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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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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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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모님

참父母님 / True Parents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창립자로서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창조본연의 완성한 인간시조이며 재림 메시아이고 구세주인 문선명·한학자 부부.

[내용] 개요

문선명 참아버님은 1920년 음력 1월 6일에 대한민국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탄생하였고, 한학자 참어머님은 1943년 음력 1월 6일 대한민국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탄생했다. 참아버님은 16세에 종교적 체험을 통해 재림 메시아 사명자임을 자각하고 이후 9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새 진리의 체계를 완성했다. 참아버님은 1954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하여 국내외에서 급속히 성장시켰다. 양위분은 1960년 4월 11일 성혼하여 참부모님이 되었다. 참부모님은 하나님의 뜻인 인류의 구원과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기관들을 창립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참부모님은 1994년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했다. 참아버님은 2012년 9월 3일(음 7.17) 모든 사명을 완수하고 성화했다. 이후 한학자 참어머님이 지속하여 인류의 구원과 평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호칭의 통일신학적 의미

‘참부모님’이란 호칭은 문선명·한학자 부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서 ‘참부모’라는 정체성을 가진 양위분임을 의미한다. 참부모란 참된 부모를 의미하는 일반명사도 되지만, 가정연합에서는 그 의미가 특별히 규정되어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참부모의 개념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다. 하나님은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으로 존재하므로 부성과 모성을 함께 가진 인류의 궁극적인 참부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양성과 음성을 실체대상으로 전개한 창조본연의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과 일체를 이룬 부부와 부모가 되면, 그들도 참부모라고 한다. 하나님은 무형의 종적인 참부모이며, 완성된 인간 부모는 유형의 횡적인 참부모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횡적인 참부모가 하나 되어 사랑을 완성하고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부모의 이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시조 부부가 완성하여 하나님과 일체됨으로써 시작될 것이었다. 하나님과 일체된 인간시조 부부가 하나님 혈통의 자녀와 후손을 번식하여 인류가 이뤄질 수 있었으므로 완성된 인간시조 부부는 인류의 첫 번째 참부모이며 전 인류의 참부모가 될 수 있었다. 그 자녀와 후손들은 전 인류의 참부모를 모시고 따라가며 배움으로써 각자 가정 단위의 참부모 이상을 성취할 수 있었다. 참부모 하나님은 완성된 인간시조 참부모로 현현하여 인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의 근원이 되며 인류와 피조세계를 실체적으로 주관할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시조로 창조한 아담과 해와가 인류의 참부모로 완성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하여 사탄의 주관을 받는 악한 거짓부모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대신하는 창조본연의 인간시조를 다시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참부모로 완성된 인간시조를 통해 타락한 인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낳아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이 메시아사상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탕감복귀역사를 통하여 선택하고 준비한 환경인 유대 민족 가운데 새로운 인간시조를 다시 창조했다. 바로 예수님이 새로운 인간시조가 될 메시아였다. 그런데 준비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불신함으로 인해 참부모로 완성되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운명했다. 하나님은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또다시 창조본연의 인간시조를 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림 메시아사상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다시 재탕감복귀역사를 통하여 선택하고 준비한 환경인 한민족 가운데 새로운 인간시조를 창조했다. 한국에서 탄생한 문선명 참아버님과 한학자 참어머님이 새로운 인간시조이며 재림 메시아이다. 인간시조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첫 아들딸로서 독생자 독생녀로 창조되었듯이 그들을 대신하는 새로운 인간시조도 하나님의 독생자 독생녀로 탄생하게 돼 있었다. 참아버님과 참어머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독생녀로 탄생하여 부부를 이루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전 인류의 참부모로 완성했다. 무형의 하나님은 영계와 육계에서 실체의 참부모님으로 현현하여 온 천주를 주관한다. 이렇게 전 인류의 참부모로 완성된 양위분을 ‘참부모님’으로 호칭한다. 참부모님은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낳아 천국을 이루어 가는 재림 메시아이며 구세주이고 전 인류와 천주를 통치하는 평화의 왕이다.

탄생

참부모님은 예수님 이후 신약시대 2천 년이 지난 뒤 하나님이 선택하고 준비한 한민족의 국가적 기반인 대한민국에서 탄생했다. 문선명 참아버님은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 음력 1월 6일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 2221번지에서 부친 문경유(文慶裕)와 모친 김경계(金慶繼)의 사이에서 6남 7녀 중 둘째 아들로 탄생했다. 교단은 참아버님의 부친 문경유를 충부(忠父)님으로, 모친 김경계를 충모(忠母)님으로 부른다. 증조부 문정흘은 한 쌍의 용이 바다에서 승천하는 몽시를 받고 참아버님의 이름을 용명(龍明)으로 지었다. 참아버님은 1945년 공식적인 섭리노정을 출발한 뒤 평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선명(鮮明)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고 개명했다. 종조부 문윤국은 기독교 목사이자 독립운동가로 3·1운동에 참여했다. 이승훈과 함께 오산학교의 설립을 주도했고, 집안의 전 재산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보내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1990년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다. 모친 김경계 충모님은 키가 크고 성격은 활달하고 정열적이며 참아버님의 재림 메시아 노정에서 모자협조의 섭리적 기반을 완수했다.

한학자 참어머님은 1943년 음력 1월 6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 26번지에서 부친 한승운(韓承運)과 모친 홍순애(洪順愛)의 사이에서 외동딸로 탄생했다. 교단은 참어머님의 모친 홍순애를 대모(大母)님으로 부른다. 부친은 몽시에서 한 쌍의 학을 본 뒤 참어머니의 이름을 ‘학자(鶴子)’라고 지었다. 부친은 북한과 남한에서 교육자로 봉직했다. 모친 홍순애 대모님은 1914년 음력 2월 22일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부친 홍유일과 모친 조원모의 사이에 1남1녀 중 맏딸로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했다. 참어머님의 탄생을 전후해 한반도에 신령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참어머님의 가정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여성을 중심한 신령운동의 정성 기반은 조원모 외할머니와 홍순애 대모님을 거쳐 한학자 참어머님에게 승계되었다. 참어머님의 모계는 3대 독녀로서 하늘 편으로 성별돼 나왔다. 조원모 외할머니와 모친 대모님 그리고 참어머님은 모두 외동딸로서 신앙생활을 통해 참어머님을 위한 기반을 준비했다.

성장

참아버님은 7세부터 13세까지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다. 1934년 15세에 오산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고, 1935년 16세에 정주공립보통학교 4학년으로 전학하여 1938년 19세에 졸업했다. 참아버님은 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18년간 고향인 상사리 인근에서 자연을 교재삼아 자질과 품성을 길렀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영적 직관력과 예지력을 보였으며, 정이 많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

참아버님은 15세에 가족과 함께 기독교에 입교하여 집 근처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참아버님은 사고가 깊고 넓어지면서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깊은 기도와 사색의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참아버님은 16세 되던 1935년 4월 17일 새벽 묘두산 산상기도 중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이 인류를 구원해야 할 메시아의 사명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9년 동안 참아버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은 물론 영계의 성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우주의 궁극적인 새 진리를 밝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나님은 참아버님에게 자신의 심정과 창조와 타락 그리고 복귀의 사실을 가르쳐 주었으며, 참아버님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더욱 궁구하여 완전히 깨닫고 체득하여 ‘원리’의 체계로 완성했다. 참아버님은 1951년 5월 11일에 ‘원리’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최초의 문헌인 ‘원리원본’의 집필을 시작하여 1년 후 완성했다.

참아버님은 16세에 인류 구원의 사명을 깨달은 이후 고향과 서울 유학 그리고 일본 유학을 거치면서 장래 구원섭리의 공식노정을 준비했다. 내적으로는 눈물어린 깊은 기도의 정성을 들이면서 ‘원리’를 구명하고, 외적으로는 온갖 고난과 참사랑의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참아버님은 1938년 19세에 서울에 있던 경성상공실무학교 전기과에 입학했다. 서울 학창시절 3년 동안 자취와 하숙생활을 통해 고행에 가까운 생활훈련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학업과 신앙에 정진했다. 참아버님은 서울에서 한국적 성령운동을 주도한 오순절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서빙고 오순절교회를 다니며 흑석동에 새예수교회를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그 교회의 주일학생들을 지도했다. 참아버님은 1941년 22세에 경성상공실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 도쿄 와세다고등공학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참아버님은 일본 유학시절에 본격적으로 ‘원리’의 체계화에 몰두하였고, 학업 외에도 다양한 생활을 경험하며 자아 주관을 완성하기 위해 고된 수련을 했다. 1943년 24세에 와세다고등공학교를 졸업하고 10월에 귀국했다.

참어머님은 모친 홍순애 대모님이 재림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앙생활에 전념함에 따라 어린 시절을 주로 외가에서 보냈다. 그러면서 조원모 외할머니와 모친으로부터 신앙의 정수를 배웠다. 모친은 참어머님이 어렸을 때 사탄이 갖은 방법으로 위해하려고 따라다니는 것을 몽시를 통해 자주 목격하고 유모와 같은 자리에서 참어머님을 정성껏 양육했다. 참어머님은 1948년 6살에 복중교 교주 허호빈의 모친으로부터 ‘하늘의 신부가 될 것’이라는 축도를 받았다. 같은 해 북한 공산당국의 종교 탄압이 심해지자 남한으로 떠나라는 하늘의 계시가 있었다. 조원모 외할머니와 홍순애 모친 그리고 참어머님 세 분은 밤중에 북한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도착하여 정착했다.

참어머님은 1950년 8세에 서울 효창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55년 13세에 춘천 봉의초등학교 6학년으로 전학하고 이듬해 졸업했다. 1956년 14세에 봉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이사해 성정여자중학교에 입학하여 1959년 17세에 졸업하고, 이어서 오늘의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의 전신인 서울의 성요셉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참부모님은 선정중학교로 교명이 바뀐 성정여자중학교를 1987년 4월 인수했다. 참아버님은 1955년 10월 4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무죄로 석방된 후 성주교 교주였던 김성도의 아들 집을 방문했다. 이로 인해 참어머님과 모친 대모님이 참아버님을 만나게 되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 입교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드디어 하나님이 보낸 독생자와 독생녀가 함께 참부모가 되어 인류 구원의 섭리적 중심자로 설 수 있게 되었다. 1956년 3월 초 참어머님은 모친과 함께 참아버님을 직접 대면했다. 그 만남에서 참어머님은 자신이 참아버님의 상대로 하나님이 준비한 여성이며, 참아버님과 함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자각했다. 이후 깊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적인 사명을 완수할 것을 결의했다.

성혼

문선명 참아버님과 한학자 참어머님은 1960년 3월 27일(음 3.1) 약혼식을 갖고, 4월 11일(음 3.16) 서울 청파동의 전본부교회에서 성혼식을 거행했다. 독생자와 독생녀로 탄생한 양위분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성혼함으로써 하나님의 참사랑·참생명·참혈통을 가진 창조본연의 인간시조 참부모가 역사상 처음으로 출현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예언된 ‘어린 양 혼인잔치’가 양위분의 성혼으로 성취된 것이다. 참부모님의 성혼은 타락한 인류를 중생시켜 줄 참부모가 출현한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며 세계적이고 천주사적인 사건이었다.

수난 노정과 승리

참아버님은 평생 여섯 번의 무고한 옥고를 치렀다. 참아버님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 일본 유학시절에 지하 항일운동을 한 것이 탄로나 경기도경찰부에 수감(1944년 10월-1945년 2월)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어 곽산지서에 일주일간 구속 수감(1945년 10월)되어 수난을 당했다. 해방 후 북한 평양에서 전도활동을 할 때 기독교 지도자들의 밀고와 북한 공산당국의 종교탄압이 맞물리면서 참아버님은 남한 정부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대동보안서에 수감(1946년 8월 11일-11월 21일)되었다. 참아버님은 혹독한 고문을 받고 빈사상태로 석방되었다. 참아버님은 건강을 회복한 후 다시 전도활동을 계속했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무고와 극심해진 북한 공산당국의 종교말살정책에 의해 참아버님은 재판을 받고 흥남특별노무자수용소(통칭 흥남감옥)에 수감(1948년 2월 2일-1950년 10월 14일)되었다. 흥남감옥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십자가와 같은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다. 참아버님은 한국동란 중 유엔군의 흥남 폭격으로 석방되었다.

참아버님은 남한에서도 무고한 옥고의 노정을 걸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창립 후 활발한 전도활동을 통해 기독교 재단의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기독교인 대학생들이 많이 전도되었다. 이에 두 대학교는 통일교회를 다닌다는 신앙의 이유로 교수와 학생들을 퇴직·퇴학시켰다. 이후 기독교 단체들은 갖가지 유언비어로 통일교회를 왜곡 선전하며 반대했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이승만 정권은 참아버님을 병역법 위반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1955년 7월 4일-10월 4일)했다. 그러나 참아버님은 그해 10월 4일에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종교탄압이었다.

참아버님은 종교의 자유를 핵심적 가치로 내세운 미국에서도 무고한 옥고의 노정을 걸었다. 참부모님이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자 인종차별과 종교적 편견으로 참아버님을 미국에서 추방하려는 세력이 일어났다. 참아버님은 은행 이자의 소득세에 대한 세금 7천300달러를 납부하지 않았다는 탈세혐의로 댄버리교도소에 수감(1984년 7월 20일-1985년 8월 20일)되었다. 원래 종교활동을 위한 은행계좌의 이자에는 세금이 없다. 이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모인 종교 지도자 3천500여 명이 종파를 넘어 백악관 앞에 모여 종교탄압에 항의하며 ‘종교의 자유수호를 위한 시위’를 벌였다. 참아버님의 출감일에는 유대교, 기독교 목사들 1천7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출감 환영 만찬회가 열렸다. 이때를 계기로 많은 미국의 기독교 목사들이 한국의 통일교회에 찾아와 ‘원리’를 배우게 되었다.

참아버님은 이와 같이 일제치하에서 한 차례, 북한 공산치하에서 세 차례, 대한민국에서 한 차례, 미국에서 한 차례 옥고를 치렀다. 여섯 번의 옥고는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노정이었다. 참아버님은 인류가 받아야 할 탕감을 대신 짊어지고 인류 구원섭리를 위한 승리의 조건을 세웠다. 참아버님의 수난은 새로운 섭리를 진척시키는 계기였다. 북한 흥남감옥의 수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탕감복귀하는 섭리적 조건을 세운 것으로 출옥 후 남하하여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의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댄버리 수난을 통해서는 미국 기독교 성직자들을 하나로 묶은 기적을 만들었다. 참어머님은 참아버님과 일체를 이루어 댄버리 수난 노정을 함께 걸으며 세계적 탕감복귀섭리를 승리했다.

공식노정의 출발과 좌절

참아버님은 1945년 8월 15일 한국의 해방과 함께 복귀섭리를 위한 공식노정을 먼저 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한 하늘 편이 승리하고, 한국이 해방됨으로써 재림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기대가 세계와 국가적으로 조성되었다. 하나님이 준비한 예정된 때를 맞아 참아버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재림 메시아의 공식노정을 시작했다. 예수님을 위해 준비된 교단이 메시아를 기다려 온 유대교였던 것처럼 재림 메시아를 위해 준비된 종교적 기반은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려 온 기독교였다. 따라서 참아버님은 먼저 준비된 남한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났으나, 그들은 참아버님을 재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참아버님은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신령교단을 찾아갔다. 당시에 영급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김백문이 인도하던 예수교회 이스라엘수도원으로 찾아가 1945년 10월부터 6개월간 온 정성을 다해 봉사활동을 했다. 1946년 3월 초 김백문은 계시를 받고 참아버님에 대해 ‘솔로몬 왕의 영광으로 오신 분’이라고 증거했다. 그러나 그는 참아버님을 모시고 따르지 않아 참아버님의 섭리적 기반이 될 수 없었다.

참아버님은 남한에서 기독교를 중심한 섭리적 기반을 닦을 수 없게 되자 평양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1946년 6월 6일 평양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사탄 편에 가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와야 했다. 평양에서 점차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찾아와 상당수의 예배인원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자 참아버님에게 교인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평양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북한당국에 고발하여 참아버님은 그해 8월 11일 평양 대동보안서에 수감되었다.

참아버님은 대동보안서에 들어갈 때 준비된 신령교단의 지도자를 만날 것을 알았다. 그곳에는 재림 메시아가 인간으로 탄생한다는 계시를 받고 준비하던 복중교 교주 허호빈이 갇혀 있었다. 참아버님은 그 신령교단을 섭리적 기반으로 삼기 위해 그녀에게 “내가 누구인지 기도해 보라.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나가라.”는 비밀 쪽지를 보냈지만, 그녀의 불신으로 오히려 그 쪽지가 간수들에게 발각되어 참아버님은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빈사상태에서 석방되었다. 결국 참아버님은 남북한 양쪽에서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령교단으로부터 모두 반대를 받음으로써 예수님이 유대 선민과 유대교인의 반대로 40일 금식과 3대 시험을 거쳐야 했던 것과 같이 대동보안서에서의 혹독한 고문과 3대 시련의 노정을 거쳐야 했다.

3대 시련 노정의 첫째는 ‘여호와의 부인’이라는 박을용 씨를 통한 시련이었다. 참아버님은 그녀를 찾아가 봉사하면서 종의 종 자리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실체대상 자리까지 올라가는 종적 8단계의 탕감복귀노정에서 승리했다. 둘째 시련은 영계에서 성현들을 중심한 모든 영계 대표들과 43일간에 걸친 진리 싸움의 노정이었다. 참아버님은 치열한 논쟁 끝에 하나님의 공인과 어인을 받아 승리했다. 셋째 시련은 예수님이 12제자를 잃어버리고 십자가 고난을 겪은 것을 탕감복귀하는 노정이었다. 참아버님은 십자가에 달린 자리와 같은 흥남감옥에서 12명 이상의 제자들을 전도하여 승리했다. 이제 참아버님은 복귀섭리의 공식노정을 재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동란 중 유엔군의 흥남 폭격으로 1950년 10월 14일 흥남감옥에서 석방된 참아버님은 두 제자와 함께 남하하여 1951년 1월 27일 부산 초량역에 도착했다. 우선 몇몇 지인들의 집에서 몇 달을 지내다가 8월에 범일동 범냇골 수정산 중허리에 작은 토담집을 손수 짓고 정착했다. 그해 5월 11일부터 1년간 ‘원리원본’을 집필하여 완성했다. 부산에서의 기간은 참아버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복귀섭리의 재출발을 준비한 기간이었다.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창립과 세계 선교

참아버님이 복귀섭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참아버님을 반대한 기독교를 대신하는 섭리적 기반이 필요했다. 참아버님은 1954년 5월 1일 서울 성동구 북학동(지금의 중구 신당동 391-6번지) 소위 세대문집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했다. 협회 본부교회는 성동구 흥인동과 중구 장충동을 거쳐 1955년 10월 참아버님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출감한 직후 용산구 청파동으로 옮겨졌다. 참아버님은 청파동 본부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국내 전도와 세계 선교를 전개했다. 교회 신도들이 점차 늘어나며 지방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다. 협회는 1963년 5월에 사회단체로 정부에 등록되었고, 10월에 유지재단 법인의 인가도 받았다.

당시에 해방과 분단, 전쟁을 겪으며 인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회의와 한민족의 비극적 운명 앞에 절망하고 있던 젊은 지식인들은 ‘원리’ 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특히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입교하자 기독교 재단인 연세대와 이화여대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퇴학시켰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참아버님을 사회 문란혐의로 무고하여 구속시켰다.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으나 이때부터 기성 기독교와 결탁한 기득권층의 통일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통일교회는 이 모든 박해를 이겨 내면서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크게 성장했다.

참아버님은 1958년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1959년 10월 도쿄에서 일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발족되었다. 원수 나라였던 일본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 편 상대국가로 세우려 했다. 참아버님은 1959년 미국에도 선교사를 파송했다. 1962년 9월에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법인단체로 등록되었고, 이어 1963년 4월에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교단 초기부터 일본과 미국을 중심한 세계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참아버님은 1965년부터 1969년까지 3차에 걸쳐 세계 주요 국가들을 직접 순회하면서 선교를 이끌었다. 참아버님의 순회로 해외 선교가 급속도로 활성화되었다. 특히 참부모님은 7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참부모님은 1971년 12월 18일 워싱턴D.C.에 도착하여 7대 도시 강연을 통해 섭리적 중심국가인 미국의 각성과 기독교의 책임을 명확히 밝혀 주고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해 각성시켰다. 참부모님은 1974년 9월 18일 3만여 명이 운집한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대회와 1976년 6월 1일 5만 명이 참석한 뉴욕 양키스타디움대회, 9월 18일 30만 명이 모인 워싱턴모뉴먼트대회를 통해 미국과 세계에 하나님의 뜻과 비전을 공표했다. 이 대회로 참아버님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1976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에서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종교인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참부모님은 성공적인 미국 선교에 더불어 1975년 2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교사회의에서 세계 95개국 선교사 파송을 결정하고 127개 선교국을 확정했다. 이후 본격적인 세계 선교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각국의 세계통일십자군을 동원하여 1975년 한국에서 희망의 날 대향연과 구국세계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참부모님은 1992년 4월 10일 세계평화여성연합 창설대회를 개최하면서 세계여성시대의 도래를 선포했다. 이때부터 참어머님이 공개적으로 전 인류 앞에 등장하여 한국과 일본, 미국 등 세계 곳곳을 순회하면서 세계평화여성연합 창설대회를 주재하고 여성해방을 선언했다.

주요 활동과 업적

하나님의 뜻은 종교만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참부모님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평화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종교를 비롯한 정치·경제·교육·언론·문화·과학·환경·가정·여성·청소년 등 인류 문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각도로 노력했다. 몇 가지 주요 활동과 업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축복결혼을 통한 인류 구원섭리

참부모님의 중심 사명은 타락하여 원죄를 지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축복결혼은 사탄 중심의 악한 혈통을 하나님 중심의 선한 혈통으로 전환시키는 의식이며, 하나님을 중심한 사랑의 질서를 세우는 행사이다. 축복결혼은 인류의 참시조인 참부모님만의 특권이며, 하나님을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출발점이며 과정이고 결과이다. 1960년 4월 16일 3가정의 축복결혼식을 시작으로 수억 쌍의 국제축복결혼식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영계에 있는 영인들도 영인 축복결혼식에 참가하여 원죄를 벗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다. 참부모님은 축복결혼 섭리와 더불어 청소년 문제와 가정 붕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순결운동과 참가정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2)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실현

참부모님은 평화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 무신론을 앞세우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먼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국제승공연합과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등 많은 기구들을 세우며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1990년 공산주의 심장부인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만나 무신론을 폐기하고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갈 것을 권고하여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 내었다. 이어 1991년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통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텄다. 1985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에서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하고 공산과 민주주의 이념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참부모님은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서 일본과 미국 그리고 남미 등지에서도 국제적인 승공운동을 전개했다. 남북미의 평화를 위해 남북미통일연합(CAUSA)과 중남미통일연합(AULA)을 결성하고, 몽골반점동족들을 세계평화운동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 몽골반점동족세계평화운동연합을 창설했다. 또한 세계평화를 위해 유엔의 개혁을 추진하여 종교를 상원으로 두는 평화유엔 아래 세계가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부모님은 실질적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방안으로 1981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국제평화고속도로의 건설을 제창했다. 참부모님은 국제평화고속도로와 한·일 해저터널과 베링 해협터널의 건설을 위해 각종 국제회의와 학술, 홍보활동 등을 전개했다. 국경 철폐를 통해 하나님이 소망하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3) 언론, 교육, 예술 활동

참부모님은 하나님을 중심한 심정문화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많은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심정문화의 세계는 온 인류가 국경·종교·인종 등 모든 장벽을 초월해 참사랑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이다. 참부모님은 그러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우선 사상의 정립이 중요하다고 보고 통일원리를 근거로 한 통일사상을 체계화하고, 통일사상의 절대가치를 인류 문화에 적용하고자 여러 학술단체들을 창설하고 운용해 나왔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석학들을 중심으로 세계평화교수협의회를 창설하고, 종교와 과학의 통일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과학통일회의(ICUS)를 지속적으로 개최했다. 이 회의는 절대가치관에 의한 심정문화세계의 창건을 주요 의제로 다루었다.

또한 참부모님은 심정문화를 향해 사회를 계도하고자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요 섭리국가들에 종합일간지를 창간하고 세계언론인회의를 통해 언론인 교육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한국과 미국에 대학을 설립하고 애천·애인·애국의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을 미래세계의 참된 인재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한국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설립하거나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참부모님은 참사랑의 심정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각종 문화예술단체와 스포츠단체도 창설했다. 리틀엔젤스예술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세계적으로 공연을 펼치며 국위 선양은 물론 문화 교류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축구단을 창설하여 축구를 통한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4) 과학기술 및 해양, 중남미 섭리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재창조섭리이므로 사탄 세계에 빼앗긴 환경을 복귀하는 섭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참부모님은 환경을 재창조하기 위해 교단 초기부터 경제기반을 조성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 많은 기업들을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러한 가운데 선진국과 후진국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선진기술을 가진 기업체를 인수하여 후진국에 그 기술을 교육해 주는 과학기술 평준화운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참부모님은 하나님이 태초에 구상한 인류공동체의 실현을 위해서 해양이 중요하다고 보고 교단 초기부터 해양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다. 특히 한국의 여수와 거문도, 미국의 알래스카와 하와이 등지를 해양섭리의 중심기지로 삼고 해양을 개발할 수 있는 인재를 훈련시키며 해양자원을 개발하여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자 어류와 크릴새우를 이용한 고단백의 식량인 피시파우더를 생산하여 기아로 고통 받는 저개발국가들에게 제공했다. 동시에 해양 취미산업도 적극 추진하여 세계평화를 위한 사업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

참부모님은 평화로운 인류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남미가 중요하다고 보고 개신교권의 북미와 천주교권인 중남미를 하나 만들고자 노력했다. 교단의 세계적인 조직과 경제력을 동원해 중남미 국가들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특히 우루과이에 호텔과 은행 등 많은 업체들을 세웠다. 남북미통일연합(CAUSA)과 중남미통일연합(AULA)을 설립해 남북미의 통일운동을 전개하며 중남미의 지도자들을 교육했다. 또한 브라질 자르딘을 중심으로 새소망농장을 세우고, 판타날과 푸에르토 레다지역을 시범적으로 개척하여 환경과 문명이 조화를 이룬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다.

(5) 초종교 평화운동

인류는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심정적 인연이 끊어지면서 영적 세계에 대한 깊은 무지 속에 살아왔다. 하나님은 이런 인류의 영적 무지를 타개하고 구원섭리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방편으로 종교를 세웠다. 종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성인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인류를 각성시켜 왔으며, 마침내 참부모님이 이 땅에 와서 부모 종교의 시대를 열었다. 참부모님은 모든 종교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도록 만들기 위해 종교의 연합과 일치운동에 큰 힘을 쏟았다.

참부모님은 일찍이 1960년대 중반부터 초교파운동을 전개하며 통일교회와 기독교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였고, 1970년대에는 한국종교협의회를 중심으로 종교연합운동에 앞장섰다. 초교파운동과 종교연합운동은 종교인들을 화합과 통일로 이끄는 두 축으로서 1980년대부터는 국가적 단계를 넘어 세계적인 초종교 평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를 위해 국제종교재단과 세계종교의회, 세계평화종교연합,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등을 창립하여 활동했다.

복귀섭리 완결과 천일국시대 개문

참부모님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성취되는 평화의 세계를 천주평화통일국(天宙平和統一國), 곧 약칭하여 천일국(天一國)이라고 명명했다. 천일국은 하나님이 태초에 이루려 하였던 하나님의 나라로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이 실현된 지상과 천상의 천국을 의미한다.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이루지 못하였던 그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한스러운 복귀섭리를 이끌어 왔다. 참부모님은 형언할 수 없는 탕감과 정성의 노정으로 모든 복귀섭리를 완성하여 천일국의 개문을 선포했다. 참부모님은 2001년에 ‘하나님왕권즉위식’을 봉헌하였고, 2009년에 하나님의 심정권까지 해방하고 하나님이 만왕의 왕으로 등극하는 ‘만왕의 왕 하나님 해방권 대관식’을 봉헌했다. 참부모님은 2006년에 ‘천주 평화의 왕 대관식’을 거행하여 천주 평화의 왕으로 등극했다. 참부모님은 하나님과 일체된 참부모님을 억조창생만승군황 천일국 진성덕황제(眞聖德皇帝)로 호칭했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은 일체를 이룬 만왕의 왕으로서 천일국을 영원히 주관한다. 과거·현재·미래의 전 인류는 하나님과 참부모님 앞에 형제자매이다.

참부모님은 2010년 6월 19일(천력 5월 8일)과 6월 26일(천력 5월 15일)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심·일체·일념·일화·일핵을 이루고, 양위분이 횡적으로 최종일체를 이룬 터전 위에 구약·신약·성약시대의 완성·완결·완료와 전체·전반·전권·전능의 시대를 선포했다. 그리고 2011년 12월 11일(천력 11월 17일) 천정궁에서 “천지의 모든 존재가 초점을 맞추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기준을 찾아 세우신 가운데 모든 섭리의 완성, 완결, 완료와 최종승리를 선언한다.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선포했다. 참아버님은 성화하기 21일 전인 2012년 8월 13일(천력 6월 26일)에도 기도 가운데 모든 섭리적 사명을 완성, 완결하였음을 선포했다. 참아버님은 천일국이 출발하는 기원절을 6개월 앞둔 2012년 9월 3일(천력 7월 17일) 성화했다. 이후 참어머님은 2013년 2월 22일(천력 1월 13일) 천일국 기원절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참어머님은 천일국 정착을 위해 천상의 참아버님과 일심·일체·일념·일화·일핵의 자리에서 천일국 3대 경전 편찬과 천일국 헌법 제정, 글로벌 인재 양성 등 수많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일정 기간 성장하여 완성하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의하여 천일국도 출발과 성장 그리고 완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책임분담의 창조원리에 의하여 하나님이 보낸 재림 메시아 참부모님이 천일국의 모든 것을 다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천일국은 하나님의 책임분담과 참부모님의 책임분담 그리고 인류의 책임분담이 모두 완수될 때 역사 안에서 점차 건설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재림 메시아로서 참부모님의 책임분담은 탕감복귀섭리를 완결하여 천일국이 출발할 수 있는 모든 영적이고 실체적인 기반을 완성하여 천일국을 개문하고 하나님과 함께 천일국을 통치하여 완성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책임분담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