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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WO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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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연합 대사전은 천일국학술원에서 제공합니다.
이 사전은 2019년까지의 내용을 수록하였고 섭리의 변화에 따라 항목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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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강론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

原理講論 노아 家庭을 中心한 復歸攝理 / Providence of restoration in Noah’s family

항목체계 사상교리

[정의] 노아 가정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우기 위한 섭리.

[내용] 개관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아담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창조목적을 완성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이므로 하나님은 아벨이 하늘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심정의 터전 위에서 그의 대신으로 셋을 세웠다. 그리고 그 후손에서 노아 가정을 택하고 아담 가정 대신으로 세워 새로운 복귀섭리를 하였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 노아 가정을 터로 하여 메시아를 보내 창조목적을 완성하려 하였으므로 그때도 말세였다. 노아 가정도 먼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고, 그 기대 위에 실체기대를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워 아담 가정이 복귀하지 못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해야 하였다.

믿음의 기대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야 할 중심인물은 노아였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이루려다 못 이룬 뜻을 대신 이루기 위하여 아담으로부터 1600년을 지나 10대 만에 노아를 소명하였다. 노아는 온 땅에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가 없을 때 부름을 받아 120년간 갖은 조롱과 비소를 받아 가며 하나님의 명령에만 절대 순종하여 평지도 아닌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조건 삼아 노아 가정을 중심하고 홍수 심판을 감행할 수 있었다.

노아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은 방주였다. 노아가 아담 대신 제2의 인간조상 입장에 서려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사탄에게 내주었던 천주를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했다. 따라서 신천주(新天宙)를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을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뜻 맞게 바쳐야 했다. 이러한 조건물로 세웠던 것이 바로 방주였다. 방주는 3단계의 성장 기간을 통해서 창조된 천주를 상징하기 위해 3층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아담 가정의 여덟 식구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 들어갔다. 방주가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 안에 주인으로 들어간 노아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 그의 식구들은 전 인류를 상징하였으며, 그 안에 들어간 동물들은 만물세계를 상징하였다.

방주가 완성된 후 하나님은 40일간의 홍수 심판을 하였다. 인간은 한 주인을 대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을 대하는 대상으로 복귀하기 위하여 사탄의 상대가 되어 있는 전인류를 멸하는 홍수 심판의 섭리를 하였다.

홍수 심판 40일 기간의 섭리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10수는 귀일수(歸一數)로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지 못했던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탕감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재귀일(再歸一)시키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기 위해 아담 이후 10대 만에 노아를 찾아 세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위기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써 각 대(代)를 세우는 섭리를 노아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서 계속하여 왔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의 기간은 40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다. 그런데 당시 인간들의 음란으로 말미암아 이 40수 탕감기간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를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완성하는 섭리를 다시 하기 위하여 사탄의 침범을 당한 이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으로 40일 심판기간을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 하였다. 이후 40수는 탕감복귀 섭리노정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사탄 분립수로 필요하게 되었다.

홍수 심판이 끝날 때, 노아는 방주에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보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장차 이룰 섭리를 예시한 것이었다. 방주를 하나님의 뜻 앞에 합당한 것으로 세움으로써 천주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심판 40일 기간은 천지창조의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의 혼돈 기간이었다. 따라서 40일이 끝날 때 방주를 중심하고 나타내 보였던 행사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료한 이후의 전 역사노정을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까마귀를 방주에서 내보내어 물이 마를 때까지 왕래하게 한 것은 마치 인간 창조 직후에 천사장이 해와의 사랑을 노렸고, 가인과 아벨이 헌제를 할 때에도 사탄이 그들에게 침범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과 같이 홍수 심판이 끝날 무렵에도 사탄은 노아 가정에 무슨 침범할 조건이 없는가 하고 엿보고 있었다는 것을 까마귀가 어디에 앉을 곳이 없는가 하고 물 위를 찾아 헤매는 모습으로 표시한 것이다.

또한 노아는 3차에 걸쳐 비둘기를 내보냈다. 노아는 40일 심판기간이 지난 후 첫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다. 이 비둘기는 물 위를 왕래하다가 발붙일 곳이 없어서 다시 방주로 돌아왔다. 이 첫 번째 비둘기는 첫 아담을 상징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위해 아담을 지상에 창조하였으나 그의 타락으로 인해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없게 되어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의 뜻 성사를 후일로 미루고, 그 이상을 일시 지상으로부터 거두어 들였음을 의미한다.

7일 후 두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때에도 역시 물이 다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비둘기는 지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다음에 앉을 수 있다는 표시로 감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방주로 되돌아왔다. 두 번째 비둘기는 2차 아담으로 오는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다. 예수님이 복귀섭리를 완성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올 것이지만, 만일 유대인들이 불신하게 되면 그는 지상에 머물 수가 없게 되어 그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부득이 재림할 것을 약속하며 십자가에 달려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시한 것이다. 만일 그때에 땅에 물이 말라서 비둘기가 내려 앉아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다면, 그 비둘기는 방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물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갔던 것과 같이 장차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잘 믿고 모시면 그는 결코 죽지 않고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었지만, 만일 그들이 불신하면 예수님은 부득이 십자가에서 죽고 재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또다시 7일이 지나서 세 번째 비둘기를 내보냈다. 이때는 이미 물이 말랐기 때문에 비둘기가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 비둘기는 제3아담으로 오는 재림 메시아를 상징한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에는 반드시 지상에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되어 다시는 그 이상이 지상에서 거두어지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노아 가정은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조건물인 방주를 세우고, 홍수 심판 40일을 통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실체기대

노아는 방주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제물로 바쳐 상징헌제에 성공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다. 이 기대 위에서 노아의 아들 셈과 함이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서 실체헌제에 성공하면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노아 가정에서 실체헌제가 성공하려면, 먼저 그 중심인물이 되어야 할 차자 함이 아담 가정의 차자 아벨의 입장을 복귀해야 했다. 아담 가정에서 아벨은 자신이 아담 대신 상징헌제를 하였기 때문에 그는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동시에 실체기대의 중심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노아 가정에서는 노아가 상징헌제를 성공하였으므로 차자 함이 상징헌제에 성공한 아벨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상징헌제에 성공한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불가분의 입장에 서야 했다.

하나님은 함이 노아와 심정으로 일체적인 입장에 서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섭리를 하였다. 함은 그의 부친 노아가 장막 안에서 나체로 누워 있던 것을 보고 부끄럽게 여기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 형제 셈과 야벳을 선동하였다. 그 형제들도 함의 선동에 의해 부친의 알몸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이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부친의 몸에 옷을 덮었다. 그런데 이것이 죄가 되어 노아는 함을 저주하였다.

어떠한 존재든지 그에게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어 사탄의 상대가 됨으로써 사탄이 활동할 수 있게 되면, 죄가 성립된다. 방주는 천주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심판 40일로써 방주를 뜻 가운데 세운 직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은 천지창조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실들을 상징한 것이다. 40일 심판이 끝난 직후의 노아 입장은 천지창조 후 아담의 입장과 같았다. 창조된 아담과 해와는 서로 허물이 없는 사이였으며, 하나님 앞에 숨길 것이 없었으므로 그들이 서로 알몸으로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타락한 후 스스로 하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나뭇잎으로 가렸고,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다. 그러므로 함과 그의 형제들이 부친의 하체를 부끄러워했던 행위는 하체로 범죄하여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정념(情念)의 표시였으며, 하체를 가리고 숨었던 행동은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범죄의식의 표현이었다.

40일 심판으로 사탄을 분립한 입장에 있었던 노아는 천지창조 직후의 아담 입장이었으므로 하나님은 노아가 나체로 있어도 그 가족들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숨으려 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타락하기 전 어디도 가린 데 없이 드러낸 나체 그대로의 인간을 보면서 기뻐하였던 그 심정을 탕감복귀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나체로 누워 있게 하였다. 따라서 함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노아를 대해야 노아와 일체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죄를 짓기 전 부끄러움을 몰랐던 아담 가정의 입장으로 복귀하는 탕감조건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은 이와 반대로 부친의 나체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이를 가렸으므로 그들은 타락 후의 아담 가정과 같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부끄러운 몸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사탄은 자기의 혈연적인 후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나선 노아의 아들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 가정에 다시 침범하게 되었다.

함이 부친의 알몸을 부끄러워한 행동으로 인해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 행동은 범죄가 된 것이다. 함은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입장을 탕감복귀하지 못하여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었으므로 노아 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나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가리지도 않는 탕감조건은 아담 가정의 대신으로 세워졌던 노아 가정만이 세워야 할 조건이었다.