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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욘 치즈코
로니욘 치즈코 항목체계 해외 [정의]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식구. [내용] 로니욘 치즈코는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초창기 식구이다. 로니욘 치즈코는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新大久保)의 시대(1961년 6-12월)에 최봉춘 일본 선교사의 지시로 여름 40일 개척전도를 센다이(仙台)로 나갔다. 당시의 개척전도는 한국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홀로 40일 동안 믿음의 자녀 3명 이상을 전도하고, 그곳에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기대를 조성해야 했다. 당시에 교회로부터 지급된 것은 해당 임지에 가기 위한 편도 교통비와 천 엔뿐이었다. 성경과 원리해설 그리고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아직 신간센이 없던 때라 도쿄역에서 한밤중에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전도 개척자가 임지로 출발할 때, 최봉춘 선교사를 비롯한 몇 명의 교회식구들이 도쿄역 구내까지 와서 배웅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가를 부르고 기도했다. 이후 로니욘 치즈코는 대학성경연구회 활동을 통해 오야마다 히데오에게 ‘원리’를 강의하여 전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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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인 농가
로레인 농가 로레인 農家 / Rowlane farmhouse 항목체계 해외 [정의] 영국 런던 교외에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교회. [내용] 로레인 농가는 영국 런던 교외에 있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교회이다. 영국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1970년에 이 농가를 빌려서 사용하다가 구입하여 본부교회로 사용하였다. 참부모님은 미국에서 순회강연을 성공리에 마친 후 일행과 함께 1972년 3월 16일 영국 런던에 도착하였다. 영국 런던 교외에 위치한 로레인 농가에서 1박을 하며 1972년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개최될 예정이었던 ‘런던 프렌즈미팅하우스’ 공개강연회를 준비하였다. 1974년 영국을 방문한 참부모님은 이곳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전 유럽 지도자 모임을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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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로마 Roma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고대 로마제국의 수도이고 교황과 바티칸이 있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지로서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 [내용] 고대 로마 공화정과 로마제국의 수도로서 베드로와 바울이 선교했던 초대 기독교의 성지이자 교황령이 있는 가톨릭교회 중심지로서 ‘세계의 머리(Caput mundi)’, ‘영원한 도시(la Città Eterna)’, ‘영원한 로마’로 불리어 왔다. 건국신화에 의하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트로이계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후예이며 마르스의 아들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테베레 강가 동쪽의 팔라티노 언덕 위에 건설했으며, 도시명은 최초의 왕 로물루스 이름에서 유래했다. 건국 이후 왕정에서 로마 공화정을 발전시켰고, 기원전 2-3세기의 포에니전쟁과 마케도니아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강자로 부상했다. 술라,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등의 영웅들의 권력투쟁과 내전 및 1·2차 삼두정치를 거쳐서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황제)로 등극하며 로마제정이 시작되었다. 그 뒤 약 2세기 동안 오현제(五賢帝)의 치하에서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는 황금시기를 맞이하며 영토를 확장하여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3세기 초부터 황제들이 난립하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자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사두정치로 분할통치를 시작했으나,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제국을 재통합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한 뒤 로마의 정치적 위상은 약화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 동서 로마제국의 분리와 476년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제국의 멸망한 이후에도 교황령의 수도로서 로마는 계속해서 종교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로마는 고대와 중세의 유럽 문명과 종교의 중심이며,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유럽을 대표하는 역사적 도시이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티칸시국이 있는 세계 기독교인들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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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로마서 로마書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신약성경 서간들 중 하나로서 사도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글. [내용] 로마서는 서기 57년경 사도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로마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기독교의 몇몇 교리를 폭넓게 다루고 있고, 특히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어서 신학적으로 중요시 된다. 바울은 편지에서 로마교회가 겪고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 간의 다툼을 중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구원의 은총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원리강론』은 로마서의 성구를 많이 인용하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새롭게 드러낸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로마서 8장 19절에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 즉 복귀된 창조본연의 인간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를 주관해 줄 수 있는 주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8장 23절에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인간이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몸의 속량(贖良)을 기다린다고 한 것은 모든 인간이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혈통이 아닌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의미한다.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한 것, 또한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한 것은 죽음이라는 것이 육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음뿐만 아니라 사탄의 악 주관권(惡 主管圈)으로 떨어지는 영적인 죽음도 있음을 가리킨다. ☞ ‘바울’, ‘이신칭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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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로마제국 로마帝國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이탈리아반도 및 지중해 전체를 지배했던 고대 서양 최대의 제국. [내용] 로마제국의 시작은 보통 로마 공화정을 거쳐 아우구스투스가 초대황제로 등극한 기원전 27년으로 본다. 하지만 로마 제정(帝政)시대의 종식에 대해서는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1453년 비잔티움제국의 멸망 등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로마제국은 강력한 군대를 통한 정복사업을 펼쳐 지중해 동부의 헬레니즘 문화권, 이집트, 유대, 서부의 옛 카르타고, 히스파니아, 갈리아, 브리타니아, 라인 강 서쪽의 게르마니아, 그리스 북쪽의 다키아지역 등을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다. 정복지의 문화와 신을 인정하는 다문화, 다신교 정책을 펼쳐 제국의 통합을 도모하는 한편으로 로마에 저항하는 민족은 철저히 응징하였다. 건축, 법, 정치, 종교 등 로마제국의 문화가 고대 지중해 세계에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으며 서양 문명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일컬어지는 로마제국의 번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예비된 섭리적 기반이었다고 본다. 만약 유대교와 유대 민족, 더 나아가 로마제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하나 되었더라면 로마제국의 범세계적 문화권을 통해 전 세계가 복귀되고 하나님 나라가 실체적으로 건설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과 로마 관원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여 십자가의 길로 내몰면서 이 뜻은 실현될 수 없었다. ☞ ‘팍스로마나’, ‘예수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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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박해시대
로마제국 박해시대 로마帝國 迫害時代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로마제국이 초기 기독교를 박해한 400년 기간. [내용] 로마제국이 정복전쟁을 펼치며 영토를 광대하게 확장해 나가던 동안 정복지의 문화와 신을 인정하는 다문화, 다신교 정책을 펼쳐 제국의 통합을 도모하였다. 로마 황제에 대해 마땅한 경의를 표하고 국가신(國家神)들을 위한 예식에 참여하는 한 각 민족이 행하는 종교예식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런데 유일신을 신봉하며 초민족적이고 보편적인 교리를 추구하는 기독교의 성장은 로마제국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을 질서유지를 위한 권력기관으로 인정하고 국법을 철저히 준수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들을 박해할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로마 황제들이 제국의 내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민중들이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분노를 계획적으로 이용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광범위한 박해가 지속되었다. 『원리강론』은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1세가 392년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공인할 때까지 이어져 온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기간을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으로 명명한다. 섭리적 동시성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 실패하여 이루지 못했던 믿음의 기대를 민족적인 것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고역(埃及苦役) 400년의 사탄 분립 기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유대 민족이 이루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이 있었던 것이다. ☞ ‘로마제국’, ‘섭리적 동시성시대’, ‘애급고역 400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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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
로크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영국의 철학자로서 계몽사상과 경험론의 선구자. [내용]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이며 그가 쓴 『인간오성론』은 경험론적 인식론의 기본 토대를 제공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와 같으며, 지식과 추리의 재료인 관념의 원천은 오직 경험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정치사상에 있어서 그의 자연권 평등에 관한 사상은 근대 민주주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법사상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은 자연 상태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며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연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으며, 이를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하였다. 『통일사상요강』은 로크의 자연권 평등사상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절대 주체인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대상으로서 평등하다. 이러한 평등사상은 대상의식의 사상이며 이를 통해 질서와 평등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는 평등의 원천인 하나님이 사라지고 법 앞에서의 평등만이 강조됨에 따라, 하나님을 향한 대상의식 없이 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상충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로크가 권리평등사상의 뿌리를 하나님으로 이해하였듯이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서의 대상의식을 우선적으로 함양해야 한다. ☞ ‘경험론’, ‘자연권’, ‘평등’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