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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말씀 플러스



“전쟁이 터졌대요!” “글쎄 북한군이 삼팔선을 밀고 내려왔답니다.”

내가 열여덟 살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남한으로 내려와 그나마 생활이 조금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북한 인민군의 기습 남침으로 결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외삼촌은 전시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다가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차를 몰고 집으로 왔습니다. 외삼촌은 육군 장교였고 다리 통행증을 지니고 있었기에 스리쿼더의 경적을 울리며 피란민 사이를 헤치고 겨우겨우 한강 다리를 건넜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손을 꼬옥 잡고 피란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절한 공포와 혼란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습니다. 한강을 건너자마자 외삼촌이 소리쳤습니다.

“옆으려요!” “꽝!”

한강 인도교를 빠져나와 얼마 못 가 갑자기 뒤에서 ‘꽝’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 푸른 섬광과 함께 굉음이 터졌습니다. 차를 급히 세우고 우리는 허겁지겁 내려서 길가 낮은 곳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얼른 보니 한강 다리가 폭파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그 불빛을 역력히 보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악마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과 같았습니다. 한강 다리를 건너오던 수많은 사람과 군인, 경찰들이 강물에 빠져 숨졌지만 우리는 다행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생과 사가 갈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했으며, 난민 생활을 처절하게 겪었습니다. 순박한 사람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나갔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 울부짖으며 거리 이곳저곳을 헤맸습니다. 여덟 살의 어린 소녀였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한강 다리를 건널 때면 그때의 푸른 섬광과 피란민들의 아비규환과 같았던 비명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 옵니다. (평화의 어머니 82-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