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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론
사단칠정론 四端七情論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사단칠정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서 벌어진 사림파 내부의 논쟁. [내용] 성리학 심성론의 핵심 개념인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해석을 놓고 전개된 조선시대 사림파 내부의 논쟁이다. 사단은 맹자가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은 마음의 4가지 단서를 말한다.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은 인(仁)의 단서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은 예(禮)의 단서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은 지(智)의 단서이다”라고 한 맹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사단설은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의 근저를 이룬다. 칠정이란 『예기』와 『중용』)에 나오는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을 말한다. 주자는 사단과 칠정을 마음의 발현되지 않은 상태와 발현된 상태, 곧 미발기발설(未發已發說)과 논리적으로 연계시킨 성정론(性情論)을 확립했다. 그 결과로 사단칠정론은 미발기발설, 이기설(理氣說),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조선의 성리학에서는 사단칠정론에서 성(性)과 정(情)의 개념을 서로 달리하고, 또한 서로 다른 이와 기의 개념에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 배속시킴으로써 많은 논쟁이 일어났다.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이기호발(理氣互發)을 전제로 설명하였다. 즉 사단은 이가 발현된 마음이며, 칠정은 기가 발현한 마음이다. 앞의 것은 순선(純善)으로서 도심(道心)이며, 뒤의 것은 선악을 겸한 것으로서 인심(人心)이다. 이와 같이 이황은 사람의 마음 작용에서 이와 기를 구분하는 이기이원론, 그러면서도 기보다는 이를 중시하는 주리론적 입장에서 심성론을 확립했다. 그 후 이황의 심성론은 학계에 큰 논란을 야기하였으며, 200여 년에 걸친 사칠변론(四七辯論)의 서막이 되었다. 기대승은 이황의 이기호발을 부정하고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을 제시했다. 즉 이와 기의 구분은 관념적으로나 가능할 뿐이며 구체적인 마음의 작용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이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이와 기에 배대한 이황의 입장을 비판하고, 기발이승일도(氣發理乘一途)의 전제에서 사단과 칠정을 설명했다. 즉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가 발하는 것이며,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고 본 것이다. 이후 사단칠정론은 이황의 영남학파와 이이의 기호학파가 대립하며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마침내 동인과 서인 사이에 벌어진 당쟁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또한 조선의 성리학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성리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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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교회
사데교회 사데敎會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초대교회 시절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으나 영적으로 쇠락했던 사데지역의 교회. [내용] 사데(Sardis)는 기원전 1200년경에 세워진 소아시아의 서부 루디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상업과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다. 염색과 보석 공예로 유명했고, 금광이 발달하여 최초로 금과 은 주화를 주조하여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초대교회의 시대에 이곳 사데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이 때에 사데에는 키벨레 여신을 섬기는 밀의(密議) 종교가 성행하고 있었다. 사데교회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 우상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다른 지역의 교회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풍족했지만 아쉬울 것이 없던 사데교회 성도들은 형식적인 신앙으로 일관하며, 장차 오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영적인 열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사데교회의 모습을 가리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책망했다(요한계시록 3:1). 여기서 죽은 자라는 말은 사탄 주관권에 머물러 있는 영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 ‘부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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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사도 使徒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한 사람들로 특히 예수님의 12제자를 의미. [내용] 사도란 예수님 당시 그를 믿고 따랐으며,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도 그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전한 제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예수님이 선택한 열두 명의 제자를 가리킨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던 시기에는 주로 ‘제자’로, 예수님의 승천 이후에는 ‘사도’로 기록되어 있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분으로부터 직접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언한 최초의 증인들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었으며, 사도들은 이러한 궁극적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그리스도교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권위를 지니고 주어진 직무를 수행했다. 예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도 대표적인 사도로 간주된다. 초대교회에서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한 예수님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복음 선포자들이나 순회 선교사들도 폭넓게 사도로 인정받았다. ☞ ‘12제자’, ‘베드로’, ‘바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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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교부
사도교부 使徒敎父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교부. [내용] ‘사도 후 교부’ 또는 ‘속(屬)사도’라고도 불리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교부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도시대에 이어 1세기부터 2세기 중엽에 활동한 교부들이며 신약성서에 포함되지 않은 초기 기독교 주요 문서의 집필자들을 가리킨다. 로마의 클레멘스, 안타키아의 이그나티우스, 이즈미르의 폴리카르포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등이 대표적인 사도교부들이었다. 때로는 「바나바서」, 「클레멘스 전서」, 「클레멘스 후서」, 「헤르마스의 목자」, 「폴리캅의 순교」, 「디다케」, 「이그나티우스의 서한」 등 사도교부들이 쓴 문서를 사도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문서들은 신약성서 27권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사도시대 직후에 만들어진 문서들이기 때문에 신약성서 연구에 매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사도’, ‘교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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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 使徒信經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간결하게 요약한 신앙고백. [내용] 그리스도교도의 가장 기본적인 교의를 간결하게 요약한 신앙고백으로 사도신조(使徒信條)라고도 한다.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사도, 즉 예수님의 12제자가 각기 1구절씩 만들었다는 전승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 최고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로마신조(A.D.150년 경)를 토대로 하여 5-6세기경 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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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使徒行傳 / Acts of the apostle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27권으로 구성된 신약성서의 다섯 번째에 수록된 책. [내용] 신약성서에서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의 행적에 초점을 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하여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그의 가르침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사명을 지닌 사도들의 예수님 십자가 죽음 이후의 전도활동에 초점을 둔 이야기가 주로 전개된다. 즉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도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까지 전파되면서 성서에서 이방인으로 일컬어지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하게 되는 역사적인 과정이 담겨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초대 기독교 역사서의 성격을 지닌다. 사도행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도는 베드로와 바울이다. 그들은 모두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다. 바울은 베드로처럼 예수님 생전에 그의 제자로서 활동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로마인으로서 기독교인을 박해한 입장에 있었다. 그러한 그가 어떻게 회심하고 사도로서 예루살렘을 넘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파해 나가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담겨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의 이야기도 사도행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원리강론』에서는 사도행전에서 성신과 관련된 2장의 내용이 주로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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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파
사두개파 사두개派 항목체계 종교일반종교학 [정의] 고대 유대교의 한 유파. [내용] 엣세네파 및 바리새파와 함께 고대 유대교의 3대 종파 중 하나로서 특히 바리새파의 가장 강력한 대항 세력으로 알려진다. ‘사두개’, 즉 ‘분리된 자‘ 또는 ’거룩한 자’라는 명칭은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무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스모니안 왕조(기원전 2세기경) 때 사독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다수 제사장들의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귀족적이고 부유한 상층 계급의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당시 종교와 정치의 구심점이었던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귀족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적인 성격이 강했다. 교리적으로는 모세율법의 자구(字句)를 고집하여 바리사이파가 중시하던 구전(口傳)된 법(法)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혼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 혹은 천사와 영적 존재를 부정했으며, 현세에서의 부유함과 평안을 추구했다. 심지어는 로마의 유대 지배조차도 평화와 복지를 가져오는 것으로 환영했다. 이런 점에서 사두개파는 로마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던 바리사이파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또한 사두개파가 사제와 귀족들의 지지를 받은 반면에 바리사이파는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 탄생 전에는 바리사이파와 심각하게 갈등했던 사두개파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단죄하는 일에서는 이 두 파가 일치했으며, 심지어 사두개파는 바리사이파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욱 심한 증오심을 보였다. 또한 사도들에 대한 박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서에 언급된 대표적인 사두개파 인물로는 ‘니고데모’(요한복음 3:1)와 랍반 ‘가말리엘’(사도행전 5:34: 26:3)을 들 수 있으며, 사도 바울 또한 회심 전에는 엄격한 율법준수를 강조했던 바리새인이었다.(빌레몬서 3:5)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