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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인터내셔널아카데미재단
선화인터내셔널아카데미재단 仙和인터내셔널아카데미財團 / Sun Hwa International Academy Foundation Inc. 항목체계 해외 [정의] 필리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운영하는 선화국제학교의 교육재단. [내용] 선화인터내셔널아카데미재단은 필리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설립해 운영하는 선화국제학교의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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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
섭리 攝理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유일신 하나님의 뜻에 의한 다스림. [내용] 섭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프로비던스’(providence)는 ‘예견’이나 ‘사려’ 등을 뜻하는 라틴어 ‘프로비데티아’(providentia)와 ‘앞서’ 혹은 ‘미리’를 뜻하는 접두어 ‘프로’(pro)의 합성어이다. 즉 ‘앞서 보다’라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섭리란 부모로서의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창조 본연의 자녀의 모습으로 복귀시키는 구원의 시대 경륜을 함의한다. 즉 섭리는 창조목적을 다시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과 시대에 따라 그 뜻을 펼치는 하나님의 경륜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일방적인 예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조목적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나 그 뜻의 실현은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상대적이다. 따라서 섭리는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지만, 최종적인 실현에 있어서는 인간 스스로의 책임분담 수행이 더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원리강론』은 이것을 하나님이 95퍼센트 책임분담과 인간의 5퍼센트 책임분담이라고 표현한다. 『원리강론』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구원섭리, 복귀섭리, 부활섭리, 재창조섭리 등으로 설명한다. ☞ ‘구원섭리’ ,‘복귀섭리’, ‘부활섭리’, ‘재창조섭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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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기관을 통한 평화운동
섭리기관을 통한 평화운동 攝理機關을 통한 平和運動 항목체계 기관기업 설립자 문선명, 한학자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섭리기관을 활용한 다양한 평화운동. [내용] 참부모님은 평화운동을 위해 종교, 문화예술, 교육, 학술, 스포츠, 국제기구 등 다양한 섭리기관을 세웠다. 각 섭리기관은 분야별로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종교를 통한 평화운동 1954년 5월 1일에 세워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유일신 하나님을 신앙하고, 하나님이 섭리해 온 기독교 정신을 계승한 터전 위에 기독교와 화합하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참아버님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설 동기로 인의(人意)가 아닌 신의(神意), 즉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기독교를 통일한 기반 위에 신령한 역사(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져 세계를 하나로 만들자는 뜻이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참아버님은 진정한 종교는 내적인 해방과 구원뿐만 아니라 육적이고 현실적인 구원도 더불어 실현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참부모님은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이고, 자녀를 책임진다고 피력하면서 그 실천을 위해서 부모가 자녀를 보살피듯이 세계 인류를 보살피고 평화세계를 이루고자 했다. 이후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는데, 그 주요한 활동은 다음과 같다. 참가정 실천운동 및 축복결혼식, 세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국제승공연합, 세계평화를 위하여 스포츠, 문화, 산업, 정치, 언론, 종교,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단 차원의 운동이 아닌 초종교·초국가·초인종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66년 초교파기독교협회를 창립하여 종교 연합의 길을 열었고, 이를 국제무대로 확대하여 1980년 미국에서 저명한 신학자 280여 명으로 종교일치연구협의회를 설립하였고 세계종교연합운동도 펼쳐 나갔다. 1981년 국제크리스천교수협의회와 국제기독학생연합회를 잇따라 창설하고, 1982년 이후에는 세계 8대 종단의 청년들이 모여 화합과 통일을 모색하는 청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세계청년봉사단도 조직하여 각국에서 활발히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초종교운동은 1984년 세계종교협의회, 1991년 세계평화종교연합의 창설로 이어졌다. 문화예술을 통한 평화운동 참부모님은 평화의 사절단으로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창립하였다. 1963년 7월 27일에 한국 무용을 세계에 소개할 목적으로 선화어린이무용단이 창립되었다. 박보희 씨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를 세계에 알려 한국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뜻을 참부모님에게 전했다. 참부모님은 무용단을 통한 평화운동까지 생각하여 어린이 무용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1963년 7월 27일 신순심 씨를 초대단장으로 하여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창단하였다. 신순심 단장은 인간문화재인 박성옥 선생을 안무가로 초빙하였다. 박성옥 선생은 부채춤, 장고춤, 농악, 강강수월래, 꼭두각시 춤, 시집가는 날, 화랑도, 무사놀이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각국 정상들 앞에서 공연을 하여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다. 리틀엔젤스는 ‘춤추고 노래하는 평화의 천사’, ‘친선과 우정의 작은 외교사절’로 평가를 받고 있다. 참부모님은 리틀엔젤스의 훈련과 세계 순회공연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문화재단을 설립케 하고, 박보희 씨를 초대총재로 임명하였다. 예술문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유니버설발레단은 1984년 7월 13일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창단되었다. ‘유니버설’이란 명칭은 국경을 초월한 예술의 경지를 나타내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제1회 창단공연은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신데렐라’로 막을 올렸다. 유니버설발레단은 문훈숙 단장이 이사를 역임한 유니버설문화재단에 소속되어 있다. 유니버설문화재단은 2004년 7월에 40년 역사의 한국문화재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롭게 창설되었다. 유니버설문화재단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유니버설아트센터(구 리틀엔젤스예술회관)와 전문 발레 교육을 담당하는 유니버설발레아카데미(1994년 창립)가 소속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최초로 공연장과 예술 단체, 아카데미가 함께 있는 이상적인 조직 운영이다. 더불어 자매기관으로 한국문화재단의 리틀엔젤스예술단이 있으며, 긴밀한 상호협조를 하고 있다. 유니버설문화재단의 비전은 ‘Timeless beauty & Value’로서 ‘공연예술을 통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영원한 아름다움과 가치, 평화, 믿음’을 추구하는 데 있다. 참아버님은 세계적으로 예술 문화계가 퇴폐적이고 몰가치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을 크게 염려하여 참된 예술은 하나님을 중심한 절대가치에 입각하여 진선미를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교육기관을 통한 평화운동 참부모님은 평화지도자 양성을 위한 다양한 교육기관을 세웠다. 1972년 4월 3일 통일신학교의 개교를 시작으로 애천·애인·애국의 건학 이념으로 하는 초중고, 대학교, 대학원을 설립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참부모님은 선화유치원, 선정중고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선문대학교, 미국 소재의 통일신학대학원(UTS)과 브리지포트대학교, 선학유피대학원대학교 등을 설립하고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원모평애재단을 만들어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평화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학술연구를 통한 평화운동 참부모님은 1972년 통일사상연구원 설립을 시작으로 다양한 학술기관들을 세우고 학문적인 연구를 통하여 평화의 세계 구현에 주력하고 있다. 통일사상연구원은 통일사상(두익사상)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다양하게 발전시켜 인류의 주류사상으로 정착시키면서 인류의 평화세계 구현에 기여할 이념 정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1972년 8월 20일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낙원아파트 1308호에서 국제승공연합 부설기관으로 창립되었다. 1973년 6월 1일 참부모님의 통일원리를 사상적으로 체계화한 이론서 ‘통일사상요강’이 이상헌 원장의 집필로 발간됐다. 1972년부터 국제과학통일회의를 꾸준히 개최하여 과학을 통한 세계평화 구현을 위한 학문 연구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1973년 5월 6일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창립, 1978년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를 세계평화교수협의회로 개칭하고 문공부에 사단법인으로서 등록하였고, 평화세계의 실현을 위한 대학교수들의 역할과 사명을 자각하고 이를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3년 기원절 선포 이후에는 효정학술원을 중심으로 천일국학술원, 세계평화교수협의회 등이 다양한 학술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평화운동 참부모님은 지구인들이 화합하고 평화롭게 하나 될 수 있는 스포츠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참부모님은 둥근 축구공처럼 축구로 지구인이 하나 되기를 소망했으며, 특히 분쟁지역의 어린이들이 국가를 초월해 축구공으로 하나가 되어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89년 3월 18일 일화 천마축구단의 창단을 계기로 하여 피스컵대회,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 Peace Star Cup(연예인 축구대회), Peace Dream(피스드림) 등의 대회를 개최하였다. 특히 피스드림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피스드림이란 ‘축구를 통한 평화세계를 꿈꾸는 피스컵의 꿈’을 의미하는 사회 공헌 브랜드이다. 피스드림의 비전은 유소년 축구의 지원을 통한 유소년의 권리를 충족시키고, 글로벌 축구 네트워크를 통해 유소년 축구 꿈나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또한 자선 축구대회를 통해 기부 문화를 조성하고 평화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추구하였다. 이밖에도 세계문화체육대전, 브라질 세네 축구단, 소로카바 축구단 인수, 선문평화컵, 초종교평화스포츠페스티벌, 피스퀸컵 국제여자축구대회, 가인 아벨 원구피스컵 등 다양한 대회를 개최하여 세계인들이 축구를 통한 평화의 세계를 실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천주평화연합을 통한 평화운동 참부모님은 초종교, 초국가를 강조하며 평화를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된 국가나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님 부모 아래 전 인류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인식을 해야 된다고 보았다. 인류가 화합하고, 평화를 위해서 연대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섭리기관이 천주평화연합이다. 천주평화연합의 뜻을 살펴보면, 천주는 하늘과 땅을 통틀어 칭하는 용어로 초종교, 초국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천주평화연합은 종교와 국경의 장벽을 허물고 더 높은 차원의 조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천주평화연합은 각 나라의 지도자들을 묶어서 평화대사로서 활동을 펼쳤고 평화경찰, 평화군의 출정식, 아벨 유엔 창설, 평화비전 21 국제지도자 세미나, 평화지도자 추모 통일성화축제 기념대회, 남북통일과 동북아 평화를 위한 지도자 세미나 등 세계평화를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평화를 위한 대사회운동: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및 국제승공연합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은 남북통일을 위한 국민 교육의 전개와 해외 동포 및 세계 각국의 국민 간에 협조 및 유대를 강화하여 국내·외에 남북통일의 기반을 조성함으로써 평화적으로 조국 통일을 이루고 나아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의 주요 활동 방향성은 새 가치관을 정립하고 범국민 통일 교육, 민족의 동질성 회복운동과 국제적 통일기반 강화, 두익사상으로 남과 북이 함께 번영하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국제승공연합의 전신인 반공계몽단은 1965년 11월 강원도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 8개 도시에서 창단되었다. 그 후 각 도의 계몽단을 통합하여 문화공보부 제164호로 등록하면서 국제승공연합을 1968년 1월 13일에 창립하였다. 창립 목적은 공산주의 이론과 사회제도를 학술적으로 비판, 자유주의 이상 구현과 남북통일, 전 세계 공산주의 종언과 더불어 평화세계의 실현이다. 1968년 4월 1일 일본 국제승공연합이 창립되었고 세계반공대회(WACL)를 개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산화를 막기 위한 운동을 펼쳐 나갔다. 1969년 6월 15일 국제승공연합 중앙연수원을 개원하여 한국은 물론 국제적으로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승공운동을 펼쳤다. 1970년대 냉전시대에 국제승공연합은 공산주의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국제승공연합 창시자인 참부모님은 1982년 8월 20일-24일까지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과학통일회의의 의장인 몰튼 카플란 박사에게 공산주의 종언을 지시하였고,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에서 카플란 박사는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하였다. 국제승공연합 활동의 일환으로 이상헌의 『새 공산주의 비판』을 출판하였다. 국제승공연합의 주요 활동으로는 공산주의 이론 비판, 승공이념 연구와 발표, 승공연수교육, 승공대회, 강연 및 세미나 개최, 출판 및 홍보 활동, 국제자매결연, 해외 활동으로 카우사, 재일 동포 승공요원 모국 방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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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기업을 통한 평화운동
섭리기업을 통한 평화운동 攝理企業을 통한 平和運動 항목체계 기관기업 설립자 문선명·한학자 [정의]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섭리기업을 활용한 다양한 평화운동. [내용] 참부모님은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참아버님은 일본 와세다 유학시절부터 기계공업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구상하였다. 참아버님은 북한의 남침 위협이 상존하는 한국의 실정을 감안할 때 하루 빨리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된다고 지적하고 기계공업의 꽃인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섭리를 위해서 세워진 기업들 중에 최초로 정부의 인가(1959년 12월 말)를 받은 사업은 ‘예화산탄공기총 제작소’였다. 참부모님은 1968년 설립된 ‘한국지탄공업’과 ‘동화지탄’을 1971년에 인수하면서 한국티타늄을 설립하여 중화학공업 분야에도 진출하였다. 한국티타늄은 통일산업의 기계제작 경험을 기반으로 이산화티타늄 신제조법 개발에 성공하여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졌다. 이산화티타늄은 당시에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흰색의 결정체’로 불리며 치약, 화장품, 종이, 도자기, 옷감, 페인트, 플라스틱 등의 생필품에 흰색을 더해 주는 제품이었다. 당시 티타늄 제조는 생산과정에서 공해가 많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높은 투자비와 고도의 전문 기술이 요청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기피하는 분야였지만, 한국티타늄이 기술개발과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관련 산업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참부모님은 통일산업과 티타늄사업을 통해 기계공업과 화학공업 분야에 진출하여 기술을 확보하고, 1978년 9월 과학기술의 최강국인 독일의 뒤셀도르프지역에 ‘유럽경제기술정보센터’를 설립하여 통일교회 식구를 유학·파견하여 3년간 해당 지역의 산업 현황과 정보를 보고 받았다. 또한 독일 보쿰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김계환 교수의 주선으로 1981년부터 약 8년 동안 독일의 기업들을 인수하였다. 인수한 반도르와 하일겐슈태드 등의 공장은 독일 유수의 공작기계 업체였다. 참아버님은 통일산업의 직원들을 독일 공장에 파견하여 연수를 받게 함으로써 한국 공작기계의 설계, 제조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한국 정부에서 기술시찰단을 독일에 파견했는데, 그 시찰단이 방문한 공장들 중의 하나가 통일그룹에서 인수한 공장이었다. 참아버님은 이러한 기업을 바탕으로 1981년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기술평준화를 주창하였다. 국제과학통일회의는 ‘절대가치의 탐구와 새로운 세계의 창조’라는 주제로 109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 전·현직 국가지도자, 각 분야의 석학 등 8백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학술대회였다. 참아버님은 이 대회에서 하나님에게는 선진국이 필요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선진국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을 토대로 약소민족을 착취해 왔던 역사를 반성하고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후진국에 이전해 줄 것을 주창하였다. 미국의 공업기술은 남미, 유럽의 공업기술은 아프리카에 이전할 것을 주창한 것이다. 참아버님은 독일 공장의 공업 신기술을 한국과 중국 공업계에 이전하려는 철저한 준비의 토대 위에서 기술평준화를 발표하였다. 참부모님이 평화운동을 위해 세운 섭리기업들로서는 통일중공업(주), 티아이씨(TIC)(주), 한국와콤전자(주), ㈜통일항공시스템, (유)한국타임즈항공, 신정개발특장차(주), 한국티타늄공업(주), ㈜제이씨, ㈜일화, ㈜일신석재, 일성건설(주), 일원보석공예(주), 선원건설(주), ㈜세계일보, ㈜아시아 해양, ㈜일흥조선, 아이엔피중공업(주), 여수해양회사, ㈜세일여행사, 우창흥업(주), ㈜세진, 일성레저산업(주), ㈜용평리조트, 일상해양산업(주), ㈜센트럴시티, 성화출판사, ㈜진화인쇄, ㈜평일기획, 통일실업(주), 선도산업(주), ㈜흥상, ㈜화협, 평화자동차 등이 있다. 또한 참부모님이 세운 언론기관들도 섭리기업으로서 평화를 위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언론 기업들을 살펴보면 워싱턴타임스, 세계일보, 종교신문, 뉴스월드, 전교학신문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해외에서 많은 신문이나 잡지 혹은 학술지 등이 발간되었다. 참부모님은 이렇게 세워진 언론사들은 적자를 내더라도 세계평화를 위한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참아버님은 한국의 안보를 위하여 군수산업을 시작했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술을 도입해 나라의 살 길을 열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기업을 시작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브라질, 중국, 북한 등의 나라에 아낌없이 투자해 기업을 세워서 현지인들에게 기술을 이전해 그들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일본 유수의 대학 출신자와 독일 기술자들을 한국의 통일중공업의 연구실과 기술부에 배치하여 기술을 전수하도록 했고,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 등에서 엔지니어를 초청하여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한편 통일중공업에서 완성차 생산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완성차 생산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않자 참부모님은 통일산업의 기술자를 일 년에 3분의 1씩 교체하라고 지시하였다. 보통은 핵심 기술자를 특별히 관리하면서 육성하는 것이 기업의 통례이지만, 참부모님은 한국 과학기술의 수준을 하루 빨리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핵심 인력이 유출 되는 상황을 알면서도 한국의 기술 발전을 위해 모든 상황을 허락하였다. 이로 인해 통일산업에서 기술을 배워 완성차 업계로 이직하는 기술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됐고, 통일산업은 인재양성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참부모님은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평화를 운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많은 정성을 들였다. 1989년 중국 혜주시에서 판다자동차 생산 공장의 기공식을 갖는 한편 같은 해 통일산업을 통해 중국 청도에 50억을 투자하여 트랜스미션 부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중국을 위한 본격적인 투자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베트남에도 메콩자동차를 설립하여 쌍용자동차와 합작으로 자동차 제조 사업을 시작하였다. 한국티타늄을 통해 중국에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일본으로부터 서러움을 받으며 고가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여 확보한 기술이었지만 중국에서 기술을 배우러 온 인력들을 호텔에 재우고 양복을 해 입히면서 티타늄 공장의 주요 시설은 물론 세부 도면까지 제공하며 실질적인 기술을 지도해 주었다. 참아버님은 기술 평준화를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서 “기술 평준화, 정치 평준화, 경제 평준화를 하지 않으려고 선진국이 후진국에 가르쳐 주지 않고 오히려 지금까지 착취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것이지 미국의 것이 아니고, 독일의 것도 아닙니다. 빨리 평준화시켜야 됩니다. 중국에 그런 평준화를 시켰다고 해 보세요. 중국 국민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야 지상천국이 빨리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1991년 12월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에서 김 주석의 요청으로 남포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 온 기술들을 모두 평화자동차를 통해 북한에 전수해 주었다. 이후에 평화자동차를 계기로 북한과의 신뢰 속에 작은 왕래와 상호협력이 가능하게 되었다. 참부모님은 1971년 세계에서 제일 큰 비행기 제조 회사를 인수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항공 기술은 고도의 정밀성과 최첨단의 전자 기술 등이 요구되는 종합 첨단산업일 뿐만 아니라 방위 및 산업 기술이 총망라되어 있어 국가적 기밀에 해당될 정도의 고급 기술이었다. 참아버님은 1982년 6월 KAIST 기계공학과에서 비행기에 정통한 연구팀에게 3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통일산업의 기술진들을 투입하여 국산 경비행기 개발에 착수하였다. 당시 항공기 대부분의 자재를 수입에 의존하였던 상황이었는데, 1983년 5월 개발 1년 만에 순수 국내 기술로만 완성된 비행기 3대를 개발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경비행기 개발에 성공하였다. 통일중공업의 자동차 산업이 궤도에 오른 1994년 무렵에는 중국 항공 산업 총괄기업인 ‘항공공업총공사’ 산하의 ‘남창비행제조공사’와 ‘항공기 생산 및 운항에 관한 협력계약’을 체결하고 민간 항공기 제작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4년 기술 평준화의 완결 단계로서 ‘한국타임즈항공’을 설립하고 세계 최고의 헬기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시콜스키사’와 기술협력을 체결하였다. 참부모님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스라엘 3개국이 하나 된다면 항공기술을 중심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참부모님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류의 건강에도 관심을 갖고 일화제약을 창립하였다. 참아버님은 한국의 고려인삼을 식물계의 왕자라고 칭하면서 한국의 보화라고 이야기했다. 하늘이 내려 주신 인삼은 한국 백성만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의 건강을 위해 준 것이라고 강조하고 인삼 수출을 지시하였다. 당시에 인삼은 한약으로만 이용되어 왔는데, 국내 최초로 인삼을 건강식품으로 제품화하여 수출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1,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1973년 8월에는 구리 공장을 준공하여 최신 시설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서 인삼제품을 해외에 널리 알려 1975년 11월에는 대량 수출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해피월드의 사업이 경제 복귀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세계선교와 사회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70년 12월 20일에는 참부모님이 일신(一信)석재 회사를 세웠다. 1971년 2월 26일 전북 전주시 팔복동에 ‘일신석재공예’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설립된 이후 본격적으로 공예품(화병) 생산에 착수하면서 전국의 대리석 광산을 탐사하였다. 단양의 대명광산, 제천군 백운면에서 백색 대리석을 발견하고 큰 광산으로 개발하여 화병과 다보탑의 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는 이미 두 회사가 개발을 시도해 실패한 포천 석산 개발에 성공하여 국내 최대 규모인 3만 5천 명 규모의 화강석 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1983년 수출 2천만 달러를 달성한 일신석재는 6만 평에 달하는 경기도 이천 부지에 제조공장을 설립하고 공예품의 일본 수출을 본격화하였고, 1986년에는 전북 이리시 귀금속단지에 일원보석공예를 설립하여 다보탑과 미륵불상 등 공예품을 고가의 보석으로 조각하고 세공하여 공예품은 일본 해피월드, 귀금속은 프랑스 크리스찬버나드의 본사로 수출하였다. 참부모님이 특히 공을 들인 분야는 언론이었다. 처음 언론사를 세울 때에는 공산주의로부터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참부모님은 공산주의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기 전쟁보다 이념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공산주의 사상의 모순을 밝혀 공산주의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참부모님은 1971년 한국의 ‘주간종교’ 발행을 시작으로 1975년 일본에서 ‘세까이닛보 커뮤니케이션즈’, 1976년에는 미국에서 ‘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하여 이념 전쟁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1978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세계언론인회의를 계기로 언론 분야를 본격적으로 지휘했다. 참아버님은 기도를 하던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후보자를 통해 미국을 구할 준비를 해 놓았다는 계시를 받았다. 1980년 11월, 제40대 대통령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레이건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언하는 특집 기사를 실어 선거기간 내 불리한 상황에 있었던 레이건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1982년 5월 워싱턴타임스를 창간하고 세계 각국의 자매지와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 세력을 규합하였다. 참아버님은 1985년 8월 제네바 선언을 통해 소련의 멸망을 예언하고 워싱턴타임스를 앞세워 위기에 처한 미국을 구했다. 첨단 우주 기술을 활용하여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레이건 정부의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전략방위계획) 정책이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여론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때에 워싱턴타임스는 신문 1면에 SDI 추진에 대한 특집기사를 싣고 SDI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레이건 대통령과의 대담을 게재함으로써 SDI 정책을 추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SDI 정책은 고르바초프 정권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게 된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참아버님은 소련이 쿠바를 적화시키기 위해 니카라과를 교두보로 삼으려고 하던 전략을 차단하려고 니카라과 자유군 지원 캠페인을 실시하고, 미 의회에서 니카라과 지원 예산이 통과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1989년 2월 한국에서 세계일보를 창간하였고, 워싱턴타임스 창간 8주년이 되던 1990년 4월 9일에는 제11회 세계언론인대회를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하여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성사시켰으며, 이어 1991년 12월 6일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이 성사되어 남북한 교류의 물꼬를 열었다. 이후에도 워싱턴타임스는 1992년 4월 12일 북한 김일성 주석과 조세트샤이너 편집국장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세계평화에 공헌하였다. 참부모님은 지구의 3분의 2가 물로 이루어져 있고, 육지보다 바다에 사는 생물이 많기 때문에 세계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다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앞으로 수중 자원을 관리하는 기술, 즉 해양 산업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또한 바다의 수산물이 고갈될 것을 염려하여 물고기를 잡는 어업만이 아닌 기르는 어업에도 관심을 갖고 양식장을 설립하고 인류의 식량난에 대비하였다. 인류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70년대부터 해양 산업을 시작해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였다. 참부모님은 1974년 미국 내 수산 관련업체를 중심으로 하여 전 세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관리하는 수산업을 총괄하는 ‘트루월드그룹(당시 I.O.E.)’을 발족시켰다. 1979년에는 ‘흥영수산’을 한국에 설립해 미국의 해양 회사와 연계하여 부산·제주·군산·목포 등의 주요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냉동 창고를 운영하면서 수출과 수입을 통해 국내 유통을 담당하게 하였다. 또한 제주와 부산에서는 선단을 구축하여 고등어, 삼치, 오징어, 갈치 등 각종 수산물을 어획하고 유통하며 한국 수산물 시장을 장악하는 선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제주를 중심으로 선박을 수리하는 조선소를 운영하였고, 목포와 울산에서는 ‘일흥조선’과 ‘아이엔피중공업’을 설립하여 선박 건조와 고급 보트 개발 및 제작 사업을 주도했다. 참부모님은 세계인들이 한국을 많이 방문할 수 있도록 세일여행사를 설립하였으며, 1988년에는 외국 관광객 유치 업계 1위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1986년 와이키키수안보호텔, 1988년 이천 설봉호텔을 각각 인수하여 운영하였고 1989년에 부곡·설악·제주·지리산·남한강·무주·경주 등지에 콘도미니엄을 건축하였다. 이러한 시설을 기반으로 세계문화체육대전, 피스컵 등 세계인들의 축제이자 섭리사의 주요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다. 참부모님은 일성건설을 세워서 리틀엔젤스예술회관과 도원빌딩 등을 건설하였고, 서울 지하철3호선과 서해안 고속도로의 건설 등에도 참여하였다. 1998년 금융위기로 일성건설의 경영권을 잃게 된 후에 선원건설을 세워서 선문대학교, 여수해양리조트, 김포 항공산업단지 등을 건축하였다. 참부모님은 세계평화를 위한 언론과 기술 평준화의 실현을 위한 기계공업 분야, 건설, 해양,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역할을 해 나왔다. 언론을 통한 세계평화를 이루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선진국의 고급 기술과 인력을 후진국에 조건 없이 나누어 주었으며,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막대한 자원을 해양 분야에 투자하였다. 참부모님이 세운 기업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고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목적성보다 더 높은 차원의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이 바라는 섭리를 위하여 노력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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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관
섭리사관 攝理史觀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기독교의 역사관. [내용] 기독교의 역사는 인간의 창조와 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이며,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신의 섭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관을 가리켜 섭리사관 또는 기독교사관이라고 한다. 기독교사관을 체계화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저서인 『신국론(De civitate Dei)』은 섭리사관을 반영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중시한다. 그러나 『통일사상요강』에서는 기독교의 섭리사관과 구별된 통일사관(統一史觀)을 말한다. 통일사관도 기독교의 섭리사관처럼 역사의 목표는 결정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섭리적인 사건의 성취에 있어서 하나님의 책임분담 외에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역사의 과정은 비결정론이라고 본다. 즉 통일사관은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양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섭리사관과 차이가 있다. ☞ ‘통일사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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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 동시성
섭리적 동시성 攝理的 同時性 / Parallels in the providenc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의하여 인류 역사에서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흡사한 모습으로 반복되는 현상. [내용] 섭리적 동시성의 의미 인류 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범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 모양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한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경우에 그러한 시대들을 섭리적 동시성시대라고 한다. 섭리적 동시성시대는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로 인해 형성된다. 복귀섭리의 목적을 위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떤 중심인물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난다. 그러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려는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간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그 전 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시대가 형성된다. 그런데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들은 전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부가되어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 더 늘어난다. 따라서 동시성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이것이 동시성 시대의 형태가 완전한 상사형(相似形)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이다. 성장 기간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하면 소생은 상징형, 장성은 형상형, 그리고 완성은 실체형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노정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반복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 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구분하면 복귀기대 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시대이고, 복귀섭리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시대이며, 복귀섭리 연장시대는 실체적 동시성시대이다. 동시성시대를 형성하는 요인 동시성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시성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그 하나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 가지의 조건인 중심인물, 조건물, 수리적인 기간 등이다. 다른 하나는 실체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섭리적 동시성시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성격의 내용으로 형성된다. 첫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인 대수(代數)나 혹은 연수(年數)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된다. 복귀섭리역사는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면, 그 섭리가 연장되면서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되풀이하여 반드시 탕감복귀하는 섭리역사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반복하게 되어 섭리적 동시성시대는 어떤 연수나 혹은 대수의 반복에 의하여 같은 모양을 거듭 형성해 나온다. 둘째,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할 수 있는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형성된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것이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반복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그다음에 실체헌제로써 실체기대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세워진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반복하여 왔으므로 섭리적 동시성시대는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고 했던 섭리역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동시성을 형성하는 요소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상대적이다.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담당한 인물이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시대에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 반드시 그 뜻을 이루도록 섭리한다. 복귀섭리는 이와 같이 연장된다.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므로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 양상이나 운동 혹은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므로 복귀섭리의 연장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다.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은 자기가 세워질 때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자기와 동일한 사명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세우려 했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자기를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한다. 만일 그가 또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그가 세우려 했던 탕감조건들은 그의 대신 사명자로 세워지는 인물이 완수해야 할 가중된 탕감조건으로 넘겨진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12제자와 70문도를 세운 것은 12자식과 70가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였던 야곱의 노정과 12지파와 70장로를 중심하고 섭리하였던 모세 노정 등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것이었다.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의 내용도 섭리적 동시성을 형성한다. 아브라함 때에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제3차의 섭리였다. 따라서 그때에는 반드시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원리적인 조건 아래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담 가정과 노아 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가중되어 왔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여 그 사명을 다음으로 연장해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미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고, 또 그로부터 종적으로 연장되는 복귀섭리도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자리에 세워야 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위하여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이 각각 그 개체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뜻을 중심하고 보면 완전한 일체로 탕감조건을 세우도록 섭리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뜻으로 보면 완전히 일체이므로 야곱의 성공은 이삭의 성공이었고, 또 아브라함의 성공이 되어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보면 섭리는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았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중심으로 횡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의 3대로 연장해 가면서 세운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결국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는 것을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라고 한다.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시조는 12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12대상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12수 완성 실체가 되어야 했으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둘째, 인간시조는 4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사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4수 완성 실체가 되어야 했으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셋째, 인간시조는 21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21수 완성 실체가 되어야 했으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21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넷째, 인간시조는 40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40수 완성 실체가 되어야 했으므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한다. 또한 동시성시대는 대수를 중심하고도 형성된다. 인간시조는 10수 완성 기간을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에 의하여 통과함으로써 10수 완성 실체가 되어야 했다. 따라서 10수를 복귀하는 10대의 대수에 근거한 탕감기간이 형성된다. 또한 사위기대의 각위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워야 하므로 모두 16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이 형성된다. 섭리적 동시성시대와 그 연수 이스라엘의 역사를 중심한 복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시대인 복귀기대 섭리시대를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로서 각 시대와 그 연수(年數)는 다음과 같다. 애급 고역시대 400년, 성경역사에 근거한 사사시대 400년, 통일왕국시대 120년, 남북 왕조 분립시대 400년, 유대 민족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강림 준비시대 400년. 기독교의 역사를 중심한 복귀섭리 연장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시대인 복귀섭리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는 복귀섭리시대를 형성하는 각 시대와 그의 연수를 그대로 탕감복귀하게 된다. 따라서 각 시대와 그 연수는 다음과 같다. 즉 로마제국 박해시대 400년, 교구장제 기독교시대 400년, 기독왕국시대 120년, 동서 왕조 분립시대 400년,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210년,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 400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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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적 통일전환식 선포
섭리적 통일전환식 선포 攝理的 統一轉換式 宣布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참부모님을 중심한 통일의 시대로 전환된 것을 선언한 선포. [내용] 참부모님이 1988년 9월 27일 서울 한남동 공관에서 거행한 선포식으로서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참부모를 중심한 통일의 시대로 전환된 것을 선언한 섭리적 사건이다. 1988년에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민주와 공산 양 진영이 스포츠로 하나 되는 평화의 제전으로 섭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대회였다. 참부모님은 서울올림픽을 중심하고 세계 160개의 국가들이 모여 화합함으로써 상징적인 외형적 통일을 이루었다고 말씀하며, 그 기반 위에 섭리적 통일전환식을 선포하였다. 가인 세계와 아벨 세계가 하나 된 조건 위에 참부모를 중심으로 통일의 시대로 전환된 것을 선언한 특별한 의식이었다. 또한 이날 참부모님은 체육대회뿐만 아니라 교차·교체 축복결혼, 문화행사를 통해 전 인류가 하나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세계문화체육대전의 개최를 처음으로 주창하였다. 이후 참부모님은 1988년 10월 3일 섭리적 통일전환식을 선포한 기반 위에 내용적 통일을 상징하는 세계통일국개천일을 선포하였다. ☞ ‘세계문화체육대전’ 참조
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