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민
劉孝敏
항목체계 인물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관주면 성별 남
[정의] 유효원의 동생으로 초창기 입교하여 경제부문에 헌신한 원로.
[내용] 독실한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났다. 조부 유상찬은 관주면에 장로교회를 세워 선교를 하고 마을에 학교를 세우는 등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하였다. 해방 이후 신앙적인 박해가 심해져 형 유효원, 유효영과 함께 1947년 11월 남하하였다. 옹진군 연평도에서 3년간 삼 형제가 같이 지내면서 사업을 구상하다가 한국동란 이후 부산으로 피란하였다. 부산에서 영락교회 찬양단 활동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서울수복 이후 형제가 흩어졌다가 유효원이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1953년 8월 형제가 다시 부산에 모였다. 이후 유효원을 통해 12월 24일 참아버님을 뵙고 원리말씀을 들었다. 입교 후 서울로 올라와 협회 창립에 참여하였고 사진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등 경제부문에 헌신하였다. 1955년 7·4사건이 일어났을 때 참아버님과 함께 수감되어 고난에 동참하였다. 1956년 성화청년회 초대음악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1957년 인화실업을 인수하였을 때 형 유효영을 도와 전무로서 공장 정상화를 이루었고 공기총 제작과 천승호 제작 등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 ‘유효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