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살포시 감으면 옥수수 밭을 휘감아 나가는 거친 바람소리가 들립니다. 광야를 달리는 수천 마리의 말발굽 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소리는 대륙을 힘차게 달렸던 고구려 무사들의 웅혼한 기백과도 같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또 다른 정겨운 소리도 들려옵니다. “소쩍, 소쩍…….” 깊은 산중턱의 높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튼 소쩍새 울음소리가 아련히 들립니다. 여름밤, 어머니 손을 잡고 잠을 청할 때 들려오던 소쩍새 울음은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 평안남도 안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정겨운 소리들은 벌써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내 마음속에 오롯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꼭 가고 싶은 정든 고향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본향 땅입니다.
내가 태어날 때 아버지 한승운(韓承運) 선생께서는 태몽이라기보다는 몽시(夢示)를 받으셨습니다. 푸른 소나무 숲이 아주 울창한 가운데 맑고 아름다운 햇살이 비치면서 두 마리 학이 정답게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이름을 ‘학자(鶴子)’라고 지었습니다. 나는 청주 한씨이고, 본관은 충청북도 청주입니다. 충청(忠淸)은 ‘마음의 중심이 맑다’는 뜻이며, 청주(淸州)는 ‘맑은 고을’이라는 의미입니다. 강이나 바다의 물이 맑으면 물고기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그 고을에 살던 나의 선조들은 마음이 맑고 겸손했습니다. 청주 한씨의 한(韓)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크다(大)’는 우주만물을 품에 안으며, ‘가득하다(滿)’는 충만함을 뜻합니다. (평화의 어머니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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