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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종교
타력종교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다른 외부적 힘에 의해 구원이 성취된다고 믿는 종교. [내용] 자기의 노력 이외의 다른 힘에 의지하거나 다른 힘에 의하여 구원이나 열반이 성취된다고 믿는 종교를 일컫는다. 자력종교에 대비되는 말이다. 불교에 따르면 누구나 자신이 닦은 선근(善根)은 자력이 되고, 부처의 본원력(本願力)과 가피력(加被力)은 타력(他力)이 된다. 타력종교는 자신의 힘이 아닌 부처나 보살 등의 타력에 의지하여 극락왕생을 원하거나 깨달음을 구하는 종교를 말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타력과 자력 사이에 있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타력에 의존하는 종교도 없고, 전적으로 자력에만 의지하는 종교도 없다는 것이다. 단지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타력종교 또는 자력종교라는 이름이 붙을 뿐이다. 『원불교 정전』에서는 자력과 타력의 관계를 마치 나무뿌리가 땅을 만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무뿌리가 땅을 만나야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신앙에서도 자력이 타력을 만나야 희구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자력종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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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아주의
타아주의 他我主義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나와 타인은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어 나눌 수 없는 하나가 되어 공생·공영해야 한다는 사상. [내용] 타아주의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2000년대 들어 중요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으로서 참사랑의 의미를 보다 깊은 차원에서 설명한다. 참부모님은 2003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은 위타주의(爲他主義)가 아니라 타아주의(他我主義)라고 선포했다. 위타주의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이기주의를 교정하기 위해 복귀섭리의 과정에서 필요한 사상이었으며,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하나님 창조이상의 세계는 타아주의 세계라고 말씀했다. 기존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사상은 개인주의와 위타주의, 또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틀로 창조와 타락 및 복귀를 설명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자기중심적인 악한 태도이며, 위타주의는 타인을 위하는 참사랑의 태도이므로 인간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참사랑의 위타주의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참사랑의 단계는 타아주의로 규정된다. 따라서 인간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위타주의를 거쳐 타아주의로 완성해야 한다. 이것은 위타주의가 참사랑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타아주의는 참사랑의 본질이 완전히 실현된 전체의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위타주의는 그 전체 중에서 참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으면서도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특별히 별도로 강조한 개념이었다. 즉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중심한 타락성을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부정하고 상대를 위하라고 교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먼저 상대를 위한다는 참사랑의 본질은 담고 있으나 참사랑의 전체 의미를 온전하게 담지 못한다. 참사랑은 결국 나와 상대가 서로 위하는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이므로 상대가 없으면 안 되고, 내가 없어도 안 되는 것이다. 나와 상대가 모두 함께 포함되어 있어야 하며, 양자가 서로 먼저 위하는 참사랑을 해야 한다. 이러한 참사랑의 전체 의미를 담은 개념이 바로 타아주의이다. 타아주의는 하나님 자신의 참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정지의(情知意)를 가지신 분이며, 그 중심은 사랑을 통해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사랑의 심정이다. 이 사랑의 심정은 억누를 수 없는 정서적 충동으로서 하나님의 정·지·의를 자극하여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적 동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분이며, 참사랑의 본체이다. 또한 하나님은 참사랑 자체로서 인간과 피조세계의 참사랑 근원이다. 그런데 사랑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며, 상대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아무리 자신 안에 사랑의 심정이 있어서 사랑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실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절대자 하나님도 사랑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하나님도 실체적인 사랑의 대상이 있어서 그와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과 피조세계를 창조한 동기이다. 참사랑은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주체와 대상은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합성일체화하여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랑의 기쁨을 함께 누린다. 하나님은 참사랑의 주체로서 사랑의 대상으로 자신을 닮은 인간을 가장 가까운 관계인 자녀로 창조했다. 그리고 자녀인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닮은 피조만물을 창조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자녀인 인간과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일체가 되어 함께 영원히 살아가면서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유일·불변·영원한 창조주이며,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다. 거룩하고 절대적인 창조주와 유한한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참사랑이다. 하나님은 대상과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일체가 되고자 한다. 인간이 성장 기간을 지나 완성되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룰 수 있게 된다. 하나님과 완성된 인간이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완성된 인간은 하나님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 인간은 더 이상 단순히 유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된다. 하나님과 인간이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는 것을 신인애일체라고 한다. 하나님과 인간이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하나님은 마음과 같고, 인간은 몸과 같다. 하나님 창조목적의 궁극적 단계는 하나님이 자신과 일체를 이룬 인간을 자신의 몸으로 삼아 그를 통해 피조세계에 현현하여 실체적으로 참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몸과 같은 인간은 하나님적 가치를 가지고 제2의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자신과 분리되어 별도의 피조물로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 자신과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 자신이 되어 함께 살기를 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하나님의 외적인 주류 속성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주류 속성은 절대·유일·불변·영원이며, 외적인 주류 속성은 창조성·주체성·관계성·통일성이다. 하나님의 내적인 참사랑이상을 외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외적인 주류 속성이다. 창조성은 하나님이 자신을 완전히 투입하여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주체성은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에 대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관계성은 하나님이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을 먼저 위해주며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하는 것이다. 통일성은 하나님과 사랑의 대상인 피조물이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하여 일체를 이룸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사랑은 반드시 수수작용을 거쳐 일체화를 가져오며, 하나의 유기체로 동등한 가치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아주의의 원형이며 ‘원리’이다. 나와 상대가 참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나와 상대는 별도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상대도 곧 나인 것이다. 나와 상대는 모두 나로서 상대를 위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하는 것과 같다. 상대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나와 상대는 더 이상 분리된 두 개가 아니라 수수작용을 통해 합성일체화한 하나이며, 이 하나는 큰 나이다. 큰 나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그 유기체의 각 부분은 필연적으로 공생·공영한다. 참사랑은 나와 상대가 하나를 이루어 큰 나가 되어 기쁨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참사랑을 중심한 타아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성품을 실체적으로 전개하여 사랑의 대상인 인간을 창조했다. 인간은 참사랑의 타아주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첫째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정·지·의의 존재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은 참사랑을 통해 기쁨을 느끼려는 정서적인 충동 곧 참사랑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적으로 하나님의 참사랑의 심정에 공명하여 하나님과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횡적으로 인간들 사이에 하나님을 중심한 주체와 대상의 상대적 관계를 맺어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또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피조만물과 참사랑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기쁨을 느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이성성상을 분립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횡적인 참사랑의 관계는 부부이며, 이것으로부터 출발하여 형성되는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이다. 이 사랑의 관계가 확장하여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랑이 된다. 이와 같은 창조본성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의 대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감으로써 최고의 기쁨을 느끼고자 한다. 나는 타인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참사랑을 주고받아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큰 나가 되어 함께 살면서 참사랑의 기쁨을 함께 누린다. 타인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며, 타인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된다. 타인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삶 속에서 나도 진정으로 기쁨을 느낀다. 함께 산다는 것 안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나도 함께 기쁨을 느껴야 한다. 내가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여 상대를 위해 참사랑을 줄 수 없고 참사랑의 기쁨을 느끼지도 못한다면, 나와 상대가 하나를 이룬 큰 나 속에서 상대는 기쁘지 못하고 큰 나 전체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상대가 하나 된 큰 나 전체의 공생·공영과 기쁨을 위하여 나도 함께 온전히 존립하며 공생·공영함으로써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참사랑으로 상대를 위해주면, 반드시 상대로부터 더 큰 참사랑이 돌아온다. 이러한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상대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며, 나의 기쁨은 상대의 기쁨이 된다. 큰 나를 구성하는 각 개체가 행복할 때, 비로소 모든 개체가 함께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일정한 성장 기간을 거쳐 완성됨으로써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게 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참사랑의 타아주의를 체험하고 배우며 훈련할 수 있는 교육장소는 가정이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심정은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등 4대 사랑과 그것의 심정권인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자녀의 심정, 형제자매의 4대 심정권으로 나타난다. 가정은 타아주의적 참사랑이 실천되는 최소단위의 삶의 토대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그리고 형제자매는 참사랑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단위를 이루어 모두 함께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 가정에서 어느 한 구성원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구성원들도 행복하기 어렵고, 가정 전체가 행복하기 어렵다. 타아주의는 가정에서부터 실현되어 세계로 확산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에서 태어나 창조본연적인 자녀의 심정, 형제자매의 심정,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을 체험하며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함으로써 원숙한 참사랑의 타아주의적 인격을 갖추게 된다. 사랑과 심정은 체험함으로써 온전히 배울 수 있다. 가정에서 이러한 타아주의적 인격을 갖춘 사람들은 사회와 세계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자신과 타인을 연결된 상호의존적 존재로 보며,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나와 타인은 하나가 되어 함께 참사랑의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부모로 모시고 참사랑으로 통일된 인류 대가족의 창조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나아가 가정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훈련한 사람은 하나님 참사랑의 심정과 공명하게 되어 신인애일체의 경지에서 하나님과 함께 참사랑의 기쁨을 누린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횡적으로 더욱 타아주의적 참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참사랑의 이상을 완성하게 된다.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최종적 완성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만물이 참사랑으로 종횡으로 일체를 이룬 가운데 큰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타아주의를 완성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대이다. 타아주의는 인간과 피조만물의 사이에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인간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간을 닮은 피조만물을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피조만물과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주관적 사위기대를 이루어 조화로운 일체가 되어 함께 기쁨을 누린다. 이때 나와 일체가 된 피조만물도 내가 되며, 함께 더 큰 나가 된다. 나는 또 다른 나인 피조만물을 사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하며, 그들과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기쁨을 나눈다. 이러한 의식이 전 피조세계를 대상으로 확장되면 나와 전 피조세계는 일체이며, 전 피조세계는 곧 나임을 느낀다. 나는 우주적인 나로 확장되고 우주와 함께 우주적인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타아주의는 위타주의와 차이점을 갖는다. 개인주의는 존재론적으로 나와 상대가 분리된 실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분리된 실체는 다른 존재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다른 존재에 대해 무관심하다. 서로의 관계는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설혹 그런 관계가 있더라도 부차적이고 우연일 뿐이다. 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 자기중심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위타주의도 동일한 전제를 갖고 있다. 상대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별개이다. 상대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양자택일의 내용이 된다. 이것은 위타주의도 나와 상대가 분리된 실체라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적인 타락성을 청산하기 위하여 먼저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을 위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참사랑의 본질인 상대방을 위하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위타주의 사상을 세워 타락한 인간을 지도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참사랑의 완성은 위타주의와 다른 존재론적 전제 위에서 성취된다. 나와 상대는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반드시 상호의존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연체로서 필연적으로 참사랑을 주고받아 일체를 이루도록 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타아주의에는 나와 상대가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함께 들어가 있다. 내가 상대와 참사랑으로 하나가 되면 불가분의 관계가 맺어지고, 나와 상대는 함께 더 큰 나를 이루게 된다. 타아주의는 참사랑의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 준다. 이제 참부모님을 통해 창조이상을 완성하는 섭리역사의 단계가 되었기 때문에 타아주의가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참사랑이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위타주의 단계를 넘어 타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로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는 위와 같은 타아주의적 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을 닮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 곧 마음과 몸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이라는 두 실체로 구성되며, 영인체는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인 생심과 영체로 존재하고, 육신도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인 육심과 육체로 존재한다. 지상 인간의 마음은 영인체의 마음인 생심과 육신의 마음인 육심이 종합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에는 생심의 지향성과 육심의 지향성이 종합되어 있다. 생심은 하나님과 연결된 인간의 핵이며, 이것에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심정이 발원한다. 생심은 참사랑의 심정에 기초하여 전체를 위하는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육심은 자체의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주와 성 및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창조본연의 완성된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이 주체와 대상으로 수수작용하여 통일되어 있다. 생심이 육심을 주관하며, 육심은 생심을 따른다. 이러한 인간은 전체를 위하려는 참사랑의 삶을 먼저 추구하며, 그것을 위한 물질적 생활을 추구한다. 참사랑의 삶이 목적이며, 물질적 생활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 상태가 참사랑의 인격을 완성하여 타아주의를 실천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생심과 육심의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중심하고 의식주를 위한 물질을 우선 추구하며, 참사랑과 미·진·선의 가치는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생심의 기능은 물질적 욕망에 억눌려 있으며, 따라서 타아주의적 참사랑이 올바로 실천되지 못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가치적 생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락한 인간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인 물질적 생활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해진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을 창조본연의 타아주의적 인간으로 복귀하는 것은 역전된 생심과 육심의 관계를 본래의 관계로 회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타주의는 타락한 인간이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을 위하도록 강조함으로써 자기를 중심한 육심의 욕망을 극복하고 타아주의적 본성을 회복하도록 이끌어 왔다. 타락한 인간은 위타주의 단계를 거치며 자기중심적인 타락성을 청산한 후 나와 타인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타아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지상의 삶을 통해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인격을 완성한 후 육신이 노쇠해지면 그것을 벗고 영인체로서 무형 실체세계인 영계로 옮겨가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타아주의적 참사랑의 삶을 살아간다. 천상천국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타아주의 참사랑이 궁극적으로 실현된 영원한 세계이다. 셋째로 인간과 만물은 개체적 본성과 연체적 본성을 함께 지니도록 창조되었으며, 이것은 타아주의의 또 다른 존재론적 토대이다. 인간과 피조만물은 개성진리체인 동시에 연체로 창조되었다. 개성진리체란 하나님이 부여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내적 사위기대를 이루어 존재하는 개체적 존재임을 의미하며, 연체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로 외적 사위기대를 이룸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개성진리체로서 자기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발전하려는 개체 목적을 추구하며, 동시에 연체로서 전체의 생존과 발전에 기여하려는 전체 목적을 추구한다. 타아주의적 참사랑은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주체와 대상으로 조화롭게 통일하여 함께 성취하는 것이다. 전체 목적을 떠나서 개체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 목적을 보장하지 않는 전체 목적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모두 성취할 때 진정한 기쁨을 느낀다. 전체를 위하는 것은 곧 상대를 위하는 참사랑이다. 전체란 개체들의 집합이며, 전체를 위하는 것이 각각의 개체들을 위하는 것이다. 나는 먼저 전체를 위하여 참사랑을 투입한다. 그런데 그 전체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전체를 위하는 것과 나를 위하는 것은 구분되지 않으며, 나와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공생·공영한다. 유기체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온전하게 존립하여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모든 구성원들도 온전히 존재하며 참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나와 너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함께 기쁠 때 전체가 기쁘다. 따라서 전체 안에서 나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참사랑이 오게 되며, 서로 참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참사랑은 더욱 커지게 된다. 타락한 인간의 개인주의는 개체 목적을 위해 전체 목적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위타주의는 전체 목적을 위해 개체 목적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아주의는 그것을 모두 넘어 연체적 유기체의 모든 구성원이 참사랑의 수수작용을 통해 전체 목적과 개체 목적을 함께 달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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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공화국
타지키스탄공화국 Republic of Tajikistan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아시아권역 중앙아시아대륙의 선교국. [내용] 타지키스탄공화국(Republic of Tajikistan)의 면적은 한반도의 0.65배인 143,100평방킬로미터고, 인구는 910만 명(2018)이며, 수도는 두샨베(Dushanbe)이다. 언어는 타직어(러시아어 공용)이고, 종교는 이슬람교 90퍼센트(수니파 85퍼센트, 시아파 5퍼센트)와 러시아 정교 등 기타 10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 정부는 대통령중심제로 운영되며, 의회는 양원제로 구성되어 있다. 1인당 GDP(2018, IMF기준)는 807.05달러이다. 한국과는 1992년 4월 27일에 수교하였고, 2016년 현재 고려인은 63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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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합중국
탄자니아합중국 탄자니아合衆國 / United Republic of Tanzania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아프리카대륙권 선교국. [내용] 탄자니아합중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은 경제·행정수도가 다레살람(Dar es Salaam), 정치수도는 도도마(Dodoma)로서 분리되어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4.3배인 942,849평방킬로미터이고 종교는 이슬람교(35퍼센트), 기독교(30퍼센트), 토속종교(35퍼센트) 등 공존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는 치에코, 마사키, 사마모토 등 일본인 선교사들의 지도하에 케냐와 자이레 형제들에 의해 다레살람(Dar-es-salaam)과 엠베야(Mbeya)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1992년 12월 16일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 1995년에는 한국인 임정훈 선교사가 잠시 파송되었다가 자국으로 돌아갔으며, 1997년 참부모님에 의해 아담 국가메시아 문용선(기성가정), 해와 국가메시아 시마 가즈오(1800가정), 아벨 국가메시아 진 피에르 로렝(8000가정), 가인 국가메시아 요한스 시왈드(1800가정) 등 총 4명의 국가메시아들이 파송되었다. 현재 탄자니아합중국은 3개의 교구와 3개의 교회에 100여 명의 식구들이 있으며, 협회 본부는 경제·행정수도인 다레살람(Dar es Salaam)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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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탈레스 Thales of Miletu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모든 물질의 본질을 물이라고 주장한 고대 철학자. [내용] 모든 물질의 본질을 자연 자체 안에서 탐구하려고 접근한 고대 철학자이다. 탈레스의 글은 현전하는 것이 없어서 여러 다른 철학자들의 언급을 통해 주장을 짐작하고 있다. 고대의 일곱 현인들의 정전에 이름이 들어 있어 고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추정된다. 물이 모든 물질의 본질이라는 우주론을 주장하였으며, 일식이 일어난 날짜를 정확히 예언하고 기하학 지식을 이용하여 현실적인 측량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레스는 우주를 물의 증발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설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최초로 우주의 단일한 물질적 기체, 즉 물 또는 습기를 주장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자연 자체로 원인을 탐구하고 현상을 단순화하여 자연을 설명하였다는 점에서 철학적 기여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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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탈무드 Talmud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모든 사상에 대해 구전·해설한 것을 집대성한 책. [내용] 유대인 율법학자들이 유대교의 율법, 전통적 습관, 축제, 민간전승, 해설 등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유대교에서는 『토라(Torah)』, 즉 ‘모세 5경’ 다음으로 중요시된다. 기원후 70년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유대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탈무드』를 편찬하게 되었다. 『탈무드』는 기원전 500년부터 서기 500년에 걸쳐 약 1천 년 동안 구전되어 내용을 2천여 명의 랍비들이 10년 동안 편찬한 방대한 문헌이다. 먼저 구전 ‘미슈나(Mishnah)’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해석서로 ‘게마라(Gemara)’가 만들어졌으며, 나중에 이 둘을 합하여 『탈무드』가 편찬되었다. 4세기 말경 팔레스타인에서 편찬된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6세기 무렵의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있는데,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예루살렘 ‘탈무드’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포괄적이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하면,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가리킨다. 『탈무드』는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해 온 경전이자 잠언집이며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처세술과 관련된 교훈이나 일화들이 있는가 하면 우화나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 ‘율법학자’, ‘율법’, ‘토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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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속화
탈세속화 Desecularization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종교가 세속적인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내용] 종교가 세속화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다시 말하여 종교가 다시 사회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세속화의 과정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반(反)세속화라고도 불린다. 19세기 이래 사회연구에서 이른바 사회진화론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에 대한 인식도 사회진화론적인 인식에 맞추어져 있었다. 즉 종교는 미성숙한 인간의 무지를 반영하는 것이며,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진보할수록 종교의 영역이 축소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지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정설로 받아들여졌으며, 사회에서 종교 영역의 축소와 쇠퇴를 설명하는 이론이 곧 세속화론이다. 실제로 종교사회의 변화는 세속화론에 일치하는 것으로 보였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기술의 향상 등으로 개인이나 사회는 더 이상 종교에 의지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학자들은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의 쇠퇴와 종교적 영향력의 감소현상을 종교세속화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제시했고, 세속화론은 한동안 자명한 논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종교세속화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회진화론으로 보면 당연히 쇠퇴하고 몰락해야 할 종교가 실제로는 그 반대의 현상을 보인 것이다. 세계의 주요 종교들에서 종교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은 그동안의 종교세속화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상이며, 인간의 사고능력이 성숙하고 사회가 발전해도 결코 종교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와 같이 그간의 세속화론을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을 종교의 탈세속화라고 한다. 종교의 탈세속화를 주장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사회진화론의 결론과는 달리 지금까지 종교가 몰락하지 않고 심지어 확장돼 온 것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실존에 대한 해답이나 도덕성의 기준 제시자로서 종교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종교는 여전히 그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며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 종교의 탈세속화 과정을 가장 예리하게 지적한 학자는 피터 버거(Peter L. Berger)인데, 역설적이게도 그는 1960년대 이후로 줄기차게 종교의 세속화를 주장해 온 학자이다. ☞ ‘세속화’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