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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원리강론 동시성으로 본 예수님 당시와 오늘 原理講論 同時性으로 본 예수님 當時와 오늘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제6장 제4절에 관한 내용으로 예수님의 초림시와 재림시는 섭리적 동시성시대라는 의미. [내용]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잘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으나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 형의 역사적 과정이 다음 시대에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어떤 시대의 역사가 그 전 시대의 역사와 흡사하게 반복되는 경우를 가리켜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부른다. 『원리강론』은 예수님의 초림시와 재림시가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밝힌다. 따라서 예수님 초림시의 역사적 상황이 예수님의 재림시에도 비슷하게 재현된다. 그 첫 번째 예로 예수님의 초림 때 유대교의 제사장과 교법사들이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심령이 부패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기독교 역시 교권과 교회의식에 사로잡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부패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이단자로 몰아 핍박했던 것과 같이 재림시에 기독교의 지도자들도 재림주님의 언행을 성경을 근거로 비판하며 이단자로 몰아세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계시나 재림하여 주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초림 때와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초림 때 메시아가 온 소식을 이방의 점성술자와 순진한 목자들이 먼저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계시도 기독교 지도자들보다 평신도들이나 양심적인 신자들에게 미리 알려 줄 것이다. 재림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천국을 바라고 나선 길로 인해 지옥에 가게 될 신도들이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민을 지도할 사명을 가진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이단자로 몰아 핍박하였다. 이에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림 때에도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천국에 가기 위해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갈 수 있다. 이처럼 예수님의 초림시와 재림시는 섭리적 동시성시대로 오늘날 기독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은 유대교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초림 때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게 나타난다. ☞ ‘동시성시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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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와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원리강론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와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原理講論 메시아 降臨 準備時代와 메시아 再降臨 準備時代 /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Advent of the Messiah and the period of preparation for the Second Advent of the Messia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4장 제6절의 내용으로 동시성 섭리로 초림 메시아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시대와 재림 메시아 참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시대를 해석한 역사 이해. [내용]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은 초림 메시아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400년 기간을 의미하고,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400년은 재림 메시아 참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400년 기간을 의미하며, 두 시대는 섭리적 동시성시대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 예수님을 맞았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도들도 교황이 아비뇽의 포로생활에서 로마로 돌아온 후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다. 40일 사탄 분립 기간으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가 계속적인 사탄의 침범으로 인하여 연장을 거듭하여 내려왔던 아담 이후 4천 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아담으로부터 6천 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가 있어야 한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성전(聖殿)을 신축하고 말라기 선지자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邪神)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면서 율법을 공부하고 신앙의 쇄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루터 등을 중심하고 종교개혁운동을 일으키어 중세 암흑시대의 암운(暗雲)을 뚫고 새로운 복음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약 40년 준비기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를 다시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든 기독교 신도들은 마치 애급에서 요셉을 만날 때까지의 야곱 가정이나 예수님을 맞을 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갖은 파란과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복귀섭리시대는 율법과 제사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내려오던 시대였으므로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의 제1이스라엘은 페르시아, 그리스, 애급,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에 속방이 되어 외적인 고난의 길을 밟았다. 그러나 복귀섭리 연장시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기도와 신앙의 내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에 있어서의 제2이스라엘은 내적인 수난의 길을 걷게 된다. 곧 이 시대에는 문예부흥의 주도이념인 인문주의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계몽사조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라 부르짖게 된 신앙의 자유 등에 의한 영향으로 인해 종교와 사상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기독교 신도들은 말할 수 없는 내적인 시련을 당하게 된다. 이와 같이 초림 메시아 예수님의 강림을 위한 400년 준비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재림 메시아 참부모님을 위한 400년 준비기간이 있게 된 것이다. 초림 때에는 하나님이 그의 선민을 위하여 메시아가 강림하기 430년 전에 선지자 말라기를 보내어 메시아가 강림할 것을 예언케 하고,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쇄신하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선민으로 준비를 갖추도록 하였다. 한편 이방인들 간에 있어서는 이와 거의 동시대에 인도의 석가모니(B.C. 565-485)로 하여금 인도교를 발전시켜 불교의 새로운 터전을 개척케 하였고,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B.C. 470-399)로 하여금 그리스 문화시대를 개척케 하였다. 또 동양은 공자(B.C. 552-479)로 하여금 유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게 하는 등 각 지방과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워 장차 강림할 메시아를 맞이하는 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 같이 준비된 터 위에 강림하여 기독교를 중심으로 유대교를 수습하고 헬라 문화 및 불교와 유교 등의 종교를 포섭하여 그 종교와 문화의 전역을 하나의 기독교 문화권에 통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을 앞두고 메시아 강림에 대한 준비를 위하여 섭리하였던 환경 조성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오게 된 시대가 문예부흥시대였다. 그러므로 문예부흥시대는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시기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걸친 비약적인 발전은 모두 이 문예부흥시대로부터 급격히 시작되어 재림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성숙시켜 나온 것이다. 즉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으로 인하여 지중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통팔달한 교통, 헬라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범한 문화적 판도 등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중심한 로마, 로마를 중심한 세계로 메시아의 사상이 급속히 확대되어 나갈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조성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 때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열강들의 중흥으로 인해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판도는 전 세계에 펼쳐졌고, 교통 및 통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동서의 거리는 극도로 단축되었으며, 언어와 문화는 세계적으로 교류되어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사조가 자유롭고도 신속하게 전 인류의 가슴속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그 평면적인 판도가 완전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가 재림하면 그의 진리와 사상을 급속도로 전파하여 단시일 내에 세계화시키는데, 이것이 그대로 적합한 평면적 기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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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원리강론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原理講論 메시아의 降臨과 그 再臨의 目的 / Messiah, his Advent and the purpose of his second coming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메시아의 강림과 재림의 목적을 설명하는 『원리강론』 전편 제4장. [내용] 십자가에 의한 구원섭리 1) 메시아로 강림한 예수님의 목적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한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완전히 구원하려는 것이었으므로 결국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상천국을 먼저 이루어야 했다. 2)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섭리가 완성되었는가?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신성을 갖게 되어 하나님과 일체불가분(一體不可分)의 생활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속죄가 필요 없고, 기도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성도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듯 십자가의 대속으로써는 메시아로 강림한 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없었으므로 재림할 것을 약속하였다. 십자가가 대속의 역사(役事)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원죄까지 완전히 벗겨 줌으로써 죄를 지으려고 하여도 지을 수 없는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시켜서 지상천국을 이루어 놓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느낀 뚜렷한 하나의 정염(情念)은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김으로써 분개하고 서러워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이스라엘 선민을 세워서 보호 육성했고, 때로는 그들을 고난과 시련으로써 인도하였다.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어 위로하며 장차 메시아를 보낼 것을 굳게 약속하였다. 하나님이 세례 요한까지 보내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게 한 것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메시아로 믿을 수 있도록 언행하였다. 4)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님 재림의 목적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영육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어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贖罪)로써는 육적 구원을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담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또다시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5)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하나님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였다. 메시아를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는 메시아를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해야만 하였다. 6)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한 성구는 예수님이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할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려고 탕감조건으로서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 이후의 말씀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길을 만류한 것은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렇게 책망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최후의 말씀을 한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영교(靈交)해야 되고, 둘째로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 요한 1) 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 소망에 못지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했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었고, 예수님이 갑자기 메시아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혼란이 일어났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던 엘리야라고 말했지만, 세례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2) 유대 민족의 갈 길 예수님에 대한 전후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당시의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세례 요한은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혹시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물어볼 정도로 유대인들에게 훌륭하게 보였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세례 요한의 말을 믿고 엘리야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메시아가 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3) 세례 요한의 불신 하나님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세례 요한에게 직접 교시하였고, 세례 요한도 그렇게 증거했으며 그 자신도 그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자기가 엘리야라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의 지혜로써 알아야 했다. 설혹 세례 요한이 그 사실을 지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늘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거 받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그를 엘리야라고 증언한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신이 엘리야라는 사실을 뒤늦게라도 선포해야 마땅하였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한 후 제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섬겨야 하였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불신하였고, 자기가 엘리야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유대 민족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말았다. 4)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된 이유 엘리야가 지상에서 다하지 못한 사명을 계승해 완성하기 위하여 세례 요한이 왔었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슬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기 위하여 출생한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명적인 입장에서 재림한 엘리야이었던 것이다. 5) 성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을 초래하였고, 유대인들의 불신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예수님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천적인 비밀을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을 무조건 위대한 선지자라고 단정하는 견지에서만 성서를 보아 온 까닭이다. 우리는 인습적인 신앙 관념과 구태(舊態)를 벗어 버리기를 두려워하는 고루한 신앙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명을 다하고 간 세례 요한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믿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사실상 사명을 다하지 못한 세례 요한을 잘못 알고 사명을 다한 것으로 믿는 것도 잘못된 신앙임에 틀림없다. 타락한 인간은 신령면으로나 진리면으로 항상 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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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원리강론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모세를 中心한 復歸攝理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2장 제2절의 내용. [내용]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모세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3차로 진행되었다. 2차 노정과 3차 노정은 성막과 석판을 중심한 섭리로 진행되었으며, 3차 노정은 중심인물이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교체되어 진행되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을 애급에서 고역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은 끝나게 되었다. 여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 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다. 모세는 이와 함께 타락 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사탄 세계의 중심인 바로 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내야 하였다. 모세는 남모르게 그의 유모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궁중 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세웠다. 이와 같이 모세는 바로 궁중 생활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워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한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다.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부모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던 기간은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을 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모세가 애급인을 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이 인간시조를 타락시켰고,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의 입장에서 인류 죄악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 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 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또한 모세로 하여금 바로 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세우기 위함이었다. 모세의 그런 행동을 보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존경하고 믿고 모시며 따랐더라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거나 시내 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길을 통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을 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발설하여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해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여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하였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워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 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였다. 가인의 입장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던 모세를 절대로 믿고 따르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이 이루어져 실체기대가 조성되고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인 기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3대 기적과 10재앙의 권능을 주어 애급인을 치게 함으로써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한 섭리를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은 3대 기적과 10재앙을 보고 모세를 하나님이 보낸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라고 믿고 복귀노정을 출발했다. 그들이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야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야 민족적인 실체기대가 이뤄지게 돼 있었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홍해를 건너고 시내 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이었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를 위한 섭리는 성막과 석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성막과 석판을 중심한 섭리가 성공해야 실체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모세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았다. 말씀을 기록한 두 석판은 복귀한 아담과 해와의 상징체로서 장차 말씀의 실체로 오는 후 아담과 후 해와를 상징했다. 그리고 성막(聖幕)은 메시아의 상징적인 표시체였다. 성막은 지성소(至聖所)와 성소(聖所)의 두 부분으로 돼 있었는데 지성소는 메시아의 영인체, 성소는 메시아의 몸을 상징했다. 법궤는 크게는 천주(天宙), 작게는 성막의 축소체였다. 하나님이 석판과 성막 그리고 법궤를 중심한 섭리를 진행한 목적은 비록 사람은 변하여도 변할 수 없는 신앙의 대상을 세워 놓으려던 것이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것을 절대로 신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의 대상을 바통과 같이 이어받게 하면서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성막을 지었다는 것은 메시아가 상징적으로 강림했음을 의미하므로 성막을 위한 기대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로 돼 있었다. 성막을 위한 기대는 3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내산에서 40일 금식을 한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음으로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를 믿고 순종하며 가나안에 들어가면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40일 기간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으로 섬겼다. 그것을 본 모세는 석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렀다. 그 결과 제1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실패하였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다시 40일 금식을 한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개의 석판을 받음으로써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믿고 순종하여 성막을 건축함으로써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믿고 따라 가나안에 들어가서 성전을 지어야 이뤄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따라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했지만 계속 불신함으로 인해 실체기대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 제2차 성막을 위한 기대가 사탄의 침범을 받게 돼 제3차 섭리로 연장되었다. 모세의 변함없는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성막은 여전히 모세를 중심하고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 위에 서 있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르비딤에서 성막의 중심인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의 샘물을 마신 터전 위에 서 있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40일 사탄 분립기대를 세우면 성막을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할 수 있었다. 이것을 위한 조건이 40일 정탐 기간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지파로부터 족장 한 사람씩을 모아 12명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탐에서 돌아온 12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불신의 보고를 하였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원망하고 통곡하면서 새로이 한 장관을 세워 애급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떠들었다. 그럼으로써 제3차 성막을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못하여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도 실패하게 되었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이스라엘 민족은 정탐 40일 기간을 믿음과 순종으로 찾아 세우지 못함으로써 40년 동안 광야를 표류해야 하였다. 모세는 광야 40년 기간을 믿음과 충성으로 성막을 모시고 표류하다가 가데스바네아로 돌아옴으로써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한 믿음의 기대를 세웠다. 성막을 충성으로 받들고 모셨던 모세의 성막을 위한 믿음의 기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터전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표류의 40년 기간을 변치 않는 신앙으로 성막을 받들고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함으로써 정탐 기간 40일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기대를 세우면, 그 때에 성막을 위한 실체기대가 조성되어 성막을 위한 기대가 이뤄질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 위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성막을 중심한 모세를 따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면,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체기대가 이뤄지게 돼 있었다. 석판은 법궤의 축소체요, 법궤는 성막의 축소체이므로 결국 석판은 성막의 축소체였다. 그러므로 법궤나 성막은 석판이나 그의 뿌리가 되는 반석으로 표시될 수 있었다. 제3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반석을 중심한 출발을 위한 섭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광야 40년 기간을 신앙으로 세우지 못하고 불신으로 돌아간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모세가 불신하던 백성을 보자 격분하여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침으로 인해 실체기대의 중심인물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반석은 완성한 아담을 상징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장차 반석이 될 아담을 쳐서 타락시켰다. 따라서 아담은 생명나무가 되지 못하였다. 모세가 지팡이로 치기 전 샘물을 내지 못한 반석은 바로 타락한 아담을 상징한 것이다. 모세가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은 생명나무로 와서 타락한 인간에게 생명수를 준 메시아를 상징했다. 모세가 반석을 한 번 친 것은 타락한 제1아담을 완성한 제2아담 예수님으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운 것이다. 모세가 하늘 편에서 한 번 쳐서 샘물을 내게 된 반석을 또 다시 친 행동은 장차 복귀한 반석으로 와서 만민에게 생명수를 먹여 줄 예수님을 칠 수 있다는 표시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이 죄가 된 것이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반석을 중심으로 이루려던 출발을 위한 섭리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러나 모세의 내적인 불변의 심정과 여호수아의 믿음과 충성으로 인해 내적으로는 샘물을 내어 마시게 할 수 있었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후 실체기대의 중심인물 자리를 떠나게 되어, 여호수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석판과 성막 그리고 법궤는 여호수아가 세운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 있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모세 대신으로 세우고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에게 복종하게 하여 그와 함께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서게 함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였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여리고 성으로 정탐을 보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두 정탐인은 믿음의 보고를 하였다. 광야에서 출생한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모두 그 정탐인의 말을 믿어 과거에 40일 정탐에서 불신의 보고를 한 선조들의 죄를 탕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후손은 성막을 위한 기대 위에 선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을 맹세함으로써 여호수아와 함께 그 기대 위에 서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정복하고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실체기대가 이루어져 메시아를 위한 민족적 기대가 조성되었다. 모세와 여호수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는 장차 메시아가 걸어야 할 사탄굴복의 전형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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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발간
원리강론 발간 原理講論 發刊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기본교리서인 『원리강론』을 발간한 역사적 사건. [내용] 참부모님이 직접 연구하고 계시 받은 내용을 기록한 ‘원리원본’을 유효원 등이 쉽게 풀이하고 정리하여 1957년 『원리해설』로 발간한 후 9년 동안 수정과 보완의 작업을 거쳐 1966년 5월 1일 통일교회 창립 13주년을 맞이하여 발행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주요 교리서로서 전 세계 34개 국어로 번역되어 161개국에 전파되었으며, 한국에서 나온 종교 교리서들 중 세계 각국에 가장 널리 보급된 경전이 되었다. 창조, 타락, 복귀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설명하는 교재로 초대협회장인 유효원이 책임을 맡아 원고를 정리하였으며, 협회 문화부장인 유광렬 등이 교정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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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복귀기대 섭리시대
원리강론 복귀기대 섭리시대 原理講論 復歸基臺 攝理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온 시대. [내용] 타락한 인간이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되기 위해서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기준인 장성기 완성급까지 복귀된 터 위에서 메시아를 맞아 원죄를 벗어야 한다. 이후 메시아를 따라 더욱 성장하여 창조목적을 완성한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한 인간이 자신을 중생시켜 줄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인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워야 한다.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중심인물, 조건물, 수리적인 탕감기간이 필요하며,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인간시조는 타락으로 인하여 믿음의 기대를 세우기 위한 조건물인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 만물보다 낮은 위치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없는 위치에 놓인 인간이 말씀 대신의 조건물로 세운 것이 제물이다. 모세 이전까지 아벨, 노아, 아브라함 등의 섭리적 중심인물들은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제물을 조건물로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온 시대를 가리켜 복귀기대 섭리시대(復歸基臺 攝理時代)라고 한다. ☞ ‘믿음의 기대’, ‘조건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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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복귀기대 섭리시대의 대수와 연수의 형성
원리강론 복귀기대 섭리시대의 대수와 연수의 형성 原理講論 復歸基臺攝理時代의 代數와 年數의 形成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원리강론』 후편 제3장 제2절에 대한 내용으로 복귀기대 섭리시대의 대수와 연수의 형성에 관한 설명. [내용] 인류 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형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는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부른다. 섭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 역사는 상징적 동시성시대인 ‘복귀기대 섭리시대’와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복귀섭리시대’ 그리고 실체적 동시성시대인 ‘복귀섭리 연장시대’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원리강론』은 ‘복귀기대 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연수의 형성’이라는 절에서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대수를 중심한 동시성시대’,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 섭리시대’에 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