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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기적 奇蹟 / Miracle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불가사의하게 여겨지는 초인적인 일이나 초자연적인 현상. [내용] 통상적 이해나 설명을 넘어선 놀랍고 불가사의한 일을 흔히 기적이라고 한다. 엄밀하게 정의하면, 기적은 초인적인 일이나 자연법칙을 벗어나는 현상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일어났을 때 그것을 신적인 존재나 성스러운 것의 개입이나 작용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적(異蹟), 기사(奇事), 신이(神異) 등이 유사하게 쓰인다. 특히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기적을 단지 기이하고 놀라운 일일 뿐만 아니라 신의 권능과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로 정의한다. 성서에 있는 창조의 기적, 출애급기의 10재앙과 홍해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나사로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물로써 포도주를 만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들, 부활과 승천의 기적 등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가톨릭교회는 성령(聖靈)의 힘으로 행한 사도들과 성인들의 기적도 인정하며, 이슬람교는 꾸란의 계시와 같은 알라의 기적과 예언자를 통한 기적을 구분한다. 동아시아에서는 불교의 신통(神通)·신변(神變), 도교의 환술(幻術)·환법(幻法), 민간신앙의 영험(靈驗) 등이 기적에 해당된다. 『원리강론』 후편은 복귀섭리의 중심인물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던 과정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권능을 보이고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 기적을 보이는 섭리를 하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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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학
기호논리학 記號論理學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명제와 명제 사이의 결합관계에 주목하여 수학적 기호에 의해 사고의 법칙이나 형식을 연구하는 논리학의 한 분야. [내용] 기호논리학은 개념과 개념, 명제와 명제의 결합관계를 수학적 기호로 연결하여 사고의 법칙과 형식을 엄밀히 하고자 하는 논리학의 일종이다. 부정문(negation), 선언문(disjunction), 연언문(conjunction), 조건문(implication), 쌍(雙)조건문(biconditional) 등 5가지의 기본형식을 바탕으로 그 어떠한 복잡한 연역적 추리도 정확히 표현해 낼 수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통일사상요강』은 기호논리학이 사고(思考)를 수리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사고의 정확성 및 엄밀성을 기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수학적 엄밀성만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통일사상요강』에 따르면 인간은 로고스적 존재, 즉 이성적이고 법칙적인 존재이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파토스(pathos)적 존재, 즉 심정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이다. 이는 인간 마음의 기능인 지·정·의가 사랑의 원천인 심정을 기반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에 수학적 엄밀성이 없는 경우에도 거기에 사랑 또는 감정이 결부되어 있다면 화자(話者)의 의향이 충분하고 더 깊이 상대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논리의 온전성은 언어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심정을 기반으로 한 정적인 측면을 함께 아우를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심정’, ‘파토스’, ‘로고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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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원인론
기회원인론 機會原因論 / Occasionalism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정신과 신체 사이에 신이 개입하여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이론. [내용] 게일링크스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과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를 원인으로 하여 나타난다고 주장한 학설이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의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각각 사유실체와 연장실체로서 전혀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완전히 상이한 이 두 실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데카르트는 적절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는데, 철학사에서는 이를 ‘마음과 몸의 문제(the problem of mind and body)’라고 부른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이어받은 게일링크스(A. Geulincx, 1624-1669)나 말브랑쉬(N. de Malebranche, 1638-1715)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회원인론(機會原因論)을 주장하였다. 게일링크스에 따르면 신체 내에 어떤 운동이 벌어질 때 신은 이것을 ‘기회(occasion)’로 삼아 정신 내에 그것에 상응하는 운동을 일으키며, 마찬가지로 정신 내에 어떤 운동이 일어날 때 신이 그것을 기회로 하여 신체 내에 그것에 상응하는 운동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즉 마음과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를 원인으로 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통일사상요강』은 이와 같은 기회원인론을 지극히 방편적인 설명에 불과할 뿐 전혀 실제와 맞지 않은 이론으로 간주한다. 정신과 물질을 완전히 이질적인 두 실체로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주장부터 잘못된 것이다. 『통일사상요강』에 따르면 정신과 물질, 즉 성상과 형상은 동일한 본질적 요소의 두 가지 표현태(表現態)로서 서로 닮아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데카르트’, ‘심신이원론’, ‘게일링크스’, ‘성상과 형상’, ‘표현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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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주
길선주 吉善宙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우리나라 장로교 초기의 대표적 지도자이자 1909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이끈 부흥목사. [내용] 우리나라 장로교 초기의 대표적 지도자로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무하고 있던 중 1909년 대부흥운동을 이끈 부흥목사이다. 영계(靈溪) 길선주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한학을 수학하였고, 차력술을 연마하였으며, 19세부터 관성교에 심취하고 선도(仙道)를 수련하면서 영적인 갈구의 도정에서 도반 김종섭(金鍾燮)의 소개로 기독교를 접했다. 기독교 교리서를 읽으며 관심을 가지게 된 길선주는 “예수님이 참구주인지 알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중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라고 세 번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방성대곡하며 부복한 체험을 통해 기독교 신앙으로 회심하였다고 한다. 그 뒤 1879년 29세 때 세례를 받고 1901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장로가 되었으며, 190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0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 목사 7인으로 안수를 받고 평양 장대현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는 새벽기도회와 사경회로 심령부흥을 일으키며 1909년 대부흥운동으로 전국적 부흥운동이 번져 나가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초기의 한국교회를 영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토착 부흥목사이며 기독교 최고의 전도사였다. 교회 지도자로서 백만구령운동을 이끌고 교회의 토착화와 근대화에도 힘썼다. 뿐만 아니라 길선주는 국권 상실과 민족 고난의 시기에 민족을 위한 기독교가 되고자 했던 민족적 지도자로서 105인 사건의 수난에 함께했고, 3·1운동 때 기독교 대표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를 공포하고 옥고를 치렀다. 석방된 이후 계속 전국 순회 부흥집회를 인도하다가 1935년 쓰러져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교육에도 관심을 쏟아 숭실학교(崇實學校)와 숭덕학교(崇德學校)를 설립하였고, 설교집 『강대보감』(1926년)을 남겼다. 유고로는 『말세학』과 『길선주목사설교집』 등이 있다. ☞ ‘대부흥운동’, ‘김익두’, ‘이용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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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
김경남 金慶男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서울 성별 여 생년월일 1932년 [정의] 36가정으로서 섭리에 헌신한 우크라이나 국가메시아. [내용] 김경남은 1956년 입교한 초창기의 식구로서 1961년 정수원과 36가정으로서 축복을 받은 원로이자 교회 발전에 기여한 여성 지도자이다. 193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한국동란 후 가세가 기울자 은행에 취업해 근무하면서 인생의 많은 의문을 가지고 종교를 탐구하며 영적인 체험을 하였다. 같은 은행에 근무하던 친구의 소개로 통일원리를 듣고 참아버님을 뵈었을 때 이미 몽시로 본 청년이라는 것을 알고 입교를 결심하였다. 이후 참아버님께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좋겠다고 추천해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 1960년부터 개척전도를 시작하여 전국 순회사로 활동하였다. 1961년 정수원과 36가정으로서 축복을 받고 8남매를 낳아 모두 2세 축복을 시킨 후 3년 공적인 생활을 하도록 양육하였다. 목회자 사모로서 목회의 현장에서 ‘원리’ 강의, 식구 심방 및 상담 등 교회 개척에 헌신하였으며 우크라이나 국가메시아로서 선교의 일선에서도 활동하였다. 전국부인연합회 여명회 회장, 세계평화여성연합 상임이사, 선학장학재단 이사 등을 역임하며 섭리적으로 기여했으며 목회 선교부문 33년 이상 시무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참부모님 공로상, 2003년 천일국 주인상, 2013년 참부모님 천일국 기원절 특별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2017년 6월 그녀가 성화하자 참부모님은 ‘축 천성입국충성자 우크라이나 국가메시아 김경남’이라는 휘호를 하사하셨다. ☞ ‘정수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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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성
김관성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부산 성별 남 [정의] 1956년 최초로 장로 임직을 받은 한의사. [내용] 김관성은 1953년 유효원과 함께 부산 영도에서 참아버님의 ‘원리’ 강의를 직접 듣고 입교한 한의사로 통화당한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면서 초창기의 섭리에 기여한 원로이다. 1953년 12월 24일 유효원 선생의 편지를 받고 부산 영도에 오셨던 참아버님으로부터 ‘원리’ 강의를 듣고 인생의 참진리를 찾아 입교하였다. 입교 당시 부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1954년 7.4사건 이후 서울 청계천 수표교 근처에 통화당한의원을 개원하여 어려운 교회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다. 초창기에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1976년 8월 10일 성화하였다. ☞ ‘유효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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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金明熙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삭주 성별 여 생년월일 1930.10.23(음) [정의] 문희진의 어머니이자 소크라테스와 영계 축복을 받은 원로. [내용] 김명희는 1954년 입교한 뒤 일본으로 가서 문희진을 출산하였으나 섭리적으로 좌절된 마리아의 입장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귀국한 이후 평범한 식구로서 절대적인 신앙생활을 한 원로이다. 1930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태어나 목회를 하던 부모의 슬하에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성장하였다. 1947년 남하 후 폐결핵을 앓고 한국동란을 겪는 등 많은 시련과 난관이 있었으나 모친과 동생들을 돌보며 신앙과 학업을 계속하였다. 1952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숙모인 양윤신의 권유로 참부모님을 찾아뵙고 말씀을 들었으며, 1954년 부산 영도 특별부흥회에서 영적인 역사를 경험하면서 입교한 후 뜻길에 헌신했다. 입교 후 휴학을 했다가 장학금을 받게 되어 연세대에 복학하였다. 이후 마리아의 사명을 복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1955년 문희진을 출산하였다. 일본에서 여러 영적인 지도자들을 만나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선교에 동행한 동창생이 변심하여 떠나고 홀로 문희진을 양육하던 중 이웃에 살던 일본인이 침범하여 좌절한 마리아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며칠 뒤 1958년 밀입국의 혐의로 체포되어 1959년 송환되었다. 귀국 후 변함없는 신앙의 자세로 기도와 정성을 들이며 절대신앙의 생애를 살다가 1998년 소크라테스와 영·육계 기성 축복을 받았다. ☞ ‘양윤신’, ‘소크라테스’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