로 분립하여 각각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으로 나타나게 하였다. 이후 헬라 사상이 히브리 사상을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마지막 시기는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로 신본주의인 히브리 사상이 인본주의인 헬라 사상을 흡수하여 하나의 문명권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 ‘헬라 사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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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히브리서 히브리西 / Hebrew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신약성서. [내용] 신약성서 중에서 유일하게 필자가 분명하지 않은 서신으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독교로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구약의 율법과 각종 제사 또는 제도들이 신약의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설명하는 내용으로 예수님이 하늘의 영원한 대제세장이자 구약의 성취자인 것을 가르치고 있다. 『원리강론』에는 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를 ‘부리는 영’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구절과 히브리서 11장 39절 이하의 지상인들이 영인의 부활역사에 협조한다는 구절 등이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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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히틀러 Adolf Hitler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제국주의에 기초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정치가. [내용] 독일 나치스의 지도자이자 나치 독일의 총통이었다. 1889년 오스트리아 세관원이었던 아버지 알로이스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레알슐레에 입학하였으나 성적이 불량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고 화가가 되기 위해 빈에 있던 미술학교에 2차례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하였다. 이후 철학서적을 읽으며 독일 민족주의에 심취하였으며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전령병으로 복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4년에 2급, 1918년에 1급 철십자훈장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에 보수적인 국방사상을 교육시키는 토론과 연설의 훈련을 받았다. 1919년 9월 12일 독일노동당에 입당하여 대중 활동을 이끌었으며 뛰어난 연설로 당의 명성을 높였다. 1928년 당명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당, 일명 나치당으로 바꾸고 1930년 독일의 제2당으로 부상시켰다. 1932년 힌덴부르크에 패배하고 부총리에 임명되었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1933년 독일 총리로 임명된 뒤 정권을 장악하였고, 1934년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자신이 총통 겸 총서기로 취임하였다. 이후 독재정치를 실시하여 국민생활을 획일화하였으며, 1939년 9월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후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하는 등 점령지에서 가혹한 정치를 하며 모든 타협을 배척하고 최후까지 전쟁을 수행하였으나 패배하였다.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총통관저 지하에서 음독자살하였으나 시체는 행방불명되었다. 『원리강론』은 이러한 히틀러를 사탄 편 예수님과 같은 인물로 보았다. 히틀러의 사상이나 독신생활, 비참한 죽음과 행방불명된 그의 시체 등이 예수님의 뜻을 정반대로 실현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탄 편 아담의 장성급 개성 완성형 인물로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하여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적화의 정책을 수립하여 만물주관형을 이루어 사탄을 중심한 3대 축복의 장성급 완성형의 비원리적인 세계를 이루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