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옆에는 연자방앗간이 있었습니다. 방앗간 안에 있는 불 싸라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끔 사방을 잘 둘러막아 겨울에도 웃풍이 없이 꽤 훈훈했습니다. 어쩌다 집 안의 아궁이에서 숯불이라도 얻어다 피우면 온돌방보다 더 뜨뜻했습니다. 팔도를 떠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거지들 중에는 우리 집 연자방앗간에 터를 잡고 겨울을 나는 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나는 그 거지들이 들려주는 바깥세상 이야기가 재미나서 걸핏하면 연자방앗간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친구 삼은 거지의 밥까지 같이 차려서 방앗간으로 밥상을 가져오셨습니다. 내 숟가락 네 숟가락도 없이 밥 한 그릇을 같이 떠먹고, 담요 한 장을 나눠 덮으며 함께 겨울을 보냈습니다.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그들이 멀리 떠나고 나면 그들이 돌아올 다음 겨울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몸이 헐벗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헐벗은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분명 따뜻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밥을 주었고 그들은 내게 사랑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이 가르쳐준 깊은 우정과 따뜻한 사랑은 오늘까지도 내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를 돌며 가난과 배고픔에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볼 때마다 남들에게 밥을 먹이는 데 조금도 아낌이 없으셨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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