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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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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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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버님의 메시아 노정 출발준비

참아버님의 메시아路程 出發準備

항목체계 역사사건

[정의] 참아버님이 1935년 4월 17일 부활절 산중 기도 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메시아 사명을 인계 받고 한국 해방 때까지 10년간 거쳐 온 내적인 공생애 출발준비의 노정.

[내용] 하나님의 천명과 가족의 혼란기

참아버님은 장로교 입교 이후 신학문 수학과 함께 사고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면서 장래문제와 현실 문제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갖게 되었다. 영문 모를 집안의 환란과 더불어 일제 식민지 치하 민족의 비참상, 약소민족의 고통과 비애를 마음 깊이 체감하였다. 이후 참아버님은 생가 뒤편에 있던 샛말잔등이라는 낮은 야산의 나무숲에 들어가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다. 또 교회에서 가까운 묘두산 자락에 들어 홀로 깊은 사색에 몰두하는 가운데 울음으로 하늘과 담판하였다.

참아버님은 1935년 4월 17일 새벽 오랜 시간 산중 기도 끝에 형언할 수 없는 비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영적인 세계가 돌연히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홀연히 현현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 때문에 고통과 슬픔 가운데 계신다고 말씀하였다. 기쁨과 행복 그리고 영광의 보좌에서 만천하를 군림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로서 단장의 슬픔에 한 맺힌 외로움과 고뇌의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아버님에게 하나님의 지상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인류를 죄악과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건져내어 한 많은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리는 그 일을 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후 참아버님은 하나님의 천명을 받고 10년간 메시아 노정의 출발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정주공립보통학교 시절의 내적 준비

참아버님은 1935년 16세가 되던 해 4월 초 정주읍 소재 정주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전학하였으며, 1938년 3월 25일 정주보통학교를 제29회로 졸업하였다. 당시의 졸업식에서 모든 식순이 끝나 갈 무렵 뜻밖에도 자진해서 단상에 나가 장시간 특별소견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의 허구성과 그 위선적 행태를 낱낱이 꼬집었고, 교사들 개개인에 대한 문제점도 일일이 지적하였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 와서 대우만 받으려는 일본인 지도자들의 소행을 신랄하게 공박하였다. 이를 계기로 참아버님은 일본경찰로부터 요시찰인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경성상공실무학교시절의 내적 준비

참아버님은 고향 정주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왔다. 1938년 4월 12일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하였으며, 1941년 3월 8일 동교를 제3회로 졸업할 때까지 3년간 공부하였다. 3년간 자취와 하숙생활을 겸하였고, 매일 점심을 금식하며 인격 완성을 위한 침묵과 기도의 정성을 들였다. 신학문과 기독교 신앙에 열중하며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성찰하였다. 오순절교회와 새예수교회의 신앙을 하였으며, 특히 명수대 새예수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의 역할을 하며 헌신하였다.

와세다고등공학교 시절의 내적 준비

참아버님은 1941년 4월 8일 와세다대학고등공학교에 합격하였다. 1943년 9월 30일 졸업할 때까지 도쿄에서 ‘원리’ 구명과 심신 훈련, 항일 지하학생운동에 열중하였다. 원수 사랑을 실천하고 최저에서 최고까지의 생활체험을 하였으며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는 인생 수행표어를 실천하였다. 학창시절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졸업 후 한국에서는 경기도경찰부에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해방 전 메시아 노정 출발준비

참아버님은 1944년 3월 무렵 만주전업으로 취업하려던 진로를 바꿔 서울 용산의 가시마구미 경성지점 전기부에 취직하였다. 신령교단과 접촉하여 메시아를 고대해 온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메시아로서 출발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남성 3대 완성 사명자였던 김백문(1917-1990)이 참아버님을 재림 메시아로 증거했지만 모시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해방 3년 전부터 전국의 유명한 목사, 부흥사, 신령교단, 사찰, 역술가 등을 답방하며 준비하던 참아버님의 메시아 노정 출발이 좌절되고 말았다. 참아버님은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이냐? 위하는 천리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품을 떠나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이냐? 너, 대한민국아! 슬퍼하지 마라. 세상은 망하더라도 너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 간곡한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은 한국 기독교와 국가지도자들을 통해 메시아를 중심한 복귀섭리를 준비하고 해방 이후 7년 노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되찾도록 준비하였다. 그러나 준비된 인물들이 참아버님을 받들어 메시아 노정 출발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불신의 길로 갔다. 참아버님은 해방 직후 서울을 중심한 1차 출발섭리의 좌절 이후 1946년 6월 평양에서 2차 출발섭리를 모색하였으나 역시 허호빈 집단과 박을용 노파 등 준비된 인물들의 불신으로 좌절되었다. 참아버님은 최고 기준의 영광된 자리를 박탈당하고 최하의 옥중 수난 길을 통해 메시아 출발섭리의 기대를 재탕감복귀하여야 했다. 흥남에서의 2년 5개월 수감노정을 통해 생사지경을 넘어 옥중제자들을 전도하고 재출발의 기대를 확립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