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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말씀 플러스

큰집

우리 집 옆에 큰집인 참아버님댁이 있었는데 앞채와 옆채가 기와이고 안채는 따뜻한 초가였다. 그 옆집이 참아버님의 사촌이자 내게는 육촌 되는 용선 형님댁이었고 그 뒷집에 이처범, 이처규 형제가 살았다. 집 담장 밖에는 큰 밤나무가 있었다. 또 노가지나무(노간주나무의 방언)가 참아버님댁과 용선 형님댁을 한 집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 집도 나란히 있어 서로 옆문을 통해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우리 큰집에서는 큰어머니인 김경계 충모님의 주장이 제일 강했다. 큰할아버지는 며느리보고 이래라저래라하지 않으셨다. 충모님께서 참아버님을 잉태했을 때 용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그때는 들어 보지 못했는데 남한에 나와 문용기 장로가 그런 이야기를 잘해 알게 됐다. 노가지나무 이야기도 여기 와 들었는데 나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하는 정도다.

문경유 큰아버지는 학자처럼 걱정이 없는 분처럼 보였으며, 누구와도 대인관계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셨다. 누구를 비판한다거나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으셨다. 혼자서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으며 시간을 보내셨다.

참아버님집 앞에 문경구 숙부님이 살고 있었는데 재앙이 자꾸 생겨 집을 헐게 됐다. 내가 열다섯 살 때쯤 소가 죽고 말이 죽고 돼지가 4마리 죽고 강아지가 아기의 귀를 잘라먹고 절구통의 절구 봉이 넘어져 개 허리를 부러뜨리는 우환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밤나무로 집을 지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해 집을 헐게 됐다. 집은 보통 소나무로 짓는다. 밤나무집은 소나무집보다 두세 배 더 비싸다. 밤나무라는 재료도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곧게 뻗은 나무가 많지 않아 구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집이지만 자꾸 우환이 생기니 집을 헐고 숙부는 정주읍으로 이사 갔다. (님따라 뜻따라 11~12쪽)




참부모님과 경주에서.jpg


참부모님과 경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