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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형 인생관
아벨형 인생관 아벨 型 人生觀 / The abel-type view of lif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인생관. [내용] 인간의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인생관으로 가인형 인생관에 대응된다. 『원리강론』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에게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기 위하여 오랜 역사의 기간을 두고 개인에서 세계에 이르기까지 가인과 아벨 두 형의 분립역사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왔다고 본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도 이 타락한 세계는 가인형의 공산세계와 아벨형의 민주세계로 분립된다. 그리하여 가인형의 세계가 아벨형의 세계에 굴복하여 재림주를 맞기 위한 세계적인 실체기대가 이루어져서 하나의 세계를 복귀하게 된다. 이러한 가인과 아벨 두 형의 세계가 이루어지게 한 인생관은 가인형과 아벨형으로 구분된다. 인간이 그의 내적인 성향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외적인 성향만을 따라서 사탄 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인생관은 가인형의 인생관 또는 가인형 인생관이라고 한다. 한편 중세인들의 본성적인 추구는 외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본성의 내적인 추구가 히브리 사상의 복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으로 철학과 종교는 창조본성을 지향하는 입체적인 인생관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를 아벨형의 인생관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인형의 인생관은 중세인을 신과 신앙으로부터 분리 혹은 독립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갔지만, 아벨형의 인생관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고차적으로 신을 지향하여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 ‘가인형 인생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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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아브라함 Abraha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데라의 아들이며, 이삭의 아버지. [내용]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자 이삭의 아버지이다. 창세기 11장 26절을 보면, 그의 본명은 아브람(Abram)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고, 그의 아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개명하게 하였다.(창세기 17:5, 15)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는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하란에서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내 사라와 조카 롯 그리고 거기에서 취한 모든 재물과 사람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창세기 12:4-5) 창세기 15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둘기와 양과 암소로 제사를 드릴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물로 바치는 비둘기를 쪼개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였고, 아브라함은 이에 순종하였다.(창세기 22:1, 19) 그는 175세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아내 사라가 묻힌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창세기 25:7-10) 『원리강론』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서 노아의 대신이며 아담의 대신이기 때문에 복귀한 아담형의 인물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담과 노아에게 축복하였던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도 자녀를 번식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이 되라고 축복하였다. ☞ ‘이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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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아비뇽 Avigno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과거 로마교황청이 이전했던 프랑스 남부의 도시. [내용] 십자군 전쟁 이후 교황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프랑스의 왕 필립 4세는 봉건제를 넘어선 왕 중심의 국가 체제를 구상하였다. 필립 4세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성직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기 시작함으로써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1303년 9월 필립 4세와 동맹 세력들은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을 급습하여 체포하였다. 보니파키우스 8세 교황의 후임으로 1303년 10월 베네딕토 11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그는 8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1305년 베네딕토 11세 교황 후임으로 선출된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 교황은 필립 4세 왕의 간섭으로 인하여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가지 못하고 아비뇽에 머물게 되었다. 클레멘스 5세 교황은 1309년 교황청을 아비뇽에 두게 되었다. 이로써 1309년부터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 교황이 로마로 돌아갈 때까지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은 아비뇽에 거주하면서 프랑스 왕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 기간을 교황의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한다. 『원리강론』은 유대 민족의 바빌론 유수와 교황의 아비뇽 유수를 복귀섭리의 동시성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 ‘섭리적 동시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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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
아비멜렉 Abimelec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아브라함 당시 그랄을 통치한 왕. [내용] 가자지역 근처 그랄 땅을 다스리던 블레셋의 왕이다. 아비멜렉은 구약성서 창세기 20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후 이주하여 그랄에 머물게 되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그녀를 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서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임을 알리고, 아브라함에게 그녀를 돌려주도록 하였다. 아비멜렉은 결국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종들과 함께 사라를 돌려보내고 그들이 자기 땅에 거주하게 하였다. 『원리강론』은 아비멜렉에게 사라가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속여진 후 재물을 얻게 되는 과정을 하나님 복귀섭리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 ‘원리강론 아브라함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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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라
아세라 Asherah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페니키아와 수리아에서 가나안으로 유입된 여신. [내용] 아세라는 가나안에서 다산,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바알이라 불리는 남신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향을 미친 이방신들 가운데 하나이다. 출애급기 34장 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출애급 때부터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릴 것을 명하였다. 출애급기 34장 16절은 아세라 숭배와 관련된 제의가 성적으로 부도덕한 측면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이들을 책망하였다.(사사기 3:7-8) 북조 이스라엘 아합 왕이 페니키아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바알과 아세라 숭배가 더욱 성행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였다.(열왕기상 16:33) 이와 같은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열왕기하 17:7-23) 『원리강론』에서는 이방신 숭배를 경고하는 선지자 엘리야가 다루어지며, 이와 함께 아세라가 언급된다. ☞ ‘바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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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르 아라파트
아세르 아라파트 Arafat 항목체계 인물 [정의] 예루살렘 평화 대행진에 공헌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 [내용] 팔레스타인의 국민 해방운동 알파타의 지도자로 1968년부터 PLO(팔레스티나 해방 전선) 의장으로 망명 정부를 이끌고 대이스라엘 무력항쟁을 지도하였다. 1929년 태어나 온건파지도자로서 국제무대에서 널리 활동하며 팔레스타인 국민 해방운동이 인정받는 데 기여하였다. 2003년 12월 이스라엘 예루살렘 평화 대행진 중 평화를 위한 만남을 가지고 성주를 마시며 참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다음날 이슬람의 성소 ‘엘 악사 모스크’광장에서 평화의 기도가 열린 뒤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 광장에서 평화 기원 기도회가 열리는 데 공헌하였다. 다음해인 2004년 아라파트 PLO 의장이 성화하자 참부모님은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고 예루살렘 평화 대행진에 협력한 것을 높이 평가해 ‘축 영계 대사 아라파트 대통령’이라는 휘호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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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리더십 트레이닝
아시아 리더십 트레이닝 항목체계 해외 [정의] 필리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진행한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내용] 2009년 필리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차세대 미래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다. 청년 봉사 및 NGO 활동, 히말라야 등반, 가정의 가치와 순결 캠페인, 노상 전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