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프
John Wycliffe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영국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의 선구자.
[내용] 교황권(敎皇權)으로부터 영국의 정치적·종교적 독립을 표방하며 반교황 정책을 취하는 등 교회의 개혁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위클리프는 옥스퍼드대학의 신학 교수를 거쳐 에드워드 3세의 궁정 사제로 서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의 척도이자 생활의 유일한 표준이라고 강조하며 부패한 로마가톨릭 체제와 교황권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위클리프는 반정부적 고위 성직자를 비판하고 로마교황의 권위와 권력을 부정, 교회 재산의 국고 몰수를 주장하였다. 이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로부터 단죄되었으나 그를 지지하는 왕자 랭커스터 공작의 보호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후 그의 반로마 투쟁은 성찬의식에 있어서 화체설(化體設) 부정, 민중을 위한 성경 영어 번역, 청빈 설교자단의 파견 등으로 이어졌다. 그의 사후 콘스탄츠공회의로부터 이단자라는 선고를 받았지만 위클리프의 사상은 그의 신봉자들인 롤러드파에게 계승되었으며, 그의 저서는 체코의 개혁자 얀 후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위클리프를 부패한 교황 정치에 반대하며 중세사회를 초대기독교 정신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한다. 교황은 재림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영적인 기대를 조성해야 할 섭리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사회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교황은 도덕적 부패와 교만에 빠져 하늘의 뜻을 저버렸고, 그 결과 히브리 사상을 중심한 중세적 지도 정신은 힘을 잃고 말았다. 『원리강론』은 위클리프가 교황 정치에 반발하여 순수한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개혁운동을 펼쳤고, 이러한 그의 활동은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