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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독회 제정
훈독회 제정 訓讀會 制定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부모님이 축복가정의 전통으로 훈독회를 제정해 준 사건. [내용] 참부모님이 1997년 10월 13일 우루과이 빅토리아 플라자호텔에서 훈독회를 제정한 사건이다. 1994년 5월 1일 협회 창립 40주년 이후 가정맹세를 중심한 가정 구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의 명칭 변경을 전후하여 ‘원리’를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생활로 실천하는 것이 우선인 시대로 전환되었다. ‘원리’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기 위해 참부모님은 훈독회를 선언하였다. 훈(訓)은 말씀이 생명과 영생을 가져다주고 국경 없이 흘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독(讀)은 말씀을 판다는 의미로 누구나 말씀을 값없이 사 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부모님 말씀의 실체가 될 때까지 말씀을 훈독하며 그 이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훈독회가 제정된 것이다. 참부모님은 훈독회 제정 이후 훈독회를 반드시 지켰으며, 참아버님은 성화 직전까지도 훈독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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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화원
훈화원 訓和院 / Hoon Hwa Won 항목체계 해외 [정의] 우크라이나 수련소의 이름으로 화동과 교육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 [내용] 훈화원(Hoon Hwa Won)은 2002년 6월 20일에 개원한 우크라이나의 첫 번째 수련소이다. 정수원 회장이 화동과 교육이라는 뜻으로 훈화원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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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
훌 Hur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모세의 매형으로 성신을 상징하는 인물. [내용] 출애급기 17장 10-13절에 여호수아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전쟁할 때 아론과 함께 모세의 손을 붙들어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했던 인물이다. 기원전 1446년 출애급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으로 추정된다. 『원리강론』은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좌우에서 붙들고 있을 때 여호수아가 승리하였던 것은 후에 오실 예수님의 때를 비유적으로 보여 준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자, 아말렉은 사탄 세계, 아론과 훌은 예수님과 성신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과 성신을 모신 신앙자들은 모든 사탄 세계를 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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흄
흄 David Hum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회의론의 입장에서 불가지론을 주창한 영국의 철학자. [내용] 궁극적 실재인 신을 인간은 스스로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체계화한 영국의 철학자이다. 1711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였지만 철학에 심취하여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을 저술하였다. 이후 『인간 이해의 탐구』 등의 저술활동을 하면서 감각과 인상, 관념을 구분하고 모든 관념은 인상에서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도덕원리탐구』에서는 도덕적 시인은 느낌에 근거해 있으며, 도덕적 가치는 그 성질의 소유자나 타인에게 주는 유용성, 유쾌함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공감이 인간 본성에 기초한 사회생활과 개인 행복의 근본원리라고 설명하였다. 이후 그는 철학적 인식이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철학을 인간 본성에 대한 귀납적 실험과학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외부에 객관적 실재가 존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으로 발전되었다. 특히 그의 인과성에 대한 회의적 질문은 칸트의 비판철학, 벤덤의 공리주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분석철학자 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통일사상요강』은 흄을 모든 학문의 완전한 체계를 찾아내기 위해 진리를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심적 현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한 결과 경험론을 궁극까지 추구하여 회의론에 도달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실체성의 관념에 대해 물체라는 실체의 존재를 의심하고 정신이라는 실체의 존재까지 의심하였으며, 정신은 지각의 묶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인과성을 주관적인 신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형이상학 전체를 부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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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성지
흑석동 성지 黑石洞 聖地 항목체계 성지 소재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173-186 발생시기 1938년 [정의] 참아버님이 학창 시절 및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머무른 곳. [내용] 참아버님이 학창 시절 및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머무른 성지이다. 참아버님은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4월 12일 서울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한 후 3년간 재학하는 동안 흑석동에서 생활하였다. 흑석1동 181-14 박운식 하숙집, 3동 54-100 자취집, 2동 49-19 이기봉 하숙집, 1동 190-18 김취도 자취집, 2동 46-1 이기하 자취집과 그 뒤편 49-40 자취집을 거쳐 다시 이기봉 집에서 마지막 자취와 하숙을 하였다. 참아버님은 이기봉의 집에서 가장 오래 동안 머물러 이 집을 ‘흑석동 성지’라고 한다. 참아버님은 흑석동 서달산(달마산)에서 자주 하나님의 섭리를 놓고 밤새도록 통곡하며 기도를 하였다. 지금은 흑석동 국립묘지의 뒤편이다. 참아버님은 1943년 10월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다시금 이기봉의 하숙집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일본 유학 생활 중에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발각되어 1944년 10월부터 1945년 2월까지 경기도경찰부에 수감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 기간에 이기봉이 정성껏 옥바라지를 했다. 북한에서 남하했을 때에도 흑석동에서 잠시 머물렀다. 2008년 12월 도시 재개발계획에 따라서 흑석동 성지는 철거되었다. 현재는 성지 조성 예정지로서 방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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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시절의 정성
흑석동 시절의 정성 黑石洞 時節의 精誠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흑석동 시절 체휼신앙과 실천생활을 하며 정성을 들인 것. [내용] 참아버님이 흑석동 시절 새예수교회의 주일학생 반사의 역할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성을 들인 것을 의미한다. 참아버님은 명수대 새예수교회와 서빙고 오순절교회를 오가며 주일학생들을 각별한 애정으로 지도하였다. 또한 틈나는 대로 전도활동을 다녔는데 상도동, 서울역 광장, 효창공원, 창덕궁, 창경궁 등지에서 대중전도와 노방강연을 행하였다. 이렇게 교회에서 학생지도와 전도활동에 집중하는 한편 기도를 통한 정성의 생활에도 힘썼다. 한강대교 중간 중지도나 흑석동의 서달산에서 민족의 운명을 놓고 하루 12시간 이상, 오래 기도할 때는 17-18시간을 기도에 몰입하곤 하였다. 통곡이 저절로 나오는 거듭된 기도로 무릎과 팔꿈치에 생긴 굳은살이 평생 남기도 하였다. 당시에 주위의 지인들은 이런 참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에게 미친 사람 같았다고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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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하숙집
흑석동 하숙집 黑石洞 下宿집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경성상공실무학교 재학 시절 하숙하였던 이기봉의 집. [내용] 참아버님은 흑석2동 49-19 이기봉 씨 집에서 자취와 하숙을 하며 경성상공실무학교를 다녔는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당시의 이기봉의 집을 흑석동 하숙집이라 부른다. 흑석동 하숙집은 참아버님께서 고행에 가까운 생활 훈련과 학업·신앙에 정진하였던 뜻 깊은 공간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성지들 중 하나이다. 참아버님은 수양생활의 일환으로 점심은 늘 금식하였다. 한겨울에도 일부러 보름씩 불을 넣지 않고 냉방에서 지내기도 했다. 항상 고물상에서 헌옷을 사 입었으며, 고개 숙인 걸음으로 후미진 길로만 다녔다. 여자들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여장을 하고 시내를 다닐 정도로 세상살이에 대해 샅샅이 접해 보기도 하였다. 하숙비를 못 내던 하숙생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며칠씩 금식하기도 하였으며, 상도동에 쓰러져 있던 환자에게 약을 사 먹이고 기차에 태워서 고향인 천안으로 돌려보내 주는 등 봉사하며 살았다.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