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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시 파텔
슈레시 파텔 Suresh Partel 항목체계 해외 [정의] 인도 선교사. [내용] 슈레시 파텔은 1970년 참부모님이 인도에 파송한 독일인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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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우스
슈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s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독일의 헤겔학파 신학자. [내용] 슈트라우스(1808-1874)는 교수로서 튀빙겐 대학에서 관념론 철학을 대성한 헤겔의 철학을 강의하였다. 그는 『예수전(Das Leben Jesu)』을 저술하여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초자연적 기적은 후세의 날조라고 부정하였고, 이는 유물론의 뒷받침이 되었다. 그는 복음서가 역사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신화에 불과하다고 보았으며, 역사적 사실과 신앙을 구별하고자 하였다. 슈트라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결국 정통파 신학자와 헤겔학파로부터도 비난을 받게 되었다. 그의 저서는 논쟁을 통하여 헤겔학파가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헤겔 좌파의 주요 인물이 되었으며 대학에서 해임되고 기독교 신앙과 결별하였다. 헤겔 좌파는 헤겔의 논리를 뒤집어서 공산세계를 이룩한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철학을 체계화하였다. 『원리강론』에서 슈트라우스는 인간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사탄 편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 주는 인생관을 뜻하는 가인형의 인생관으로 언급되고 있다. ☞ ‘가인형 인생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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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펭글러
슈펭글러 Oswald Spengler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독일의 역사학자. [내용] 독일의 역사가이자 사상가였다. 슈펭글러(1880-1936)는 역사의 기초를 문화라고 하면서 문화사관을 주창하였다. 그는 문화를 유기체로 보았으며, 이러한 문화는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 멸망하게 돼 있어서 문화의 사멸은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서양 문명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몰락에 대응하는 징후를 발견하여 서양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이러한 서양 문명의 몰락을 예지하면서도 염세주의에 빠지거나 불가피한 운명에 움츠리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갈 것을 역설하였다. 슈펭글러는 역사 속에서 동시성을 발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는 동일한 형식에 의하여 발전하게 되며, 두 문화 사이에 대응하는 유사한 사상(事象)을 동시성이라고 하였다.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결정론적이며,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문화사관을 수립한 사람이 토인비이다. 이러한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통일사상요강』 역사론에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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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기나미구 마바시
스기나미구 마바시 杉並区 馬橋 항목체계 해외 [정의]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에 있던 일본 가정연합 본부교회. [내용] 일본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전 본부교회이다. 1961년 12월부터 1962년 11월까지 본부교회로 사용되었다. 본부교회가 도쿄 스기나미구 마바시에 있다고 하여 이때를 ‘스기나미구 마바시의 시대’라고 하였다. 1961년 12월 27일 신주쿠구 니시오쿠보에서 스기나미구 마바시로 본부교회를 이전했다. 방 두 개의 좁은 공간이었지만 교회와 같은 분위기가 났다. 마바시의 시대에 후일 종교법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일본교회의 초대회장이 된 구보키 오사미가 입교했다. 코미야마 가이치에 의해 일본 신흥종교의 하나인 입정교성회의 창시자인 니와노 닛쿄 회장과 연결되어 구보키 오사미를 전도하였다. 이때 코미야마 가이치를 비롯하여 사노 이키치, 이노우에 교코, 혼다 히데오, 시마다 요시노리, 호시노 카가오, 아베 노리유키 등이 전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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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
스데반 Stephen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기독교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 [내용]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로 성인으로 추앙된다. 스데반에 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며, 초대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의 일을 하도록 선출했던 일곱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인들과 토론하면서 지혜와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들을 압도하였고, 신성 모독죄로 고소되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박해하였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였고, 이에 대하여 의회원들이 귀를 막고 그를 예루살렘에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그는 죽임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예수님이 서 있는 것을 봤으며, 이를 그들에게 알리기도 하였다. 스데반의 죽음 이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당시 사울로 불리던 바울은 이 순교의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원리강론』에서 예수님의 지상 재림에 관한 부분을 언급하면서 사도행전 7장 55절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기 전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던 예수님을 목도한 성구가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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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스리랑카 항목체계 해외 성격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선교국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아시아-태평양권역 선교국. [내용] 스리랑카는 남부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타 종교인과의 결혼도 허용되는 등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국가로 1970년대부터 선교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975년 5월 일본인 하세가와 미찌노리, 독일인 프리에데리케 슈베르트(Friederike Schubert-Buzcyk), 미국인 메린다 스코우 포니에르(Merlinda Skow-Fournier)가 도착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8월 라즈(Raju)와 그의 여자친구, 우르설라 와젠호프 맥랙클란드(Ursula Wagenhoff McLackland) 등 세 명의 식구가 처음으로 입교하였으며 더 넓은 장소로 센터를 이전하였다. 이후 스리랑카에서 권위를 가지고 있던 기독교 단체를 전도하게 되어 티사(Tissa) 목사가 입교하였으며, 이후 키사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1981년 로버트 키틀(Robert Kittle) 선교사가 남부 아시아 지역책임자로 임명되면서 교수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8년 초 데이빗 레니에(David Rennie) 선교사가 스리랑카에서 3년간 대학원리연구회 활동을 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카프(CARP)가 뿌리내리도록 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 천주평화연합은 전체 학교와 대학을 대상으로 인성 교육을 실시하여 공공의식을 함양하고 남녀 사이의 순결을 지킬 수 있도록 하였으며, 스리랑카가 분쟁을 넘어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실로 2007년 스리랑카 정부 관계자들과 천주평화연합(UPF)이 협력하여 국회의사당에서 국제지도자회의(ILC)를 개최하여 225명의 국회의원들이 평화를 위한 지도자들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2008년에는 평화를 이룰 수 있는 피스드림컵 축구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세계평화여성연합을 중심으로 아동교육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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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질랜드
스와질랜드 항목체계 해외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신아프리카권역 선교국. [내용] 1975년 일본의 우즈미까와 나오키 선교사가 처음으로 파송되었으며, 그 뒤에 독일 안톤 세르블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안톤 선교사는 약 20년간의 선교활동 후 1994년 고국으로 돌아갔다. 1996년에는 세계평화여성연합 소속 일본 여성 선교사 10명이 파견되어 구호 활동, 일본 문화 전파, 봉사 활동을 펼친 후 1999년에 귀국하였다. 1996년과 1997년에 국가메시아가 와서 활동하였다. 2000년 이후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IIFWP)은 4차례에 걸쳐 정부 각료 및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하여 ‘세계의 전환점’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