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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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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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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혁명

淸敎徒革命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1942년 영국에서 청교도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시민혁명.

[내용] 1942년에 일어난 영국 최초의 시민혁명으로서 그 명칭은 혁명의 주축인 의회파의 다수가 청교도들이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제임스 1세의 사후에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전제주의적인 통치방식을 고수하였다. 그는 의회의 승인 없이 관세를 징수하고, 이에 불응하는 자들을 법의 심판 없이 멋대로 투옥하였다. 이에 반발한 의회는 1628년 코크 등이 중심이 되어 인민의 자유로운 권리 수호를 골자로 하는 권리청원을 왕에게 제출하였다. 격분한 찰스 1세는 의회를 해산하고 11년이나 의회 없는 정치를 이어갔다.

그러나 1640년 장로파가 다수였던 스코틀랜드에 국교회를 강요하여 전쟁이 발생하자 전비(戰費)를 확보하기 위해 다시 의회를 소집하였다. 의회는 찰스 1세의 전제정치를 부추긴 책임자를 처벌하고 전제왕정의 지배구조를 타파하는 등 여러 개혁을 단행하며 국왕과 대립하였다. 결국 그 갈등은 왕당파와의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8년의 전쟁 끝에 크롬웰이 이끌던 의회파가 승리하여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최초로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공화정의 대표가 된 크롬웰 역시 독재정치를 펼쳐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그의 사후에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정복고를 맞게 되었다.

『원리강론』은 청교도 혁명을 아벨형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 섭리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영국은 찰스 1세가 전제주의와 국교회를 강화하기 위해 청교도들을 탄압하자 이에 맞서 크롬웰을 중심으로 청교도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1688년에는 제임스 2세의 가톨릭 부활정책에 대한 반발로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이처럼 영국의 시민혁명은 외적으로 시민계급이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 일으킨 혁명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내적인 신교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일어난 종교운동이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영국에 아벨형 민주주의가 확립될 수 있었다.

☞ ‘아벨형 민주주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