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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성사
혼인성사 婚姻聖事 / Sacrament of matrimony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세례받은 남녀 신자가 하나님께 혼인을 서약하는 성사. [내용] 가톨릭교회의 칠성사(七聖事) 가운데 하나로서, 세례 받은 남녀 신자가 주례 사제와 두 증인 앞에서 한평생 부부로 함께 살아갈 것을 하느님께 서약하는 성사이다. 교회에서는 혼인을 거룩한 종교적 행위로 본다. 혼인은 두 남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전인격적인 헌신이며, 이 성사로 부부는 새 가정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성장하며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조하게 된다. 혼인성사는 사회적인 성격의 성사이므로 공동체 안에서 공개적으로 미사 중에 거행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성사가 집전되기 2주일 전에 본당에 신랑과 신부의 혼인공시를 하도록 교회법이 정하고 있다. ☞ ‘칠성사’, ‘성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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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심판
홍수 심판 洪水 審判 / Flood judgement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고 순종하는 자를 구원한다는 약속. [내용] 홍수 심판이란 하나님이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고 겸허히 순종하며 심판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성경의 기록이다. 대표적인 예는 노아의 홍수 심판으로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산 정상에 방주를 지어 그의 가족들이 살았으나 믿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원리강론』은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여 음란에 빠져 사탄의 자녀가 돼 있어 하나님이 대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는 인간을 세우기 위하여 사탄의 상대가 돼 있는 전 인류를 멸하는 역사를 하였다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홍수 심판은 아니지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심판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이 있으나, 통일원리는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주어 홍수 심판은 더 이상 없을 것을 약속하셨다고 한다. 홍수 심판은 40일 동안 비가 온 후 땅에 다시 정착할 때까지 여러 학자들은 370여 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세계의 여러 국가들에 홍수와 관련된 전설이 있고 산 정상에 방주를 지은 것으로 보아 홍수가 세계적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일 것으로 보고 있다. ☞ ‘노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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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애
홍순애 洪順愛 항목체계 인물 이칭/별칭 대모님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 성별 여 생년월일 1914.2.22 [정의] 참어머님의 모친인 대모님. [내용] 참어머님의 모친인 대모님으로 하나님이 준비한 신령집단에서 신앙의 기대를 쌓고 참부모님을 충심으로 모시는 생애를 살았다. 1914년 2월 22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모친 조원모의 영향으로 장로교 신앙 가운데 성장하였다. 1936년 평양성도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세에 이용도 목사에게 은혜를 받아 황국주와 함께 안주에서 신의주까지 걸으면서 전도를 하였다. 신의주까지 갔을 때 철산에서 김성도가 역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려고 했지만 일행들의 반대로 가지 못하고 강계까지 전도하러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새예수교회에서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철산에 가게 되었다. 김성도를 만나 은혜를 받고 8년 동안 성주교단을 믿었으나 김성도의 죽음 이후 허호빈의 복중교를 믿었다. 하루는 기도 중에 재림주님의 얼굴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허호빈이 감옥에 수감되고 종교 박해가 심해져서 남한으로 내려오기로 하였다. 새예수교회에서 1934년 이용도의 소개로 한승운과 혼인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아이가 없다가 1943년 참어머님을 낳았다. 여러 신비한 체험을 통해 참어머님께서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잘 키우기 위해 함께 1948년 남하하였다. 서울에서 지내다가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피난, 서울이 수복된 후 귀경했다가 1951년 1월 14일 1·4후퇴로 다시 남하하여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 가서 생식을 하며 정성을 들였다. 1956년 정석천을 통해 통일교회를 알게 돼 ‘원리’를 듣고 입교하였다. 참아버님을 뵙고 보니 복중교를 믿을 때 몽시로 보았던 재림주님의 얼굴이었다. 입교 후 춘천에서 전도생활을 하다가 상경하여 교회에 헌신하였다. 1989년 11월 3일 성화하였으며, 참부모님은 ‘충심봉신(忠心奉身)’의 휘호와 ‘대모(大母)’의 존호를 하사하였다. ☞ ‘정석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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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애 대모님 추모일
홍순애 대모님 추모일 洪順愛 大母任 追慕日 항목체계 의례상징 [정의] 홍순애 대모님의 성화일을 매년 기념하며 추모하는 날. [내용] 독생녀 실체성신 참어머님을 탄생시키고 일평생 정성의 생활로 참부모님의 복귀섭리에 크게 공헌한 홍순애 대모님의 성화일을 추모하는 날이다. 대모님은 1989년 천력 10월 5일(양 11.3) 오후 9시 45분 76세를 일기로 서울 종로구 내수동 110-43 신문로공관 별관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성화하였다. 참부모님은 홍순애 대모님에게 ‘대모(大母)’의 칭호를 내렸으며, ‘충심봉신(忠心奉身)’이라는 휘호를 하사하였다. 또한 1994년 제5주기 대모님 추모일을 맞아 대모님의 기념관인 충의애관 개관식을 거행할 때 참아버님은 ‘충심봉천(忠心奉天)’이라는 휘호를 다시 하사하였다. 2016년 3월 29일 참부모님의 명에 의해 한승운(韓承運) 대부님과 홍순애(洪順愛) 대모님의 합장원전식(合葬原殿式)을 갖고 경기도 파주 원전에 함께 모셨다. 같은 해 11월 4일 대모님 추모일을 기하여 한승운 대부님 제38주기 및 홍순애 대모님 제27주기 합동 추모예배가 천주청평수련원에서 거행되었다. 이후로 대모님의 기일에 맞춰 HJ천주천보수련원 정심원에서 합동으로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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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애대모님기념관 개관
홍순애대모님기념관 개관 洪順愛大母님記念館 開館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홍순애 대모님의 생애를 기념하여 유품을 전시하는 기념관을 개관한 사건. [내용] 1994년 11월 7일 서울 중구 필동 3가 25-5 통일회관 4층에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기념관 개관식이다. 홍순애 대모님 제5주기 추모예배를 겸하여 실시된 이날 대모님의 기념관 개관식에서 참부모님은 대모 홍순애 여사에게 ‘충심봉천(忠心奉天)’이라는 휘호를 하사하였다. 홍순애대모님기념관은 대모 홍순애 여사의 유품을 모아 전시하는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기념관들 중 하나이다. 참아버님은 “성화하실 때까지 부모님의 가정을 일심일념으로 받들어 나오신 대표적 어머니이기 때문에 ‘대모님’이라는 존호를 하사했고, 또 있는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충심봉천’이라는 휘호를 써 준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대모님의 기념관은 성화하였던 서울 종로구 내수동 신문로 공관 별관 2층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는 HJ천주천보수련원으로 옮겨 천보원 4층 천보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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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정
홍순정 洪順貞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남도 안주 성별 남 생년월일 1922.4.7(음) [정의] 대모님의 동생이자 참어머님의 외삼촌. [내용] 대모님의 동생이자 참어머님의 외삼촌으로 한국동란 발발 후 참어머님을 안전하게 모시는 사명을 한 종친이다. 1922년 4월 7일 부친 홍유일과 모친 조원모의 사이에 1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35년 2월 안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사범학교에 입학, 1940년 2월 졸업하였다. 일본 교토 동지사대학 부속중학교를 거쳐 오사카 약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태평양전쟁으로 귀국하여 서울 화학연구소에서 일하다가 1945년 서울 약학전문학교에서 남은 공부를 마치고 1948년 육군사관학교 중위로 임관돼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모친과 누이, 참어머님이 남하한 뒤 청파동에 방을 얻어 모셨다.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안전하게 모친과 누이, 참어머님을 피난시키고 돌보는 데 힘썼다. 1952년 12월 채계순과 혼인하고 1957년 부산 의무기지 보급청장으로 있다가 1961년 5월 육군대령으로 전역했으며, 충무공 무관훈장을 수여받았다. 1962년 정부의 보건사회부 약정국에서 근무했다. 1972년 기성축복을 받고 10월부터 한국티타늄 공장장으로 근무했으며, 1975년부터 통일그룹 기관기업체의 대내 감사로 활동하였다. 2016년 11월 23일 성화했을 때, 참부모님이 ‘축 천성입국 충성자(祝 天城入國 忠誠子)’라는 휘호를 내리셨다. ☞ ‘조원모’, ‘홍유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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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홍익인간 弘益人間 / Humanitarian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단군신화에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건국이념.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고조선 건국신화에 나오는 기록으로 환인이 ‘삼위태백을 보니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다(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고 생각하여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이때 환인이 태백산을 내려다보았을 때 홍익인간,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여 아들 환웅을 보냈으며 환웅은 재세이화(在世理化),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는 기록이 나와 한민족의 인본주의적이고 현세주의적인 윤리 의식과 철학 사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부모님은 홍익인간의 사상을 한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정체성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잘 보여 주는 사상이라고 말씀하였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